대북 전단은 강력한 한국형 비대칭무기
‘스마트 풍선’ 활용해 ‘김정은 가계도’ 살포
북한 중심 ‘천동설’ 벗어나 정상 사고하라
10월 2일 북한이 날려 보낸 쓰레기 풍선이 서울 상공에서 포착됐다. [뉴시스]
물거품 된 북한의 희망
머지않아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후 약 한 달 반 만인 8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입법 절차가 시작됐고, 12월 2일 당시 여당 단독으로 법이 통과됐다. 김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2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당장에 해낼 능력과 배짱이 있는 것들이라면 북남관계가 여적 이 모양이겠는가”라고 비난했던 대북 전단 살포의 전면 금지가 전격 성사된 것이다.
접경지역의 안전을 위협하고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는 선정적 대북 전단 살포 행위는 지양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독재 치하에 있는 북한 주민의 알권리는 더 중요하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접경지역이 아닌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문제를 내재한다. 법 제정 초기부터 논란과 문제의 소지가 있었던 대북전단금지법은 2021년 3월 30일 시행됐으나 결국 2023년 9월 26일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대북 전단 살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북한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북한은 심리전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체제 동요와 민심 이반 때문이다. 독재체제 유지의 가장 간단한 비결은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가혹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전은 독재체제 유지 메커니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김정은 정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
풍선을 이용하는 대북 전단은 북한 전역에 살포가 가능하며, 일부 대북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풍선은 중국 옌벤까지 날아간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스마트 풍선’이라는 것이 개발돼 북한 당국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스마트 풍선’은 고도조절기를 달아 풍향을 활용한 최적 비행이 가능하며, GPS 수신장치를 활용해 비행경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단을 일시에 살포하지 않고 배출기(dispenser)를 장착해 비행경로 전역에 살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수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마트 풍선’을 활용하는 민간단체가 가장 많이 살포하는 전단의 내용은 의외로 북한 정권 비난이 아닌 ‘김정은 가계도’다. 김정은 가계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장남이 아니며, 재일교포 출신 고용희의 아들이다. 고용희는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정식으로 혼인한 관계가 아닌 내연녀였다. 북한에서 재일교포는 ‘째포’라고 불리며 천시의 대상이다. 고용희의 외할아버지 고경택은 제주 출신이고, 이모 고용숙은 탈북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백두혈통을 자랑하는 김정은은 알고 보면 한라산 피가 흐르는 남한 출신이며, 탈북자 가족인 셈이다. 김정일의 또 다른 내연녀였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도 탈북한 바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김정은 위원장의 조작된 신화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북한의 독재정권이 숨길 일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북한이 사활을 걸고 대북 전단 살포 금지에 매달려온 이유다.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여론이 나뉜다. 분명한 것은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서 볼 수 있듯 대북 전단은 가장 강력한 한국형 비대칭무기이며, 김정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악수(惡手), 쓰레기 풍선 살포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결정이 내려진 후 대북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기 시작한 것은 올 4월이다. 한반도 기후 특성상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북쪽으로 남풍이 거의 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오물·쓰레기 풍선 살포였다. 북한이 5월 28일부터 2차례 동물 분변과 기타 폐기물 등을 담은 오물 풍선을 살포하자 유엔군사령부는 즉각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에 대해 한국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고, 자신들은 국제법 위반이냐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실수를 깨닫지 못한 발언이었다. 오물 풍선 살포 전 북한 당국 차원에서 공식 담화를 내고 한국 측에 피해를 줄 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실제 해로운 물질을 살포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내용의 전단과 달리, 약품 등을 살포하는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풍선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3차 때부터는 오물이 아닌 쓰레기 풍선을 살포하고 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 살포에 대해 한국군은 대북 심리전 방송으로 대응했다. 북한의 1차 오물 풍선 살포 때 경고했던 정부는 2차 살포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하고, 9·19 군사합의 전체를 효력 정지했다. 우리 군은 7월 21일부터 모든 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가동했다. 확성기 방송은 강력한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최대 20~30㎞까지 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전방 북한군 전체를 사정권으로 한다. 개성시 전체가 대북 심리전 방송의 영향권이며, 송출된 음악방송에 따라 춤을 추는 북한 병사까지 포착된 상황이다.
심리전 방송은 대북 전단과 함께 북한이 두려워하는 대상 중 하나다. 전방 인민군까지 영양실조에 시달릴 정도로 북한 군대의 실상은 열악하다. 10년 내외의 군복무 기간으로 북한의 젊은이들에게 사실상 청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출, 휴가도 사실상 전무한 상태에서 대북 심리전 방송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현재 인민군은 이른바 장마당 세대로 배급 체제가 아닌 장마당의 각자도생형 인생관을 갖고 있어 체제에 대한 충성도도 취약하다.
2012년 12월에 하달한 지시문을 통해 김정은은 “인민군대에 입대한 대상들 속에 수첩에 부르지 못하게 된 노래 가사와 이미 불리우고 있는 노래에 외곡(왜곡)하여 붙인 가사를 적어가지고 다니는 대상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정권 초기부터 이미 인민군대 내에 한류 현상이 나타나고 있던 셈이다.
5월 28일부터 8월 11일까지 11차례 오물·쓰레기 풍선을 살포한 북한은 9월 4일부터 10월 11일까지 17차례 오물·쓰레기 풍선을 살포했다. 9월 이후 동절기에는 북쪽으로 남풍이 거의 불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쓰레기 풍선이 오히려 더 집중 살포된 셈이다. 이는 한국군의 심리전 방송에 대한 북한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한국군의 심리전 방송 재개 이후 북한이 이른바 ‘소음 방송’ 송출로 맞대응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북한의 쓰레기 풍선 대응으로 시작된 ‘풍선 전쟁’은 이제 한국군의 대북 심리전 방송과 북한의 쓰레기 풍선 및 소음 방송으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쪽으로 부는 북풍을 활용해 쓰레기 풍선을 지속 살포함으로써 한국군의 심리전 방송 중단을 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 내에서 북한의 쓰레기 풍선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대북전단금지법 위헌결정으로 촉발된 ‘풍선 전쟁’이 결과적으로 북한이 가장 원치 않던 대북 전단과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북한은 향후에도 대북 전단과 대북 심리전 방송이 중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쓰레기 풍선을 살포할 가능성이 높다.
10월 11일 밤 북한 외무성은 중대 성명을 발표하고 남측의 무인기가 10월 3일, 9일, 10일에 걸쳐 심야에 평양 중심부인 중구역 상공에 침투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조밀한 방공망을 자랑하는 북한의 중심부, 특히 김정은 집무실인 노동당 본부청사의 하늘이 뚫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북한의 자작극이 아닐 개연성이 있는 대목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무인기 평양 침투
10월 11일 북한 외무성이 남측 무인기가 평양 중심부 상공에 침투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TV]
북한이 증거물로 제시한 대북 전단의 내용이나 전단 살포 방식 등에 비춰봐도 전문적인 대북 민간단체가 무인기 침투를 시도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대북 민간단체 대부분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전문적 무인기 기술을 가진 반북 성향의 민간단체이거나 무인기 운용 단체와 당국에 알려지지 않은 대북 민간단체의 협업 가능성이 있다.
어느 경우든 이번 사태는 북한이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의 결과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10여 차례 대남 무인기 침투를 시도했으며, 특히 2022년 12월에는 서울 상공까지 침투해 우리 군이 대응 비행에 나선 바 있다. 우리 군은 추락한 북한제 무인기 잔해를 증거물로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무인기 침투 행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지속적으로 오물·쓰레기 풍선을 살포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에게는 이를 알리지 않고 있다. 대신 무인기 평양 침투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대남 적대심 고취에 나서고 있다.
이번 사건은 북한의 반복적 도발과 오물·쓰레기 풍선 살포로 인한 자업자득의 결과다. 북한의 오물·쓰레기 풍선 살포로 화재와 재산 피해 등 이미 묵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자칫 대형 사고 우려까지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소음 방송 송출로 접경지역의 경우 일상생활까지 지장을 받고 있다.
북한이 당국 차원에서 먼저 대남 무인기 침투 도발을 자행하고 지속적으로 오물·쓰레기 풍선을 살포한 행위가 일부 강경한 남측 대북 민간단체의 맞대응을 야기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평양 심장부와 김정은 위원장 집무실도 얼마든지 무인기가 자유자재로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번 평양 무인기 침투 행위 주체가 남측 민간단체로 확인될 경우 북한의 딜레마는 더 커질 수 있다. 적정 기술을 갖춘 남측 민간단체가 언제든 김정은 위원장의 집무실 상공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0월 13일 “국경 부근 완전무장 8개 포병여단 사격대기 태세 전환”을 지시하고 한국 무인기가 다시 ‘국경’을 넘을 경우와 이로 인해 무력 충돌로 확대되는 상황을 가정해 각급 부대에 철저한 대처 마련을 주문했다. 김여정 부부장도 담화를 통해 한국이 “속히 타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도발 행위의 재발 방지를 담보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타국으로 규정하는 본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한 셈이다. 그만큼 이번 무인기 평양 침투 사건이 아팠다는 이야기다.
북한은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던 10여 차례의 대남 무인기 침투 도발과 세계 유일무이의 오물·쓰레기 풍선 살포국이라는 자화상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내로남불’과 ‘북한 중심의 천동설’에서 벗어나 상식에 입각해 정상적 사고를 하길 권한다. 무인기 침투 하나로 체제 전체가 몸살을 앓는 취약한 내구력을 스스로 입증하는 대신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오길 권한다. 현 사태를 종식할 가장 빠른 지름길을 북한 스스로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신동아 11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