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표현에 상처…응급치료 문제 아냐
병원 찾아 밤샘 전화, 지방 응급실선 매일 일어나
100건 중 1건 문제 생기면 응급치료 책임 아니어도 욕먹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 세계 3위…숫자 아닌 운영 철학의 문제
과밀화 해소·면책 기준 설정·지방 의료 인프라 개선 필요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이 2025년 12월 2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2025년 12월 2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응급의료 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4년째 응급실을 지켜온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그는 응급실 대란의 원인을 개별 병원이나 의료진의 문제가 아니라, 응급실의 역할과 책임이 정립되지 않은 제도의 한계에서 찾았다.
이 회장은 지금의 응급의료 체계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료계에서 응급의료 분야는 이른바 3D 직종(힘든·Difficult, 지저분한·Dirty, 위험한·Dangerous)으로 분류되며, 의료진의 헌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희생이 당연시되는데 앞으로 누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겠느냐”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응급실 뺑뺑이’ 표현에 상처…응급치료 문제 아냐
응급실 뺑뺑이 소식이 빈번히 보도되고 있다.“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은 응급의학과 의사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다. ‘착한 119구급대가 환자를 데려오는데, 나쁜 의사들은 이를 거절한다’는 식의 인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응급실은 ‘응급치료’를 하는 공간이지, ‘최종 치료’를 하는 장소가 아니다. 결국 응급치료와 최종 치료 사이 발생하는 병목이 문제의 원인이다.”
응급치료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최종 치료 전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문제의 핵심은 최종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제때 찾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데 있다. 응급치료로 상황이 마무리되는 환자도 있지만, 많은 경우 최종 치료까지 필요하다. 응급치료는 필요하지 않고, 최종 치료만 필요한 경우도 적지 않다. 즉 처음부터 최종 치료가 가능한 병원의 응급실로 이송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환자 역시 이를 바란다.”
하지만 119구급대원이 환자 상태만 보고 어떤 최종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사는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해 진료해야 한다. 의사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의무다. 문제는 특정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하는데, 의사가 이송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구조에 있다.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다 해도, 최종 치료가 지연되거나 이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구급대의 현장 판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단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봐야 한다는 진단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앞선 문제에 대한 책임 경감이 없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이다.”
환자의 이송은 어떤 절차에 따라 진행되나.
“의식을 잃은 환자가 A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고 가정해 보자. CT 촬영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검사 결과 뇌출혈로 진단됐고, 마침 A병원에서 관련 수술이 가능하다면 그 순간 응급의학과 의사의 역할은 사실상 마무리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이 경우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시켜야 한다. 이때 주변 병원들 역시 신경외과 수술이 당장 어렵다면 환자는 더 먼 곳으로 이송될 수밖에 없다. 밤새 전화를 돌려도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의사는 응급치료를 문제없이 수행했음에도 보호자의 원망은 물론 법적 책임까지 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응급실 전담 전문의의 2인 1조 근무, 질환군별 전문의 당직제 도입 등을 법제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관련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방식으로 전문의를 의무 배치하도록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의는 매우 귀한 의료 자원이고, 한 명을 양성하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 외과만 해도 기본적으로 8개 분과가 있고, 내과는 10개 이상의 분과가 있다. 단순 계산해도 하루에 최소 50명 이상의 전문의가 당직을 서야 한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이 한국에 몇 곳이나 있겠는가. 더구나 매일 밤 각 분야의 환자가 발생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인력 구조와 비용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으로 의무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 세계 3위…숫자 아닌 운영 철학의 문제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려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한국의 응급의학 전문의 수는 2800여 명으로 세계 3위다. 미국이 가장 많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그다음이다. 본래 호주는 한국보다 응급의학 전문의 수가 적었는데, 뉴질랜드와 통합 집계되면서 2위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응급의학과가 있는 곳이 80여 개국인데, 그 가운데 한국이 3위다. 물론 이것도 부족하다면 숫자를 더 늘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특정 조건이 충족된다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고 본다. 바로 응급실 운영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비용 부담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응급실이 어떤 공간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보나.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의 요구는 아주 단순한 처치부터 매우 복잡한 치료까지 폭넓다. 의료진의 역할은 주어진 의료 자원 안에서 이 요구를 가능한 한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늦은 밤 급히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찾는 편의점과 비슷하다. 실제로 오늘날의 응급실 체계는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즉각적 의료 요구를 해결하는 공간’을 목표로 태동됐다. 편의점과 유사한 발상이었다. 문제는 ‘편의를 위한 의료 제공’이라는 응급실의 태생적 특징이 본질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는 데 있다.”
어떤 부작용이 있나.
“응급의료 체계는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나도 아프지만 더 위중한 사람이 있으니 양보하겠다’는 말은 도덕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셈이어서 현실적으로 달성이 어렵다. 대부분 국가에서 응급실 이용에 대해 여러 제약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높은 이용료를 부과해 경제적 장벽을 두는 나라가 있고, 특정 병원의 응급실만 이용하도록 제약하는 곳도 있다. 모두 제한된 의료 인프라 안에서 ‘개인의 편의’와 ‘집단의 효율’을 조화시키기 위한 장치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은 이용료를 통한 경제적 제한이 사실상 없고, 이용 가능 병원에 대한 법적 제약도 없다. 환자가 찾아와 접수하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응급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형병원을 당장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우선적으로 응급실을 찾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편의점형 응급실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는 일정 수준의 이용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증 환자를 제한하는 여러 허들이 있어야 중증 환자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2월 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과밀화 해소·면책 기준 설정·지방 의료 인프라 개선 필요
한국의 응급의료 체계가 어떻게 개편돼야 한다고 보나.“먼저 과밀화가 해소돼야 한다. 과밀화가 심해질수록 상급병원의 최종 치료 능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평균적으로 3일에 1개씩 침상이 빈다. 사실상 응급실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그 밖의 ‘빅5 병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침상이 적게는 –50개, 많게는 –150개로 집계된다. 응급실 침상이 30개뿐인 곳에 많게는 180명 가까운 환자가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응급실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과밀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급병원부터 응급실 기능이 무너지고, 상급병원에 환자를 보내는 중급병원도 연쇄적으로 마비될 것이다.”
다른 개선점은 없나.
“법적 위험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이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응급의료란 결국 ‘환자가 죽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하는 행위’다.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 의사 역시 응급처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방의 의료 인프라 확충도 필요하다. 전국에 응급의료취약지가 99곳 있는데, 이러한 지역은 별도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나.
“미국의 ‘엠탈라(EMTALA)법’이다. 의료보험이 없거나 불법이민자라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가 늘자, 누구든 응급실에 들어오면 기본적 조치는 받도록 보장한 제도다. 제도가 10여 년 이상 시행되면서 특정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 역할까지 하게 됐다. 나아가 의료진이 엠탈라법 기준에 따라 조치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이후 환자 상태가 악화되더라도 면책의 기준이 된다. 한국도 이러한 제도가 구축돼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 정해진 초기 조치와 기준을 성실히 수행했다면 과도한 법적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형 엠탈라법’ 도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응급실이 잘 운영돼 왔는데, 왜 전면 개편까지 필요하느냐”고 반발할 법도 한데.
“지금의 방식대로 계속 운영한다고 당장 응급실이 문 닫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많은 응급의학 전문의가 응급실을 떠날 것이다. 지금도 2800명의 응급의학 전문의 가운데 65%만이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앞서 소아과·신경외과·흉부외과 전문의들이 수술실을 떠났는데, 응급의학과도 그 뒤를 따라가지 않을까. (응급실 뺑뺑이) 사연을 들으면 제일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현장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우리가 살린 환자가 많겠느냐, 죽은 환자가 많겠느냐. 100건의 대응 가운데 99건을 잘해도, 단 한 건의 문제만 생기면, 그것도 응급치료를 잘못해 생긴 문제가 아니라도 욕을 먹는다. 그럼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다. 현장의 의사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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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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