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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파는 ‘삼중고’ 정시파는 ‘사중고’… 코로나 입시에 N수생만 유리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5-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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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차례 개학 연기로 학사 일정까지 연기

    • 학평 성적 산출 안 돼 대입 전략 구상 ‘깜깜이’

    • 수시파 ‘비교과활동·학생부 기재 요령 변경·입시 정보 공백’

    • 정시파 ‘중간고사·모평·비교과활동·수능 대비 병행’

    • 수시박람회·기말고사 일정 겹쳐 대입 정보 수집 ‘빨간불’

    • “심리적 압박·불안감에 안전·하향 지원할까 봐 걱정”

    4월 9일 서울 강서구의 고3 수험생이 자택 책상 앞에 앉아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4월 9일 서울 강서구의 고3 수험생이 자택 책상 앞에 앉아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대입 전략을 짠다? 지금으로선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가 ‘방구석 모의고사’로 치러졌잖아요. 제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는데, 무슨 재주로 입시 전략을 세우겠어요.” 

    서울 강북구 S일반고 3학년 박선호(18·가명) 군에게 대학입시 전략에 대해 묻자 돌아온 말이다. 올해 고3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입시 준비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감염 전파 우려로 당초 3월 예정이던 학평이 다섯 차례 연기됐다. 학평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고사 형태의 학력 측정 시험이다. 통상 고3은 3월 학평 성적을 바탕으로 대입 전략을 세운다. 그런데 이번엔 학평이 4월 24일, 그것도 학생 각자가 자기 집에서 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감독 없이 진행된 터라 채점과 성적 처리도 하지 않았다. 

    박군은 고1·고2 때 내신 성적 2등급 후반대를 유지한 중위권 수험생이다. 모의고사를 보면 국어·수학·영어 등 주요 영역 모두 2~3등급에 해당하는 성적이 나왔다. 대학입시에서 수능 점수 위주의 정시 전형과 내신 및 비(非)교과활동이 중요한 수시 전형 가운데 어느 쪽에 좀 더 힘을 쏟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학평 성적 산출 안 돼 대입 전략 구상 ‘깜깜이’

    2020학년도 첫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4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 정문에서 교사들이 ‘워킹 스루’ 방식으로 문제지를 전달하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2020학년도 첫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4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 정문에서 교사들이 ‘워킹 스루’ 방식으로 문제지를 전달하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박군은 “학평 성적이 나왔다면 결정하기가 좀 더 수월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내용과 고1·고2 때 응시한 수능 모의고사 성적까지 모두 고려하느라 머리가 깨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박군이 보여준 ‘입시 전략 노트’에는 정시 혹은 수시 중 어느 전형을 지원할지, 수시 가운데에서도 △학생부 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중 어떤 전형이 자기한테 유리할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메모가 가득 차 있었다. 



    서울 도봉구 S자사고에 재학 중인 고3 정재용(18) 군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그는 고3 1학기 내신 성적을 잘 관리하려고 올해 일찍부터 중간고사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등교가 계속 미뤄지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정군은 “그 동안 수능 공부는 사실상 손에서 놓아버린 셈이 돼 마음이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네 차례 연기 끝에 5월 13일로 예정됐던 고3 재학생의 등교·개학은 최근 5월 20일로 또 한 번 미뤄졌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고3 학생이 5월 안에 등교할 경우 대입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고3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럴 경우 고3이 N수생(재수 이상 수험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시에 불리해진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5월 말 개학해 비교과활동은 언제?

    “요즘 수시 준비하는 친구들은 죄다 ‘멘붕(멘탈 붕괴)’이에요. 학교에 나가면 곧장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 싶어요.” 

    서울 M일반고에 재학 중인 김모(18) 군은 기자와 통화하며 여러 차례 ‘빡빡한 스케줄’이란 표현을 썼다. 그동안 못한 비교과활동을 하느라 바빠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고3은 보통 4월 말~5월 초 치르던 중간고사를 6월 초·중순 치를 것으로 전망된다. 7월 초 실시하던 기말고사는 7월 말~8월 초로 늦춰질 공산이 크다. 그사이에 5월 21일 학평, 6월 18일 모의평가, 7월 22일 학평도 각각 치러야 한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촉박한 일정 속에 학생부 비교과활동까지 챙겨야 한다. 비교과활동은 수시 학종의 중요한 평가 지표다. 학생들이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했는지 보여주는 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 등으로 구성된다. 김군은 “독서, 토론,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체험활동, 교내대회 준비 등 학교 수업 외에도 해야 할 게 너무 많다”며 버거워했다. 

    올해부터 학생부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기록 범위가 넓어진 것도 상위권 고3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세특은 과목별 담당 교사가 학생의 수업 참여도와 과제물·수행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을 뜻한다. 과거엔 세특이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보통은 교사들이 특별히 칭찬할 만한 내용이 있는 학생을 골라 세특을 기록해 줬다. 그런데 올해부터 제도가 바뀌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8일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예체능을 제외한 모든 교과 담당 교사가 모든 학생 세특을 기록하도록 했다. 일선 교사들은 이것이 ‘세특 부실 기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S일반고에서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는 김모 교사의 주장이다. 

    “교사가 모든 학생의 세특을 꼼꼼히 작성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심지어 올해는 개학이 늦어져 학생을 관찰할 시간마저 짧다. 세특에 기록할 내용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역량이 떨어지는 교사는 학사 일정에 쫓겨 이른바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의 줄임말)’ 방식으로 세특을 기록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고3은 상대적으로 잘 기록된 세특을 가진 N수생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기말고사와 겹치는 수시 박람회

    2018년 12월 13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2019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 오전부터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몰려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조영철 기자]

    2018년 12월 13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2019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 오전부터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몰려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조영철 기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하는 ‘2021학년도 수시 박람회’가 일선 고교의 기말고사 일정과 겹칠 수 있는 것도 ‘수시파’ 고3에게는 악재다. 올해 수시 박람회는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전국 150여 개 4년제 대학이 참가할 예정이다. 박람회 기간에는 각 대학 입학사정관이 현장에서 수험생을 대상으로 입시 상담 등도 진행한다. 평소 같으면 수시 지원을 준비하는 고3이 기말고사를 마친 뒤 참석했겠지만, 올해는 상당수 학교가 이 무렵 기말고사를 치를 것으로 전망된다. 수시 정보 수집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각 대학이 고교를 방문해 대입 정보를 설명하는 ‘찾아가는 입시 설명회’까지 취소돼 고3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도 속을 태우고 있다. 대학들이 동영상을 활용한 ‘온라인 입시설명회’를 열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서울 노원구 T일반고에 재학 중인 신정혁(18) 군은 “대면 입시 상담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전화 상담도 서울시립대 등 일부 대학만 가능하다고 해 불안하다”고 말했다. 

    신군의 입시 전략은 우수한 비교과 활동을 토대로 학종 전형에 지원해 수시에 합격하는 것. 코로나19로 역대 최악의 불확실성 속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신군과 그의 부모가 느끼는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군 어머니 안미경(52) 씨는 “주요 대학이 고3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오프라인 입시설명회도 대부분 취소한 터라 올해는 입시 정보를 얻기가 더 힘들다”며 “일부 입시 컨설턴트가 대입 핵심 이슈와 개학 연기로 인한 고3 학습 전략, 학생부 관리 노하우를 알려준다고 해 지금이라도 사교육의 힘을 빌려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정시를 준비하는 고3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가장 큰 불만은 “학습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위권 N수생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교육부가 정시 확대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올해 입시에 N수생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학종 등 특정 전형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2023학년도까지 4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게다가 올해 37개 의대에서 신입생 2927명을 선발하기로 해 최상위권의 재수 비율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준비된 N수생’ 강세 전망

    정시를 준비하는 고3 이수민(18) 양은 “애초에 정시는 고3보다 N수생이 유리한 전형이다. 정량평가인 수능 특성상 반복 학습이 효과적인데 N수생들은 고교 졸업 이후 모든 학습 시간을 수능 준비에 쏟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고3은 개학과 동시에 중간고사, 모의평가, 비교과활동, 수능 대비를 병행하는 ‘사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N수생에 비해 수능 대비 학습량이 절대적으로 적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올해 수능일을 11월 19일에서 12월 3일로 2주 연기했다. 학생들은 “그래도 N수생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학교 현장도 고3 재학생의 입시 지도를 놓고 ‘카오스’에 빠졌다. 통상 고교 현장에서는 고3 1학기 초부터 학생의 고1·2 내신과 학평 성적을 토대로 진학지도를 시작한다. 학생 면담을 통해 주력으로 삼을 전형을 결정하고 지원 가능한 대학을 추려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올해는 학평을 통한 기본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소재 S일반고 교무부장은 학교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등교·개학 이후 예정된 전국 단위 학력평가가 총 5개다. 정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수능 성적을 예측해 볼 수 있는 근거 자료지만, 올해는 미뤄진 일정으로 인해 시험 간 간격이 짧다. 이 때문에 한두 번의 시험 성적만 가지고 정확한 수능 점수를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수시 지원을 염두에 둔 학생들은 학생부 교과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을 종합적으로 따져 지원 대학을 결정해야 하는데, 어느 해보다 아이들의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이 커 이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불안한 나머지 지나치게 안전·하향 지원할까 봐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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