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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덜 완벽하지만 더 친숙하니까

‘B급 제품’이 뜬다!

  • 유미연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덜 완벽하지만 더 친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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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장 개척하는 매개

이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특성과는 대조적으로, 대중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았거나 시도하기 어려운 속성 때문에 B급 제품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제품은 생산 규모 혹은 타깃 시장을 확대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소비자의 반응을 엿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2014년 구글 개발자 회의에서 가상현실 조립 키트인 VR(Virtual Reality) 카드보드가 공개됐다. 비록 카드보드로 만든 VR이지만, 낯선 가상현실에 접근하도록 도와주고 생소한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만듦새나 품질의 완성도는 낮지만 이용자가 잘 모르던 가상현실의 재미를 부담 없이 전달했다.

소비자는 이처럼 B급 제품으로 새로운 기술을 접할 뿐만 아니라 낯선 사용 방식에 대한 거부감도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B급 제품에 익숙해진 사용자는 해당 제품의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저사양, 저가격의 B급 제품이 향후 출시될 제품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니즈(needs)를 발견할 수 있는 매개 역할로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소비자들은 B급 제품에 대해 별로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제품을 소유하는 차원을 넘어 소비를 독특한 경험 가치로 격상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업들이 소비자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제품을 어떻게 활용해 최적의 경험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살펴야 한다. 더 나아가 제품 자체를 하나의 모듈로 생각하고 그 안에 담길 콘텐츠와 서비스의 내용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정한 조건이 발생하거나 사용자가 특정 명령을 내릴 때 자주 사용하는 동작을 실행하는 자동화 앱 IFTTT를 보자. IFTTT는 ‘If This, Then That’의 약자로 ‘이럴 때는 이렇게’라는 의미를 지녔다. 두 가지 이상의 앱 연동을 돕는 자동화 레시피(recipe)다.



레시피란 사용자가 임의로 기존 서비스나 앱들을 고른 후, 조건이나 명령에 해당하는 앱 기능과 거기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앱 반응을 조합, 설정하는 것이다. IFTTT는 앱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도 연결된다. 필립스 LED 전구 ‘휴’, 벨킨 ‘위모’(원격 스위치) 등의 하드웨어도 특정 조건에서 명령을 받아 작동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가 레시피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조합과 명령에 따라 수천 가지의 레시피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를 모든 사용자와 공유할 수 있다. 사실 각각의 레시피는 매우 단순하다. 다양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레시피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하드웨어 인터페이스 등을 발굴할 수 있다.



짧게 많이 쓰기

넷플릭스는 콘텐츠 시청을 간편하게 해주는 DIY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왔다. ‘넷플릭스 양말(Netflix socks)’과 ‘더 스위치(The Switch)’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 양말은 TV를 시청하다 잠이 들 경우 신체 신호를 감지해 넷플릭스 재생을 중지하는 기능을 지녔다. 더 스위치는 버튼 하나로 모든 조명을 끄고 스마트폰을 매너 모드로 바꾸며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것들은 완제품이 아니고 소비자가 키트(kit)를 주문해 직접 만들어야 한다. 넷플릭스의 메이크잇(Make-it) 사이트를 통해 동영상 매뉴얼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만들 수 있게 했다.

넷플릭스는 이처럼 완성품 대신 다소 투박할 수도 있는 DIY 제품을 통해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자사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유도했다. 소비자들의 이용 가치가 이렇듯 중요해질수록 제품 자체의 완성도 자체는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최근 B급 제품이 많이 등장해 판매된다는 것은 ‘특정 제품을 오래 소유하지 않고, 짧게라도 많은 제품을 경험하겠다’는 전략을 택하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이런 소비자들은 대개 제품 구입 때 포장 상자와 구성물을 깨끗하게 보관한다. 추후에 신제품이 출시되면 기존 제품을 판매해 신제품 구매 비용을 마련하고, 사용 제품 경험담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과거엔 소비자가 새 제품을 한번 구매하면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판매자와 만나게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제품이 공유될 경우, 즉 소유 대신 리스나 렌털 방식으로 거래되면 판매자의 서비스 개선 노력 및 소비자와의 관계가 시시각각 평가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어떤 판촉 활동을 전개할지보다 고객과의 긍정적 경험을 지속시킬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스타트업 ‘렌트더런웨이(Rent the Runway)’는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도매가에 구입한 뒤 온라인으로 고객의 신청을 받아 대여하는 사업을 운영한다. 하버드대 MBA 과정에서 공부하던 제니 플레이스와 제니퍼 하이먼은 하이먼의 동생이 친구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고르는 데 애를 먹는 것을 보고, 중요한 파티에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쉽게’ 빌려 입고 갈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유경제 회사를 설립했다.



성숙기 시장의 돌파구

서비스를 운영하기에 앞서 100벌의 드레스를 준비해 학부생들에게 대여하는 실험을 했다. 학생 대부분은 드레스를 판매가의 10분의 1 가격에 빌려가서 매우 조심스럽게 입고 처음 상태대로 돌려줬다. 드레스 사진만 보고 오프라인에서 빌려가는 경우도 실험했다. 드레스를 찾는 여성 중 5%가 빌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을 보고 웹서비스의 성공을 확신했다. 이후 디자이너 드레스 800벌을 확보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어 사업을 벌였으며, 고객 반응을 보면서 서비스를 개선해 공유경제의 상징적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아무리 고급 드레스라 해도 이미 불특정 다수가 빌려 입었으니 소비자 처지에서는 B급 제품으로 여길 수 있다. 그렇다고 겨우 며칠 입으려고 비싼 돈 주고 고급 드레스를 구입해본들 한두 번 입고 나면 드레스는 옷장에서 여생을 보낼 것이다.

지금까지는 B급 제품의 가치는 가성비에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가성비 외에도 B급 제품의 여러 가지 속성에서 새로운 소비자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B급 제품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경험 가치’다. 소비자들은 B급 제품을 통해 합리적 소비는 물론, 자신의 기호나 취향에 따라 경험 가치를 보완하고 발굴하는 데 적극적이다. 그렇게 해서 발굴된 경험 가치는 한 사람이 소유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곤 한다.

B급 제품 중에는 유행에서 철저히 벗어나거나 주류에 속하는 제품 속성에서 일탈한 형태도 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시장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궁극의 차별화를 꾀한다면 그 자체로 프리미엄을 인정받을 수 있다. B급 제품이 이러한 속성들을 모두 갖출 순 없겠지만 불황기에 처한 성숙 시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흠 있는 제품이 소비 늘린다?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선택을 하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B급 제품은 부담스럽지 않다. 어차피 최상의 제품이 아니기에 흠이 생길 것을 걱정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상 제품과 양이 동일하지만 제품의 모양을 변형했을 때 즉, 분할하거나 조각냈을 때 소비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실험 참가자들은 같은 양의 빵 혹은 치즈인데도 흠이 없고 상품 가치가 높은 것보다 구멍이 나거나 부서진 것을 더 많이 집어 먹었다. 사람들은 배고픔을 해소하려고 일정한 양을 먹기보다 스스로 적당하다고 ‘느끼는’ 양을 먹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온전한 식품 한 단위를 먹을 때와 양은 같아도 조각나고 부서진 식품을 먹을 때 왠지 덜 먹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 놓고 먹게 된다는 것이다.






신동아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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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연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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