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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이 재건축 전문 지식 갖춰야 시공사 횡포 막는다”

재건축 ‘1타 강사’ 한형기 신반포1차 조합장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조합이 재건축 전문 지식 갖춰야 시공사 횡포 막는다”

  • ● 둔촌주공 사태 이후 각 조합 문의 쏟아져
    ● 시공사에 버금가는 지식 갖춘 인력, 조합에 필요
    ● 재건축은 개인 재산, 조합원이 주인의식 가져야
    ● 수백·수조 원 재건축 사업, 관련법 미비도 문제




아파트 재건축에 소요되는 기간이 20년에 달하기도 한다. 기본계획 수립, 안전진단,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승인, 조합설립 인가, 사업시행 인가, 관리처분 인가, 철거 신고, 착공 신고, 일반분양 승인 등 10단계를 거치는데 단계별로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다. 노후화가 심할 경우 안전진단은 1년 안에 통과되기도 하지만, 정비구역 지정에만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연식이 오래됐다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다. 1971년 지어져 올해로 51년 된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조합이 설립된 지 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관리처분 인가를 받지 못했다. 현재 신속통합기획이 논의 중인데 올해 안에 관리처분 인가가 난다고 해도 이주에만 1년, 완공까지 넉넉잡아 4년이 더 걸린다.

한형기 신반포1차 조합장은 2011년 취임 이후 18년간 지연된 사업을 6년 만에 마무리 지어 이름이 알려졌다. [조영철 기자]

한형기 신반포1차 조합장은 2011년 취임 이후 18년간 지연된 사업을 6년 만에 마무리 지어 이름이 알려졌다. [조영철 기자]

삭발 투혼 ‘스타 조합장’

이런 조합들에 이미 재건축을 마친 단지의 조합장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년간 경험으로 노하우를 축적해 온 덕에 해결 방안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 사업을 진행 중인 재건축조합은 기존 조합장을 찾아가 자문하고, 총회에 초청해 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이 가운데 재건축계 1타 강사급으로 유명해진 이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신반포1차2016년 입주)의 한형기(64) 조합장이다.



그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에 21년간 근무한 뒤 건설사업관리회사 부사장을 지냈다. 2010년 은퇴 당시 그는 신반포1차 아파트를 보유한 조합원에 불과했다. 사업에 난항을 겪던 집행부가 건설사 근무 경험이 있는 그에게 합류를 요청했고, 2011년 조합장에 선출됐다.

삼성물산 근무 당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현장소장으로 일하는 등 아파트 건설 관련 경력을 토대로 시공사 및 서울시와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총대를 메고 나섰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신반포1차 설계안 변경을 요구하자 항의하며 이듬해 서울시청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하며 시위를 이끈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취임 1년 반 만에 이주철거를 성사시키고 2016년 입주를 이끌어냈다.

재건축을 속도전으로 이끈 경력이 알려진 후 서울 및 수도권 수십여 조합에서 그를 총회에 불러 설명회를 요청했다. 최근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조합도 2년 전 그를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그는 “시공사 이상의 지식과 재건축 관련 제도를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건축 사업지마다 갈등이 생긴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문제는 조합장 및 집행부가 재건축에 대해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둔촌주공의 경우만 봐도 사업비 3조2000억 원에 설계비까지 총 4조 원이 들어간다. 거의 국책사업과 맞먹는 규모다. 재건축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조합장 1명이 선출직으로 이러한 사업을 총괄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공사와 분쟁을 줄이려면 조합 집행부의 임원 자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전문 지식을 말하는가.

“일례로 공사 도중에 공사비가 15% 이상 늘어날 것이 예상되면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받아야 한다. 시공사가 공사비를 1000억 원 더 받고 싶으면, 2000억 원으로 산출한 서류를 보낸다. 그런데 창문의 적정가도 건설사마다 다르게 책정하는데 한국부동산원에서 3개월 안에 공사비를 검증할 수 없다. 심지어 한국부동산원은 공사비를 산정하는 회사가 아니라 감정평가 회사다. 그러니 한국부동산원은 대략 낮춰서 1000억 원 정도로 산출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조합장과 집행부가 알고 있어야 당하지 않는다.”

공사비는 시공사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조합이 알기 어렵다. 건설사 구조를 아는 조합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는 데가 일반적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내부에 전문 인력이 없다면 관련 업종의 사외이사, 감사 전문가 등에게 수시로 자문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공사비의 경우 더 큰 문제는 이를 전문으로 검증하는 회사가 없다는 점이다. 시공사가 잘못된 검증에 따라 공사비를 산정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이를 수정 요구할 법적 근거나 강제력도 없다. 시공사가 조합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공사를 중단한다고 해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재건축을 규율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도 법 자체가 부실해 재건축 과정에서 항상 소송이 발생할 정도다. 집행부가 시공사와 견줄 만한 능력과 정보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시공사 입찰 전쟁, 피해는 조합 몫

재건축 아파트 시공은 건설사 신규 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서울 및 수도권 대규모 재건축 사업지에서는 메이저 건설사의 각축전이 벌어진다. 일례로 2017년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의 시공사 입찰에 현대건설, GS건설 등이 참여했는데, 현대건설이 조합원당 이사비 7000만 원을 현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위법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시정 조치를 내렸지만 이미 판세는 기울어 조합은 현대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수주 이후 현대건설은 국토교통부의 시정명령을 이유로 추가이주비 지원, 특화설계 등이 어려워졌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에 2019년 반포주공1단지 조합원들은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식의 건설사 재건축 입찰 전쟁은 결국 조합에 피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건축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하기 전 위법성 여부와 현실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 과정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애초에 시공사를 잘 선정해야 한다. 재건축을 앞둔 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할 때 어떤 부분을 면밀히 봐야 하는가.

“입지가 좋고 규모가 큰 재건축은 시공사 선정 때가 되면 건설사들이 달려든다. 반포주공1단지도 현대건설에서 조합원 1인당 이사비 7000만 원을 준다고 했지만 애초에 법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현대건설도 수주 전에는 준다고 했지만. 선정되고 나니 ‘주고 싶은데 주면 영업정지 당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영업정지’ 수준의 고강도 제재를 가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막강한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시공사의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식의 입찰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 때문에 조합은 건설사 수주 전에 공약이 위법한 것은 아닌지, 현실 가능성은 있는지를 봐야 한다.”

공사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문제도 있다. 시공사의 깜깜이 공사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

“요즘은 깜깜이 공사가 줄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조합 총회도 없이 조합장이 시공사에 공사비를 얼마씩 올려주고, 시공사는 입주할 때 조합원에게 ‘분담금 3억 원을 추가로 내놓지 않으면 입주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조합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돈을 내고, 입주한 뒤 개별적으로 소송했다. 그러나 이제 주요 안건은 총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 의견이 중요해졌다. 문제는 조합장이 시공사와 작정하고 조합원들을 속이는 경우다.”

조합 내부 문제도 항상 발생한다. 집행부와 비상대책위원회 갈등도 사업을 지연시키는 요소다. 이를 방지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나.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어디든 이권 다툼이 발생하고, 의견이 모이지 않으니 진척이 없다. 이를 막으려면 첫째로 조합원들이 재건축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통 조합원들은 문제가 곪아터져서 언론을 타기 전까지 크게 관심이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총회를 열어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60%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조합원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둘째는 조합원들이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철저히 조합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상식선에서 결정하면 된다. 사실 재건축은 추진위원회 설립부터 입주까지 7~8년이면 충분하다. 객관적으로만 판단하면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전문조합관리인제도 도입 6년, 보완 필요

재건축조합의 전문성 부족은 오랜 기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6년 7월 전문조합관리인 제도가 도입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에 따르면 전문조합관리인이란 변호사·회계사·법무사 등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정비사업 관련 업무 5년 이상 종사자, 조합 임원 5년 이상 종사자,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임직원으로 정비사업 관련 업무 5년 이상 종사자 등을 말한다. 조합 내 계파 갈등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공정하게 조합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조합 집행부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전문조합관리인에 앉히는 경우가 많아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기 때문.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정비사업에 이권 개입을 막기 위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까지 계류 상태에 있다.

전문조합관리인제도의 취지는 좋은데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지금 전문조합관리인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그만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활성화가 어렵다면 최소한 조합장이나 집행부를 감시·감독하는 감사인 제도 도입 등 부수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조합의 눈으로 건설 과정을 감독하고 이를 수시로 조합에 보고하는 등 시공사와 조합장이 함부로 공사를 좌우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재건축은 조합, 시공사뿐 아니라 분양 대기자들도 관련된 사업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가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조합원들은 총회에 절대 빠지지 말아야 한다. 총회에서 안건을 통과시키려면 과반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OS(Outsourcing) 요원을 쓴다. 조합원 의사가 왜곡될 여지가 있다. 총회 때 OS요원 고용에 2000만 원가량 쓰는 경우도 있다. 한 달이면 6억 원이다. 말도 안 되는 낭비다. 조합원이 주인 의식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조합은 건설관리를 해주는 전문 컨설팅회사인 CM(Construction Management)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조합장의 부족한 전문성을 채워준다. 요즘 CM사가 난립해 문제가 있지만 손에 꼽히는 CM사의 도움을 받는 게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관련 법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합장이 권한만 가지고 책임은 안 져도 되니 쟁탈전을 벌이는 곳이 많다. 조합장 뇌물 공여 등 문제가 드러나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강화해야 한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들이 60~70%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조합장이 시공사와 짜고 속이는 건 범죄다. 이런 시공사 횡포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새 정부에서 마련해 주길 바란다.”



신동아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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