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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아빠, 의사 엄마도 자폐는 감당이 벅찼어요”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 · 변호사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판사 아빠, 의사 엄마도 자폐는 감당이 벅찼어요”

  • ● “신을 원망했더니 평생 ‘업’을 주시더군요”
    ● ‘레인 맨’도 ‘우영우’도 아닌 우리 아이
    ● 탈시설, 장애등급제 폐지? 명분은 좋지만…
    ● 장애 감수성 부족한 입법이 실패하는 이유
    ● 마지막 미션, 장애인특별수요신탁제도
김용직 변호사. [지호영 기자]

김용직 변호사. [지호영 기자]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쓴 존 돈반과 캐런 저커는 1988년 영화 ‘레인 맨’이 자폐증의 서사를 영원히 바꿨다고 평가한다. 감각이 너무 예민해 시끄러운 소음을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지나칠 정도로 순진하고,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걸음걸이는 뻣뻣하고, 온갖 통계 숫자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몸에 손을 대면 벌컥 화를 내며, 초조해지면 같은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자폐증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진짜 미덕은 결말에 있다. 동생 찰리와 함께 여행하면서 레이먼드는 조금씩 성장하지만 여전히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폐인이고, 24시간 돌봐주는 사람이 있는 시설로 돌아간다. 완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폐란 항상, 언제까지나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폐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타고난 다양성의 하나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17년 뒤 한국에서 자폐 가족의 현실을 그린 영화 ‘말아톤’(2005)이 나왔다. 진짜 자폐인 같은 조승우의 연기에 감탄하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살아갈 방법을 가르치려는 엄마(김미숙 분)의 헌신에 울먹이게 된다. 마라톤을 시작할 때마다 엄마가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초원이 다리는?” 하고 물으면 “백만불짜리 다리”라고 답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회자됐다.

김용직 변호사(67·법무법인 케이씨엘)는 2006년 1월 ‘ ‘말아톤2’의 탄생을 기다리며’라는 칼럼에서 너무나 느리게 성장하는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처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우영우 신드롬’ 마냥 기쁘지만 않은 이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다룬다(왼쪽). 극 중 우영우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로펌의 비장애인 변호사들은 우영우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거나 변론을 담당한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다룬다(왼쪽). 극 중 우영우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로펌의 비장애인 변호사들은 우영우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거나 변론을 담당한다. [ENA]

“영화 ‘말아톤’의 영향으로 자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폐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정도의 장애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이상(異常)행동을 보면서 웃기에는 너무 처절하고 마음 아픈 내용의 장애다. 필자의 경우 23년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발전해 온 아들을 향해 ‘내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 아는 것, 그것이 소원이다’라는 말을 해야 할 정도인 것이다.”



2022년 한국 사회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드롬에 빠졌다. 한 번 보면 다 기억하는 천재 자폐인 변호사 이야기가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자 “현실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김 변호사는 “자폐를 가지면서 동시에 지능이 높고 실제로 변호사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사람들이 자폐 장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접근”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 “좀 복잡한 심정”이라고 했다.

“저런 애가 현실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부모들도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애들(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의 자폐인)은 방송에 나갈 수가 없잖아요.”

자폐인 권리 옹호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김 변호사가 ‘우영우 신드롬’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

김용직 변호사는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동력자원부에서 사무관 생활을 하다 1980년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연수원 12기) 시절 아내(성인영 울산대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재활의학)를 만나 1982년 결혼해 이듬해 7월 첫아이를 얻었다. 1985년 서울동부지법 판사로 임관할 때까지 그의 삶은 의도한 방향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해 천사의 미소를 지닌 아들 범중 군이 자폐 진단을 받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그때만큼은 하느님을 원망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음성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 오 신부가 “다른 분들보다 여건이 좋으니 자폐성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해보시라”고 한 말이 평생 업이 될 줄은 몰랐다.

“1980년대만 해도 집안에 자폐아가 있으면 쉬쉬하고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요. 우리 아이가 자폐 판정을 받고 보니 주변에 비슷한 처지의 가족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모여 자폐아부모회를 결성했고 몇 천만 원씩 갹출해 최초로 발달장애인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었죠.”
판사 아빠, 의사 엄마에게도 자폐는 용어부터 생소하고 감당하기 벅찬 장애였다. 아들의 교육과 치료를 위해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남들이 겪는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는 다 거쳤다. 특수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갈 곳이 없었을 때에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자폐 자녀를 끝까지 돌보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2001년 8월 법복을 벗고 법무법인 케이씨엘의 공동대표가 됐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폐인을 대변하다

2006년 1월 12일 서울 강남의 밀알학교 강당에서 사단법인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김 변호사는 자폐성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을 주축으로 의사와 교육·치료 및 복지 전문가를 모으고, 기업인과 독지가를 만나 후원과 참여를 권유해 협회를 출범시켰다. 부모들이 자식을 자립시키고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사랑협회가 밑돌을 놓겠다는 다짐은 소박하지만 절박한 목표였다.

“장애인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하지만 자폐성 장애인과 가족들에겐 그조차 쉽지 않아요. 자폐인은 대부분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부모들은 그런 자식을 두고 밖으로 나갈 여유가 없어요. 이들을 대변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죠.”

제일 먼저 추진한 일이 발달장애인법 제정이었다. 애초 자폐성 장애인만을 위한 입법을 추진했지만 지적 장애인을 포함한 발달장애인법이 됐다. 외국 입법 사례와 제도를 참조하면서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 개인별 사례관리를 위한 지원센터, 교육 및 직업재활시설, 발달장애인 가족 및 보호자 지원까지 아우르는 법안을 만들고 법제정추진연대를 결성해 시위와 삭발 투쟁을 불사했지만 법안은 번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또다시 터지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는 데 발달장애인법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5월 20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2021년 국내 전체 등록장애인 수는 260만 명, 그중 자폐성 장애인은 3만4000명이다. 2012년 1만7000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자폐성 장애인 수는 두 배로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1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것을 적용하면 국내 자폐성 장애인 수는 5만 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애초 장애인복지법과 별개로 발달장애인법을 만든 취지가 중증의 자폐성 장애인을 위해서였는데 만들어놓고 보니 정작 ‘아주 어려운’ 아이들은 또다시 소외되는 것이 매우 아쉬운 점이죠. 그래서 ‘우영우 신드롬’을 보는 제 마음이 복잡하다는 거예요.”

법과 제도보다 ‘장애 감수성’ 먼저

김 변호사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탈시설’이나 이미 형식상 시행되고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식을 시설에 넣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시설에 남아 있는 80~90%가 발달장애인이에요. 가족이 돌보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어서 거기 있는 것인데 시설을 다 없애버리면 그들은 어디로 갑니까.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를 보세요. 대부분 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데리고 있다 벌어진 일입니다. 인권침해가 문제라면 시설 폐쇄가 아니라 운영진을 바꿔야죠. 처음부터 ‘탈시설’이 아니라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책을 마련하자고 했어야죠. 장애등급이란 것도 당사자들은 기분 나쁠 수 있어요. 장애가 무슨 평가 대상이냐고. 모든 장애인에게 개별 맞춤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면 등급은 필요 없어요. 하지만 예산은 한정돼 있고 어려운 장애일수록 더 보호해 줘야 하기에 등급이 필요한 겁니다. 등급제 없애고 증증, 경증으로만 나누다 보니 과거 1~3급이 다 같은 중증이 됐어요. 장애인고용법에서 중증 장애인 1명을 고용하면 2명을 고용한 것으로 인정해 줍니다. 그럼 누가 최중증인 1급을 고용하겠어요. 상대적으로 가벼운 3급을 고용하지. 장애등급제 폐지로 최중증 장애인들이 더 손해 보는 구도가 된 거죠. 지체장애는 혼자 옷을 입을 수 있느냐 없느냐 등 외형적으로 인식 가능한 요소가 판정의 기준이 되지만 자폐성장애인은 외형적으로는 잘 알아볼 수 없는데, 자폐성장애인이 혼자 옷을 입을 수 있다고 경증이 될까요. 그만큼 판정하기 어렵고, 불이익을 많이 받는다는 거죠.”

40년 가까이 자폐인 권리옹호 운동을 해오면서 김 변호사는 법과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장애 감수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적인 근로지원인 제도 외에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추어 그들의 취업을 위해 일터에서 그들을 돕는 발달장애인 근로보조인 제도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지원 대상은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으로 한정하다 보니, 최저임금은커녕 월 50만 원을 받더라도 일할 곳이 필요한 다수의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거죠. 고용노동부로선 일반적인 근로자의 개념도 중요하겠지만 발달장애인의 현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장애 감수성이 부족하면 이렇게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모든 새로운 제도에 쿼터제를 도입해 최중증에 10%, 30% 할당하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아픈 손가락 위한 마지막 선택

김 변호사 부부는 큰아이가 태어나고 5년 뒤 둘째 딸을 낳았다. 다시 6년 뒤 셋째 아들을 낳았다. 다복하고 단란한 삼남매지만 형제 간 터울이 많이 지는 데는 사연이 있다. 언젠가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형제들이 큰아이를 돌봐야 할 텐데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생각했다. 큰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신경을 써주지 못한 둘째, 셋째에게 미안하지만 그들도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에게 ‘아픈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김 변호사가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설립한 지 17년째. 부모는 칠순을 향해 가고 범중 씨는 마흔을 바라본다. 부모의 마지막 소원은 ‘사후’에도 장애인 자녀가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변호사는 성년후견제도에 그 역할을 기대했으나 한계가 드러났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후견인이 재산을 처분하는 등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장애인특별수요신탁제도다.

“쉽게 말해 부모가 얼마간의 돈을 신탁에 넣고 장애인 자녀를 위해 어떻게 쓰라고 지정해 놓는 제도죠. 세세하게 계약 내용을 지정할 수 있어 맞춤형이 될 수 있고, 또 신탁의 특성상 수탁자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현행법에서는 증여세를 물어야 하고, 재산이 생기니까 당사자는 장애연금을 받지 못해요. 신탁제도 도입과 동시에 장애인연금법, 증여세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장애인특별수요신탁의 기본 개념은 부모가 장애 자녀 앞으로 사회가 합의한 일정 금액을 공적기관에 맡기면 국민연금처럼 기금을 운용하는 대신 증여세는 면제해 주고 신탁 금액과 별도로 장애연금은 계속 지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 변호사는 아산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3년 동안 시범사업을 하면서 보건복지부, 서울시 담당책임자를 당연직 위원으로 하는 신탁관리위원회를 꾸리고 연금·신탁·민법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연구와 토론을 거듭하며 신탁제도의 얼개를 완성해 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저만 보면 장애인특별수요신탁 법안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봐요.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뚜렷한 입법 진전이 없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동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법도 도입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으니 우군을 모아 다시 해봐야죠.”

지금까지 김 변호사가 걸어온 길을 보면 돈 되는 일보다 돈 쓰는 일, 명예라기보다 봉사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 말고도 사회복지법인 아가페 이사, 성분도복지관 운영위원장, 소화장학재단 상임이사,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위원,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부회장, 장애인단체총연맹 공동대표, 각종 공익단체 임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올해 뜻하지 않은 중책을 하나 더 맡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재단 이사장.

“어느 날 윤석진 원장이 찾아왔어요. KIST 직원들이 2012년부터 연봉의 1%씩 모아 마련한 15억 원가량의 기금을 바탕으로 KIST미래재단을 만들어 인류 공동의 난제인 치매와 자폐를 해결할 도전적 연구 수행을 위해 인적, 물적 기반을 제공할 계획이니 재단 이사장을 맡아달라는 겁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었죠. 10년 전 해외 학회에 가다 오티즘을 다룬 ‘타임’지 커버스토리(‘자폐증을 들여다보다 -미국에만 100만 명 이상의 자폐인이 있으며 새로운 증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를 보고 오티즘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에도 사랑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꾸준히 추적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과학의 진정한 의미가 나눔에 있다고 하면서 가장 어렵고 정복되지 않은 분야의 연구를 통해 어려운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원조를 받던 우리가 해외 원조도 하는 등 감동적인 부분이 있어서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할 수 있는 일

돌이켜 보면 김용직 인생에는 세 가지 만남이 있었다. 첫 번째 그에게 공익과 나눔의 삶을 보여준 어머니 박옥서(1928~2005) 여사. 어머니는 사회복지에 힘쓴 공로로 1969년 어버이날 보건사회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어머니의 여동생 박영옥(91) 사회복지법인 아가페(무료 양로원과 전문요양원 운영) 이사장도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사회복지에 헌신했고, 소화장학재단을 함께 이끌며 매년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 70여 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두 번째가 아내 성인영 교수와 아들 범중 씨와의 만남이다. 범중이가 자폐아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로지 판사의 길”만 생각했던 그가 “오로지 아들을 위한 삶”으로 궤도수정을 할 수 있었을까. 아내와 함께 부부가 합심해서 내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대변하는 일이 된 것도 운명이었다. 마지막은 사회복지에 눈을 뜨게 해준 고 서정수 신부님과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길로 뛰어들게 한 오웅진 신부님 및 어머니와 아들을 통해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세 만남을 통해 프란체스코 성인의 기도처럼 ‘주의 도구로 사용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만들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삼남매를 데리고 홋카이도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사랑이 지닌 치유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범중 군은 흥분하면 뛰어다니며 자해를 했다. 간신히 진정시켜 비행기에 탑승하고도 조마조마한 상태가 계속됐다. 괜히 큰애를 데리고 왔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버스로 이동 중에도 수시로 ‘주의 기도’를 암송하며 범중을 다독여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버스를 바꿔 타는 과정에서 짐이 분실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부주의하게 일처리를 한 여행 가이드에게 언성을 높이는 순간 덩달아 흥분한 아들이 제어 불능 상태가 됐다. 아들을 진정시키다 녹초가 된 가족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사랑에 대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때 기적처럼 범중이가 싱글벙글 웃는 것 아닌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신이 이 아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김 변호사는 협회를 창립하면서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자폐성 장애를 극복하는 힘은 진정한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 속에 살아가는 자폐인들은 그들 특유의 맑음과 진정성으로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 산소와도 같은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이렇게 17년째 ‘자폐인’과 ‘협회’ 사이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신동아 2022년 9월호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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