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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늙은 개 ‘또또’가 가르쳐 준 ‘사랑하는’ 방법

  • 윤성용 작가

[에세이] 늙은 개 ‘또또’가 가르쳐 준 ‘사랑하는’ 방법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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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집, 그러니까 처가에는 ‘또또’라는 반려견이 살았다. 또또는 16년을 살아온 스피츠종의 노견이다. 윤기를 잃은 흰색 털과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할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내게는 종이 다른 존재가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낯설었다.

노견의 조용한 위로

내가 처가에 갈 때마다 또또는 거실 저 멀리서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왔다. 신나거나 반가운 기색도 없었다. 그저 ‘누가 왔는지 확인이나 해보자’ 하는 느낌으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슬쩍 냄새를 맡고선 가만히 몸을 돌리고 등을 내밀어 보였다. 만져달라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또또의 마른 등줄기를 따라 두 손으로 부드럽고 정성스럽게 안마를 시작한다. 한 5분쯤 지났을까. 내가 안마에 지친 손을 거두고 나면, 또또는 나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더 만져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어디론가로 천천히 사라졌다. 매번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은 인사법이었다.

내 팔다리에는 오랜 피부병으로 생긴 상처와 흉터가 있다. 또또는 가끔 내게 다가와 다리에 있는 상처를 핥아준다. 그것은 마치, 예전에 할아버지가 생채기가 난 다리에 빨간약을 발라주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동물적인 본성에서 나온 행동이겠지만 ‘나는 이 노견에게 보살핌을 받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혹시나 개의 침에는 인간의 상처에 대한 어떤 영험한 효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개의 침은 인간의 상처에 아무런 효과도 없으며 오히려 700여 가지의 박테리아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또또의 보살핌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널 이렇게나 생각해 주고 있는데, 왜 너는 나를 피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의 의문스러운 눈빛을 마주해야만 했다.

또또는 산책하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 꼭 하루에 두 번씩 아침과 저녁에 산책을 했는데, 나이는 많았지만 에너지가 넘쳤다. 마치 평소에는 모든 힘을 아껴두었다가 산책할 때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또는 길 구석구석을 다니며 냄새를 맡고 부지런히 자신의 자취를 분명하게 남겼다. 그 일련의 행위가 일종의 사명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에 다녀갔다. 내가 여전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필사적으로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문득 매일 밤 무릎을 꿇고 소리 내어 기도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 또한 당신에게는 사명이자 임무였고 일상적이고 반복적이었으며 살아갈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또또는 몸이 지쳐 걸음이 느려지고 숨이 찰 때까지 산책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정도의 추동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 이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개처럼만 살아도 쉬워지는 인간관계

개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과 닮았다.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행동양식을 갖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원하는 바는 같다. 사랑을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뻐하고 고통은 피하려고 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도,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그래서 외국인과의 관계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배가 고프다거나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존재가 더불어 살아가는 데 그 이상의 소통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언어가 추상적이고 복잡해질수록 더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만약 개와 인간 사이에 고도화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과 말싸움을 하고 그 말로부터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반려견과 지내다 보면 살아가는 일이 참 단순하게 생각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 하루에 두 번씩 산책하는 것,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 이것들만 지켜진다면 그들은 더 바라는 것이 없다. 화려한 옷과 집도, 부와 명예도, 끝없는 성취감도 원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바라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불행을 가져온다. 인간은 바라는 것이 많아 불행한 날도 많다는 것을 반려견과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개들은 처음엔 낯선 이를 경계하지만 이내 서로 마음이 통하고 금방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반려견과 지내며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워갔다. 먼저 가까이 다가갈 것, 맑고 순수한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것, 마음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보여줄 것,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을 바랄 것, 언제든 다시 기회를 내어줄 것. 모두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낯선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관찰하며 서툰 인간관계를 고칠 용기를 얻었다. ‘내일은 조금 더 웃어보자. 조금 더 마음을 열어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했다. 그렇게 또또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더 오래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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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가 남겨준 선물

이듬해 봄, 또또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노화로 인한 심장병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또또가 유난히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그래서 잘 기능하지 않는 몸으로도 예상보다 오래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이 이토록 간절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됐을까. 어떤 미련이 남았을까. 무엇이 아쉽고 애틋했기에 가늘고 옅어진 생명을 절실히 붙잡아야 했을까. 떠나간 또또를 생각하면 그런 질문이 떠올라 마음이 헛헛해지곤 했다. 한동안 처가에 방문할 때마다 또또가 거실로 느릿느릿 걸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흰색 털을 가진 작은 존재가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릴 뿐이었다.

또또가 떠난 지 보름이 지났을 무렵, 아내는 임신을 했다. 첫아이였다. 장모님은 그 소식을 듣고 “어머, 또또가 보내주었나 보다”라며 기뻐하셨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온통 구름으로 이루어진 어느 도시에서, 또또가 어느 신적인 존재에게 무언가를 간곡히 부탁하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눈망울과 쫑긋 서 있는 귀, 길게 덮인 흰색 털과 느릿한 발걸음까지도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물론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또또가 보내준 선물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이 됐고, 또또를 마음 편히 보내줄 이유가 됐다.

철학자 니체는 ‘니체의 말’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대립해 살고 있는 사람에게 기쁨의 다리를 건네는 것이 사랑이다.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억지로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멀리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때도 많다. 그때마다 나는 16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살아간 또또를 생각하기로 한다. 서로 다른 존재와 차이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기쁨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또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분명 사랑하는 법이었다.

윤성용
● 에세이집 ‘인생의 계절’ 발표
● 팟캐스트 ‘샌드위치클럽’ 진행자




신동아 2022년 11월호

윤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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