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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북한

“김정남도 ‘서기실 실력자’들이 김정은 설득해 암살”

김정은의 비선실세 ‘3층 서기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정남도 ‘서기실 실력자’들이 김정은 설득해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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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격폐된 곳에 사는 ‘극비의 실세’들
  • ● 국정원도 서기실장이 누군지 몰라
  • ● 서기실 ‘모사 방침’은 수령의 뜻
  • ● 황병서·최룡해 권세 누릴 뿐 권력 없어
북한 조선중앙TV는 평일 오후 5~11시, 일요일 오전 9시~오후 11시 전파를 송출한다. 오후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3층 높이 노동당 청사 한 곳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것으로 방송을 끝낸다. 도대체 이 3층 건물이 뭐기에 날마다 이 청사를 보여주면서 방송을 마무리할까. 

“북한에서 이 건물은 ‘당 중앙위원회’라고 일컬어진다. 이 청사에 서기실이 있다. 3층 건물을 업무 공간으로 써서 ‘3층 서기실’로 불린다. 밤 11시 서기실 청사의 환한 불빛을 보여주면서 TV 방송을 끝내는 것은 인민이 잠자리에 든 시간에도 수령은 불 밝히고 일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다.” 



‘얼굴, 이름 없는’ 실세 집단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로 일하다 한국에 망명한 A씨의 설명이다. 1월 1일 조선중앙TV가 김정은의 신년사를 방영하면서 방송 중간에 반복적으로 화면에 내보낸 건물도 ‘3층 서기실’이다.

서기실은 ‘평양의 비선실세 그룹’이면서 ‘김정은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이다. 신동아는 2015년 5월호에서 “북한의 통치구조는 ‘내용적으로’ 서기실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라는 사실을 보도했다. 북한 통치구조와 관련해 서기실에 주목한 것은 이 보도가 처음이다.  



지난해 7월 탈북한 후 한국으로 망명해 12월 말부터 공개 활동을 시작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도 2월 7일 기자와 만나 북한 통치구조와 관련한 ‘신동아’ 보도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서기실의 존재를 아는 북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일반 주민은 당연히 모르고 간부 중에서도 고위층만 안다. 수령(김정은)이 위치하는 곳이 당 중앙위원회다. 중앙위원회 아래에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군사부, 군수공업부, 39호실, 재정경리부 등 각 부서가 있다. 그중 조직지도부가 간부, 주민을 통제·세뇌하는 지도기관이다. 공식 기관인 조직지도부와 달리 서기실은 숨겨진 기구다. 김정은을 보좌하는 집단으로 그 힘이 막강하다.”

인민보안성에서 일하다 한국에 망명한 B씨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한국 학자와 언론은 조직지도부를 강조하던데, 조직지도부도 서기실의 통제를 받는다. ‘서기실에서 나왔습니다’라고 하면 김정은이 직접 온 것과 같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 맞는다. 서기실 인사가 ‘특정 문제가 제기돼 요해하러 왔다’고 하면 당 중앙위원회 부장, 부부장들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 김정은이 ‘서기실에서 요해한 대로 하시오’ 하면 그걸로 끝이다.

한국의 대통령비서실과 유사한 측면도 있는데, 서기실 인원은 청와대보다 훨씬 많다. 서기실에는 중앙당, 보위부, 인민무력부 등의 각 기관을 담당하는 조직이 있다.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담당 분야별로 조직이 다 있다.

남한에는 ‘모사 방침’이라는 것을 아는 북한 전문가가 없더라. 서기실이 서명한 문서는 수령의 생각과 똑같다고 여기는 게 모사 방침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서기실 고위 인사들은 ‘노동신문’ 같은 곳에 이름이나 얼굴이 등장하는 법이 없다. 면면이나 직위 등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와 A씨, B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3층 서기실’은 얼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로 구성된 ‘김정은의 비선 보좌 그룹’으로 북한의 대내, 대외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세와 얼굴마담

2000년 조정남 당시 SK텔레콤 부회장이 주규창 북한 노동당 군수공업부 1부부장(현 기계공업부장)과 남북 통신협상을 벌일 때의 일이다. SK텔레콤 측은 주규창 1부부장을 잘 설득하면 협상이 순항할 것으로 봤으나 그는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실제 권한을 갖고 협상을 주도한 것은 서기실 인사였다.

“노동당 과장보다 나이도 어린 서기실 인사의 위세가 대단했다. 북한에서 통신은 안보와 불가분의 관계다. 서기실이 협상에 직접 나설 만큼 민감한 이슈였던 것이다. 주규창 1부부장은 얼굴마담이었다. SK텔레콤과 북한 체신성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협상을 주도한 것은 서기실이었다.”(남북 통신협상에 참여한 C씨) 

2000년대 초 김영성 당시 북한 내각 책임참사가 남북 장관급 회담 때 북측 대표로 회담에 나왔다. 통일부 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 노릇을 한 것이다. 남북 장관급 회담은 2000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21차례 개최됐다. 김영성 책임참사는 2013년 2월 13차 회담 때까지 북측 대표를 맡았다. 북한과 IT 협력 사업을 진행하던 재미동포 사업가 D씨의 회고다. 

“한국의 통일부 장관이 실제로는 별다른 권한이 없는 북한의 얼굴마담과 대화한 것이다.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서기실 인사가 김영성 책임참사에게 삿대질하면서 ‘당신, 이렇게밖에 못하느냐’고 훈계하더라. 서기실 인사가 실세였고, 김영성은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북한은 보편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이탈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라 독특한 ‘수령-당-대중 통치구조’를 구축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서 수령은 뇌수, 당은 심장, 인민은 몸의 각 부분이다. 심장과 몸의 각 부분이 뇌수의 영도 아래 생명체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는 “수령은 신(神)으로 대접받으나 한 명의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통치구조에 도전한 장성택”

“모든 결정이 신(神)인 김정은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보여야 하므로 서기실을 직속으로 두고 보좌받는 것이다. 서기실과 김정은만이 각 부서가 어떤 안을 보고했는지 안다. 서기실 구성원을 한국말로 표현하면 수령의 보좌관들이다. 서기실 인사가 각 부서를 찾아오면 부장, 부부장이 문 앞에 나가 ‘오셨습니까’ 하면서 맞는다. 간부들이 반쯤 죽는다. 서기실 인사가 외무성에 나타나면 외무상도 그 앞에 딱 서서 꼼짝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일한 전직 고위 인사는 “서기실은 당의 조직이 아니라 수령의 조직”이라면서 “장성택은 서기실 중심의 통치구조에 도전하다 숙청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정원도 북한의 서기실장이 누군지 모른다. 서기실의 실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태영호 전 공사는 서기실이 북한 체제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직지도부를 비롯한 각 부서는 외부에 공개됐으며 제각각 권능을 갖고 있다. 각 직책이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지 규정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 ‘3층 서기실’은 그곳에서 누가 일하는지조차 극비다. 서기실은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나 각 부서의 정책에 공식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 내가 군사 분야를 맡은 ‘서기실 과장’이라고 가정해보자. 인민무력부에서 동계훈련 계획을 나에게 제출했다. 그 문건을 읽은 후 현실성이 없으니 계획을 바꾸라고 지시하진 못한다. 김정은에게 그 문건을 그대로 보고하면 김정은이 서기실의 의견을 묻는다. 서기실 군사 담당 부서가 토의해 김정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해한 대로 하시오”

서면보고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한 박근혜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의 기능이 서기실과 겹치는 측면이 있다. 조선왕조 때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과 비슷한 측면도 있다.

서기실과 관련한 태영호 전 공사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 서기실 체계는. 

“서기실장-부부장-과장 체계다. 서기실은 직급 자체도 비밀이다.”

▼ 김정은이 ‘서기실에서 요해한 대로 하시오’라고 말하면 서기실의 견해가 정책이 되는 구조인가.  

“그렇다.”

▼ 모사 방침이라는 게 뭔가.  

“지난 시기에는, 모사기를 이용해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팩스를 북한에서 모사기라고 한다. 지금은 컴퓨터 시대이기에 정확하게 표현하면 ‘컴퓨터 방침’인데 관례적으로 모사 방침이라는 표현을 쓴다. 각 부서에서 직접 문건을 들고 가 김정은의 얼굴을 보면서 보고하는 게 아니라 기계로 보고한 후 지시를 받는다 해 모사 방침이다. 서기실이 이 같은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2인자는 없다”

▼ 왜 명칭이 서기실인가.

“서기는 한국식 표현으로 ‘비서’다. 내각의 상(相·장관), 부상도 서기를 둔다. 상, 부상의 서기도 아래서 제기한 내용을 상, 부상에게 보고·전달할 뿐 집행 권한은 없다. 서기실 구성원들은 ‘수령의 서기’인 것이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졌는데 집행 권한마저 주면 수령이 불안하지 않겠나. 수령을 신(神)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 수령이지 한 개인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의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도록 보좌하는 게 서기실이다.”

▼ 인원은?

“모른다. 20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조직지도부는 300~400명가량일 것이다.”

▼ 북한의 통치구조와 관련해 한국에서는 서기실보다 조직지도부에 주목했다. 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리제강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으로 거론됐으며 최근에는 조연준, 조용원 부부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조직지도부는 중앙당뿐 아니라 도당, 군당, 산하기관, 인민군 등 북한 사회 전반을 관리한다. 중앙당 안에 본부당이 있는데, 리제강은 조직지도부에서 본부당을 담당하는 부부장이었다. 중앙당의 높은 사람들만 관리한 것이다. 본부당 담당이었으니 그 권력이 얼마나 강했겠나. 난다, 긴다 하는 책임비서와 내각 상의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는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 리제강, 조연준, 조용원 등과 서기실 실세의 상하관계는.

“그 사람들 위에 서기실이 있다고 보면 된다.”

▼ 한국에서는 그간 북한의 2인자가 누구인지 분석하거나 행사 시 호명 순서 등을 바탕으로 북한 인사의 권력 서열을 매기곤 했다.

“노동신문에 이름이 나오는 간부들 있지 않나.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노동당 비서), 박봉주(내각 총리) 등이 다 없어져도 북한 체제는 아무 일 없이 흘러간다. 보이지 않는 라인만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최룡해나 황병서가 2인자라는 것은 헛소리다. 힘이 있느냐 없느냐 따질 때 직책을 갖고 평가하면 안 된다. 인사권, 표창권, 책벌권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김정일이 구축한 통치구조” 

구해우 전 국정원 북한 담당 기획관은 서기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때의 통치 시스템이 각각 다르다. 김일성 시대에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위상이 높았다. 김일성이 총비서를 맡은 노동당 중심의 통치였다. 수령-당-대중 통치 시스템이 구축된 것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다.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 시대로 일컬어지는 1980~1994년 김정일에게 권력이 대부분 넘어가는 과정에서 노동당의 역할이 축소되고 수령 권력의 절대화가 심화한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절대적 수령으로서 통치했다. 김정일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직으로서 발전해온 곳이 서기실이다. 노동당은 수령과 서기실 지시를 집행하는 실무집단이 됐다.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붕괴 이후 상황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통치 시스템이 정당화됐다.

김정일 시대 수령의 통치를 뒷받침하면서 역할을 확대한 서기실 시스템이 여전히 유지된다. 김정일 사후 서기실 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됐으며, 이 체제가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통해 통치를 구현하는 시스템이다. 요컨대 김정일 시대에는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절대적 수령을 중심으로 수령-당-대중 통치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수령과 서기실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에 의해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

그는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이 확고한 수령 노릇을 하면서 모든 영역을 통제했으나 김정은 시대는 형식적으로는 유일 영도체제를 강조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서기실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을 제거해도 서기실 중심의 통치구조가 또 다른 수령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황병서 최룡해 등은 권세를 누릴 뿐 실제 권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노출되면 절대 안 돼”

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 등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도 북한 외교관들을 강인한 협상가로 평가하면서 서기실의 전략가들이 이들을 배후조종한다고 분석한다.

태영호 전 공사의 설명도 비슷하다.

“김일성 시대까지는 노동당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갔으나 김정일 시대를 거치면서 서기실이라는 비선 보좌그룹이 생겼다. 현재 각 부서의 보고가 서기실에 집중되고 서기실이 김정은과 협의해 정책을 밀고 나간다. 앞서 말했듯 서기실 인사들은 노동신문에 이름, 얼굴이 절대 안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격폐(隔閉)된 지역에서 거주한다.

김정일 사망 직후 별다른 혼란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통치 시스템이 갖춰진 덕분이다. 장성택이 서기실이나 조직지도부 중 한 군데를 틀어쥐고 있었다면 날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장성택은 권력 핵심 기관에서 일한 적이 없다. 어느 순간 날려버릴 수 있는 자리에 딱 둔 것이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이 최근 해임된 것도 서기실이 수령의 허가를 얻어 조직지도부의 손을 빌려 숙청한 것으로 본다. 서기실이 직접 나서서 목을 치는 일은 없다. 서기실은 절대 노출되면 안 되는 곳이다.”

정보당국 전직 고위 인사는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습격을 받고 사망한 김정남도 서기실이 김정은을 설득하거나 김정은과 협의해 암살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태영호 전 공사는 “김정은을 제거하면 북한의 통치구조가 와해한다”고 봤다.

“김정은이 제거되면 수령 노릇을 할 사람이 없다. 형 김정철은 수령 스타일이 아니다. 큰 혼란이 일어나권력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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