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
어린 시절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한번 상영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나는 왕우의 저 멋진 혈투 장면을 ‘갖고’ 싶었다. 방법은 단 하나, 내 머릿속에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극장 안에서 한 영화를 일곱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1980년대만 해도 부자 친구 집에 가야만 구경할 수 있던 베타 방식의 비디오 플레이어는 VHS 방식으로 전환된 1990년대 들어 각 가정에 보급돼 비디오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극장가를 휩쓴 에로영화들은 점차 극장에서 사라졌고, 대신 동네 비디오 가게의 최고 흥행물로 변신했다. 여전히 동물을 사랑하는 부인들의 인기는 사라지지 않아 ‘젖소 부인’ 시리즈가 ‘애마 부인’ 시리즈의 후계자로 등장했다.
비디오 시장은 극장 손님을 빼앗아 갔지만, 한국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비디오 판권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줬고, 한국 영화계가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영화의 질은 점차 좋아졌다. 더는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가는 게 창피하지 않게 됐다. 20대 젊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가는 아름다운 광경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1970년대 한국 영화 제작비의 거의 모든 부분을 좌지우지했던 지방 흥행업자들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대신 삼성, 대우, 현대 같은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투자대비 이익을 내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대부분의 대기업은 투자한 지 4~5년 만에 철수했다. 하지만 모두 떠난 건 아니었다. 일신창투 같은 투자회사가 한국 영화 제작에 새롭게 뛰어들었고, 1990년대 말에는 롯데, CJ 같은 대기업이 영화전문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뭔가 부족했던 고소영, 심은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제작사, 지방 흥행업자가 영화 제작비의 전부를 부담했기에 당연히 그들이 기획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영화기획사라는 것이 생겨나 문화가 바뀌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새로운 인재들이 영화계에 뛰어들었고, 이들이 개발해 만든 영화가 늘어났다. 신문광고에만 의존하던 영화 광고는 영화사의 전문 홍보실, 영화 홍보 전문 회사들을 통한 홍보로 점점 바뀌어나갔다. 특히 영화계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들의 파워가 대단했다.
한국 영화는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세대의 여배우들이 나타났다. 고소영이 대표적인 경우다. 1970년대에 태어난 젊은 남자 관객들은 고소영의 미모에 빠져들었다. 고작 CF 한두 편에 출연했을 뿐인 그녀에게 영화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던 중 ‘결혼 이야기’(김의석 감독, 1992)등 관객들의 기호와 감성에 맞는 영화를 만들던 1950~60년대생들을 주축으로 한 영화 제작사 ‘기획시대’가 고소영을 주연으로 야심 찬 기획을 시도한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한 영화 ‘구미호’(박헌수 감독, 1994)였다. 미남 신인 배우 정우성과 미녀 신인 배우 고소영의 조합은 영화 촬영 초부터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수준 낮은 CG , 엉성한 스토리, 특히 고소영의 어설픈 연기에 관객은 실망했다.
고소영은 1997년 ‘비트’(김성수 감독)에 정우성의 여자친구 로미 역으로 출연했다. ‘비트’가 상영된 후 젊은 남자들 사이에선 한쪽 눈을 뒤덮는 머리카락과 지포 라이터가 열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10여 년 전 홍콩 영화 ‘영웅본색’이 몰고 온 이쑤시개 씹기, 라이터 불 입으로 빨아들이기와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비트’의 고소영은 정우성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1994년, TV 연속극 ‘마지막 승부’의 여주인공이 시선을 모았다. 심은하였다. 같은 해 그녀는 TV 연속극 ‘M’과 ‘숙희’에 출연해 아름다운 외모와 연기력을 지닌 여배우로 기대를 모았고 다음 해 바로 영화에 진출했다. 제목은 ‘아찌 아빠’(신승수 감독, 1994).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다. TV에서와는 달리 그리 예쁘지도 않았고 연기도 별로였기 때문이다. 1996년 정우성과 심은하가 나온 ‘본투킬’(장현수 감독, 1996)도 별 재미를 못 봤다.
두 편의 영화에서 실패한 심은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였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고소영과 심은하가 여배우 후보로 거론됐다.
심은하의 발탁 소식에 많은 이가 반신반의했다. 전작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연기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신인 감독이 주연 배우들을 자기 마음대로 캐스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8월의 크리스마스’ 시나리오는 멜로드라마가 너무 심심하다는 이유로 충무로의 누군가는 “이런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장사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공언했을 정도였다. 망설이던 한석규가 출연하기로 결심하자 심은하가 영화 출연을 승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