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최고 경매가 한국화가 이우환 위작(僞作) 논란

“가짜라며 500만 원에 가져가라 했다”(컬렉터 B씨)
“지금껏 본 내 그림 중 가짜는 없다”(이우환)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5-07-22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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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 경매가 한국화가 이우환 위작(僞作) 논란
    6월 말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고미술상가. 평일 낮인 탓인지 상가 안은 한산했다. 복도에까지 그림이며 고가구가 즐비하게 쌓인 이곳에서 가짜 그림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듯했다. 책상에 1호짜리 박수근 모작(模作)을 올려놓은 한 상인은 “박수근이나 이중섭 가짜 그림을 구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나는 원래 가짜를 취급하지 않지만 손님이 원하면 가끔 구해준다”며 “그림이 지방에서 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지만 한 달 안에는 가능하다”고 했다. ‘이우환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는 “(가짜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내친김에 경찰이 이우환 위작 사건의 주범으로 보고 있는 답십리 상인 A씨(65)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 집은 그림이 100점 있으면 101점이 가짜인 곳”이라며 혀를 찼다.

    다른 상인은 “내가 A씨를 잘 안다”며 “그를 통하면 이우환 그림을 시세보다 30% 싸게 살 수 있다. 물론 감정서도 있다”고 했다. 이 상인의 말이다.

    “A씨는 평생 그림을 전문적으로 다룬 사람이다. 전국 유명 화가들 그림을 많이 갖고 있다. 매장에 내놓고 장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 사람 창고를 내가 알고 있는데, 이우환 그림도 많다. 다만 그가 시세보다 싸게 파는 만큼, 그림을 다른 데 내다 팔려는 사람에겐 팔지 않는다.”

    6월 말 한 일간지에 ‘위조된 이우환 그림 100억대 거래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위조해 국내외에 유통한 혐의로 A씨 등 7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신동아’의 확인 결과, 이 수사는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맡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내사(內査) 중”이라고 말을 아끼면서 “가짜 진품 감정증명서 등을 첨부해 경매를 통해 위작을 판매하는 수법으로 100억 원대 수입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회화 시리즈로 대중에게 친숙한 이우환(79) 화백은 생존하는 한국 작가 중 가장 저명하고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다. 3월 세계적 권위의 인터넷 미술매체 아트넷(Artnet)이 최근 4년간 경매 낙찰총액을 기준으로 발표한 ‘생존작가 톱 100’에서 이 화백은 43위에 올랐다. 2011년 1월 초부터 2015년 2월 말까지 50개월 간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그의 그림은 333차례 낙찰돼 낙찰총액 4972만 달러(약 562억 원)를 기록했다. ‘톱 100’에 든 한국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



    국내에서도 이 화백은 높은 인기를 누린다. 7월 초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미술경제전문지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에 따르면 이우환 화백의 작품 낙찰총액은 47억8339만 원으로 김환기(62억여 원), 박서보(48억여 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인기 작가에게 위작 시비는 숙명 같은 일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감정평가원)이 2013년 펴낸 10주년 기념백서 ‘한국 근현대미술 감정 10년’(사문난적)에 따르면, 위작이 가장 많이 발견된 작가는 이중섭(108점)이고, 이어 천경자(99점), 박수근(94점) 순이다. 감정평가원은 감정을 의뢰받은 이우환 작품 171점 중 7점을 위작이라고 판정했다.

    위작 논란 탓 ‘선별적 감정’만

    최고 경매가 한국화가 이우환 위작(僞作) 논란
    이우환 작품의 위작 의혹은 2~3년 전부터 국내 미술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한 미술평론가는 “최근 2~3년 간 내가 본, 위작으로 의심되는 그림이 20여 점 된다”며 “그 그림들은 1970년대 후반에 그린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조응’도 있다”고 했다. ‘조응’은 이 화백이 1990년대에 그린 회화 시리즈로 최근 국내 경매에서 100호 사이즈가 1억3000만 원에 낙찰된 바 있다.

    그러나 감정 전문가들이 위작이라고 판단한 그림들에 대해 이 화백이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반박해 감정평가원은 한때 그의 작품에 대한 감정을 중단했다. 감정평가원 관계자는 “진위를 판단하는 데 이 화백과 우리의 견해가 달랐다”고 했다. 감정평가원은 지난해 4월부터 이우환 화백 작품 감정을 재개했는데, 진품이 확실한 작품에 한해서만 ‘선별적’ 감정을 한다. 이 관계자는 “전시회 출품작 등 출처가 확실하고 소장 경위가 명확한 작품만 가려서 받는다”고 했다.

    경찰이 위조 당사자로 주목하는 A씨는 1990년대 언론 보도에 두 번 등장한 인물. 1991년에는 천경자 화백의 가짜 그림을 판매하려 한 혐의로 구속됐고, 1995년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조선시대 고서화 위조단 적발’ 사건을 수사할 때는 가짜 그림 판매 혐의로 수배 대상에 올랐다.

    A씨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고미술상가에서 오래전부터 화랑을 운영해온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의 화랑은 동대문구청이 관리하는 ‘동대문구 문화재매매업소 현황’ 목록에 올라 있다. 하지만 6월 말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간판만 내걸린 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조규용 전 서울답십리고미술회 회장은 “A씨는 1년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으로 중국을 드나들며 위작을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답십리를 고미술 관광명소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일이 터져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취재 과정에서 이우환 위작 구입을 권유받은 적 있다는 미술 컬렉터 B씨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는 최근 3~4년 사이 C라는 미술품 중간상으로부터 78점의 작품을 샀다. 1~2년 소장한 뒤 경매에 내놓았다가 위작이란 사실을 알게 된 작품이 모두 21점이라고 한다.

    최고 경매가 한국화가 이우환 위작(僞作) 논란


    “미심쩍다” vs “100% 내 그림”

    “어느 날 C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우환 그림 두 점을 보여주며 사라고 권했다. 작품당 시세가 2억~3억 원 되지만 소장자 사정이 급하니 현금 1억2000만 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림이 맘에 들어 사진을 찍어놨다. 하지만 며칠 후 ‘가짜니까 500만 원만 내라’고 말을 바꿨다. 기분이 나빠 사지 않았다. 이후로도 이우환 그림을 사라고 여러 번 권유받았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워 사지 않았다.”(컬렉터 B씨)

    사진 1번(‘점으로부터’)과 2번(‘선으로부터’)이 B씨가 C의 사무실에서 찍은 것이다. B씨는 ‘점으로부터’ 캔버스 뒷면에 있는 작가 서명도 촬영했다(3번). 작가들은 보통 자신의 작품임을 증명하려 캔버스 뒷면에 작품명, 작품번호, 서명 등을 적는다.

    1~3번의 사진을 본 미술 전문가들은 “사진을 보고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이우환의 진작(眞作)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술품 감정에 밝은 한 인사는 “2번의 바탕색에서 느껴지는 연대감이 부자연스럽다. 적어도 30년 이상 된 작품이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부족하다”고 평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이우환의 점들은 일직선 위에 놓였지만 미세하게 높낮이가 다르다. 그러나 가짜 그림들의 점은 자를 대고 찍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배열됐다. 1번 역시 그렇다. 심지어 어떤 위작에는 자로 선을 그은 연필 자국까지 보인다”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사학자는 “1970년대 후반 ‘점으로부터’는 일획(一劃)의 느낌이 살아 있다. 그런데 1번은 도장으로 찍은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사진들에 대해 이 화백은 “실물이 아니라서 확답은 못 하지만 100% 내 그림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그림의 느낌을 보면, 가짜 만드는 사람은 이렇게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10월 18일 열린 제1회 한국미술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최명윤 전 명지대 문화재보존관리학과 교수가 ‘이우환 197879’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다. 이는 1978년과 1979년 작품을 중심으로 한 위작 존재 가능성에 관한 것으로, 이 연구가 제기하는 주요 의문은 다음과 같다.

    · ‘No.780XXX’ ‘1978.XX.’ ‘1982.XX-XX’ 등 캔버스 뒷면에 적힌 작품번호 양식이 다양하다.

    · 1978년 그림 뒷면에 적힌 작품번호가 동일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 동 시기(1979년) 그림 3점에 사용된 캔버스가 각각 다른 세 종류다.

    · 1978~79년 그림에 사용된 색소의 원소를 분석한 결과 서로 다른 3종의 색소가 사용됐다.

    · 소장자가 위작이라며 제공한 그림에서 사용된 물감의 색소 원소와 동일한 물감을 사용한 그림이 4점 더 발견됐다.

    이러한 발표 내용에 대해 이 화백은 “아무것도 참고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캔버스와 물감이 다를 수 있고, 뒷면 작품번호는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다. 번호를 적지 않은 그림도 있고, 같은 번호가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인도’와 정반대 양상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979년 10·26 사태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나온 이 그림은 압류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1991년 한 전시회에서 이 그림이 공개되자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술품 감정 전문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 등이 모두 진품으로 결론 내렸고, 1990년 출간된 금성출판사 ‘한국근대회화선집’에 작품 이미지가 흑백으로 실린 것도 발견됐다. 그럼에도 천 화백은 이 그림이 가짜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미인도’는 1991년 전시 이후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현재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

    이우환 작품 진위 논란은 ‘미인도’ 사건과 정반대 양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위작 존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작가 본인은 “가짜를 본 적이 없다”고 하니 말이다. 이 화백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하도 가짜 그림이 있다고들 말해서 지난 몇 년간 눈에 불을 켜고 내 그림들을 봤지만 가짜를 본 적이 없다. 어디에 가짜가 있다고 해서 급히 뛰어가서 본 적도 있지만, 다 가짜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최명윤 전 교수는 “과학기술이 점점 발전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욱 객관적으로 작품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이우환 화백의 기준 작품이 제시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우환은 누구?▼

    경매 최고가 22억…금관문화훈장 받아

    최고 경매가 한국화가 이우환 위작(僞作) 논란
    한국에서 커서 일본에서 서려고 하니 일본 쪽은 나더러 한국적이라며 침입자 취급을 하려 들고, 시간이 흐르니 한국에서는 일본 바람을 탄 도망자로 몰려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더 멀리 설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삼십여 년 헤맸더니, 그 쪽에서는 또 동양적이니 이방이니 하며 칭찬으로 점잖게 제외시키려 들지 않는가.

    -이우환, ‘여백의 예술’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2002년 2월)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서울대 회화과를 다니다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동양 최초의 현대미술운동 ‘모노하(物派)’를 주도하며 일본과 한국, 유럽, 미국 등지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단색화’ 작가로 함께 분류되는 박서보 화백이 쓴 글(‘화랑’ 1984년 가을호)에는 ‘(1968년 무렵) 작업장이 없었던 이우환은 새로 지은 빌딩의 빈 방을 찾아다니며 그 방에 새 주인이 들어올 때까지 무료로 빌려서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때였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1970년대부터 점차 작가이자 미술비평가로 인정받으며 일본 화단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2014년 베르사유궁전 대규모 조각전시회를 열며 세계 미술계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2012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1977년작 ‘점으로부터’가 1520만 홍콩달러(약 22억 원)에 낙찰돼 작가 최고가 및 해외에서 거래된 한국 작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2013년에는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우환 화백은 7월 13일 ‘신동아’에 A4 용지 4장 분량의 ‘이우환 작품 위작 논란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하의 글을 보내왔다. 이 화백은 전문을 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면 사정상 아래와 같이 요약해 싣는다.

    저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의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 등에 대해 입장을 밝힙니다. 상식에 비추어 내사 중인 극비사항이 어떻게 언론에 알려질 수 있으며, 수년 전 이미 수사기관에서 조사하였던 것으로 알려진 사항 등에 대해 언론으로부터 질의를 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요. 위작범이 있다면 조용히 그 실체를 밝혀내면 될 일이지, 미리부터 언론 홍보로 세상을 시끄럽게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감정의 기본은 작가에게 있고, 이는 침범할 수 없는 천부인권입니다. 타인이 감정하려면 대리권을 위임받거나 기타 감정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합니다. 세계 공통의 저작권법은 작가 사후 70년까지 작가 또는 유족에게 법적인 위임을 받아야만 감정 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설 감정단체의 감정 의견은 추정으로, 국가로부터 공인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는 법적 근원을 갖추지 못한 주장 등으로 사회혼란 등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합니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실로 다양하며 전문가들이 30년 이상 연구해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작가와 작품 세계입니다. 이런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작품 세계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작가의 의견 청취 및 법적 근거도 없는 개인 의견을 표명하여 사회 혼란을 조성하려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최고 경매가 한국화가 이우환 위작(僞作) 논란
    점당 수십 억 내지 수백억 하는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이 모작되어 단돈 10만~20만 원에 도깨비시장 등지에서 팔려 나간다는 소문 등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는 저의 작품이 있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저의 작품 중 위작은 발견하지 못하였고, 이에 대해 이미 몇 차례 의견 표명을 하였기에 더는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작 논란 파동을 보면서, 예술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큰 사랑을 바라며 실로 비감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특히 예술은 한번 훼손되면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받습니다. 저는 생애 다하는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술 활동에 매진할 것이며 작품을 세계 각국에 남김으로써 문화 국위 및 민족문화 선양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국인 이우환의 예술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당부드립니다.

    2015년 7월 13일 이우환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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