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1월 24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소송 기일은 3월 중이다. 예상되는 최대 소송 청구액만 3300억 원인 초대형 소송이다. 감독기관인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만류에 나섰지만 소송 개시가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국내에선 공공기관이 처음으로 직접 담배회사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
이에 대해 KT·G 등 담배회사들은 “흡연자가 자유의지로 흡연하는 것인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냐”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948년부터 50년 넘도록 정부가 국민에게 담배를 팔던 나라에서 왜 공공기관이 흡연의 폐해를 묻는다며 소송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공공기관 최초 ‘담배와의 전쟁’
건보공단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 환자 진료비 중 공단이 부담하는 연간 1조7000억 원에 달하는 급여 부분에 대한 책임을 담배회사에 묻겠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은 개인이 제기한 4건뿐이다. 국가기관은 방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례 없는 담배 소송에 건보공단이 직접 나서게 된 데에는 김종대 공단 이사장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1월부터 개인 블로그에 담배의 폐해를 성토하는 글을 꾸준히 올렸고, 같은 해 12월엔 소송 개시를 직접 선포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올린 게시물에서 “공단의 설립 목적은 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라며 “흡연으로 인해 생명이 파괴되고 삶의 질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공단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 의무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담배 소송의 당위성은 한마디로 건보공단의 존립 목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김 이사장의 자신감은 최근 건보공단이 흡연과 폐암, 후두암 등 각종 질병 간의 과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했다는 데서 비롯한다. 공단이 지난해 8월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과 공동 발표한 빅 데이터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흡연 남성의 암 발병률은 비흡연자에 비해 최대 6.5배까지 높았다. 흡연 피해로 공단이 지불한 진료비 역시 1조7000억 원 정도로 2011년 전체 진료비의 3.7%나 된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됐다.
하지만 담배회사들은 이 조사의 표본 대표성이 부족하고 식습관, 직업, 주거환경 등 기타 질병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담배회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담배협회 김병철 회장은 1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폐암에 대한 흡연의 영향성이 입증돼 담배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자”며 “그렇게 되면 간암을 일으키는 술을 만드는 주류회사, 비만을 유발하는 패스트푸드 체인까지 모두 정부가 고소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담배회사들은 흡연 자체가 개인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강조한다. 담배회사가 흡연을 강요한 적이 없으므로 책임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보공단 측은 흡연이 암과 각종 호흡기질환의 직·간접적 원인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담배 특유의 중독성은 흡연자가 끊고 싶어도 실패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공단 법무지원실의 안선영 변호사는 “니코틴 중독이 마약 중독만큼 강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끊고 싶어도 못 끊게 만드는 담배의 중독 문제를 재판정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소송은 개인이 아닌 공공기관이 나서는 것이므로 흡연에 대한 자기책임(스스로 담배를 선택해서 생기는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역시 승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12년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주최 금연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