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어쩌다 한국은 마약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됐나

[노정태의 뷰파인더] 마약 중독은 질병이라는 자칭 진보에게 고함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2-10-0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밀수 단속량 69.1㎏ → 1272.5㎏

    • 지미 헨드릭스의 마리화나와 차원 달라

    • 스스로가 딜러? 유통이 쉬워진 이유

    • 대마 합법화 네덜란드, ‘마약국가’ 됐다

    • 나이브하고 고리타분한 한국 진보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작곡가 겸 프로듀서 돈 스파이크가 9월 28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작곡가 겸 프로듀서 돈 스파이크가 9월 28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란 말인가?” 요즘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실 고민이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유엔(UN)은 마약류 사범이 인구 10만 명 당 20명 미만인 나라를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2016년 22.5명을 기록함으로써 그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2022년의 대한민국은 마약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나라가 돼 있다. 방금 한 말은 과장도 농담도 아니다.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27개 대규모 하수처리장을 검사한 결과, 모든 곳에서 불법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특히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은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검출됐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누군가가 필로폰을 투약하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우리는 어느새 마약의 왕국에 살게 된 것이다.

    특히 지난 수년간 문제가 심각해졌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 것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의 일.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마약밀수 단속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17년에는 69.1㎏이던 것이 2021년에는 1272.5㎏으로 무려 18.4배나 증가했다. 단지 적발된 양만 늘어난 게 아니다. 마약범죄자 역시 같은 기간 719명에서 4998명으로 6.9배 늘었다. 주로 음지에서 벌어지며 잘 드러나지 않는 마약 범죄의 속성을 놓고 볼 때, 마약이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일보 10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는 대대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뿐 아니라 국가정보원과 관세청까지 동원되는 범정부 차원의 합동 단속이다. 과연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여러모로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사회 한 편에서는 다소 의아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마약은 사회악이며 공권력을 통해 엄격하게 통제돼야 한다는 ‘상식’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한겨레에서 근무한 바 있는 언론인 허재현은 9월 28일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약물 중독은 사회적 질병”이고 “투약은 범죄이지만 중독 자체는 그저 불행한 질병일 뿐”이라며, “돈 스파이크가 사회적 책임을 다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의 회복과 치유를 기원하고 부디 정상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응원하면 될 일”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정치적 지향이 달라도 마약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사례도 있었다. 9월 29일 배우 김부선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마약 중독자를 혐오가 아닌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회가 나서서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마약중독자는 마음이 아픈 환자지 범죄자는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한다. 도취감, 행복감이 너무 강해서 끊을 수가 없다. 완전히 끊는데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들은 나라에서 완전히 끊게 치료해서 사회로 복원시켰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관점의 핵심 주장은 마약 중독을 일종의 질병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러한 견해를 ‘마약 질병설’이라고 이름 붙여 보자. 사회적 논쟁에 대한 모든 논의가 그렇듯 마약 질병설 또한 진실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일단 마약 중독자가 발생한 경우 그를 범죄자로 몰아 사회의 음지로 숨게 하는 건 마약과의 전쟁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약 중독자, 특히 치료의 의지가 있는 마약 중독자는 감옥보다 치료소로 보내는 것이 형사정책, 보건정책, 더 나아가 인권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마약 질병설에는 큰 약점이 있다. 마약 질병설 주장자들은 대체로 범죄에 대해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무언가 범죄로 규정되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임의로 합의했기 때문일 뿐 절대적‧객관적 이유 따위는 없다는 논리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마약 관련 행위, 특히 마약 투약을 범죄로 정하는 것 역시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규정이다. 우리 사회가 마약을 범죄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일 뿐, 특히 대마 같은 이른바 ‘연성마약’은 비(非)범죄화를 하는 게 옳다는 의견을 은연중에 공유하는 셈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말해둘 필요가 있겠다. 위에서 인용한 두 사람은 마약 질병설의 단점에 해당하는 주장을, 적어도 지금 이 시점과 맥락 속에서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마약 질병설은 스스로를 자유롭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예술계 관련인들이라면 적극 동의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반대하려 들지 않는 견해이기도 하다.

    마약 질병설 옹호자들은 항변한다. 마약을 만드는 놈들, 중간에 파는 놈들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나 혼자 혹은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마약을 하는 것이 왜 범죄여야 하는가. 소설가 김영하가 인용한 프랑소와 사강의 말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과연 그럴까? 필자 역시 어느 시점까지는 마약 질병설에 가까운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21세기 들어 바뀐 마약 생산 및 소비의 양상이나 마약 합법화를 택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참상 등을 놓고 볼 때, 여전히 1990년대적인 문화적 일탈과 반항에만 매달리는 건 잘못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약 중독자를 치료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마약 소비와 중독은 결코 ‘피해자 없는 범죄’가 아니다. 마약은 마약이다. 처벌을 전제하고 있어야 중독자 발생을 최소화하고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9월 4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대마를 대규모로 재배해 불법 유통한 일당과 매수‧흡연자 등 총 17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이 중 주범 A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로부터 대마초 29.3㎏(시가 29억 원 상당)과 재배 중인 대마 691주를 압수했다. 사진은 압수한 대마초. [서울경찰청]

    9월 4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대마를 대규모로 재배해 불법 유통한 일당과 매수‧흡연자 등 총 17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이 중 주범 A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로부터 대마초 29.3㎏(시가 29억 원 상당)과 재배 중인 대마 691주를 압수했다. 사진은 압수한 대마초. [서울경찰청]

    중독과 환각을 낳는 THC

    마약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는 흔한 반론이 있다. ‘술은 사회적 해악이 더 심각하다’ ‘담배의 중독성이 더 크다’는 식의 반론, 아니 어깃장 말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대부분 마약 질병설을 취한다. 필자가 대화해본 바에 따르면, 그런 의견을 지닌 이들은 ‘필로폰 같은 강한 마약은 모르겠지만 대마초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 ‘지금 미국에서도 여러 주에서 비범죄화했다’ ‘네덜란드 배낭여행 가면 다들 한번 씩 해보는 것 아니냐, 그게 뭐가 문제냐’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런 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오늘날 생산, 소비되는 대마는 레게 음악의 창시자인 밥 말리나 전설적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같은 이들이 피우던 옛날 마리화나와 차원이 다른 물건이다. 대마가 마약으로 작동하게 하는 성분은 THC(delta-9 tetrahydrocannabinol,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와 CBD(cannabidiol, 칸나비디올)이며 특히 THC는 중독과 환각을 낳는 위험성이 크다.

    문제는 2020년대 현재 생산되는 대마의 THC 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이다. 미국 미주리의학지(Missouri Medicine, 2018 Nov-Dec; 115(6): 482–486)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실상을 확인해 보자. 1990년대 이전까지 콜로라도 일대에서 입수 가능한 대마는 THC 함량이 2% 미만이었다. 지속적인 품종개량이 시도됐으나 1990년대에도 4%대에 지나지 않았던 THC 함량은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12%나 뛰어올랐다. 지금 가장 많이 유통되는 대마 제품의 THC 함량은 17~28%에 달한다.

    이렇게 막대한 양의 THC가 체내에 주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위 논문의 저자는 뉴질랜드에서 수행된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10대 초부터 마리화나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이들은 20세가 됐을 때 평균적으로 IQ(지능지수)가 약 8포인트 낮아졌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현상이다. 논문을 인용해 보자.

    “이미 충분히 IQ가 높은 사람이라면 지능지수가 8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A학점에서 B학점으로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지능지수가 100인 평균적인 사람(50분위)이라면 지능지수 8이 낮아지는 것은 그의 지능 수준이 29분위로 떨어진다는 말과 같고, 이는 그가 확연한 기능 저하를 보인다는 말과 동일하다.”

    미성년자들에게 술과 담배를 금지하듯 당연히 대마도 금지해야 하는 것이지, 왜 미성년자를 걸고넘어지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현실은 전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마뿐 아니라 그보다 더 심한 마약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한번 퍼진 마약은 술이나 담배보다 훨씬 통제하기 어렵다. 술이나 담배와는 물리적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돈 스파이크의 사례

    우리 사회에 마약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 작곡가 겸 방송인 돈 스파이크의 사례를 되짚어 보자. 그가 소지하고 있던 필로폰은 30g. 분식점에서 순대를 포장해올 때 소금을 담아주는 봉투 하나에 다 들어간다. 그러나 30g이면 1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대체로 마약의 독성이 강할수록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중독에 빠뜨릴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오피오드 계열의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은 완전치사량이 2㎎에 지나지 않는다. 연기를 코로 살짝 흡입하기만 해도 중독된다.

    물리적 스케일이 작아진 것은 소위 연성 마약인 대마 역시 마찬가지다. ‘낭만적’ 시절의 대마는 담배처럼 말아서 혹은 물 담배 같은 형식으로 피워야 했다. 20세기의 불량 청소년과 중독자들은 마치 담배를 감추듯 대마를 숨겨야 했지만, 그마저도 몇 번 피우면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의 대마에는 THC가 엄청난 농도로 농축돼 있다. 대마를 비롯한 모든 마약은 수십 명, 수백 명 혹은 그 이상이 소비할 수 있는 분량을 한 사람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비교적 쉬운 반면, 술이나 담배는 그렇지 않다.

    이 물리적 스케일의 차이는 유통의 차이로 이어진다. (물론 담배는 국가가 전매하고 있으나, 그 점을 논외로 할 때) 어지간한 골초라 해도 담배 유통업자가 되지는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가 주류 도매상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마약중독자가 마약 딜러를 겸하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워낙 비싼 탓이기도 하지만 마약의 부피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약 딜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마약 중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며 은밀하게 유통할 수 있다. 남에게 몰래 먹이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우리에게 들려오는 마약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자. ‘강남 클럽에서 접대부에게 몰래 마약 먹여 사망’ ‘마약 딜러가 고객을 늘리기 위해 파티를 벌이고 마약 유통’ 등등. 마약은 중독자를 통해 다른 이에게 퍼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중독자는 또 다른 중독자를 만들어낸다. 마약의 생산이나 유통과 달리 소비만큼은 ‘피해자 없는 범죄’이며 개인의 자유라는 식으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누군가 마약을 쓰기 시작하면 그 주변인들이 마약 중독에 빠질 확률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마약 사용 역시 피해자를 낳는 범죄다.

    7월 6일 여종업원 A씨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 입구에 마약 사용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찰은 전날 오전 7시 54분쯤 마약 투약으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당국과 함께 출동했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숨졌다. [뉴스1]

    7월 6일 여종업원 A씨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 입구에 마약 사용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찰은 전날 오전 7시 54분쯤 마약 투약으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당국과 함께 출동했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숨졌다. [뉴스1]

    네덜란드 판타지

    그렇다면 대체 왜 세상에는 마약, 특히 대마초를 합법화한 국가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최근 그 대열에 들어선 미국의 일부 주도 그렇지만, 진작부터 대마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어떨까. 사람들이 정부의 통제 하에 마약을 사용하게 하는 건, 네덜란드의 경우를 놓고 볼 때, 괜찮지 않을까.

    1976년 제정된 네덜란드의 마약법은 1인당 하루 5g의 해시시(마리화나의 일종) 사용을 법적으로 허용한다. 연성 마약을 허용해 더 큰 범죄를 막겠다는 계산이었으나,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돈 스파이크는 이번 사건 이전에 대마로 세 차례 전과를 쌓았다. ‘연성 마약’은 더 강한 마약에 대한 수요를 낳는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한다. 2000년 시작된 성매매 합법화는 그런 상황에 불을 붙였다. 조직폭력단을 어엿한 사업가로 만들어 돈세탁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준 행위와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네덜란드는 전혀 괜찮지 않다. 2021년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네덜란드가 유럽 마약산업의 허브이자, 마치 콜롬비아 같은 ‘마약국가’가 돼 있다고 비판하는 큰 특집을 내보냈다.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네덜란드에서 마약 관련 범죄로 살해된 사람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189명에 달한다. 네덜란드의 마약 담당 경찰은 범죄 조직의 테러 우려로 인해 가명으로 일한다. 2021년 7월 범죄 탐사보도 기자인 페테르 R. 더프리스(Peter R. de Vries)가 총으로 살해됐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고 끝도 아닐 것이다. 네덜란드의 ‘자유분방한’ 마약 정책은 분명히 실패했다.

    마약 질병설을 고집하는 이들을 보며 필자가 느끼는 감정이 답답함에서 분노로 넘어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언론인, 문화예술인, 기타 진보 성향을 지닌 여러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이 설파하는 마약 질병설은 현실과 너무도 괴리돼 있다. 나이브할 뿐 아니라 고리타분하다. 그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1990년대의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마를 담배와 비교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그 무렵이라 해도 네덜란드의 치안은 속으로 곯아 들어가고 있었다. 며칠, 몇 주의 여행, 길어야 몇 년 정도의 유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마약 문제에 대해 낭만적 생각을 품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런 ‘네덜란드 판타지’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마약 문제의 반론 근거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은 숨 가쁘게 달라지고 있는데, 왜 대한민국 진보는 20세기의 낡은 관점으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않는 걸까.

    진보적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열악한 노동의 영역이 있다. 적은 돈을 받고 혹사당하며 사람이 망가지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평생 묶여서 고통 받는, 이른바 ‘노예 노동’이다. 그런 사례를 접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노한다. 특히 진보적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 그렇다. 누가 봐도 분명한 노예 노동뿐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대부분의 노동마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왜 마약의 사용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하려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마약은 신경의 쾌락·보상중추를 망가뜨린다. 한번 마약을 하면 계속 더 많은 양을 찾게 된다.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다. 마약은 결코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유의 토대인 자유의지를 생물학적으로 교란하기 때문이다.

    이미 마약에 중독된 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고 사회의 음지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판타지’가 현실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20세기에나 통했던 그런 낭만적 사고방식은 21세기의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돼야 한다. 현실에 맞춰 관념을 바꾸는 것, 그리하여 더 많은 이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