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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패→백지상태 견인 [+영상]

젊어지고, 빨라지고, 겸손해졌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2024-0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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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과 ‘포지티브 차별화’로 중도 확장 노려

    • 설전 벌이던 검투사에서 겸손·유연한 여당 대표로

    • 무난한 초입, 험난한 앞길

    • 두 가지 難題 = 對尹 관계 재정립·당내 쇄신 해결

    • 박근혜·김종인 잇는 비대위 성공 사례 될까

    1월 10일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월 10일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하고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던 당이었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그토록 ‘주류 희생’을 요구해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던 당이었다. 그러니 22대 총선 서울에서 6곳만 우세할 뿐이라는 판세 분석 보고서가 나와도 그럴 만도 하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가 퇴장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등판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아직 더 지켜봐야 할 초반 단계지만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국민의힘이 분위기를 일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동훈發 국민의힘 변화

    무엇이 달라지고 있을까. 첫째, 젊어지고 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과 주요 당직자들을 ‘789(1970~90년대생)’ 세대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가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한 세대포위론이나 세대교체론이란 말은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했으나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는 낡고 노쇠하다고 인식되던 국민의힘의 변화를 이루는 데 일단 긍정적인 흐름이다. 이제는 60대에 들어선 ‘86’ 정치인들이 버티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의 대비 효과도 부수적으로 생겨났다.

    둘째, 빨라졌다. 갑작스러운 사건이 터져 나와도 주저하거나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대처한다. 민경우 비대위원이 과거 ‘노인 비하’ 발언으로 사퇴하자 이를 수용하는 동시에 한 위원장이 직접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사과함으로써 논란을 신속하게 매듭지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이 발생하자 즉각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쾌유를 비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민의힘 소속인 허식 인천시의회 의장의 5·18 폄훼 행위가 논란이 되자 “엄정하고 신속히 대응하라”고 당에 지시해 징계 수순에 들어가도록 했다. ‘정치는 타이밍’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셋째, 겸손해졌다. 사실 한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586 운동권 정치 청산’을 말할 때만 해도 다시 진영 간 대결 정치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민심이 집권여당에 바라는 것이 ‘싸우는 여당’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싸움의 정치’를 중심에 놓아서는 한동훈 리더십의 자기 색깔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야당에 대한 공격보다는 국민의힘이 변화하겠다는 다짐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한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김 전 대통령의 화합·공감 정신을 거론하며 “국민의힘은, 그리고 저는 바로 그 마음으로 호남에서도, 영남에서도 지금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한 위원장의 인사를 피했다는 논란이 일자 “저를 모르셨을 수도 있다”면서 “여사님을 다음에 또 뵈면 제가 더 잘 인사드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회에 출석하면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설전을 벌이던 검투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겸손하고 유연한 여당 대표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품 혹은 기린아, 무엇이 될 것인가

    이런 변화는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위원장이 등장할 때 야당에서는 ‘윤석열 아바타’라는 야유를 내놓았지만 막상 한동훈식 정치는 윤석열식 정치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은 것일까. ‘73년생 한동훈’의 저자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는 ‘정치인 한동훈’의 강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한동훈은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의 두터운 브로맨스 서사, 1970년대생의 젊음, 이준석이 보여줬던 어떤 말싸움에도 지지 않는 민첩한 언변, 오세훈처럼 신사 같은 매너와 태도, 그리고 홍준표와 같은 확고한 이념적 선명성과 대야 투쟁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영상]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가 본 한동훈



    장점으로만 해석한 내용이지만 한 위원장에 대한 호불호에 관계없이 대체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특징들이다. 그는 과거 우리가 흔히 접하던 보수정당의 리더들과는 상당히 다른 정치인이다. 이념을 우선하며 일방적이고 거친 인상을 주던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도 많이 다르다. 좋게 말하면 젊고, 논리적이고, 세련된, 대야 투쟁력을 갖춘 정치인이라고 할 만하다. 기존 보수정치의 리더들에게서 볼 수 없던 이런 특징들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한 한동훈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한 위원장은 팬덤 지지층에 의해 벌써부터 차기 대선후보감으로 추앙받고 있다. 일시적 역할을 하고 물러나는 다른 비대위원장들과는 달리 한동훈에게는 차기 대권으로 가는 입구가 되는 셈이다. 물론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을 회복해 총선 승리의 견인차가 될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한 위원장의 등판은 조급했던 욕심의 결과로 평가받고, 대권으로 가는 꿈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일단 한 위원장의 초반 행보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여당 대표로 안착했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한동훈 효과’가 분위기상으로는 나타나지만 실제 여론조사에선 아직 또렷이 보이진 않고 있다. 한 위원장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지지율 추이는 조사마다 엇갈린다. 한동훈발(發) 변화에 대한 기대는 커졌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로 연결될 추세적 변화는 아직 아니라는 의미다.

    진짜 험한 길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하기에 따라 일시적 ‘거품’으로 끝날 수도 있고, 총선 판도를 뒤집어놓는 ‘기린아’가 될 수도 있는 길이 공존한다. 그에게는 여전히 두 가지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가장 어려운 숙제 = 對尹 관계 재정립

    한 위원장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 문제일 것이다. 이제껏 국민의힘이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선 수평적 당정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되기 쉽다.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좋지 못하니 여당으로서는 자신의 독자적 길을 가는 것이 활로가 된다. 그러려면 국민의힘이 ‘용산 출장소’ 소리를 듣던 상황을 마감하고, 대통령에게 직언도 하며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 위원장은 검사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평생 상하관계를 유지해 온 최측근이다. 과연 차별화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많을 수밖에 없다. 차별화를 내세우자니 ‘배신자’ 소리를 들을지 모르고, 조용히 가자니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를 받을 처지다. ‘홀로서기’와 ‘의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 한동훈의 딜레마다. 이제까지 한 위원장은 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한동훈은 윤석열과는 다른 길을 소리 없이 가는 모양새다. 그것은 ‘포지티브’ 방식의 긍정적 차별화로 나타나고 있다. 윤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되 굳이 비판하거나 반론하지 않고 자기의 언어와 행보를 보임으로써 자연스러운 차별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 걷어차 버린 중도확장성을 복원하려는 모색으로 진행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며 느닷없이 이념전쟁의 깃발을 들었다. 보수 진영의 강성 지지층만 환호했지, 보궐선거 참패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낡고 소모적인 이념 대결에 식상한 중도층이 대거 등을 돌렸다. 선거 참패를 당하고 나서야 윤 대통령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념’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진영 정치를 굳이 비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탈(脫)진영적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보수층과 진보층이 팽팽한 충북을 방문해서는 “어떤 이슈에서는 오른쪽 정답을 낼 것이고 어떤 이슈에서는 왼쪽 정답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좌우 이념에 갇히지 않고 실용주의 노선을 가겠다는 의미다.

    실제 한 위원장은 ‘우파’의 요구에 부합하는 사안들보다는 중도층이 선호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방을 순회하면서 내놓은 ‘격차 해소’라는 총선 정책이 대표적 예다. 한 위원장은 “교통, 문화 격차, 파출소 빈도 차이에서 오는 치안·안전 격차 등 생활 곳곳에 불합리한 격차가 많다”며 “시민들의 전반적 생활에 뿌리내린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해야 현실의 삶이 나아진다”고 했다. 그동안 안보와 경제만을 강조하던 보수정당의 모습에서 벗어나 중도층의 요구를 껴안으려는 방향이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태도는 예외였다. 그간 김건희 여사에 관한 야당의 의혹 제기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국민에게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알게 모르게 쌓여온 것이 현실이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면 국민의힘은 특검법을 수용해야 했지만 한 위원장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신속하고도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이는 ‘김건희 특검법’이 갖는 파괴력 때문이다. 일단 야당이 추천한 특검에 의해 수사가 시작되면 ‘실패한 특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특검은 어떻게든 김 여사를 기소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야당은 김 여사가 관저에서 떠날 것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윤 대통령의 레임덕을 낳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거부권 행사에 따르는 리스크보다 특검 결과에 따르는 리스크가 더 큰 상황이었다.

    쇄신 공천으로 보수 새 모습 보여야

    한 위원장을 기다리는 두 번째 숙제는 쇄신 공천을 통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한 위원장의 초반 행보가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아직까지 당내에 특별한 갈등 사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리더에 대한 보수층 내의 기대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게 마련이다.

    곧 공천이라는 분수령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의 쇄신과 한동훈 리더십이 평가받는 시험장이다. 한 위원장은 공천에서 보수정당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에게 인정받는 ‘보수의 새 리더’로 안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인적 쇄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지만 사람을 교체하는 일은 당사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 한동훈 리더십의 성패는 강력한 쇄신 드라이브를 걸면서도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여야 불문하고 우리 정당사에는 수많은 비대위가 명멸했으나 정작 성공한 비대위는 드물다. 보수에선 ‘박근혜 비대위’, 진보에선 ‘김종인 비대위’ 정도만이 성공한 비대위로 평가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4년과 2012년 두 번 비대위원장을 맡아 벼랑 끝에 내몰린 보수정당을 구출해 내며 개가를 올렸다. 2004년엔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 자금 수수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100석도 어려울 것이고, 최악의 경우 50석에 그칠 것이라는 공포감이 확산됐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천막 당사’까지 차리는 극약 처방을 통해 121석을 얻어내며 참패를 막아냈다.

    두 번째 비대위원장을 맡은 시기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둔 때였다. 이때 한나라당은 임기 말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과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디도스 공격’ 의혹,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참패 등이 겹치면서 총선 참패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친이명박계에 대한 공천 물갈이를 하는 등 고강도 요법을 통해 의석 과반(152석)을 얻으며 승리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들어선 ‘김종인 비대위’ 역시 대표적 성공 사례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에 대한 비우호적 여론으로 총선 패배가 예상됐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김 위원장은 친문 핵심 인사를 비롯한 현역의원 26명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특단의 물갈이를 통해 민주당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사례와 달리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만든 ‘관리형 비대위’는 하나같이 실패로 끝났다. 성공한 비대위의 공통점으론 비대위원장의 권위와 능력, 전권 위임 등 요인을 들 수 있다. 한동훈 위원장은 어떨까. 윤 대통령과의 탄탄한 신뢰관계를 감안하면 여당에선 더없는 권위를 갖고 있을 것이다. 능력은 짧은 기간의 비대위원장 행보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전권 위임에선 당내 세력도 없는 정치 신인에게 전권이 부여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한동훈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를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환경 자체는 한 위원장에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불과 1~2개월 전만 해도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대패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엔 굳게 닫혀 있던 상단이 열릴 가능성이 생겼고, 반대로 ‘이재명 유일 정당’으로 굳어진 민주당은 변화의 기미 없이 내부 분열과 탈당이 계속되고 있다. 바닥까지 갔던 쪽은 바짝 긴장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고, 압승을 거뒀던 쪽은 총선 180석, 심지어 200석을 입에 담으며 자만 속에 멈춰 있다. 이에 4월 총선의 승부를 알 수 없게 됐다.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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