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개에겐 미안하지만 정치, 개만도 못하다!

[봉달호 편의점 칼럼] 文 ‘풍산개 논란’

  •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2022-11-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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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 진영 논리로 초래된 진흙탕 ‘개싸움’

    • 共和주의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 대통령 중심제가 근본 원인

    2018년 11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관저 앞마당에서 ‘곰이’ 새끼를 살피고 있다. [뉴스1]

    2018년 11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관저 앞마당에서 ‘곰이’ 새끼를 살피고 있다. [뉴스1]

    난데없이 개싸움이다. 2020년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수호’하겠다는 단체 이름이 ‘개싸움국민운동본부’(현 개혁국민운동본부)였는데 이번엔 진짜 개싸움이다.

    문제는 2018년 9월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이 선물한 풍산개 두 마리에서 시작한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절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이 길렀다. 퇴임 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호사가들의 관심 사항이었는데, 올해 3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만났을 때 이 이야기가 나왔다. 윤 당선인은 “저한테 주신다면 제가 잘 키우겠지만 강아지는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워야 한다”고 대답해 화기애애하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사실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 몇 마리 키우는 문제가 무에 그리 대수겠는가.

    다른 정부로부터 받은 선물은 국가 소유

    그런데 8개월이 지난 11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SNS를 통해 느닷없는 입장을 밝혔다. 풍산개 두 마리를 대통령기록관 측에 ‘반환’하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풍산개는 법적으로 국가 소유’라는 것. 그러면서 “대통령 기록물의 관리 위탁은 쌍방의 선의에 기초하는 것으로 정부 측에서 싫거나 더 나은 관리 방안을 마련하면 언제든지 위탁을 그만두면 그만”이라고 밝혔다. 입장문에는 “대통령실은 이 문제를 쿨하게 처리하려는 선의가 없는 듯하다”거나 “큰 문제도 아니고 이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드러나는 현 정부 측의 악의가 어이없게 느껴진다”는 다소 감정적 표현도 눈에 띄었다.

    정치권과 언론, SNS에서는 곧 논쟁이 붙었다. 여권 측은 당연히 “문 전 대통령은 항상 애견인 행세를 하더니 기르던 개를 파양했다”며 비난하고, 이유는 ‘돈 문제’라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이 풍산개를 위탁 관리하는 비용으로 매월 250만 원을 요청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방적으로 파양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개 세 마리도 건사 못하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5년이나 통치했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주요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개 키우는 문제’ ‘금전적인 문제’로 취급했다. “개 몇 마리 키우는 데 어떻게 한 달에 250만 원이 들 수 있느냐” “월급 400만 원 받는 직장인도 개를 키운다” “문재인의 이중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문 전 대통령은 순식간에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사람’이 됐다. 이보다 프레이밍하기 좋은 사안이 어디 있을까.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안에 대해서는 문 전 대통령 측 주장과 설명이 전적으로 옳다고 본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예를 들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만년필을 선물했다고 치자. 윤 대통령은 임기 중 그것을 자기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선물은 모두 국가 소유기 때문이다. 사사로이 사용할 수 없고 임기가 끝나면 정부에 반납해야 마땅하다. 반납 후엔 대통령기록관에 영구 보존토록 돼 있다.

    11월 10일 대구 북구 경북대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 앞에서 ‘곰이’(왼쪽)와 ‘송강’이 대학 관계자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곰이’와 ‘송강’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측으로부터 선물받아 기르다 최근 정부에 반환했다. [뉴스1]

    11월 10일 대구 북구 경북대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 앞에서 ‘곰이’(왼쪽)와 ‘송강’이 대학 관계자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곰이’와 ‘송강’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측으로부터 선물받아 기르다 최근 정부에 반환했다. [뉴스1]

    文, 풍산개 데리고 있을 법적 근거 無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선물이 만년필 같은 물건이라면 대통령기록관에 보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선물이 동물이나 식물이라면 어떨까. 식물은 기록관에 온실 하나 만들고 기를 수 있다지만 동물은 영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랑이나 곰 같은 동물을 선물로 받은 전례가 있다. 중국 정부로부터 받은 판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몇 종류 되지도 않는, 그런 동물을 위해 별도 공간을 마련하고 사육사까지 고용하는 것은 흔한 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소중한 생명이 달려 있는 일이니 전문적인 기관(동물원)에 보내는 것이 그동안 관례였다.

    그런데 여기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번에 논란이 된 ‘개’다. 물론 개도 동물이니 동물원에 보내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는 다른 동물과는 조금 다르다. 호랑이, 곰과는 달리 반려자와 정서적 유대감이 높은 동물이다. 수년간 관계를 유지한 반려자가 있는데 동물원에 보내면 부모가 있는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는 것처럼 ‘모진’ 행위가 된다. 따라서 일반적 선의에 따라 ‘풍산개는 원래 기르던 사람이 계속 기르자’고 전후임 대통령 사이에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다.

    여기서 잠깐. 아무리 전·후임 대통령이 합의했다 한들 엄연히 국법(國法)이 있는데, “가져가시오” 한다고 가져가도 되는 것일까. 바로 이 점이 문제다. 현행 법규상 퇴임하는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받은 선물을 사사로이 가져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이에 문 전 대통령 임기 종료 하루 전날 대통령기록관과 비서실 사이에 협약서가 하나 만들어진다. 대통령기록관은 문 전 대통령 비서실에 풍산개 관리를 위탁하고, 비서실은 이를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여기서 ‘위탁’이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탁은 이관과는 다르다. 이관은 관할이 아예 바뀌는 것인데, 위탁은 관할은 그대로 두고 관리자만 위임하는 행위다. 흔히 말하는 ‘용역’을 맡기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 어디에도 이 ‘위탁’에 대한 항목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일부 언론에선 기록물관리법 ‘시행령’을 근거로, 이관이든 위탁이든 문 전 대통령 측이 풍산개를 양육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단지 “문 전 대통령 측이 ‘돈 문제’ 때문에 위탁 관계를 청산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완전히 틀린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시행령 제6조의3 2항(이하 2항)을 보자. “대통령 선물이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관리하기 어려울 때)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해 관리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근거로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에 이관 및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왜 이 조항의 주어(主語)를 생략해 보도하는지 모르겠다. 2항은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장은”으로 시작한다.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장’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 재임 기간 업무 수행과 관련해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일체의 자료와 물품을 말한다. 비서실, 경호처 등 대통령을 보좌·자문하는 각종 기관에서 그런 자료나 물품을 만들고 보관하는데, 이런 기관을 통칭해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이라고 한다. 문제의 2항은 이곳의 장이 자료나 물품을 관리함에 있어 자체 역량으로 부족함이 있을 때 다른 기관에 이관할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시행령의 모법(母法)인 기록물관리법 11조 1항은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은)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기 전까지 모든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기록관으로 자료와 물품을 일단 집중한 후 대통령기록관에서 개인이나 기관에 이관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 즉 ‘대통령기록관이’ 이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록물관리법 14조엔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풍산개를 데리고 있던 것엔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법적 절차대로만 했다면 풍산개는 일단 대통령기록관으로 가는 것이 맞았고, 이후 법을 제대로 만들어 문 전 대통령 측에 이관하든, 혹은 기록관에서 보관(양육)하든, 제3의 기관에 맡기든 할 일이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물의 관리위탁은 쌍방의 선의에 기초하는 것”이라는 문 전 대통령 측의 말은 전적으로 맞다. 법이 없으니 일단 ‘위탁협약서’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것인데,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도 ‘초법적’ 협약서다. 꼬투리를 잡자면 분명히 월권·위법 행위를 한 것이다. 아무리 전·후임 대통령 간에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정부가 ‘열정 페이’ 요구해서야

    3월 2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만찬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11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은 “풍산개 관리를 문 전 대통령에게 위탁하기로 정부와 협의가 이뤄졌다. 윤석열 당선인(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선의의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뉴스1]

    3월 2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만찬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11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은 “풍산개 관리를 문 전 대통령에게 위탁하기로 정부와 협의가 이뤄졌다. 윤석열 당선인(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선의의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뉴스1]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강아지 몇 마리 키우는 문제를 갖고 싸우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지긋지긋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러 내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문제를 더 살펴보자.

    일부 언론과 정치인은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한 행위를 ‘파양’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를 선동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용어를 썼다면 모를까, 사안의 내면을 알고 있다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입양’이라는 것은 개인 소유로 가져가는 것인데, 어떤 이유로든 국가재산을 사유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풍산개는 국가재산이고 대통령기록물이다. 나중에 법령이 마련돼 이관이나 위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입양은 아니다. 아예 개인 소유로 만들어주는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는 한 결코 입양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파양’한단 말인가.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도 합의한 부분이니 문재인 전 대통령이 풍산개를 조용히 잘 키울 것이지 왜 사안을 복잡하게 만드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떻게 ‘조용히’ 키울 수 있는가. 아무리 정치적 합의에 따라 키우고 있다 하더라도 국가 재산을 함부로 반출한, 위법적 상황을 무한정 지속할 순 없다. 합법으로 만들어줘야 마땅하다. 한국이 하루 이틀 존속할 국가도 아니고, 그래야 나중에 다른 사례로 악용될 소지도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윤석열 정부는 그것을 차일피일 미뤘고, 서로의 불신이 가득한 가운데 특정 언론이 이를 묘하게 보도하면서 문제가 꼬였다.

    자, 이제 ‘돈’을 말할 차례. 어떤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이 돈도 많을 텐데 알아서 키우지…”라고 말한다.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개인이 선의로써, 국가재산을 알아서 관리해 준다면 고마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한국이 ‘국가’라면 최소한 그래선 안 된다. 이관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비용을 배정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위탁을 했으면 그 대상이 누구든 용역에 마땅한 비용을 줘야지, 정부에서 ‘열정 페이’를 요구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풍산개를 문 전 대통령이 사비로 양육했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다. 왜 공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국가 재산을 사사로이 다뤘느냐고 감사원에서 지적할 것이 분명하다. 문 전 대통령 측이 SNS를 통해 “지금의 감사원이라면 언젠가 대통령기록관을 감사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고 표현한 것도 감정적 언사가 실려 있긴 하지만 전혀 틀린 주장은 아니다.

    그깟 개 하나 가지고…

    이 사안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위와 같이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일반인의 ‘직관’과는 다른 규정과 절차가 있다.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든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에 불리한 이슈임이 분명하다. 비판자 측에서는 “그깟 개 하나 가지고” “키우던 개를 쫓아냈다” “무려 월 250만 원!” 식으로 간단히 비아냥거릴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방어하려는 측에서는 구구절절 법률 행정 용어를 들먹이면서 ‘전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설명해야 하는 일이다.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 입장에서는 ‘일단 귀에 확 들어오는’ 말에 꽂히게 마련이고 여기서 승부는 갈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사실 그런 선동은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 진영의 전매특허 같은 방식 아니었는가. 단적으로 최저임금 1만 원 문제를 보자. 수년 전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할 때 일이다. 그것이 불러올 사회·경제적 파장 등을 설명하면서 반대하면 진보 진영에서는 “그깟 시급 1만 원이 가까워서!”라는 식으로 반대자를 몰인정한 비인격자, 악덕 자영업자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후쿠시마 원전!” 한마디로 몰아붙이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 취급했다. 웃지 못할 일이지만, 문 전 대통령 측은 과거 자신들이 자주 사용하던 수법에 ‘되치기’를 당한 셈이다.

    그렇다. 이건 정말 ‘웃지 못할’ 일이다. 정치권의 극단주의자들에겐 풍산개 이슈 또한 서로 몰아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 재미있는 이슈일지 모르겠지만 일반 서민 입장에서는 피곤하기 그지없는 싸움이다. 정말 ‘그깟 개 하나 가지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이다. 나라의 미래를 놓고 논쟁할 사안이 많을 텐데, 그깟 개 하나 가지고.

    한국에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풍산개를 다시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하면서 문 전 대통령 측은 SNS에 이런 표현을 남겼다. “왜 우리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이처럼 작은 문제조차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흙탕물 정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인지, 이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해서 무얼 얻고자 하는 것인지 재주가 놀랍기만 합니다.” 진영을 떠나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만 사실 이 표현은 작성자 자신에게 되돌려 줘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국민 수준이 딱 이 정도

    양시론보다 쉬운 일이 양비론이다. “이쪽저쪽 다 나쁘다”고 해버리면 말하는 사람은 자연히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어정쩡한 양비론을 펴고 싶지는 않다. 이른바 풍산개 문제와 관련해선 윤석열 정부가 분명 잘못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시행령 정비를 계속 미룬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안 된 것은 안 된 것이다. “정부가 다른 국정 현안도 많은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느냐” “전직 대통령이 그 정도도 못 기다리고 투정을 부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문 전 대통령 측으로선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발화한 것이 아니라 특정 언론의 보도로 촉발됐다. 문 전 대통령 측에선 어떻게든 반응할 수밖에 없던 사안이다. 현 대통령실에서 “유감을 표한다.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 하면 끝날 일이었는데, 집권 여당 정치인들이 나서 모욕적인 언사로 일관하며 문제를 더욱 헝클어버렸다.

    간단히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자. 이번에 문 전 대통령 측은 풍산개를 반환했다. 혹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키우면 된다”고 말하던데, 현직 대통령도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기록물을 사사로이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위법이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저한테 주신다면 제가 잘 키우겠지만”라고 했던 말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도 법을 고쳐야만 기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현행 법규상으론 대통령기록관에서 풍산개를 기르는 수밖에 없다. 자료(개)가 멸실(사망)되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정성을 다해 길러야 할 텐데, 기록관에서도 분명 예산을 편성해 사육사를 고용하는 등 안전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래야 마땅한 일이다. 이때 예산은 일반적인 정부 예산 편성 기준에 따를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측에 사육 보조 예산을 지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지 않으려면 동물원에 보내야 할 텐데, 이는 애초에 피하고자 했던 ‘최악’의 그림이다. 최악을 피하려고 양측이 화기애애하게 합의했던 것인데, 결국 우리 정치는 돌고 돌아 최악으로 귀결될 조짐이다. 정치 수준이 그 나라 국민 수준이라면 서글프지만 우리 수준이 딱 이 정도 아닐까. 상식의 눈만 있다면, 밉든 곱든, 문 전 대통령 측이 양육할 수 있도록 법적 여건을 만들어줬어야 마땅하다. 진영 논리에 어두워 진흙탕 개싸움을 만들어버렸다.

    민주공화국에서 共和가 빠졌다

    이번 풍산개 논쟁은 한국 정치의 지리멸렬한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후임 정치 권력의 성향이 달라지면 후임 정부가 전임자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온갖 속 좁은 행위를 다 하고,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은 그런 공격을 통해 권력자에게 ‘성과’를 자랑한다. 특정 진영의 맹목적 지지자들은 이런 개싸움에 열광하고 박수 치면서 이성적 논의를 가로막는다. 어제오늘 풍경이 아니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단호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진보진영은 이것을 노래 가사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민주’는 알지만 ‘공화’는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최근 수년간 한국은 ‘공화’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나라가 된 것만 같다. 국가 정체(政體)의 양쪽 바퀴를 이루는 민주와 공화 가운데 하나가 빠진 것이다.

    공화는 말 그대로 ‘함께 사는’ 일이다. 민주당 정부가 됐다고 한국이 민주당 국가가 된 것이 아니고,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았다고 대한민국이 국민의힘 것이 된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정권을 잡든,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한국은 모든 국민의 것이다. 권력은 국민의 것이며 정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다. 하지만 현재 한국엔 자신의 정견과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 ‘나와 상관없는 정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또렷한 것 같다. “너희들이 지지해서 선출된 정부이니 너희들이 책임져!”라는 유치한 수준. 공화주의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풍산개 이슈를 ‘문재인이 가져간 개’가 아니라 ‘국가 재산을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대신 관리하는 문제’로 바라보면 해법은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한국은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데 대단한 능력을 갖춘 나라가 돼 버렸다. 이런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파헤쳐 보면 뿌리엔 대통령중심제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개인(혹은 권력집단)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대통령이 나눠줄 수 있는 자리, 대통령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이 워낙 많으니 대통령 권력에 빌붙어 콩고물이라도 하나 얻어볼까 기웃거리는 정치 모리배들이 판을 치고, 그들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선거에서 이겨야 ‘정치적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에 나라를 통합한다든지 이성적으로 설득한다든지 하는 말은 공치사에 가까운 일이다. 어떻게든 국민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개싸움’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혈안이 돼 뛰어다닌다. 그래야 먹고살 거리가 또렷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과 이런 독버섯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정치권력 토양에 있다. 독점적 정치 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4류 정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개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개만도 못한 정치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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