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집 | 文, 安, 黃 속도 내는 대선열차

“변호사 문재인, 인권 담을 그릇 안 돼”

‘인권 동지’ 원형은의 작심 비판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변호사 문재인, 인권 담을 그릇 안 돼”

2/3
원형은 목사(61·대한예수교장로회 빛과소금교회)는 부산 지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다. 민주화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부산에서 ‘운동’을 조금 했다는 사람들은 그를 ‘길바닥 목사’라고 부른다. ‘인권 약자’와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의 궤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권운동은 배고프다. 부산 지역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인권운동을 해온 원형은 목사가 부산 연제구청 맞은편 상가건물 2층에 새 둥지를 틀었다. 10여 년간 부암동, 전포동, 우동, 광안동 등을 전전했는데, 이번에 한자리에 꽤 오래 있을 교회를 마련한 것이다…(중략)…스무 명 정도 앉은 작은 예배당을 한쪽에 두고, 부산인권상담센터, 부산기독교이주노동자센터, 새터민무료직업소개소 공간을 둔 복합기능 교회인 셈이다.”(부산일보 2009년 5월 9일자)

인권운동을 하다 보니 지역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연도 깊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노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차관급)을 지냈다. 문 전 대표와는 경남중 선후배로, 1997년 부산인권센터를 만들 때 공동대표를 지낸 인연도 있다. 그런 그가 문 전 대표의 ‘인권관(觀)’에 대해 ‘그릇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신동아’와 세 차례 대면·전화 인터뷰를 했다.


▼ 2009년 교회를 옮기셨네요.

“네. 지금도 그곳에서 일해요. 인권운동이 사실 힘들거든요. 여러 곳 다녔죠. 후원비로 임차료 내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다 보면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해요.”



▼ 1985년 목사 임직 이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장을 맡는 등 줄곧 인권운동을 했는데요.

“나는 목사니까. 예수가 그러셨듯이, 그의 말과 행위를 따라 모함당하고 욕을 먹으면서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죠. 복음이죠.”

▼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 위원을 지내셨는데요.

“2005년부터 3년간 일했죠.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외국순방(5월 8~12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을 하기 전 제 인사 결재가 났는데, 순방을 다녀와서도 처리가 안 돼 있으니 노 대통령께서 화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곧바로 다음 날 국가인권위에서 통보해왔고, 경찰청에선 신원조회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인권운동은 복음

▼ 왜 늦어졌나요.

“이후 알게 됐지만, 당시 내 인사를 두고 ‘지방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서울에서 일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서울만 대한민국이냐’며 따졌죠. 지방분권을 강조한 정부인데 이런 비판을 하고 있으니 노 대통령이 화를 내지 않았겠나 싶어요(웃음).”

▼ 곁에서 본 노 전 대통령, 문 전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요.

“‘노통(노무현 전 대통령 지칭)’이 행동적이라면 문 전 대표는 장고하는 관념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울릴 수 있다고 봐요. 문 전 대표는 3년 선배이기도 해서 인권 문제로 변호사 사무실(법무법인 부산)에서 종종 만났어요. 1997년 부산인권센터를 만들 때 저와 송기인 신부, 문재인 변호사, 배다지 선생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어요. 회의 때도 자주 만났고. 굳이 비교한다면 노 전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되죠. 이런 말 해도 되나….”  

한동안 너털웃음을 짓던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인권위원이 됐을 때는 인권위가 정부의 이라크 파병(2004년 8월 파병~2008년 12월 철수)을 반대해 청와대가 긴장했어요. 그때 노 대통령은 ‘나는 국가를 위해 옳은 결정을 한 걸로 생각하는데 인권위는 인권을 위해 반대할 수 있다’고 명확히 정리했죠. 그 한마디가 그분의 인격을 말해주죠. 파병 반대 문제도 가라앉았고. 노 전 대통령은 큰 인물이죠.”



大選 3일 전 보낸 임명장

▼ 인권변호사로서 활동은 어땠나요.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아실 거고, 문 전 대표는 인권 변호를 할 때 수임료를 절반 정도 받았다고 해요. 물론 못 받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간첩단 사건 변호에 뛰어들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는 그런 유의 인권변호사는 아니었어요. 우리는 멋모르고 뛰어들기도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조심스럽게 ‘내 편’인지 재보는 스타일이죠.”

▼ 문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요?



“뭐랄까, 제 경험에 비춰보면 그래요. 인권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선거 캠프를 꾸릴 때 분명 ‘인권특위’나 특보를 뒀을 겁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 후보 캠프에 있던 ‘애들’이 찾아와 제게 선대위 시민사회단체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원 목사는 식사를 겸한 5시간 인터뷰 동안 다양한 부류의 ‘애들’ 얘기를 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현역 국회의원은 물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회(한총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핵심 인사들도 그의 도움을 받거나 그와 교류하고 있었다.

▼ 그래서 위원장을 맡으셨나요?

“아뇨. 안 한다고 했죠. ‘문 후보라면 인권특위를 만들고 특보를 위촉해야지 무슨 시민단체위원장이냐’고 했죠. 그러고 잊고 있었는데 선거 3일 전에 ‘애들’을 시켜 인권특위위원장 직함의 임명장을 주더라고요. 선거 3일 앞두고 인권특위위원장이 된들 무슨 일을 하겠어요?”

▼ 왜 그랬을까요.

“‘인권’ 강조하면 표가 안 나올까 그랬는지, 인권변호사 하면서 ‘수임료 받는 인권’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인권을 대하는 생각을 알 수 있었죠. 그 쪽 캠프 ‘애들’은 경찰에 잡혀갈 때는 밤중에라도 ‘인권 목사’ 찾았는데, 이젠 인권이 필요 없나 봐요(웃음). 노무현 정부 끝나고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도 느꼈어요. 문 전 대표는 그릇이 안 돼요.”

▼ 사무실엔 왜 가셨나요?

“1997년부터 어렵게 부산인권센터를 운영했는데 문 전 대표가 청와대로 가고, 저도 인권위원을 맡으면서 운영이 잘 안 됐어요. 그런데 최근 이주노동자와 새터민이 늘어 일이 많아지면서 인력과 비용이 부족했어요. 문 전 대표와 함께 인권센터 공동대표를 지낸 송기인 신부님(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찾아가 ‘사단법인으로 만들어 인권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송 신부님은 ‘정부 일도 끝났으니 문 전 대표가 맡는 게 좋겠다’고 추천하시더군요.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는 성직자들은 마음속에 ‘번뜩’ 하고 찾아오는 감이 있어요. 송 신부님도 사람의 모습, 즉 문 변호사의 순수한 인간적인 면에 믿음이 갔던 거죠.”

▼ 송 신부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분인데요.

“….”

▼ 거절당했나요.

“관심이 없는데 어쩔 수 없죠. 나는 30년 넘게 ‘인권’ 하면서 현장에서 ‘이단옆차기’도 하고, 경찰청 보안(정보)과장들과도 욕하면서 친해지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야 노동자, 학생들의 인권을 조금이나마 보호할 수 있었거든요. 제 성격이 직선적이고 괄괄한 이유이기도 해요. 그때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참았습니다.”



文  “나는 안 되고…”

▼ 관심이 없다고 했나요.

“인권센터 초기 공동대표를 지낸 분이 ‘나는 안 되고…’ 한마디 하시더군요. 더 이상 캐묻지 않았어요. ‘같이 알아보자’는 말도 없었죠. 그때는 ‘당신이 인권변호사냐’며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어요. 그분은 ‘계산적인 거’밖에 없어요. 모든 걸 말할 순 없지만, 그땐 그랬어요.”

▼ 센터 운영에 참가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까봐 그런 모양이죠.

“아이고, 비용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보기와 달리 인권에 관심이 없었던 거죠. 조금 전에 말한 임명장 사건도 그렇고요.”

▼ 서운했나요.

“서운한 거 없어요. 정치라는 게 그런 거죠(웃음). 인권이라는 게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받긴 좋은데, 잘되고 나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물’ 튀니까. 일반적으로 권력자나 기득권은 인권이라 하면 노동자 편에 서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거라 원수처럼 생각해요. 그런데 인권 문제는 나도 당할 수 있는 만큼 일이 생기면 반드시 풀어야 하고 행동해야합니다. 관념적으로 인권을 말해선 안 됩니다. ‘노통’은 행동적이어서 인권이 맞았던 거죠. 과거 인권 탄압을 받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잘되면 바꾸겠다고 하지만, 막상 잘되고 나면 인권이란 용어를 싫어해요.”

▼ 그렇군요.

“문 전 대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해요. 2003년 초쯤 부산지역 대학 총장과 종교계 지도자 등이 참석하는 모임에 나갔는데, 모임을 주선하는 분이 ‘문변 청와대 환송식’이라고 귀띔하더군요. 의아했죠. 얼마 전만 해도 제게 ‘정치는 안 한다’고 했거든요. 궁금해서 물었더니 끝까지 말을 안 해요. 이후 민정수석 때 만나 ‘이왕 좋은 분이 나라 변화시키려면 고위공직자 적폐 해소에 앞장서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는데, ‘목사님은 과격한 거 하지 마라. 점잖게 해라’고 하더군요. 시민단체가 나서 정부를 흔들거나 반대하지 말라는 말이었는데, 인권변호사 시절과 달리 권력을 잡으니 화평하고 싶은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평소 노동자들과 시위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그날 환송식’에서 내가 ‘돌직구’를 던져서 그런지(웃음). 개혁에 대한 인식은 김대중(DJ) 정부 때와 달랐죠.”

▼ 어떻게 달랐나요.

“DJ 정부에서도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김상근 목사(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 여러분이 있었는데, 그분들에게 ‘지금도 노동자들과 부산 시내에서 데모합니다. DJ 퇴진도 외치는데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으면 ‘아니다. 잘못 된 거 참아주는 게 우리를 위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건 정부에 요구해라. 고치면 된다’고 했죠. 문 전 대표와 생각이, 그릇이 다르죠.”

▼ DJ와도 인연이 있나요?

“내가 속한 교단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인데, 1997년 대선 전 DJ가 부산지역 종교지도자들과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해와서 내가 초청장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모았어요. 보수적인 목사들은 ‘원 목사가 왜 나서냐’며 타박했지만, 부산롯데호텔에 종교지도자 750명을 모았더니 DJ의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캠프 관계자들이 DJ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하더라. 고생은 누가 하고(웃음).”


유엔인권위 文 발언은 이해

▼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도 돕지 않았나요?

“종교특위위원장도 하고 몇 개를 맡았죠.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선배 목사에게 ‘목사 20명과 부산에서 간담회를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어요. 대선 후보 간담회를 하는데 20명이 뭡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죠. ‘DJ 때는 750명을 모았는데, 최소한 100명은 돼야 언론도 관심을 갖는다’고. 간담회에 130명 정도 모았어요. 그때 사회를 보면서 ‘대통령 되시면 측근정치를 끝내달라’고 했더니 내 손을 잡으며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어요. 어느 정권이든 측근 정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선 측근정치가 관행이 돼 있어 문제가 커요. 권력자와 조금만 연이 있으면 청탁 전화가 옵니다. 비상임 인권위원이 뭐라고 제게도 그런 전화가 왔으니까.”

▼ 그렇군요. 2007년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을 놓고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했다’는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이 논란이 됐는데요.

“그 부분은 (문 전 대표 발언이) 이해가 돼요. 당시 국가인권위 내부 회의를 할 때 나도 표결 반대한 사람입니다. 왜냐? 남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당시 김정일은 인권위를 ‘미국 제국주의 국가인권위’라고 비판했는데, 어떤 실효성이 있기에 관여하느냐, 국가기관이 끼어들지 말자는 취지였죠. 권력을 잡은 문 전 대표도 실효성을 따져본 거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하는 처지였는데 상대를 자극해놓고 북한에 갈 순 없잖아요.”

2005년 9월 26일 국가인권위 회의록을 보면 원 위원은 “북한 스스로가 자발적이고 자주적 차원에서 (인권 개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은 어떤 정치적 목적성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진보 정권은 북한 인권을 말하길 꺼리죠.

“보수는 우리 인권이 북한보다 낫다 하고, 진보는 그쪽 얘긴 하지 마라고 하죠. 그러니 갑론을박보다는 실효성이 뭔지 따져야죠.”



표현의 자유와 인권선언 30조

▼ 최근에는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국회 전시회가 논란이 됐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을 나체로 묘사한 그림 때문에 여성인권단체들이 반발했고요.

“표 의원이 ‘오버’한 거죠. 전시회가 ‘속 시원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은 나와 성격이 맞지 않다고 해서 마구 도발할 성질이 아닙니다. 표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세계인권선언 30조는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고 규정해요. 표 의원은 문 전 대표의 ‘인재 영입 1호’ 인물이니 문 전 대표도 곧 유감을 표하더군요. 이건 우리나라의 큰 병입니다. 과거 성균관(成均館)의 교육을 보면 공동체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임금에 대한 충성, 애국 같은 공동체 교육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그런 교육이 없어요. 모두들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표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내 권리 찾는데 왜 그러느냐’고 해요. 우리 사회가 인권감수성 교육이 안 된 겁니다. 역대 정부에서 인권단체가 싹을 못 틔웠다가 민주화운동과 결부되면서 2000년 들어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15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인터뷰는 문 전 대표의 정계 진출로 흘렀다.

“2005년 초 문 전 대표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만났을 때도 ‘청와대 있어 보니까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추접다’(더럽다의 부산 방언)고 했어요.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정치 안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쪽에서 ‘대권 전초전’으로 국회의원에 입문하라고 쑤시더니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하더군요. 나는 그때 문 전 대표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 몇 곳에서 야당이 이겼을 거라고 봐요.”

▼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때 부산에서 오랫동안 노력한 재야인사가 많았는데 그들을 도와야 할 노사모 회원들이 다 사상으로 몰렸어요. 또 갑자기 문성근 씨가 부산(북강서을)에 내려와 문 후보와 손잡고 ‘낙동강 벨트’에서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하니 언론도 그쪽만 집중했죠. 사실 그 사람이 부산에 무슨 연고가 있어 내려왔는지 의아했어요. 오랫동안 재야에서 선거 준비한 사람들은 ‘낙동강 오리알’ 되고…. 문 전 대표면 친하더라도 내려오지 말라고 해야죠. 그리고 ‘낙동강 벨트’라면 당연히 낙동강 하구가 지역구이고, 당시 부산 유일 야당 의원이던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민주통합당 사하을 국회의원)과 벨트를 이뤄야지, 그쪽(조 의원)은 싫다는 거예요. ‘친문(친문재인) 패권’이 그런 겁니다. 요즘 보니 문 전 대표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 지지자들이 ‘문자폭탄’과 ‘후원금 18원’ 보내는 게 문 전 대표에게 득이 될까요. 그 사람들이 ‘반문(반문재인)’이죠.”

그는 ‘이렇게 인터뷰하면 나도 문자폭탄 받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 캠프 말씀하시니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떠오르네요.

“지난해 10월엔 500명 정도로 출범했는데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해요. 요즘 분위기 좋으니까요. 그런데 그분들 면면을 보니 ‘이건 변화가 아니다’ 싶어요.”

▼ 최근에는 900명 정도로 늘었다던데요.

“캠프 핵심 인사 상당수가 과거 권력 맛을 본 사람들입니다. 캠프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정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이 되겠어요? 그쪽 주변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대선 승리 후 논공행상(論功行賞)도 돼 있다는 식으로 말해요. 과거 한번 ‘해먹은’ 경험이 있으니 (문 전 대표가 대통령) 당선된 후 시나리오도 어느 정도 정리돼 있다는 거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오면 ‘자기 자리’ 빼앗길까봐 발길질을 한다는데, ‘한자리’ 하겠다는 생각에 참여한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우려스러워요.”



“누군 장관, 누군 시장…”

▼ 논공행상이 정해졌다고요?

“(대선 이후) 누군 장관 하고, 누군 부산시장 출마하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문 전 대표 의중은 모르지만 그런 말 나온다는 자체가 쓴웃음을 짓게 하죠.”

▼ 문 전 대표가 ‘대세’이긴 하지만 지지율 30%에서 머물러 있는데요. 안희정 충남지사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고.

“표 확장성, 그게 한계예요.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책임감 없이 말한다면, 본인 의지 문제 아니겠어요. 사람은 영물(靈物)입니다. 말은 안 해도 감은 잡아요. 자신(문 전 대표)은 ‘준비됐다, 대세다’라고 말하지만, 남이 볼 때는 ‘좀 더 기다려보자’는 거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국민은 더욱 현재의 정치권을 못 믿고 있고,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인물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이죠. ‘정치 안 하겠다’던 문 전 대표는 ‘바람을 타서’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권에 들어갔잖아요. 지금도 그분이 정치하는 게 자기 마음과 맞을까 의심이 들어요. 이재명 성남시장이 촛불집회 때 강성발언으로 지지율이 오르자, 문 전 대표도 강성발언을 했지만 발언 이후 철회하고, 물러나고 하는 걸 보면 자기 마음이 아니라 주변의 마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 문 전 대표가 현재 ‘대세’인데, 찍힐 거 같은데요.

“인권과 사회개혁 관점에서 보면 저렇게 가는 게 우려스러워요. 현재까진 나도 ‘문 전 대표’ 편이지만, 앞으로 변화 의지가 안 보이면 편을 바꿀 수 있죠(웃음).” 





2/3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변호사 문재인, 인권 담을 그릇 안 돼”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