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짧게 일해야 많이 일한다

  •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짧게 일해야 많이 일한다

2/3

‘헛된 시간’의 진면목

짧게 일해야  많이 일한다

자료 : ILO, ‘세계 각국의 노동시간’ 61쪽, 2007년

회사에서의 근무와 가정에서의 책임 사이에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결근하거나(병가 포함), 생산성이 낮아진다. 고용주가 피고용자를 배려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할 때 근로자는 자기 업무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보답한다.

그러나 한국은 ‘장기근로’가 관행화한 대표적 국가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08년 보고서 ‘세계 각국의 노동시간’에 따르면 한국은 근로기준법에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명시하고 노사 합의에 의해 12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해놨지만 법이 가장 안 지켜지는 나라다. <그림1>은 이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근로시간별 근로자 비중(2004년 기준)이다. 주당 49~59시간 일하는 근로자는 25%를 조금 밑돌고, 주당 60시간 이상 근로하는 이는 25%를 조금 웃돈다.

이에 비해 독일은 1995년부터, 프랑스는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ILO가 주당 40시간 근로협약을 체결한 게 벌써 80년 전인 1935년의 일이다. 경제위기(1929년 대공황)와 전쟁(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에 직면해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했다. 목적은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근로시간 감축을 통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법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19세기 중반에 어린이 노동을 줄이기 위해 노동법이 최초로 마련됐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성인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했으며, 1919년 ILO 협약을 통해 주당 근로시간이 48시간으로 제한됐다.





과잉 근로는 ‘돈 먹는 하마’

짧게 일해야  많이 일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거리. 요즘 스웨덴은 ‘주당 30시간 근무’를 실험하고 있다. [동아일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산업 발전 초기에 사람들은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을 ‘헛된 시간(Lost Time)’으로 여겼다. 근로자의 삶은 생산이란 요구에 종속됐다. 그러나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고 휴일을 최소화한 결과 근로자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휴식과 레저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 1830년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노동법을 통해 근로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하루 8시간 근무’를 지지하는 의견이 많아졌고, 이것이 생산성 향상에도 긍정적이라는 믿음이 확산됐다. 존 레이의 ‘8시간 근무제(Eight Hours for Work)’라는 유명한 논문이 1894년 미국 시카고대가 발간하는 ‘정치경제학 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발표된다. 깨어 있는 고용주의 선도적 역할과 노조의 투쟁에 힘입어 과잉 근로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면서 마침내 1919년 주당 48시간 근로시간 협약이 나왔다. 1935년에는 ‘생활수준이 저하되지 않는 방식’의 주 40시간 근로원칙이 ILO에서 승인받는다.

레저의 경제적 가치를 주창한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는 1914년 1월 5일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고 하루 최저 임금을 2.35달러에서 5달러로 인상했다. 포드는 1926년 10월 언론 인터뷰(‘왜 나는 근로자에게 주 5일 근무를 시키면서 주 6일치 봉급을 주는가’가 제목)에서 “근로자가 새벽부터 밤까지 작업장에 있어야 한다면 자동차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에게 소득과 시간을 보장해줘야 자동차를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경제사학자 앵거스 메디슨에 따르면, 과잉 근로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1870년부터 1920년까지 50년간 유럽과 미국, 호주에서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2900시간에서 그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캐나다 경제사학자 마이클 허버만의 2002년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 중 가장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경험한 나라는 네덜란드다. 1870년 연평균 3285시간이던 근로시간이 2000년 1347시간으로 줄었다(<그림2> 참조).

한국은 어떨까. 2010년 6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연간 근로시간을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단축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나 구체적 방안에서는 별 진전을 보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한국도 장시간 근로시간을 과감하게 감축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 실험은 아마도 대기업에서 시작돼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일자리 양극화’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외주 확대 정책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메트로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기업(300인 이상 고용 기업)들이 외주 확대를 통한 인건비 절감을 추구해온 탓에 대기업 대(對) 중소기업의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가 날로 심화됐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괜찮은 일자리는 줄고, 중소기업의 열악한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짧게 일해야  많이 일한다

자료 : Huberman, 2002



2/3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목록 닫기

짧게 일해야 많이 일한다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