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특집 | 한반도 대지진 공포

요동치는 지구 속 유체 우린 거센 강물에 떠 있다

과학으로 본 지진 & 대피 요령

  • 오가희 |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입력2016-10-20 14: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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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인근 주민들은 지진이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긴급 재난문자를 받기 전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진이 잘 안 나는 나라인지라 단박에 ‘지진!’이라 생각하긴 어려웠을 터. 급히 몸만 빠져나오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지 모른다. “거, 지진 나기 전에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돼?”
    눈길을 끄는 두 번의 지진이 있다. 1975년 중국 하이청(海城)시에서 발생한 지진과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내륙에서 발생한 대형 지진은 대개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다. 최근엔 2015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발생한 지진, 2008년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이 그랬다. 영화 ‘탕산대지진’의 배경이 된 1976년 중국 탕산(唐山) 지진에선 공식적으로 24만 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 중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첫 번째는 30만 명이 사망한 2010년 아이티 지진이다).

    하이청 지진이 주목되는 것은 규모 7.3의 대형 지진인데도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1328명이다. 탕산과 하이청이 지리적으로 그리 멀지 않음을 고려하면 하이청 지진의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친 건 기적에 가깝다.



    예측한 지진, 예측 못한 지진

    하이청 지진은 과학적으로도 ‘기적’으로 꼽힌다. 인류 역사상 지진을 예측해낸 유일한 사례여서다. 큰 지진을 암시하는 듯한 여진(餘震)과 지하수 수위 상승, 지하 깊은 곳에서나 존재하는 라돈 가스의 지표면 관찰 등 지진의 전조증상이라고 알려진 모든 증상이 나타났다. 덕분에 하이청시는 대재앙을 면했다.



    과학자들은 하이청 지진은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바로 다음 해 발생한 탕산 지진에선 그 어떤 전조증상도 없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갑자기 규모 7.8의 지진이 탕산을 덮친 것이다.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발생한 규모 6.3의 지진은 300여 명이 사망한 중대형 지진이다. 지진 후 이탈리아 법원은 과학자 6명을 포함해 국립재난예측·대책위원회 관계자 7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2014년 상위 법원이 “지진을 예측하지 못한 건 범죄가 아니다”라며 과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과학자를 제외한 관계자 1명에겐 주민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탈리아 법원의 판단을 살짝 뒤집어보면 이렇다. 지진을 예측하지 못한 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미 여러 차례 미소(微小)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함부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순 없다는 것이다. 지진은 예측 불가능하다. 동시에 한번 발생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열에너지

    지진은 말 그대로 대지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지구가 생성된 이래 지구 내부에선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하며 지구 내부의 운동을 만들어낸다. 지구 내부 운동이 지표까지 전달되면 지진이 된다. 지구 내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채 200년도 안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태양계 생성 이래 지구는 태양이 만들어지고 남은 물질이 모여 만들어졌다. 처음엔 갖가지 물질이 찰흙 반죽처럼 뒤섞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부에서 받는 충격과 내부 중심부 깊숙한 곳의 압력에 의해 어마어마한 열이 생겼다. 규칙 없이 뒤섞여 있던 원시 지구 내부에선 어떤 물질이 깊숙이 들어가고, 어떤 물질이 외곽으로 나올지 정리되기 시작했다.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 중 상대적으로 무거운 철과 니켈은 지구 중심으로, 가벼운 산소와 규소는 외곽에 정렬됐다. 그리고 바깥쪽부터 천천히 식어갔다. 가장 바깥에서 먼저 식은 껍데기, 이것이 바로 지금 생명체가 살아가는 지각이다.

    차갑고 단단하게 식은 지각 아래로 지구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열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열에너지 덕분에 지구 내부는 여전히 유체(流體, 흐를 수 있는 상태)로 천천히 움직인다. 뜨거운 물질이 지구 중력을 거슬러 차가운 물질 위로 올라가듯, 지구 내부를 구성하는 물질들이 지각 근처에 와서 식으면 지구 중심 방향으로 내려가고, 중심 근처에 가서 뜨겁게 데워지면 다시 지각 근처로 올라오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이들 물질의 움직임이 너무도 강해 물질들을 둘러싼 지각도 함께 움직인다. 물위에 떠 있는 배처럼.

    결국 물질이 내려가는 곳에서 지각은 일부가 함께 내려가며 사라지기도 하고, 내려가는 곳에서 주변 지각과 부딪히기도 한다. 혹은 특정 부분이 너무도 두꺼워 내려가지 못하고 허공으로 치솟기도 한다. 반대로 내부 물질이 올라오는 곳에선 올라온 물질이 차갑게 식으며 새로운 지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경계를 찾아낸 과학자들은 지구 내부 물질의 움직임에 따라 떠다니는 지각 조각을 ‘판(板, plate)’이라고 이름 붙였다.

    판의 크기는 대단하다. 큰 판은 어지간한 대륙보다 크다. 대륙과 바다가 분리돼 각각의 판으로 존재할 수도 있고, 합쳐져서 거대한 판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한번에 연결한 거대한 유라시아판의 일부다. 유라시아판은 일본 동쪽에서 태평양판과 접해 있다. 동시에 일본 남쪽에서 필리핀판과도 접해 있다.


    판 가장자리의 한반도

    좁은 강에 배 여러 척이 간격 없이 떠 있는 것을 상상해보자. 물결이 잔잔할 땐 별문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생기면 배들이 출렁인다.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배 위에 사람이 있다면 배와 배가 부딪치는 충격에 심한 진동을 느낄 것이다. 이때 물은 지구 내부 물질, 배는 판이다.

    그렇다. 지진은 판과 판이 상호작용할 때 생기는 진동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지진대)을 표시하면 특정한 패턴을 그려낸다. 지진대에 위치한 지역 사람들은 언제나 지진을 조심하면서 살아간다. 이웃 일본처럼 말이다.

    이 판구조론에 의해 그동안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로 생각돼왔다. 전 세계적으로 지진을 연구한 역사 자체가 오래되지 않은 데다, 한반도가 판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있고, 지진의 위협을 느낄 만큼 큰 지진을 겪어보지 않아서다.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 이전까지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1980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발생한 규모 5.3 지진이다.

    판과 판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는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이 때문에 판의 경계가 아닌 곳에서도 힘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판은 아무런 흠이 없는 매끈한 덩어리가 아니다. 거대한 지층이 겹겹이 쌓인 형태다.

    판의 경계에서 전달된 에너지는 지층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쌓인 지 얼마 안 돼 암석이 덜 된 지층은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어떤 지층은 처음엔 단단하게 버티다가 한계를 넘어서면 부서질 수도 있다. 즉, 어느 쪽에서든 힘을 전달 받는다면 경계부가 아니라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완전한 경계가 아니더라도, 판의 가장자리에 있는 한반도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역사적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서도 지진이 자주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기상청은 ‘삼국사기’ ‘고려사절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승정원일기’ ‘일성록’ ‘풍운기’ ‘천변초출승록’을 비롯해 개인 문집, 지방지 등을 참고해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역사에 기록된 지진을 전수 조사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1900년간 기록된 지진 중 건물이 지붕까지 크게 흔들린 지진은 440회 이상이다. 생각보다는 자주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가 생각보다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지진 생존 노하우 7지진이 두려운 이유는 지진 그 자체가 아니다. 지진의 거대한 에너지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다. 2014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규모 9.1(~9.3) 지진은 바다에서 발생해 쓰나미(지진해일)를 일으켰다. 쓰나미로 인한 인명 피해는 23만 명이 넘었다. 지난해 네팔 카트만두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 7.8이었는데, 이 나라 전체 가옥 중 약 20%가 부서졌다. 1556년 중국 산시(山西)성에서 발생한 지진 때는 82만~83만 명이 산사태로 사망했다고 문헌은 전한다. 지진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지구 내부 상황으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미리 대비하고 발생 시 최대한 빨리 대피하는 수밖에 없다.


    ① 책상, 탁자 아래 숨는 건 임시방편  지진이 발생했을 때 단단한 책상이나 탁자 아래로 대피하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목조건물이 많은 일본에서는 추천할 만한 대피법이지만, 대다수 건물을 벽돌과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 한국에선 잘못하면 역사 속 돌무지 덧널무덤이 될 수 있어 실정에 안 맞는 대피법으로 알려졌다. 이 대피법은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흔들리는 동안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실내에서 공중에 있는 무언가(예컨대 조명)가 떨어져 다칠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② 최소한의 안전장치  인터넷 괴담 중 화장실 문에 대한 것이 있다. 바깥쪽으로 열리는 문인데,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짐이 화장실 문을 막아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진이 발생하면 이 괴담이 현실이 될 수 있다. 갇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문을 활짝 열고, 가스관 등이 파손돼 큰 사고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가스 밸브와 차단기 등은 잠그자.

    ③ 밖으로 나가는 게 우선  우리나라는 1988년 이후 6층 이상 건물엔 내진 설계를 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내진 설계가 아니더라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규모 6의 지진까지는 버틸 수 있어, 지진이 발생해도 건물이 단번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진동은 오래가지 않으니 진동이 멈춘 뒤 재빨리 밖으로 나가자. 단,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사용은 금물. 조금 편하려다 갇힐 수 있다.

    ④ 어떤 경우에도 머리를 보호하라  지진 발생 때 모든 위험은 위에서 비롯된다. 머리 위에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이다. 창가에 내놓은 화분 같은 작은 물건일 수도 있고, 건물에 매달려 있던 간판일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낙하물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 공터, 기둥 주변, 비상계단 등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⑤ 운전 중엔 길가에 차 세우고 도보 이동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동차에 짐을 싣고 멀리 도망갈 생각보다는 당장 내 몸 하나 건사할 생각을 하는 게 먼저다. 도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예를 들어 다리 같은 건축물은 진동으로 출렁이다 끊어질 수 있다. 차를 길 가장자리에 세운 뒤 차 키를 내부에 두고 근처 공터로 이동하자. 차 키를 두고 내리는 것은 긴급차량이 지나갈 때 움직여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연락처와 귀중품, 차량등록증 정도만 챙겨서 이동하자. 

    ⑥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화장실, 그러나…  위의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최후 수단으로 화장실로 대피하기를 권장하는 경우가 있다. 식수가 확보되기 때문인데, 하지만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딱히 권하지 않는다. 화장실엔 깨지는 물건이 많다. 진동으로 떨어지면서 부상당할 수 있다.

    ⑦ 비상 물품 챙겨두기  지진 대피 시 필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을 미리 챙겨두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일명 ‘지진 가방’이라고 하는데 구급약품, 비상식량 외에 휴지(및 물티슈), 휴대용 세면도구, 파편 등으로부터 손을 보호할 수 있는 장갑, 랜턴, 일회용 우비, 마스크, 핫팩, 다용도 칼, 신호용 호루라기, 물(혹은 정수 알약) 등을 담아두고 비상시 들고 뛰어나가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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