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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김종갑 前 사장 “전기요금 억누를수록 국민 빚만 늘어난다”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한전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 ● 연료비 폭등 여파로 1분기 사상 최대 적자
    ● ‘원가 연계형 요금제’ 제대로 작동 안 돼
    ● 전기요금 일본은 34.6%, 영국은 54% 인상
    ● 연료비 변동분 반영부터하고 맞춤 지원
    ● ‘독립규제위원회’ 설치해 독립성 보장해야
김종갑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그동안 정부의 전기요금 통제로 한전의 경영이 왜곡돼 국민 부담이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 [홍태식 기자]

김종갑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그동안 정부의 전기요금 통제로 한전의 경영이 왜곡돼 국민 부담이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 [홍태식 기자]

‘7조8000억 원.’

부실 공기업 1위로 꼽히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올해 1월부터 석 달 동안 낸 손실 규모다. 한전의 적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6조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에만 1년치 적자를 뛰어넘는 손실을 기록해 충격을 안겼다.

적자 폭이 갑자기 커진 데는 대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연말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 석유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올랐고, 올 2월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를 비롯한 천연가스(LNG), 석탄까지 공급 불안이 야기돼 가격이 급등했다. 연료를 수입해 전기를 생산하는 한전은 연료비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전기요금 인상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것도 적자 원인이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 왔다. 한전은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원가 연계형 요금제’ 정책에 따라 요금을 연간 1kWh당 ±5원 범위 내, 분기별 1kWh당 ±3원까지 조정할 수 있게 됐다. 1kWh당 3원이 오르면 4인 가족 평균 전기 사용량으로 계산할 때 요금은 월간 약 1050원 오른다.

그러나 정부는 올 1분기엔 원가가 올랐음에도 연료비 상승분을 0원으로 동결했다. 3월에도 2분기 연료비 상승분마저 0원으로 동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6월 6일 기준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115.7달러로 연초 대비 50.4% 뛰었고, LNG 수입 가격은 4월 t당 694.5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0.15% 올랐다.



“가격통제가 혜택? 생색일 뿐 국민 기만”

한전은 즉각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한전 및 11개 전력그룹사 사장단은 5월 18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개최하고 출자지분 매각, 부동산 매각, 해외사업 구조조정, 긴축경영 등을 추진해 6조 원 이상의 재무 개선을 달성하기로 협의했다. 연료비 절감을 위해 발전사 유연탄 공동구매를 확대하고, 발전연료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등의 생산원가 절감에도 나섰다.

그러나 이는 단발성 해결책에 불과하다. 고질적인 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전은 1989년 국내 증시 상장, 1994년 뉴욕증시 상장으로 민간 지분이 49%인 주식회사가 됐다. 그러나 정부 개입은 여전하다.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더는 정부 개입을 좌시할 수 없으며,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중차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전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의 선봉에 김종갑 전 한전 사장 겸 한양대 특훈교수가 있다. 그는 2018년 4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한전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취임 당시 “뉴욕 증시에서도 인정받는 ‘주식회사 한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혀 주목받았다. 그의 발언 이후 일부 외국인들이 지분을 더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표 경영인 한 사람이 정부를 상대로 뜻을 펼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전은 상장기업이지만 2007년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시행 이후 상법상 주식회사일 뿐 사실상 정부 전액 출자기업과 같은 통제를 받아왔다. 이는 정부가 100% 지분을 가졌던 공사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조치다. 김 전 사장 취임 당시 4만 원대이던 한전 주식은 현재 2만 원대로 떨어졌고, 그의 말대로 ‘뉴욕 증시에서 가장 허접한 주식’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6월 중순 한양대에서 김 전 사장을 만나 한전이 이 지경에 이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사장으로 있던 때도 도처에 만연한 ‘국가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지나친 정부 개입을 첫손으로 꼽았다. 이어 “지금도 정부는 1960~70년대 개발연대식 운영 방식을 고수하며, 시도 때도 원칙도 없이 무소불위로 경영을 간섭한다. 정부가 할 일, 공기업 자율에 맡길 일, 시장 기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니 효율은 떨어지고 그 부담은 오롯이 국민이 지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한전이 올 1분기에만 약 7조8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대외 변수에 대응해 전기 요금을 조정하지 못한 탓인가.

“그렇다. 석탄, 천연가스 수입가격이 급등했지만 전력 소매가격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도입한 ‘원가 연계형 요금제’는 한전의 경영 정상화뿐 아니라 소비자, 주주, 정부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바람직한 제도지만 시행 직후 정부가 물가관리를 이유로 계속 통제해 왔다. 통제하면 일시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줄지만, 한전의 경영이 왜곡돼 장기적으로 부담이 커진다. 시장에 가격 신호를 제대로 보내지 않으면 전력 낭비는 계속되고, 전기와 관계된 인접 산업 발전에도 지장을 준다. 정부가 가격 통제를 ‘혜택’으로 위장해 생색내지만 결과적으로 ‘국민 기만’이다.”

말씀한 대로 ‘원가 연계형 요금제’가 정부 규제로 유명무실해졌다.

“원가 연계형 요금제는 조정 시기, 금액, 방법 등을 구체화한 제도다. 일정 기간의 연료비 변동분과 기후환경 부담금을 반영하고, 매년 총괄원가와 실제 요금과의 차이를 조정하는 것이다. 극히 예외적으로 유보할 수 있도록 여지를 뒀으나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상시’ 유보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포퓰리즘적, 국가 만능주의적 결정이다. 오히려 분기 또는 연간 반영 한도를 3~5원으로 제한할 게 아니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연료비 가격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한전의 수익성 측면에서 조정 폭을 더 늘려야 한다. 다만, 소비자 부담이 일시에 급격히 늘지 않도록 요금 인상분의 일부는 재정에서 부담하고, 일정 기간에 걸쳐 현실화하는 등 국민 수용성을 높이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한전은 6조 원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누적 차입금이 50조 원을 넘어 자본잠식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닌 듯하다.

“한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수익성이 좋은 자산이라도 차입 부담을 줄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므로 매각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효과는 제한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매각할 해외 사업과 부동산이 많지 않다. 상장 자회사 역시 규모가 크지 않다. 경영권 매각이 아니므로 장내 거래가격 이상의 높은 가격을 받기도 어렵다. 아무리 재무 상태가 나빠도 전기의 안정적 공급과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필수 투자는 계속해야 한다. 필수 투자를 늦춰 공급 애로가 발생하거나 기술이 뒤처지면 그만큼 미래에 부담이 커진다. 결국 원가를 반영하는 요금제도가 정착돼야 근본적으로 적자 문제가 해결된다.”

정부가 오랜 논의 끝에 지난해부터 시행한 원가 연계형 요금제는 점진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는 방편을 제도적으로 마련한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조정 폭이 적지만 제대로 작동하기만 했다면 한전의 손실은 지금보다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력 자회사 사장단이 5월 18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비상위기대응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비롯한 6개 발전 자회사 사장단은 이날 회의에서 자산 매각을 포함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뉴스1]

한국전력 자회사 사장단이 5월 18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비상위기대응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비롯한 6개 발전 자회사 사장단은 이날 회의에서 자산 매각을 포함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뉴스1]

전력도매가격 상한제, 한전 손실 떠넘기는 격

7월부터는 한전이 발전사업자에 지불하는 전력도매가격(SMP)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전력 시장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의 시행도 앞두고 있다. 도매가격에 제한을 둬 연료비 상승 폭이 클 때 한전의 적자를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손실 경감이 예상된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이 제도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전력시장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가 시행되면 한전 경영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부의 고육책에 불과하다. 연료 가격 상승으로 발전사들의 이익은 늘어나고 한전의 손실은 커지니 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제도다. 영국이 이윤 폭이 커지는 석유 가스업에 25%의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고, 그 재원으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어려움 겪는 가계를 지원하기로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불가피한 조치지만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는 한전의 정상화가 어렵다. 발전사업자든 소매사업자든 경영을 잘하면 이익이 나는,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의 제도는 시장 지향적이지 않다. 현재 정부(전력거래소)는 발전소 건설 원가를 계산해 투자 회수가 되도록 보장하고, 발전원가를 반영한 도매가격을 산정한 뒤 가장 효율이 높은 발전소의 기준으로 최종 가격을 결정한다. 더 저렴한 도매가로 공급하려는 업체가 있어도 공급 자격을 따지 못하는 구조다.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그 효과가 소비자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석탄, 천연가스 등 발전원별로 도매 경쟁을 시켜야 한다. 또한 발전소 시설 투자를 회수할 수 있게 한 ‘용량요금 제도’를 운영할 때도 지금처럼 발전소가 불필요하게 과도한 투자를 하지 않도록 유인책을 써야 한다.”

현 정부는 인수위 단계에서 “한전의 독점 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한다”고 밝혀 전력 시장의 민영화 가능성을 열었다. 이런 변화도 필요하다고 보는가.

“전력 부문 민영화 방침은 없을 거라고 본다. 다만 구조조정은 속히 해야 한다. 5개의 화력발전사(한국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를 통합하거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포함한 6개 사를 2001년 이전의 한전으로 재통합하면 간접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발전사 간에 불필요한 중복과 경쟁을 막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효과가 막대할 것이다. 해외 원자력 사업을 위해서도 한전과 한수원의 통합이 최선의 대안이다. 기관 통합이 안 되면 수출 기능이라도 일원화해야 한다. 국내 모든 역량을 합쳐도 부족한데, 기획재정부는 한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기업 한전과 자회사 한수원이 지역을 분할해 수출 경쟁을 하도록 했다.

경쟁체제 도입이 필요한 부문은 소매시장이다. 구역 전기사업, 신재생 전기의 기업 간 거래 등 이미 예외 사례가 늘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누구든 소매에 참여하도록 해 전기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일례로 전기와 다른 제품 또는 서비스와의 연합 상품 등은 한전이 출시하기 어려운 서비스다. 일본에서는 신규 전기소매업자 700여 개가 전체 소매거래의 25%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낮은 10~15%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력 소매요금이 도매요금 이상으로 이윤이 나야 민간기업이 소매사업에 참여할 것이다. 따라서 결국 원가 연계 요금제가 정착돼야 한다.”

정부가 국민 반발을 각오하고라도 전기요금 인상은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번 정부의 시장 지향적 방향으로 보아 시행할 것으로 확신한다. 정부가 지향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의 모범사례가 될 걸로 보인다. 언젠가는 해야 하고 빨리할수록 전기소비자 부담은 줄어든다. 늦어지는 만큼 한전의 손실에 따른 이자까지 국민 모두가 부담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요금결정 제도의 근본적 개선책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안다. 국민들과 소통해 이 문제의 중요성을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전력요금 통제를 철폐하는 것은 좁게는 전기산업, 넓게는 전체 에너지산업의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에너지는 국가 인프라 정도로 취급해 왔다. 에너지 가격 현실화는 에너지가 인프라에 그치지 않고 ‘산업’으로서 성장 발전해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글로벌 탈탄소 시대를 맞아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에너지부문 투자가 100조 달러 이상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은 정부의 규제와 행정지도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됐다. 기업이 정부만 쳐다보며 처분만 기다리게 하지 말고, 세계시장에서 성장하도록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절약 유인 없어 문제”

한전의 역대급 적자 규모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국민들이다. 매년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제기될 때마다 국민들은 불안에 떨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동결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여름철을 앞두고 정부가 국민 부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은 항상 힘을 얻어왔다.

이는 국민들이 전기요금을 공공재로 인식한 데 따른 결과다. 수도, 가스, 전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 이용료는 최저 수준에 맞춰야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이 보장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기본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전기는 공공재가 아니다”라며서 “4인 가족 월평균 전기료는 4만 원, 이동통신 요금은 15만 원이다. 전기요금을 조금 인상해도 가계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전기요금은 이동통신뿐 아니라 여타의 요금과 비교해도 싼 편이다. 그러나 국민 인식이 전기요금에만큼은 예민하다.

“전기가 중요한 인프라지만 엄밀히 말해 공공재는 아니다. 전력 생산, 송배전, 판매가 완전히 민영화, 자유화된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는 전기를 오랜 기간 저렴하고 풍부하게 써온 나머지 ‘전력요금은 싸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다행히 최근 여러 설문 조사에서 상당수 국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전기료 부담을 질 수 있다’고 답한다. 기후 위기가 현실화되자 국민 인식에도 변화가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가격으로는 절약 유인이 거의 없다. ‘물처럼’이 아니라 ‘전기처럼’ 펑펑 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지금보다 전기의 ‘가격’ 대비 ‘가치’가 훨씬 크다고 인식하는 국민이 더 늘어나야 한다.”

일본은 올해 5월까지 전기요금을 34.6% 올렸고, 영국도 50% 이상 올렸다. 해외에서는 전기료 인상을 놓고 국민적 합의가 잘 이뤄지는 편인가.

“선진국 중에 전기요금에 대한 ‘사용자 부담원칙’에 이견이 있는 나라는 없다. 원가가 오르면 전력 요금이 오르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인플레이션으로 생활고가 심해지면 국민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도 정부의 보조나 세금 인하를 통한 지원을 요구하지 전기요금을 덜 내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일례로 영국은 에너지 요금 상한을 4월 54%까지 올렸고, 10월 추가로 40% 이상 올릴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전기요금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니 건드리지 않고, 국민(전기 소비자)에게 150억 파운드(24조 원)의 재정을 동원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도 하루빨리 요금 통제를 중단하고, 대신 요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문에 대한 재정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상 전기료 인상을 논할 때 서민 및 중소기업 피해를 생각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선풍기가 필요한 가정에도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는 식의 복지제도는 옳지 않다. 현금성 지원, 에너지 바우처 지원 등 수혜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기요금은 정상적으로 내도록 해 전기업계가 정상 가동되도록 하고, 다른 유용한 산업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 요금 체계 개편도 필요하다. 심야 시간 요금은 올리고 낮 시간 요금을 내리면 한밤에 비싼 가스발전 가동을 줄일 수 있고, 중소기업 80% 이상이 혜택을 입는다. 그런데 일부 중소기업의 반대로 시행을 못 하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들이 가스발전소를 지어 낮에 한전 전기가 비쌀 때만 자가발전을 하고, 밤에 한전 전기가 평균 가격의 70%로 쌀 때는 한전 전기를 쓴다. 대기업의 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제도적 결함으로 ‘체리 피킹(cherry picking)’ 현상이 발생한다. 국가적으로는 추가 비용이 들고, 결국 추가 비용은 일반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그래서 기후 위기 감시 기구들은 우리나라 기업이 화석연료 발전소를 건설해 운영하면서 신재생에너지 100%(RE100) 사용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거라고 비판한다. 자가발전, 상업발전을 불문하고 50MW 이상의 화력발전을 운영하는 기업에게 신재생에너지 의무 할당제(RPS)를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탄소배출자가 부담을 지도록 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

요금 체계 개편을 위해 선진국처럼 전력산업 관점에서 요금을 결정하는 ‘독립규제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셨다.

“대통령 소속의 독립규제위원회 설치가 한전 정상화의 궁극적인 해답이다. 한전은 사업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물가 주무 부처이자 공기업 총괄 감독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요금 통제를 받는다. 포퓰리즘적 결정을 내리기 쉬운 구도다. 여야가 일정 수의 위원을 추천, 구성해 독립규제위원회를 조직하고 전력산업 관점에서 요금을 결정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작은 조직으로도 운영이 가능하고, 조직 확대로 인한 부담도 크지 않다. 그동안 전기요금 체계에 각종 복지 혜택, 산업지원 제도를 포함시키다 보니 거의 누더기가 됐다. 현재 출산 가구에 전력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는데, 정책효과는 없고 한전 부담만 크다. 독립규제위원회 설립으로 이 같은 전기요금의 정치화를 막아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 전, 한전 경영 개선부터

정부는 한전 지분 51%를 가지고 있다. 결국 한전의 적자는 국민 모두에게 부담이다. 연료비 폭등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수용할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전기요금만 인상한다고 한전의 적자를 100% 해결할 수 있을까.

요금 문제를 차치하고도 한전의 내부 과제는 더 있다. 5월 23일 알리오 공시 자료에 따르면 한전의 재정 낭비는 2020년 3028억 원에서 지난해 6996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지역 본부별로 요금 체납을 방치하고, 자재를 비싸게 구매하는 등의 문제가 계속된 탓이다.

한전의 주가가 10년 전과 동일한 데는 이러한 방만 경영 역시 한몫했다. 한전의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차라리 상장 폐지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기요금 인상과 더불어 한전의 경영 정상화 역시 시급한 실정이다.”

한전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크다. 무엇부터 바꿔야 한다고 보는가.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진 것처럼 전횡하는 것에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크다. 계속 이럴 거면 공사로 두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한전의 상장 결정 자체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기준에 맞는 경영을 하는 기업으로서 국제적 평판도 올라갔다. 문제는 주식회사로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하지 못하고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에 따라 통제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8개의 상장 공기업은 상법의 적용을 받게 해달라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법안도 제출됐지만 기재부가 반대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한전이 자율적 의사결정을 못 하고 과도한 통제를 받는 것이 기업 성과와 소액주주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전력요금 통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능의 혁신 관점에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한전 스스로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한전도 숙제가 많다. 지속적인 경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가 연계형 요금제도를 도입하기 전인 2020년에 한전과 자회사들은 정부에 2021~2025년간 경상경비를 대폭 절감하는 계획을 제출했고, 매년 평가를 받기 위해 정부, 전문가, 한전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도 만들었다. 그 이전 5년간의 평균 경상경비 증가률 5.3%를 연평균 3%이하로 억제한다는 약속이었고, 지금도 이를 지키면서 추가로 절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세계은행이 평가하는 우수 전력공급 부문에서 한국은 늘 1등 또는 2등을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전 시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송변전 손실률 등의 성과도 있다. 과거 한전은 도쿄전력을 벤치마킹했으나 이제 우리보다 앞서가는 전력기업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재임 경험상 한전은 2% 부족한 조직이었다. 원가 효율성 면에서 더 치열해야 했다. 또 온 국민이 고객이라 쉽지 않지만, ‘고객 서비스 향상’이 진정한 존립 이유가 돼야 한다. ‘자율’과 ‘책임’ 원칙하에 경영을 하도록 허용한다면 부족한 2%를 채울 날이 올 것이다.”



신동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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