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선의 아버지들

“진정한 孝는 經世濟民” 실천으로 불 밝힌 實學

‘모두의 아버지’ 이익

  • 백승종 |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진정한 孝는 經世濟民” 실천으로 불 밝힌 實學

2/2

이익의 집안에선 닭을 많이 쳤다. 그는 틈틈이 닭에게 모이도 주고, 그들이 자라는 모양을 자세히 살피기도 했다. 그는 닭에게서 ‘인간의 도리’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이익의 문집을 보면, 닭에게서 관찰한 진정한 어버이의 사랑과 효도, 우애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실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동물의 일상에서도 배울 점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외눈박이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끼를 기르는 것은 작은 생선 삶듯이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교란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부모 노릇의 요체는 무조건 호의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조심스레 품어주는 데 있다는 말이다. 이익은 이렇게 말했다. “닭을 기르면서 그 덕분에 자식 기르는 법을 배웠다.”



근검과 절약의 미덕

“진정한 孝는 經世濟民”  실천으로 불 밝힌 實學

현실을 직시한 이익의 개혁론이 실린 ‘성호사설’. [사진제공 · 성호기념관]

그는 왜 그토록 절약에 힘썼을까. “벼슬 없는 선비는 어려서부터 익힌 일이 책에 적힌 문자에 불과하다. 농사 짓거나 장사를 하려 해도 힘이 감당하지 못한다.”(이익 ‘삼두회 서’) 절약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어려서 자주 듣기로, “양반의 살림은 규모가 제일”이라 했다. 이익이 그러했듯, 수입을 헤아려 지출하는 것이 으뜸이라는 뜻이었다.

구두쇠와도 같은 그가 오락을 멀리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쓸데없이 돈이 들어가는 흡연도 당연히 반대했다. 당시엔 담배 피우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익은 끽연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날마다 독한 연기로 신명(神明)이 깃든 몸을 쐬다니, 틀린 일이다. 담배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이병휴 ‘가장’) 그 집안 식구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장기, 바둑, 담배를 멀리했다.



이익은 깨끗하고 정갈한 의복에 만족했다. 음식도, 조악할망정 허기를 면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집안의 모든 비용은 모두 한 해의 수확으로 충당했다. 실오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빌려 쓰지 않았다. 이런 뜻으로 그는 ‘입검설(入儉說)’을 지어 당대의 사치 풍조를 비판했다.

나아가, 이익은 절약과 검소의 철학을 중시한 나머지 당대에 널리 유행하던 예학(禮學), 곧 예의에 관한 학설까지도 크게 바꿨다. 번다한 여러 학설을 배격하고 단순명료하게 정리했다. ‘정성’이란 미명 아래 사치와 낭비로 흐르던 예법을 고쳐 가난한 대다수 선비의 실생활에 맞게 뜯어고쳤다.

1763년(영조 39), 향년 83세로 그가 별세하자 자손들은 부엌 찬장에 있던 음식으로 전(奠)을 올렸다. 염(殮)을 할 때도 베가 아니라 종이를 사용했다. 명정(銘旌)도 값비싼 비단 대신 종이를 썼고, 관 역시 옻칠을 하지 않고 송진을 발랐다. 그의 상례에 사용한 물품은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은 모두 이익이 생전에 정해놓은 그대로였다.



콩죽 讚歌

이익은 값은 싸도 영양이 풍부한 콩을 가장 귀한 식품으로 여겼다. 흉년이 들면 스스로 콩을 갈아 죽을 끓여 먹었다. ‘반숙가(半菽歌)’를 지어 콩의 미덕을 찬미할 정도였다. 한번은 친족을 모이게 하여, 콩죽 한 그릇에 된장 한 종지 그리고 콩기름에 버무린 겉절이 한 접시를 나눠주며 밤새워 환담했다. 이익은 그 모임을 ‘삼두회(三豆會)’라고 했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모여 배불리 먹고 모임을 마쳤다. 비록 음식은 박했어도 정의는 돈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익의 자평이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검약에 힘썼음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훗날 창고에 남은 곡식이 많다 할지라도, 반드시 1년에 한 번은 이런 모임을 마련하라. 보름이나 열흘간은 아침이나 저녁을 이런 식으로 먹어라. 대대로 법식으로 삼아 대대로 전하여 그만두는 일이 없기 바란다.”(이익 ‘삼두회 서’)

이익은 자신과 직계가족의 근검절약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한마을에 사는 모든 친척도 절약에 힘쓰길 바랐다. 그리하여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늘 굶주리지 않고, 간소하지만 정성스레 예법을 실천하며 살기를 당부했다.

벼슬이 있든 없든 이익과 그의 가족은 조선 사회의 지배층인 양반이었다. 사족(士族)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던 그에게 효도란 남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성껏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었다. ‘자식을 훈계하는 여덟 가지 조목[訓子八條]’에 이익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1. 항상 마음이 몸을 떠나 있는지 잘 살펴라.

2. 온유함으로써 백성을 사랑하라. 작은 잘못을 용서하고, 정말 잘못이 있는지를 잘 살펴라.

3. 함부로 성내지 말라. 하리(下吏)에게 죄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대하라.

4. 부로(父老, 동네의 나이 많은 남자)를 불러 고충을 들어보라.

5. 상관을 부형(父兄)처럼 섬기라.

6. 소송이 있을 때는 반드시 거짓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두라.

7. 서리(胥吏)들의 잘못이 명백하지 않을 때는 함부로 꾸짖지 말라. 조용히 관찰해보라.

8. 백성을 잘 다스리는 데 마음을 써라. 집안일을 걱정하지 말라. 나라를 저버리지 않는 이가 효자다.



세상 구제가 책무

나중에 아들 이맹휴는 벼슬길에 나아가 남쪽 고을의 수령이 됐다. 임지에서 아들이 음식물을 보내왔다. 그러자 이익은 모두 돌려보내면서 편지를 보내 꾸짖었다. “백성에게 물건을 거두는 것은 열에 여덟아홉이 그릇된 것이다. 이것으로 어버이를 봉양하다니 안 될 말이다. 나는 고향집에 남아서 제철에 내 밭을 경작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있다.”(이병휴 ‘가장’) 이익에겐 아들 덕분에 호사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선비, 요샛말로 지식인이란, 자신의 몸은 비록 초야에 있더라도 온 세상을 염려해야 한다. 이익은 그렇게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젊은 시절부터 묵묵히 국가의 폐단을 연구하고 바로잡을 대책을 궁리해 ‘곽우록(藿憂錄)’을 지었다. 이익의 문집에 실린 ‘잡저(雜著)’와 허다한 서찰에도 국가의 비용을 절약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만들 방도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익은 역사상의 폐단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임금만 높이고 신하를 억누르는 폐단인데, 진시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둘째는 인재를 등용할 때 지나치게 문벌만 숭상하는 경향이다. 이는 조조(曹操)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셋째는 문장으로 과거시험을 치게 하는 폐단인데, 수나라 양제 때 시작됐다고 봤다. 이익은 이 3가지 재앙을 없애야만 올바른 정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익이 가장 중시한 문제는 과거제도의 폐단이다. 당나라 때 논의된 ‘효렴과(孝廉科)’ 또는 중종 때 조광조가 시행한 ‘현량과(賢良科)’를 바탕으로 그는 인재 등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가 지식 위주의 고시 및 공무원 시험에 얽매인 사실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초야에 있으면서도 세상 구제를 자신의 책무로 삼았던 이익. 그의 사상은 지배층의 이익을 줄여 민생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비록 당대엔 시행되지 못했으나, 후세가 본받을 일이었다.



삶 자체로 모범이 되다

“진정한 孝는 經世濟民”  실천으로 불 밝힌 實學

경기 안산시 주택가에 있는 이익의 묘.

이익의 학문은 넓고 풍부했으나 번거롭지 않고 초점이 뚜렷했다. 스스로에게 늘 엄격하고 절검(節儉)을 숭상했으나, 타인에겐 언제나 온화하고 너그러웠다. 자제들과 제자를 가르칠 때면 평이하게 가르쳐 어진 사람은 물론이고 어리석은 사람도 마음껏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벼슬길이 막혀 높은 뜻을 제대로 시험해보지 못했다. 게다가 굳게 믿은 아들마저 일찌감치 세상을 뜨는 바람에 한스러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이익은 팔순의 고령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저술해 후학에게 등불을 환히 밝혔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보다 앞서간 이맹휴만 아들이 아니다. 이익을 존경하는 우리 모두가 그 아들이 아닐까.

아버지란 결코 입으로만 가르치는 이도 아니고, 핏줄이 직접 통해야만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삶 자체로 모범이 되는 이가 진정한 아버지다. 누구보다 이익을 마음 깊이 존경한 정약용. 그는 충청도 금정도의 찰방으로 부임하기 무섭게 선비들과 함께 이익의 문집을 읽고 교열했다. 1795년 봉곡사에서 이병휴의 아들 이삼환과 함께한 그 작업이 없었더라면, 실학의 집대성은 한동안 더 미뤄졌을 것이다. 

백 승 종


“진정한 孝는 經世濟民”  실천으로 불 밝힌 實學


● 1957년 전북 전주 출생
● 독일 튀빙겐대 철학박사
● 서강대 사학과 교수, 독일 튀빙겐대 한국 및 중국학과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 역사연구소 초빙교수,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 現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 저서 : ‘백승종의 역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등



신동아 2016년 5월호

2/2
백승종 |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목록 닫기

“진정한 孝는 經世濟民” 실천으로 불 밝힌 實學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