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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충돌위기 이후 한반도

北이 두려운 건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

남북 심리전 막전막후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주승현 | 前 북한군 심리전 제압조장, 정치학 박사

北이 두려운 건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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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의주~함흥(북위 40도)까지 KBS 송출
  • ● DMZ 미스코리아 경연…北 병사 ‘헤벌쭉’
  • ● 軍 당국이 ‘뻥튀기’한 확성기 효과
  • ● 정보기관의 한류 드라마·영화 투입 공작
北이 두려운 건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
대북 심리전은 독재 정권의 골간을 송곳으로 후비는 공작이다. 심리전은 사상적 방화벽에 구멍을 뚫는 비대칭 무기다. 정전(停戰) 이후 남북은 말과 논리로 전투했다. 전쟁 후 남북 대립의 실체는 매체 간 전쟁이다.

군사학은 심리전을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 자극과 압력을 줘 정치, 외교, 군사 면에서 아국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남북은 심리전 현장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영국에서 일하다 망명한 북한 노동당 출신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1992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남조선’ 사람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주체사상을 선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체제에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이후엔 말을 섞지 말라더군요. 고꾸라진 것을 인민이 아는 게 싫은 거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1980년대 대학가는 붉게 물들었다. ‘구국의 소리’는 군사독재 치하 대학생들의 가슴을 후볐다. 서울 말투로 방송이 진행됐다. 방송 내용이 합리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한국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뉴스를 전했다. 국가권력을 비판하면서 행동 노선을 전파했다.

북한 당국은 심리전의 핵심 수단으로 라디오를 사용했다. 통일전선부는 산하에 평양방송, 평양FM방송, 구국의 소리, 개성TV방송을 두고 대남 심리전을 지휘했다. KAL기 폭파 사건 때 “미국 CIA와 안기부의 음모다. 문제를 제기하라”고 행동 지침을 하달한 게 대표적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한 하태경 국회의원의 기억이다.

“구국의 소리 주장대로라면 라디오 방송의 주체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라는 한국 내 전위조직이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라는 말로 방송을 끝냈기에 한국에서 운영되는 지하방송이라고 잘못 안 이도 많았죠. 납북자, 월북자를 동원해 서울말로 방송했거든요. ‘직선제로 개헌해야 한다’ ‘민주정부 수립하자’ 같은 슬로건은 정세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라디오 키즈(kids)’들은 북한 방송에 환호했고요.

구국의 소리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침투와 시장개방 압력을 비판하거나 지배계층의 비리, 부정축재를 고발했습니다. 농어민, 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고요. 주체사상이 부지불식간에 학생들의 정신세계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거죠. 대남방송을 청취하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던 이들이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했습니다.”

‘북한군 관람용’ DMZ 수영장

비무장지대(DMZ) 육군 ○○사단 ○○중대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영장이 있다. ‘하늘 수영장’이라고 칭한다. 북한의 심리전 공세가 끄트머리로 치닫던 1992년 북한군 관람용으로 건설한 것이다. 개장 첫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콘테스트를 이 수영장에서 진행했다. 배우 이승연(47) 씨가 미(美)로 입상한 경연이다. 북한 군인들은 남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육안과 망원경으로 뚫어져라 지켜봤다.

전방부대의 한 GOP(일반전초) 대대장은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당시 북측 병사들이 ‘헤벌쭉’ 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DMZ에서 복무하다 탈북한 한 인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기예보예요. 남쪽에서 ‘인민군 장병 여러분, 오후에 비가 내리니 빨래를 걷으세요’라고 방송하면 정말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남한 방송 내용을 신뢰하게 된 데는 일기예보가 큰 영향을 미쳤어요. 한국에 실제로 와서 보니 방송 내용이 모두 사실은 아니더군요. 천국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겨요.”

1970~1980년대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은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기억할 것이다. 초등학생이 파출소에 삐라를 가져가면 연필 같은 것을 상으로 줬다. 북한은 더는 삐라를 보내지 못한다. ‘진실의 전장’에서 패배한 탓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이뤄냈으나 북한은 곤두박질쳤으며 동유럽 사회주의권은 붕괴했다.

남북 심리전은 1962년 북한이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낙원으로 오라”고 확성기 방송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한국이 맞불 방송으로 응전하면서 대남·대북방송이 말과 논리의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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