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호

“속고 있다는 진실보다 견딜 수 있는 거짓 택한다”

[추적 | 주식 리딩방, 당신을 노린다] 정신과 의사 강도형이 말하는 ‘사기당하는 심리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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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6-01-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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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위 편향 활용한 무장해제, 그루밍 넘어 점진적 속박

    • 손실 막기 위해 더 깊이 빠지는 도박적 추적 행동 양상

    • 감정 조절 어려움, 자기혐오, 사회 기능 붕괴 등 후유증 심각

    • “좋은 걸 왜 나한테?”…‘하루 기다리기’로 탐욕 저지

    강도형 서울청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무엇이든 혼자 결정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지인에게 객관적 피드백을 구하는 것이 사기를 막는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라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강도형 서울청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무엇이든 혼자 결정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지인에게 객관적 피드백을 구하는 것이 사기를 막는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라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경찰 추산에 따르면 증권사, 유명인을 사칭하는 ‘불법 투자 리딩방’ 사기 피해액이 최근 2년간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등 그 피해가 엄청나다. 언뜻 보면 왜 속을까 싶지만 조직적·지능적으로 기망과 조작을 일삼는 투자 리딩방 안에 있으면 “속지 않기가 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기 조직이 이용하는 인간의 심리,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지름길을 강도형 서울청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전 서울대 정신과 교수)에게 물었다. 

    사기 조직은 피해자의 어떤 심리를 이용하나. 

    “먼저 상실 공포와 비교 심리를 이용한다. 인간은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Fear of Missing Out)’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본질적 불확실성 속에서 ‘남들은 벌고 있다’는 메시지는 인간의 원초적 불안과 비교 욕구를 자극해 합리적 판단 능력을 마비시킨다. FOMO는 다른 사람들은 다 돈을 버는데 나만 ‘벼락 거지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사회적 생존 본능과 직결된 감정이기에 지적 수준과 무관하게 강력하게 작동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차단한다. 둘째, 권위 편향(authority bias)을 활용해 구조화된 환상을 심어준다. 우리들은 보통 자신보다 ‘전문가’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무장해제되는 경향을 보인다. 의사, 교수, 증권사 직원이라는 권위 타이틀은 뇌의 비판적 사고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고, 그들만 따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구조화된 환상을 기반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보상 체계를 활성화한다. 셋째, 점진적 몰입과 부채감을 형성한다. 사기범들은 초기에는 주식투자 기술을 가르치는 등 정상적 관계와 신뢰를 형성하는 ‘그루밍(grooming)’ 단계를 거치게 한다. 이는 연인이 스토킹할 때 나타나는 ‘점진적 속박’ 메커니즘과 유사하다. 피해자는 ‘이 사람이 내게 돈을 벌게 해줬으니 믿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가해자들은 ‘점진적 유도(foot-in-the-door technique)’를 통해 피해자의 이성적 저항을 약화시킨다.”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

    피해자들은 왜 사기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나.

    “심리적 방어기제와 인지편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 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강한 자기 확신으로 인해 오히려 사기에 취약할 수 있다. 첫째, 자기 보존을 위한 ‘부정(denial)’이 작동한다. 이미 시간, 관계, 희망을 투자한 상황에서 ‘내가 속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감의 붕괴를 의미하기에 사람들은 진실보다 견딜 수 있는 거짓을 선택해 사기임을 부정하게 된다. 둘째,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와 도박적 중독 행동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주식 학습에 쓴 한 달여의 시간과 초기 투자금을 쏟았다는 사실 자체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이미 손실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드는 도박적 추적 행동(chasing behavior)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셋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때문이다. 고수익 약속에 매료된 피해자는 확증편향에 따라 긍정적 증거(가짜 수익 화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경고 신호(과도한 약속)를 무시한다. 또한 초기 교육 단계에서 쌓인 신뢰가 ‘심리적 앵커(anchor)’가 돼 나중에 나타나는 사기 징후들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사기 리딩방 피해자가 주로 호소하는 증상은 어떤 것인가. 

    “사기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삶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영혼의 지진과도 같으며 수많은 정신적·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 주요 증상은 ‘재경험’ ‘회피’ ‘과각성’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다. 재경험은 플래시백이나 악몽의 형태로 사기를 당했던 기억이 예고 없이 현재의 의식을 침범하는 것이다. ‘재경험’의 고통을 막기 위해 피해자는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장소나 대화를 피하려고 한다. 동시에 또 발생할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 맞서 싸우듯 과도한 경계심, 예민함, 집중력 장애 및 수면장애 등을 지속적으로 겪게 된다. 또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잦은 감정 폭발을 일으키고, 죄책감으로 인한 자기혐오의 양극단을 오가면서 정상적 대인관계나 사회 기능이 점차 붕괴된다. 이런 증상이 진행되는 단계는 충격 직후의 혼란으로 시작된다. 충격에 반응하기 위해 사기를 당했다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고통을 회피하는 단계가 이어지며, 이때는 타인에게 자신의 상태를 대부분 알리지 않고, 병원을 찾는 경우도 드물다. 이후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단계를 거치며 가족이나 지인들도 차츰 피해 사실을 알게 되고, 피해자도 도움이 필요함을 깨달으면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주위의 지지와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회복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을 방치하면 만성 장애로 악화할 수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타인 호의 의심할 필요 있어

    사기를 당한 후 금전보다 더 소중한 건강을 찾으려면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사기 피해는 단순한 재산 손실을 넘어 판단력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는 ‘심리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한다. 이 때문에 불면, 죄책감, 수치심, 자책, 우울, 무기력증 등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PTSR)을 자주 보이며, 이는 수개월에서 수년 지속될 수 있다. 심지어 위장 장애나 심혈관질환 같은 신체화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자살 같은 극단적 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따라서 치유의 핵심은 ‘자기 믿음’이 붕괴됐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책의 고리 끊기다.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작정하고 덤빈 범죄 집단에게 테러를 당했다’ 혹은 ‘교통사고와 같은 재해를 당했다’고 인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좋다. 그다음 할 일은 감정의 통로 열기와 애도다. ‘부끄러움(shame)’ ‘죄책감’ ‘분노’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돈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하는 ‘애도 과정(grief process)’을 거치되, 돈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더 소중한 것들이 가까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다음으로는 자기 존중감(self-respect)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치유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이 경험을 통해 재정 교육을 강화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성장 후 트라우마(post-traumatic growth)’를 추구함으로써 회복력을 얻을 수 있다.”

    사기에 안 당하는 예방법도 알려달라. 

    “사기 예방은 지적인 역량이 아니라,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에 달렸다. 첫째, 감정적 거리두기와 건전한 회의주의를 유지해야 한다. 고수익, 확정 수익 보장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즉시 멈춰야 한다. 불안, 흥분, 조급함과 같은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는 판단 기능이 마비되므로 결정하지 않아야 하며, 조바심과 탐욕이 느껴진다면 24시간 룰(하루 기다리기)을 적용해 보길 권한다. 둘째, 검증의 다원화와 고립 방지다. 사기는 사람을 ‘고립’시킬 때 성공한다. 무엇이든 혼자 결정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지인에게 객관적 피드백을 구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다. 셋째, 자신의 욕망을 모니터링하는 루틴을 만들어두라. 투자를 결정하는 순간, 논리적 확신인지 아니면 조바심과 탐욕인지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습관이 필요하다. ‘공짜 점심은 없다(No free lunch). 이 좋은 걸 왜 나한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 타인의 호의를 의심하는 것이 금융시장에서 필요한 생존 본능임을 기억해야 한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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