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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한 손엔 붓, 한 손엔 칼 독서는 활을 쏘듯

武臣 뒤에 숨은 文臣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한 손엔 붓, 한 손엔 칼 독서는 활을 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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眼光이 紙背를 徹하게

공부 방법은 ‘읽고 외우기’였다. 이순신의 시호 ‘충무(忠武)’를 내려받도록 시장(諡狀 · 시호를 요청하는 근거 문서)을 쓴 이식(李植·1584∼1647)은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부 방법을 가르쳤다.

“시경과 서경은 본문 위주로 100번, 논어 100번, 맹자 100번, 중용과 대학은 횟수를 제한하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돌려가면서 읽어라. ‘자치통감강목’과 ‘송감(宋鑑)’은 선생과 함께 배운 뒤 숙독하고 좋은 문자가 있으면 한두 권쯤 베껴 써서 수십 번 읽도록 하라. 만약 미치지 못하거든 ‘자치통감절요’와 ‘십구사략’ 중 하나를 먼저 배우라. 그다음에 ‘주역’ ‘춘추좌전’ ‘예기’ ‘주례’ ‘소학’ ‘주자가례’ 등의 순서로 공부하라.”

같은 책을 100번씩 읽는다는 것은 눈빛이 종이의 뒷면까지 뚫는다는 ‘안광지배철(眼光紙背徹)’을 떠오르게 한다. 이 방식은 천장과 벽에 글씨를 써 붙이고 글자의 의미를 사색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탐구한 서경덕(徐敬德·1489∼1546)과는 다른 방식이다. 서경덕의 방법은 그 시대에는 예외적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대부분 읽고 외우는 것을 먼저, 사색을 그다음으로 했다. 조선 성리학을 꽃피운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의 책읽기 방법이 가장 전형적인 공부법이었다.

“책은 정신을 차려 셀 수 없이 반복해 읽어야 한다. 한두 번 읽고 그 뜻을 대략 깨닫고 덮는다면 몸에 충분히 밸 수 없다. 알고 난 뒤에도 몸에 배도록 더 깊이 공부해야만 비로소 마음에 오래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런 뒤에야 학문의 참된 의미를 경험하여 마음에서 기쁜 맛을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독서법은 그렇게 무지막지했다. 청소년 이순신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그의 자산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가 직접 읽었다고 기록한 책은 류성룡이 보내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난중일기, 1592년 3월 5일), ‘동국사(東國史)’(난중일기 1596년 5월 25일), 독후감을 남긴 ‘송사(宋史)’(난중일기 1597년 10월 8일 일기 이후의 메모)밖에 없다. 그러나 난중일기, 임진장초, 이충무공행록에는 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多讀), 사색(多商量)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넘쳐난다.

옛 선비들은 글자 하나, 말 한마디를 그냥 던지지 않았다. 대부분 옛 전거를 활용한다. 창작 대신 선현들의 말과 글 혹은 그들이 쓴 단어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문신(文臣)이나 선비가 쓴 단어나 표현 방식은 대개 유사하다.

이순신은 무신(武臣)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문인이 쓰지 않는 표현, 혹은 문인이 쉽게 접하는 책이 아닌 병법서 용어가 자주 눈에 띈다. 역사책은 문인이나 무인이나 다 같이 읽는다. 이순신은 전쟁의 관점에서 역사책을 읽었기에 그가 주목한 표현은 문인들이 읽고 인용하는 내용과 차이가 있다. 이순신은 유학의 기초 소양을 바탕으로 각종 병법서와 전쟁사를 읽고 공부했다. 현실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현장과 이론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병법 세계를 만들어갔다.

岳飛의 삶 닮고자

한 손엔 붓, 한 손엔 칼 독서는 활을 쏘듯
이순신의 일기와 글에는 그가 읽고 메모하거나, 다른 책을 읽고 변형한 사례들이 나온다. 무과 시험 과목과 관련된 책들도 직간접적으로 활용했다. 가장 확실하게 인용한 책, 또 그렇기에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책은 1585년 선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간행된 중국 송나라 명장 악비(岳飛)의 전기 ‘정충록(精忠錄)’인 듯하다. 난중일기에 있는 다음의 메모들이 정충록에서 인용한 것들이다.

△출전하여 만 번 죽을 일을 당했어도, 한 번도 살고자 생각하지 않았다. 분노하고 분노하는 마음 끝이 없다.

△사직(社稷)의 위엄 있는 신령에 힘입어 작고 보잘없는 공로를 세웠는데도 총애와 영광이 넘치고 넘쳐 분수를 뛰어넘었다.

△몸은 장수의 신분이나 티끌만한 공로도 없는데, 입으로는 임금이 내린 교서를 외워 떠들고 있어, 얼굴에는 부하 장졸들 보기가 부끄러움만 가득할 뿐이다.

△더러운 오랑캐에 짓밟힌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회복할 때가 바로 오늘이다. 명나라 군사의 수레와 말울음 소리를 하루가 1년처럼 기다렸다. 그런데도 적을 무찔러 없애지 않고 강화를 위주로 하고 있다. 흉악한 무리들이 잠시 물러나 있으나, 우리나라는 수년 동안 침략당한 치욕을 아직도 씻지 못하고 있다. 하늘까지 닿은 분노와 부끄러움이 더욱 사무친다.

이순신은 악비의 글을 읽고 공부하며 악비의 삶을 닮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던 듯하다. 이순신이 독후감을 남긴 ‘송사(宋史)’도 악비가 활약하던 송(宋)과 금(金)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이순신은 일본의 침략을 당한 처지에서 유사한 일이 있었던 송나라의 사례를 철저히 연구하면서 송나라의 명장과 충신을 연구했다.

△나라 안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기운이 풀어지니 백성들의 희망이 저절로 끊겼습니다. 신(臣)이 비록 어리석고 겁쟁이지만, 마땅히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직접 나아가 여러 장수들보다 먼저 몸을 바쳐 나라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유기(劉錡)는 문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는 경비 군사에게 명령해 말하기를, “만약에 불리해지면 즉시 우리집을 불태워 적의 손에 모욕당하게 하지 말라.”

진수(陳壽·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 혹은 나관중(羅貫中 · 1330?∼1400)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를 인용하거나 변형한 사례도 있다. ‘삼국지 혹은 삼국지연의’라고 한 까닭은 같은 문장이 두 책에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인데, 이순신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확정할 수 없어 두 책을 모두 언급한다.

△초야에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보좌할 만한 주춧돌 같은 사람이 없고, 조정에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책략을 지닌 기둥 같은 사람이 없구나.

△배를 더 만들고 기계를 보수하며 사용법을 훈련시켜 적들이 편안히 잠들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그로 인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원컨대 한번 죽을 것을 약속하고, 곧바로 호랑이굴을 공격해 요망한 기운을 다 쓸어버려 나라의 수치를 만분의 일이라도 씻으려 합니다. 성공과 실패, 이익과 해로움을 신의 지혜로는 미리 헤아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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