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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 편 쓰고 울고, 또 한 편 쓰고 울고…”

납북 아버지 추모시집 낸 최영재 씨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한 편 쓰고 울고, 또 한 편 쓰고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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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중 총살”

“한 편 쓰고 울고, 또 한 편 쓰고 울고…”

최영재 씨는 납북된 아버지에 관한 기록들을 차곡차곡 모아뒀다. [조영철 기자

아버지 소식은 전혀 없었다. 북은 “단 한 명도 납치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12년 만에, 아버지 소식은 신문기사를 통해 벼락같이 찾아왔다.



주모자급 五명에 대해 ‘옳소!’ 식 재판으로 총살형이 언도되고 나머지  십五명은 징역형이 언도되었다. 총살형이 언도된 五명의 무명인사 중에는 하진문(변호사), 박윤선(중앙청과장), 최영수(기자) 등이 끼어 있었다.

-동아일보, ‘죽음의 세월-납북인사북한생활기’, 1962년 4월 2일자



납북된 인사들이 북으로 끌려가던 중 황해도 해주에서 탈출 시도가 있었고, 그 주모자 5명이 총살에 처해졌는데, 그중 한 명이 아버지라는 내용. 당시 동아일보는 조철이라는 사람이 북에서 남으로 귀순할 때 가져온 납북자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죽음의 세월-납북인사북한생활기’를 총 56회에 걸쳐 연재하던 중이었다.



“그때 형님이 경향신문 기자였습니다. 형님이 그 기사를 보고 조철 씨를 찾아갔어요. 그가 ‘없는 일을 꾸며서 쓸 순 없는 노릇이고 아는 바, 들은 바로 썼다’고 했대요. 우리는, 아버지가 꼭 만나야 하는 가족이 있는 분이니까, 자기 맘대로 세상 떠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형은 경향신문사를 그만두고 고향 집에 내려와 뒤늦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중에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최씨는 “지금껏 형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딸은 출가하고 부부만 사는 최씨의 집 건넛방은 ‘작은 도서관’이다. 그는 어머니가 쓰시던 방에 유리문 달린 큰 책장을 들이고, 아버지의 흔적을 하나둘 모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벽에는 ‘뚱딴지’를 비롯한, 아버지가 그린 만화들을 표구해 걸었다. “1988년 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解禁)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야 아버지에 대한 기록물이 하나둘 나타났고, 그제야 구체적으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시던 분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형의 흔적도 잘 간추려져 있다.

“저도 한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을 만큼 아버지에게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형님에 비하면 물려받은 재주가 10분의 1도 안 될 거예요. 형은 늘 공책에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어머니에게 혼이 나곤 했어요. 카뮈의 소설을 놓고 밤새워 토론하던 형님의 고등학교 문예반 친구들은 시조시인, 국문학 교수 등이 됐지요.”



놀랍지도, 반갑지도 않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뚱딴지’는 촌철살인의 해학이 돋보인다. “태아로 인하여 모체(母體)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아니면 낙태를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톡 쏜다. “이 여인의 가정 형편과 또 7년 후의 입학난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이상이 어디 있소?”

‘뚱딴지’ 등 최영수의 1930년대 작품은 한국 만화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만화평론가 손상익은 ‘한국만화통사’(프레스빌, 1996)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최영수의 만화는 1930년대가 그 전성기였다. 그의 작품은 신문을 통해 유명세를 탔지만, 잡지라는 발표무대를 통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 창작은 물론 다수의 만화 관련 이론을 잡지매체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최영수 만화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1930년대 우리 만화사의 한 단면을 되짚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아버지 흔적을 찾을 때마다 기쁘다”며 그는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눈보라의 운하·기행문’(푸른사상)이라는 책에서 소설가 박화성은 이런 구절을 남겼다.



6월 7일 아침에 나는 최영수 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저희들 지금 흑산도에 갔다가 오는 길인데 꼭 박 선생님 만나고 싶군요. 어떻게 하면 뵈올까요? 백철 씨하고 전화 바꿉니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 이 대목을 또박또박 읽으며 책장을 쓰다듬었다. 아버지의 자취를 이런 식으로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최영수의 수필이 최고라고 평가하는 책도 있어요. 그 책에 이광수의 글도 같이 실렸는데 말이죠. 아버지가 쓴 글들 중에는 ‘무릇 만화가란 종교가여야 한다.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선각자적 생각이 없다면 만화가가 돼선 안 된다’란 구절도 있어요.”

다시 아들이 낸 책 얘기로 돌아가자.

“제 책이 납북자 가족에겐 작은 위로가, 어린이들에게는 전쟁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전쟁이 준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아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걸, 어린이들에게 꼭 얘기하고 싶어요.”



“아버지, 아버지…!” / 아버지가 달아날까 봐 끌어안고 흐느끼는데 / 또 꿈이다

하도 많이 속아서 / 이젠 꿈에 아버지를 만나도

놀랍지도 / 반갑지도 않다.

-‘꿈’ 중에서






신동아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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