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갤러리 산책

존재의 흔적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개관展

  • 글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 사진제공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입력2016-10-20 15: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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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제주 제주시 저지리 2120-82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 일시 2016년 9월 24일~ 2017년 1월 22일 ● 관람료 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 국가유공자, 장애인 4~6급 등 무료(개관 기념으로 9월 24일부터 3개월간 무료 개방) ● 문의 064-710-4150
    “달마대사가 9년 면벽 끝에 득도했다는데, 나는 평생 물방울을 그리고도 도가 통하기는커녕 지금도 마누라한테 고함지르며 속물의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미술관을 하나 받았다는 것은 어쩌면 달마대사 못잖은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9월 24일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한 김창열(87) 화백은 “이국생활이 결국은 유배생활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종착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결국 제주도에서 받아줬다”며 “이렇게 미술관을 갖게 되다니 고맙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팡이를 짚은 김 화백은 간담회 도중 여러 번 목이 멨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들어선 김창열미술관은 지상 1층, 연면적 1587㎡ 규모. 사업비 92억 원이 투입됐고, 작가가 대표작 220여 점을 기증하며 완성됐다. 설계는 홍재승 건축가가 맡았는데 “미술관이 신전 혹은 무덤 같으면 좋겠다”는 김 화백의 요청에 따라 건물 전체에 나뭇결 문양의 검회색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미술관은 개관에 맞춰 김 화백의 대표작 25점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존재의 흔적들’전(展)을 마련했다.



    평안남도 맹산 태생인 김 화백은 6·25전쟁 당시 1년 6개월간 제주로 피란 온 인연이 있다. “제주도에 있으면서 추사 김정희 선생을 뵙는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는 그는 “제주에서의 만남들이 45년에 걸친 프랑스에서의 작업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시절 그는 제주로 피란 온 이중섭 화백을 여러 차례 만났다.



    김 화백은 서울대 미대에서 공부한 뒤 미국 뉴욕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1969년 파리로 갔다.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메’에서 처음 ‘물방울’ 작품을 선보인 이래 물방울 작업에 천착해 ‘물방울 작가’로 불려왔다. 백남준, 이우환 등과 함께 해외에서 미학적 논의를 일으키는 세계적 작가다.

    김 화백은 평생 그린 물방울의 의미를 묻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냥 내가 못나서 계속 그리는 것일 뿐”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물방울은 전쟁의 상흔에서 비롯된 듯하다. 12년 전, (결과적으로 무산된) 경기도 양평 김창열미술관 설립 추진 당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스무 살 때 6·25가 터졌다. 전쟁 중에 사체를 무수히 보면서 잔인한 기억들이 뇌리에 박혔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쟁의 상흔을 물방울로 승화시켜 보려는 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농부가 밭을 갈듯이 풍성한 수확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물방울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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