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비가 금나라에 연승을 거듭하자 이를 시기한 진회가 악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후 중국인들은 악비의 사당 앞에 무릎 꿇은 간신 진회의 상을 세우고, 진회의 상에 침을 뱉거나 오물을 던졌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백 번 승리한다. 나를 알지만 적을 모르면, 한 번은 이기나 한 번은 진다.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이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이론이다.
명량해전의 기적을 만드는 데 일조한 ‘오자병법’도 난중일기에 나온다. 명량해전 전날 장졸들에게 한 연설문의 핵심을 이순신은 일기에 기록했다. 그가 오자병법을 탐독했다는 다른 증거도 있다. 관점에 따라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전거를 활용하는 옛사람들의 기록 방식에 따르면 그냥 지나칠 기록은 아니다. 그동안 초서체 판독 문제와 한문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해 파악되지 못한 1596년 6월 26일 일기 뒷부분이 그것이다.
△병법에서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했고, 또 “한 사나이가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1596년 6월 26일. (…) 이날 낮 12시쯤(午)에 망아지 2필의 발굽이 상했다.
6월 26일 일기의 ‘발굽이 상했다(낙사하, 落四下)’에 대해 난중일기 번역자들은 바른 해석을 하지 못했다. 낙사하는 ‘오자병법’의 ‘치병(治兵)’ 편에 나오는 말이다. 거기에서 오자는 군마(軍馬) 기르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말은 반드시 말이 마구간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물과 사료를 때에 맞게 주어야 하고, (…) 털과 갈기를 때에 맞춰 깎아주고, 굳은살을 떼어내고 편자를 갈아주어 네 발굽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다(夫馬 必安其處所 (…) 刻剔毛 謹落四下).”
이순신은 오자가 ‘謹落四下(굳은살을 떼어내고 편자를 갈아줘 네 발굽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자신의 망아지 발굽이 상했다는 것을 표현했다.
외운 것은 현실에 적용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독서의 이치는 활을 쏘는 이치와 같다. 활 쏘는 사람은 과녁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집중한다면, 정확히 맞히지는 못해도 화살이 그다지 멀리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책에 눈과 입을 머물게 하라”고 했다. 이순신의 독서법은 이수광이 말한 활쏘기 독서법과 같다. 활을 쏘듯 책에 집중하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수광의 독서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가 읽은 책 내용을 현장에서, 현실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활용방법을 고민했다. 그의 1597년 6월 4일 일기에는 자신이 읽은 ‘오자병법’을 현실과 비교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개연(介硯)으로 걸어갔다. 기암절벽이 천 길(丈)이나 되고 강물은 굽이쳐 돌아가는 데다 깊었다. 또한 절벽과 절벽 사이에 선반처럼 매어놓은 사다리길은 위태로웠다. 이 험한 곳을 굳게 지킨다면 만 명의 군사도 지나기 어려운 곳이다. 이곳이 모여곡(毛汝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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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백의종군 중이었지만 오자병법의 눈으로 지형지물을 관찰했다. 그 결과가 모여곡과 같은 지형의 명량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순신 독서법의 또 다른 특징은 실용적인 데 있다. 그가 읽은 책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인 전쟁 승리와 진중 경영을 위한 아이디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병법과 역사책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그들 책 속의 이론과 역사적 경험을 자신이 처한 현실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통찰력을 키웠고 실용적으로 활용했다. 이순신이 우리 현대인에게 알려주는 독서법을 결론지어 말하자면 ‘자신의 일과 관련된 이론서와 사례 연구서를 깊이 읽고, 부단히 현실과 비교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