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국 2030년까지 GDP 대비 국방비 3~3.5%로
독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재무장
미국의 태도 변화, 유럽 전체의 집단적 각성 촉발
K-방산 지속 가능한 기회 만들기 위한 4대 과제
리스크 관리, 공급망 자립화, 신뢰 구축, 기술경쟁력 제고

유럽의 대규모 재무장과 공급망 재편은 우리 방위산업에는 기회다. 사진은 폴란드에 수출된 K-9자주포(오른쪽)와 K-2전차. 해병대사령부·현대로템
하지만 국방비를 대폭 줄이고 ‘평화배당금’ 잔치를 벌이며 희희낙락하던 유럽 국가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략이라는 지각변동이 닥쳤다. 이것이 ‘1차 충격’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유럽은 2022년 2월 전쟁이 시작된 이래 1800억 유로(약 26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종전 협상 테이블에 끼지도 못하는 ‘찬밥’ 신세가 됐다. 이것이 ‘2차 충격’이다. 유럽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유는 어떤 형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럽의 관점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유럽에 ‘3차 충격’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유럽 전역에 일어나는 ‘군비 증강 도미노 현상’
1차-2차-3차로 잇따라 벌어지는 일련의 충격에 직면해, 한때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조롱을 받던 유럽(NATO)이 비로소 자신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양상이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대대적 국방비 증액이다. 2024년 유럽 지역의 국방비는 2023년 대비 약 17% 증가한 6930억 달러에 이르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32개국 중 18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율 2.0%를 넘겼다. 일부 주요국은 2030년대 중반까지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3~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일례로 독일은 2025년 GDP 2.4% 수준의 방위비를 2029년까지 약 3.5%로 올리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러한 독일의 움직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재무장”으로, 전후 유럽 안보 정책의 금기를 깨는 중대한 전환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폴란드, 북유럽 국가들 역시 국방비를 연쇄적으로 증액함에 따라, 유럽 전역에 새로운 ‘군비 증강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던 유럽 방위산업에 역대급 호황을 안겨줬다. 국방비를 대폭 올린 유럽 각국은 방산업계 전반에 사상 최대 규모의 주문을 쏟아냈다. 탄약·장갑차·자주포·미사일 등 거의 모든 생산 라인이 ‘전시(戰時) 모드’로 전환됐다. 주요 방산업체의 주가는 전쟁 이전 대비 2배 이상 올라, 시가총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감산과 구조조정에 시달리던 기업들은 이제 생산설비 부족과 인력난을 겪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례로 BAE 시스템즈는 2024년 연간 이익이 처음으로 30억 파운드를 넘기며 역대 최대의 수주 잔고를 기록했다. 라인메탈·탈레스·레오나르도 역시 2023~2025년 수십 페센트 이상의 주가 상승을 경험했다. 2025년 3월에는 미국의 지원 축소 우려가 보도된 직후, 유럽 주요 방산 기업 주가가 하루 만에 14~16% 폭등했다. 에어버스·사프란·롤스로이스 등 방산 관련 항공·우주 기업들도 동반 상승세를 보였다.
이러한 급등은 단기적 투기성 반응이 아니라 구조적 수요 증가에 대한 시장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럽 각국이 무기·탄약 재고 보충과 장기적 재무장 계획에 돌입함에 따라, 방위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유럽 방위산업은 이제 수십 년 만에 가장 대대적인 재편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방위산업 호황의 핵심은 생산능력의 폭발적 확충이다. 2025년 8월 12일 ‘파이낸셜 타임스(FT)’가 게재한 장문의 분석 기사에 따르면 유럽의 방산 시설은 평시 대비 약 3배 속도로 생산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신규 방산 공장 면적은 2020~2021년 79만㎡에서 2024~2025년에는 누적 280만㎡로 증가했다. 헝가리 버르퍼로터(Varpalota) 탄약 공장은 이러한 확장의 대표적 사례다. 라인메탈과 헝가리 N7의 합작으로 건설된 이 공장은 30mm 탄약에서 155mm 포탄, 120mm 전차탄까지 생산 라인을 확대했다. 인력도 급속히 충원해 라인메탈, 탈레스, BAE 등은 수천 명 규모의 신규 채용을 진행했다.

BAE 시스템즈는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와 마르코니 일렉트로닉스 시스템스의 합병으로 설립된 영국 방위산업체다. Gettyimage
유럽 방위산업이 처한 구조적 장애요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 방위산업은 단기·중기 전망 모두에서 지속적 성장 기회를 확보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과거 30년간 비축해 온 탄약·장비를 대규모로 우크라이나에 이전했다. 그 결과 각국의 재고가 바닥나면서 긴급 재보급 수요가 몰려들었다. EU는 2023년 우크라이나에 100만 발의 포탄을 제공하기 위한 공동 조달에 합의했다.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재건도 대규모 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동유럽 국가들은 안보 위협 속에서 군사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2020~2024년 기준 세계 2위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202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로사토리 2024(Eurosatory 2024)’는 세계 최대급의 국제 방위산업 전시회로, 전차·포병·드론·미사일·레이다 등 지상 및 공중 전력 전반을 망라한 최신 무기체계가 공개됐으며, 약 1800개 업체와 100개국 대표단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프랑스·독일·스페인 공동의 차세대전투기 개발사업(FCAS), 프랑스·독일 공동의 차세대 전차 개발사업(MGCS) 같은 초대형 공동개발 사업 역시 확대된 국방비를 기반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종합하면 유럽 방위산업은 “전시 동원 체제”에 가까운 구조적 호황 속에서 장기적 성장 경로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위 역량의 근본적 재정비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동안 EU의 방위산업은 국가별로 분절돼 효율성과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각국은 각기 다른 전력 요구, 조달 기준, 군사교리를 바탕으로 독자적 무기체계를 개발해 왔다. 그 결과 EU 회원국들이 운용하는 주요 무기체계 종류는 178종에 달해 미국의 30종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호환성 결여와 중복 투자는 전시 상호 운용성을 저해하고, 평시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방산의 파편화’로 유럽은 매년 1000억 유로 이상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러한 비효율적 구조에서는 국방비를 늘려도 방위산업 강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일례로 2022~2023년 EU 무기 조달의 78%가 미국 등 외부 공급업체로 흘러갔다. 이는 외부 의존도 심화와 역내 방산 기반 약화를 동시에 초래했다. 통합·표준화의 부재는 ‘규모의 경제’를 가로막는다. 반면 공동개발·공동조달이 이뤄지면, 단가가 급락하고 부품 공급, 정비 체계도 단순화될 수 있다. 유럽 방산업계 내부에서도 대규모 공동 주문을 통한 단가 인화와 경쟁 촉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략적 환경 변화에 따라, 이러한 통합 요구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결국 방위산업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는 유럽의 재무장이 비용만 증가시키는 ‘비효율적 팽창’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2020년대 들어 유럽의 안보 현실은 근본적 변곡점을 맞고 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유럽 전체의 집단적 각성을 촉발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된 ‘안보 무임승차’ 비판과 제5조(집단안전보장)의 확약에 주저하는 태도는 유럽에 심각한 경보를 울렸다. 마크롱이 NATO를 ‘뇌사 상태’라고 꼬집은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다. 독일조차 “유럽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이에 EU는 상설구조적협력(PESCO), 유럽방위기금(EDF), 유럽방산공동조달법(EDIRPA) 등을 통해 방산 통합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2024년 EU는 사상 최초로 국방담당 집행위직을 신설하고 ‘유럽 방위연합’을 공언했다. 또한 단일 방산시장 구축, 공동조달 비중 확대 등 통합적 방산전략을 제도화했다. 2024년 3월 공개된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은 탄약·드론·사이버·우주 역량을 EU 공동 역량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이 전략적 상황 변화에 따른 구조적 인프라 전환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합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통해, ‘분절된 모델’에서 ‘단일 기반 모델’로 이행하려 한다.
유럽 재무장이 K-방산에 주는 함의
유럽의 대규모 재무장과 공급망 재편은 우리 방위산업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단기간 내 대량생산 역량을 갖춘 한국산 무기는 기존 공급자들이 충족하지 못한 긴급 수요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시장 진입과 기술협력 기회를 얻었다. 더욱이 유럽 주요국들이 전력 공백 해소를 위한 단기·중기 조달에 집중하고 있어, 한국은 완제품 공급과 현지 생산 파트너십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을 맞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 무기의 신뢰성과 납기 준수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향후 지속적 협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자산으로 작용할 전망이다.그러나 이러한 기회요인과 함께 한국·유럽 방산 협력에는 4가지 구조적 도전 요인이 존재한다. 첫째, 지정학적 파장이다. 유럽에 대한 한국산 무기 공급이 러시아의 반발을 유발하고, 이는 북한과의 군사공조 강화라는 역효과로 한반도 안보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둘째, 공급망 리스크다. 한국 무기체계가 미국·유럽산 핵심 부품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유럽의 수요 폭증이나 수출 통제 변화가 곧바로 한국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기술적·전략적 의존성 문제다. 한국의 방산 수출 확대는 서방 공급망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효과(또는 부작용)도 있어, 향후 국제 정세 변화나 유럽 내부 정치에 따라 예기치 않은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넷째, 방산 시장 경쟁의 심화다. 유럽 국가들이 자체 방위생산 능력을 급격히 확대하고, EU가 역내 조달 비중을 강화함에 따라, 우리가 현재 누리는 ‘틈새 공급자’의 이점은 중장기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 지정학 리스크 관리, 공급망 자립화, 전략적 신뢰 구축, 기술경쟁력 제고라는 4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유럽 재무장 시대를 지속 가능한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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