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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人용 방수복 체크를 만나 英國 스타일 되다

[럭셔리 스토리] 트렌치코트·체크무늬·개버딘… 영국인이 버버리를 사랑한 이유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軍人용 방수복 체크를 만나 英國 스타일 되다

  •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전쟁 때 군인이 입는 보호용 의류에서 출발했다. 오늘날 버버리는 왕족을 위한 스타일부터 새로운 감각의 런웨이까지 선보이며 영국 스타일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영국의 날씨는 “하루에도 세 계절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특히 비가 자주 내려 과거 영국인들에겐 고무 소재의 무겁고 활동성이 떨어지는 레인코트가 필수 아이템이었다. 1856년 영국 햄프셔주의 베이싱스토크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스물한 살의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레인코트의 불편함에 주목했다. 우연히 양치기가 착용한 스목 프록(리넨과 울 등으로 제작한 헐렁한 셔츠형의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은 토머스는 스목 프록보다 더 가벼우면서 방수성은 우수한 원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그는 1888년 개버딘(Gabardine)이라는 혁신적인 원단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버버리는 습한 영국 기후에 적합한 소재인 개버딘으로 레인코트를 만들어 판매했고, 많은 영국인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개버딘 원단. [버버리 홈페이지]

개버딘 원단. [버버리 홈페이지]

혁신 원단 ‘개버딘’

버버리의 레인코트는 전쟁을 거치며 한 단계 진화한다. 1899년 보어전쟁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된 방수복이 너무 무겁고 활동의 제약이 커 불만이 쏟아졌다. 육군성은 효율적인 군용 방수복을 강구했고, 버버리에 군용 방수복을 주문했다. 이후 버버리에서 군인들의 요구에 맞춤형으로 제작했는데 이것이 타이로켄(Tielocken)이다. 타이로켄은 오늘날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시초다.

버버리는 탐험가의 사랑도 받았다. 1911년 로알 아문센 선장이 버버리 개버딘 소재의 장비와 옷을 입고 인류 최초로 남극에 도달했다. 탐험가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은 동료이자 라이벌로 유명한데 아문센은 스콧에게 증거를 남기고자 인류 최초로 도달했다는 증거로 버버리 텐트를 남극점에 남겨두고 오기도 했다. 1914년 영국 어니스트스 경이 남극 탐험에서 착용한 의복도 버버리 제품이다.

1914년 영국 육군성은 버버리에 새로운 전투 환경에 적합한 장교복을 주문했다. 이때 버버리는 견장과 D링(소매통을 조절하는 소매 끝부분 장식)을 추가해 트렌치코트를 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공식 군복으로 채택됐다.

1926년 창업주 토머스 버버리가 90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1955년 아들인 아더 마이클 버버리가 은퇴함으로써 버버리는 GUS(Great Universe Store)그룹의 손으로 넘어간다. 1955년 버버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영국 왕실 인증을 수여받았다.



브랜드 이미지 추락

잘나가던 버버리도 한차례 부침을 겪었다. 1990년대 버버리 브랜드는 중·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화된 브랜드로 정착됐다. 또 무분별한 라이선스 사업과 매장 확대, 모조품 확산 등으로 브랜드 가치가 하락했다.

특히 1990년대 등장한 차브(Chav)족은 버버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켰다. 차브족은 2005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실린 신조어로 저급한 취향과 패션을 즐기는 영국 노동자 계층의 일탈 청소년을 일컫는다. 그들은 버버리 브랜드의 체크 모자나 프라다의 운동화처럼 한눈에 봐도 브랜드 제품 로고나 패턴이 들어가 과시할 수 있는 비싼 명품 브랜드를 착용했는데, 그들 탓에 브랜드 가치가 추락했다. 영국의 클럽과 퍼브(Pub)에 “버버리 야구 모자 쓴 사람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걸릴 정도로 브랜드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버버리는 1990년대 올드한 브랜드, 고루한 이미지, 차브족의 등장으로 고전했다. 브랜드의 시장 퇴출 위기까지 갔다. 이에 1998년 버버리는 새로운 CEO 영입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 개혁을 단행했다. 1997년 버버리 CEO로 미국 유명 백화점 ‘삭스 피프스 애비뉴(Saks Fifth Avenue)’의 회장이던 로즈마리 브라보가 취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가 버버리에서 처음 실행한 작업은 이미지 쇄신이다. 노후된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바꾸고자 당시 하이패션 모델의 선두주자이던 스텔라 테넌트와 케이트 모스를 새 모델로 발탁했고, 패션 사진작가로 유명한 마리오 테스티노를 영입했다. 1998년에는 명품 브랜드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던 로베르토 메니체티를 버버리의 새 디자이너로 발탁했다. 이어 혁신적 디자인 변화를 시도하면서 현대 감각에 맞춘 ‘프로섬(Prorsum)’ 라인의 확장과 변형, 체크 패턴 개발에도 나섰다.

무엇보다 브랜드 로고를 과거에 사용하던 Burberry’s에서 s를 빼고 대문자 BURBERRY로 교체한 것이 주효했다. 그리고 2001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새 디자이너로 발탁하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마침내 버버리는 2002년 런던 증권거래소의 상장기업으로 올라섰다.

패션업계에 화두 던진 ‘현장직구’

크리스토퍼 베일리. [Gettyimage]

크리스토퍼 베일리. [Gettyimage]

2006년 1월 앤절라 애런츠가 버버리의 새 CEO가 됐다. 애런츠는 취임 직후 버버리의 모든 환경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꿨고 온라인 숍을 강화했다. 2008년 153년 동안 영국 헤이마켓에 있던 버버리 본사를 웨스트민스터 지역의 호스페리 하우스로 이전했다. 2008년 버버리는 사상 최초로 매출 10억 파운드를 돌파했다. 2011년부터 웹사이트, SNS를 통해 패션쇼를 생중계했으며 SNS 계정 운영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2014년 4월부터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애플 부사장으로 이직한 애런츠의 뒤를 이어 버버리의 새 CEO가 됐다. 2016 F/W 시즌부터는 컬렉션 공개와 실제 고객이 소비하는 시점의 시간을 줄인 새로운 패션 스케줄을 만들었다. 컬렉션이 공개되고 바로 고객에게 판매가 가능하게 만든 현장직구(See Now, Buy Now) 시스템 도입은 전 세계 패션 업계에 충격을 안길 정도로 파격적 혁신이었다. 이는 항상 한 시즌 먼저 발표하던 패션 업계의 판매 방식에 반하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이를 통해 버버리는 남, 여로 구분되던 컬렉션을 통합함으로써 1년에 4회 진행하던 컬렉션 횟수를 2회로 줄였다.

2016년 7월 버버리는 LVMH 그룹 산하 명품 브랜드 ‘셀린느’ CEO 마르코 고베티를 새 CEO로 임명했다. 그는 가죽 아이템 확대와 가죽을 기반으로 한 신상품 제안, 더욱 정교한 유통 시스템 구축, 버버리가 가진 강력한 디지털 활용 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오프라인 스토어를 선보이며 고객과 직접 소통에 주력했다. 마르코는 2018년 2월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마지막 컬렉션 이후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하고 명품 브랜드 ‘지방시’에서 아티스틱 디렉터로 있던 리카르도 티시를 새로운 디자이너로 발탁했다.

2022FW 버버리 캠페인. [버버리 홈페이지]

2022FW 버버리 캠페인. [버버리 홈페이지]

버버리 대표 아이템 ‘트렌치코트’

브랜드 버버리를 대표하는 아이템은 단연 트렌치코트일 것이다. 1879년 토머스 버버리가 개발한 이후, 영국 요크셔 지방 캐슬포드에서 50여 년간 제작하고 있는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제품의 핵심 소재로 사용해 온 실용적 생활 방수 면인 개버딘으로 만든다.

트렌치코트는 1912년에 특허를 획득한 타이로켄에서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장교를 위한 트렌치코트에 적용된 기능적 요소이던 D링, 벨트, 견장은 1960년대 버버리 트렌치코트에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더하는 디테일이 됐다. 20세기 후반을 거치며 트렌치코트는 과장된 어깨선과 강조된 허리 라인을 특징으로 개버딘 외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며 더욱 고급스럽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트렌치코트는 영국 왕실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에게 필수 아이템으로 인기가 있었다. 에드워드 7세 국왕, 윈스턴 처칠 등 영국 명사가 즐겨 착용했다. 1895년 영국에서는 이미 브랜드 아큐아스큐텀(Aquascutum)의 레인코트가 유행했지만, 국왕이던 에드워드 7세가 개버딘 레인코트를 즐겨 입는 것이 알려지면서 버버리의 레인코트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영국의 북쪽 지역인 캐슬포드에서 제작된다. 전통적 테크닉과 최신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트렌치코트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는 약 3주의 시간이 소요된다. 버버리 클래식 트렌치코트 컬렉션은 런던의 다섯 지역명을 붙인 고유한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는 실루엣인 켄징턴, 첼시, 워털루, 캠던, 패딩턴 핏으로 구분된다. 이 디자인들은 그냥 봐서는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 착용하면 전혀 다르다.

버버리가 2013년 9월 27일 아이코닉한 트렌치코트와 그것을 입는 사람들을 기념하는 프로젝트인 ‘아트 오브 더 트렌치 서울’에 참여한 배우 이정재(왼쪽)와 전도연의 사진을 공개했다. [버버리]

버버리가 2013년 9월 27일 아이코닉한 트렌치코트와 그것을 입는 사람들을 기념하는 프로젝트인 ‘아트 오브 더 트렌치 서울’에 참여한 배우 이정재(왼쪽)와 전도연의 사진을 공개했다. [버버리]

2009년 버버리는 아이코닉한 트렌치 코트를 기념하기 위해 ‘아트 오브 더 트렌치(AOTT)’라는 웹사이트를 오픈했다. 전 세계 누구든 트렌치코트를 입은 이미지를 이곳에 업로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서울, 시카고, 런던, 로스앤젤레스, 상하이 등 전 세계를 돌며 그 도시의 아이코닉한 인물들이 트렌치코트를 입은 모습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도 매년 진행한다.

한국에서는 2013년 처음으로 ‘버버리 아트 오브 더 트렌치 서울’ 행사를 진행했다. 서울을 주제로 가수, 연기, 모델, 디자이너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 50인을 통해 그들이 좋아하는 서울 곳곳에서 트렌치코트를 착용하고 촬영한 패션 화보를 선보이는 행사였다. 2016년 두 번째로 진행한 ‘아트 오브 더 트렌치 서울’에서는 배우, 모델, DJ 등 영화, 디자인, 미디어, 패션, 음악과 엔터테인먼트에 종사하는 인사 약 30명이 참여했다. 남산 한옥마을과 종로, 역사 유적지, 노량진 수산시장 등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촬영했다.

고유의 ‘버버리 체크’와 창립자 오마주한 ‘TB 모노그램’

TB모노그램. [버버리]

TB모노그램. [버버리]

버버리를 대표하는 헤이마켓(Haymarket) 체크는 버버리의 첫 매장이 위치한 곳의 이름에서 유래한 버버리의 가장 기본적인 체크 패턴이다. 1924년 버버리는 헤이마켓 체크 패턴을 상표로 등록하고 트렌치코트 안감에 체크 패턴 안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부터 오늘날의 버버리를 상징하는 시그너처가 됐다. 하우스(House) 체크는 헤이마켓 체크 바탕에 기사 로고가 없는 것이고 노바(Nova) 체크는 하우스 체크를 크게 확대해 놓은 패턴이다.

1970년대에 첫선을 보인 캐시미어 체크 스카프는 현재까지 버버리의 가장 인기 있는 패션 소품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체크는 버버리 캠페인의 주요한 특징으로 패션 아이템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버버리 체크는 버버리 고유의 등록 상표가 됐고, 2018년 성소수자(LGBTQIA+)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레인보 체크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2017년 2월 지방시에서 하차해 버버리에 합류한 리카르도 티시는 아카이브에서 20세기의 TB 로고 모티프를 발견했다. 버버리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의 정신을 담은 TB 스탬프는 버버리의 새로운 모노그램에 영감을 부여했다.

2018년 8월 티시는 영국의 독창적인 포토그래퍼인 닉 나이트, 아트 디렉터인 그래픽디자이너 피터 새빌,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잉글랜드와 협력해 버버리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의 이니셜을 담은 ‘TB 모노그램’을 완성했다.

버버리 창립자를 향한 오마주로 탄생한 ‘TB 모노그램’은 현대적 관점에서 버버리 헤리티지를 재해석했다. 2019 S/S 컬렉션에서 ‘TB’ 모노그램과 ‘TB’ 백이 처음 소개됐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티시의 버버리 체크는 새로운 컬렉션마다 재해석되고 있다. 앞으로도 버버리 체크는 버버리의 역사, 장인 정신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브리티시 스타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것이다.



신동아 2022년 11월호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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