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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홀서빙 여직원 가장 카지노바 잠입, 차 안에서 48시간 ‘뻗치기’…“뭘 상상하든 그 이상”

  • 홍수영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gaea@donga.com / 일러스트·박진영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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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6월8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참석자들과 경찰의 대치 현장. 사건팀 기자는 사건·사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

취재원이 아닌 사람을 만날 때, 심지어 소개팅 자리에서도 다부지게 꼬치꼬치 캐묻는 습관에 “기자 같으시네요” “취재 당하는 것 같아요”란 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래서 차라리 인정하기로 했다. 내 정체성의 9할을 차지하는 것, “나는 사회부 여기자다!”

어느 직업보다 ‘깡’이 필요한 직업이 기자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모든 취재를 ‘맨땅에 헤딩하듯’ 하는 사회부 기자는 ‘깡’이라면 둘째가 서럽다. 이름과 나이라는 단서만 던져주고선, “찾아내서 만나라”는 지시는 이제 그다지 곤혹스럽지 않다. 사회부 기자의 단골 취재기법인 ‘뻗치기(사건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고 며칠간 지켜보며 취재하기)’로 며칠을 꼬박 새우는 것도 견딜 만하다.

‘깡’ ‘뻗치기’ ‘뻔뻔함’

취재윤리 논란으로 예전보다는 확연히 줄었지만, 정치부나 경제부에 비해 사회부는 고발성 아이템을 많이 다루다 보니 잠입취재를 해야 할 때도 더러 있다. 잠입취재라, 말만 들어도 약간 전율이 인다.

사건팀 수습기자 시절이던 2005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불법 카지노바에서 한 가수가 ‘바카라’ 게임을 한 혐의(도박)로 경찰에 붙잡혔다. 마침 몇 달 전부터 강남 일대에 불법 카지노바가 붐처럼 퍼지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던 터였다. 식품업으로 등록돼 있지만 술을 마시는 이들은 없고 사실상 하루에 수억원의 판돈이 도는 게임장이라고 했다.



1진 선배(수습기자를 관리하는 선배)가 “불법 카지노바를 찾아서 실상을 취재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늘 안으로’라는 단서까지 붙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어디서 불법 카지노바를 찾을 것인가. 또 찾았다 한들 직접 게임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은 남자 수습기자들과 달리 20대 여자가 무슨 수로 그 안에 들어갈 것인가.

‘머리를 쓰자. 머리를 쓰자…’ 중얼거리며 허공을 올려다보길 몇 시간. 카지노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면 분명 일손을 구하는 곳이 있을 듯했다.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카지노바, 아르바이트’란 검색어를 쳤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일주일 새 문을 연 곳도 여럿이고, 이미 영업을 하고 있는 카지노바 중 규모가 꽤 커 보이는 곳도 있었다.

홀서빙 여직원을 구한다는 몇 곳에 전화를 돌렸다.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유니폼을 입고 음료수를 주거나 재떨이를 가는 일. 기본급은 외모에 따라 15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차이나지만 팁이 많아 한 달에 300만원 보장’. 기자가 이것저것 묻자 불안해서라 여겼는지 “일단 와봐라, 이상한 데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 곳과 약속을 했다.

“면접 왔다”며 카지노바 잠입

막상 면접을 보러 가려니 ‘몰골’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차례만 집에 들어가는 게 허용되는 ‘하리꼬미(경찰서 붙박이 근무)’ 중이라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질끈 묶은 머리, 어디서 뒹굴어도 아깝지 않을 허름한 옷과 운동화 차림이었다. 30, 40대 고소득자를 타깃으로 은밀하고 고급스럽게 운영된다는 카지노바의 면접에 이 꼴이 웬 말이람.

경찰서 기자실에 가져다둔 옷가지 중 그나마 가장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데 낮엔 공부하고 밤엔 학원비를 벌려 한다”는 가난한 고학생 코멘트도 연습했다. 1진 선배는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 들어가기 전 위치를 알리라고 일렀다.

오후 9시 반, 젊음이 북적대는 강남역 일대 한 골목. 통화를 한 영업이사는 분명 ‘XX 카지노바’라고 했는데 건물 외벽엔 ‘OO 재즈바’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카지노바로 오르는 계단에도 재즈 가수와 악기 사진이 붙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체격 좋은 남자들이 “왜 왔느냐”며 가로막았다. 애써 태연한 척 “면접 왔다”고 하자 안 쪽 사람과 눈을 맞춘 뒤 들여보냈다.

300㎡(90평) 정도 되는 기다란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게임 테이블 6대 가운데 2대에는 각각 딜러와 함께 40대 중반인 남자 5, 6명이 한창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서빙하는 여직원이 유니폼 입고 게임 테이블을 오가며 커피를 날랐다.

가장 깊숙이 마련된 바에 영업이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아는 사람만 온다. 불을 꺼놓아도 다 알아서 들어온다. 지금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오는 사람들”이라며 말을 꺼냈다. 게임 방식을 슬쩍 물었지만 “며칠만 일하면 돌아가는 방식을 알 수 있다”며 답을 피했다. 40여 분 동안 얘기를 나눈 뒤 그는 “일할 생각이 있으면 전화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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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gaea@donga.com / 일러스트·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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