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제로 슈거’에 ‘열량 표시’까지… 소주 판 바뀔까

[유통 인사이드] 소주 1병이 320㎉?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1-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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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처럼 새로’ 대박 나자 열량 낮춘 ‘진로이즈백’

    • 2025년까지 주류 열량 자율표시제 시행

    • ‘헬시 플레저’ 열풍에 소주 도수 16도까지 낮아져

    • ‘공병 공용화 협약’ 깨고 ‘투명 병’도

    • 잠잠하던 소주 시장, 경쟁 복잡다단해져

    소주 업계에 알코올 도수를 낮춘 것은 물론 열량까지 낮춘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 [뉴스1]

    소주 업계에 알코올 도수를 낮춘 것은 물론 열량까지 낮춘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 [뉴스1]

    국내 소주 시장 1위 업체인 하이트진로가 1월 자사 소주 제품인 진로이즈백을 리뉴얼해 내놨다. 기존과 달리 당류를 사용하지 않아 제품 라벨의 왼쪽 아래에 ‘제로 슈거(Zero Sugar)’ 마크를 넣었고, 알코올 도수도 낮췄다. 열량 표기도 적용했다. 칼로리는 기존보다 10㎉ 낮은 320㎉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오리지널’과 ‘참이슬 후레쉬’ ‘진로이즈백’ 등 여러 소주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이 중 한 제품을 재단장한다는 소식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 리뉴얼의 배경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국내 소주 시장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업체들의 경쟁 구도와 업계 현황을 읽을 수 있기 때문. 앞으로 기업들의 대응 전략에 대해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제로 슈거 앞세운 ‘새로’ 소주, 판 흔들어

    지난해 9월 롯데칠성에서 ‘제로 슈거’를 앞세워 출시한 ‘처음처럼 새로’는 3개월 만에 2700만 병이 팔리는 등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화두에 올랐다. [롯데칠성]

    지난해 9월 롯데칠성에서 ‘제로 슈거’를 앞세워 출시한 ‘처음처럼 새로’는 3개월 만에 2700만 병이 팔리는 등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화두에 올랐다. [롯데칠성]

    하이트진로가 진로이즈백을 리뉴얼하자 업계에서는 경쟁사의 신제품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가장 먼저 나왔다. 지난해 하반기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한 바 있는 롯데칠성음료(이하 롯데칠성)의 신제품 ‘처음처럼 새로’(이하 새로)다.

    롯데칠성은 지난해 9월 이 제품을 출시했다. ‘처음처럼’ 출시 후 16년 만에 선보이는 소주 신제품이라는 점에서 일단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과당을 사용하지 않은 ‘제로 슈거’라는 점을 앞세워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기존 소주 제품들은 95%의 알코올로 된 주정에 물과 감미료 등 첨가물을 섞어 만든다. 이때 감미료로 넣는 과당은 무색무취인 주정의 맛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새로의 경우 과당을 빼고 천연 감미료로 대체해 맛을 살렸다. 이를 통해 나트륨과 탄수화물, 당류, 지방,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콜레스테롤, 단백질이 모두 0%가 됐다.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새로는 출시 후 석 달 만에 2700만 병을 팔아치우며 시장에 안착했다. 첫달 판매량은 680만 병을 기록했고, 이후 월 700만 병, 1300만 병 등 갈수록 증가세를 보이며 인기몰이를 했다.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의 경우 출시 70여 일이 지나서야 판매량이 1000만 병을 돌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상적인 수치다.

    롯데칠성의 이런 시도는 최근 소비 흐름에 딱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식품업계에서는 최근 ‘헬시 플레저(Healthy+Pleasure)’라는 용어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헬시 플레저란 건강과 즐거움의 합성어로 건강을 즐겁게 관리한다는 의미다. 무가당 소주는 술을 마시며 즐기면서도 제로 슈거로 건강까지 챙기려는 이들을 겨냥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로 슈거의 경쟁력은 이미 탄산음료 시장에서 검증된 바 있다. 그간 탄산음료 시장에서는 2006년 한국코카콜라가 ‘코카콜라 제로’를 출시한 뒤 시장을 독점해 왔는데 지난해 롯데칠성이 공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제로 슈거 탄산음료를 찾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모양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제로 슈거 탄산음료 시장 규모는 2022년 2189억 원으로 2016년 903억 원에 비해 142.41% 증가했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정부 정책의 변화로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주류 제품 열량 자율표시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주류 제품의 열량 자율표시를 확대하기로 했다. 소주와 맥주는 병 제품부터 적용하고 캔 용기는 기존 포장재가 모두 소진되면 자율적으로 열량을 표시하도록 한다.

    그간 주류 소비자는 열량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큰 관심도 없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식약처가 앞서 2017년 주류 영양정보 제공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열량 등 정보를 제품에 표시하도록 했지만 권고에 그쳤고 여론의 관심도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건강 중시 움직임 반영한 ‘주류 열량 자율표시제’

    점차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업계 분위기도 바뀌었다. 2021년 10월 한국소비자원이 20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주류의 열량 표시가 필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소비자가 소주를 고를 때도 일반 식품처럼 영양 성분과 열량을 따져보고 고르려는 수요 역시 늘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하이트진로가 리뉴얼한 진로이즈백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5도에서 16도로 낮췄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 역시 알코올 도수가 16도다.

    국내 소주 시장은 2000년대 이후 ‘순한 소주’ 경쟁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1위 업체인 하이트진로가 1998년 알코올 도수 23도의 신제품 ‘참이슬’을 출시한 뒤 경쟁이 본격화했다. 이후 두산주류(현 롯데칠성음료) 등 경쟁사가 도수를 낮춘 제품을 내놔 시장을 흔들었다. 하이트진로가 더 낮은 도수 제품을 출시해 반격에 나섰고, 또다시 경쟁사들이 줄줄이 따라 내리는 흐름이 반복됐다.

    실제 2001년 두산주류가 22도짜리 ‘산(山)’을 출시하자 하이트진로는 참이슬의 알코올 도수를 곧장 22도로 낮췄다. 이어 두산주류는 2006년 ‘처음처럼’이라는 신제품을 20도로 만들어 출시했다. 그러자 진로 역시 같은 해 19.8도로 순해진 ‘참이슬 후레쉬’를 내놨다.

    이처럼 저도 경쟁이 이어지면서 애초 30도 이상이던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이제 16도 정도까지 낮아졌다. 진로이즈백의 도수를 낮춘 것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가 조만간 16도 소주 제품을 출시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8월 16.9도이던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진로이즈백과 동일한 16.5도로 낮춘 바 있다. 이로써 참이슬 후레쉬와 진로이즈백의 도수가 같아지면서 소주 포트폴리오가 겹치게 됐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부드럽고 순한 맛’을 강조하는 진로이즈백의 도수를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진로이즈백이 출시 3년 만에 10억 병을 팔아치우는 등 인기를 이어가자 섣불리 도수를 낮추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새로가 출시 초 예상보다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결국 도수를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른바 혼술, 홈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무알코올 제품 시장이 급격하게 큰 바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규모는 2012년 13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4년 81억 원에서 2020년 150억 원, 2021년 200억 원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에는 2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만큼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주 업계 트렌드, 낮은 도수 + 투명 병

    2019년 하이트진로가 뉴트로 열풍에 맞춰 ‘공병 공용화 협약’을 깨고 ‘투명 병’으로 출시한 ‘진로이즈백’은 출시 3년 만에 1억 병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이트진로]

    2019년 하이트진로가 뉴트로 열풍에 맞춰 ‘공병 공용화 협약’을 깨고 ‘투명 병’으로 출시한 ‘진로이즈백’은 출시 3년 만에 1억 병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이트진로]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소주 제품의 알코올 도수 역시 앞으로도 지속해 낮아질 거라는 전망이 많다. 업체들이 출시한 과일소주의 경우 13도가량인데, 이보다 조금 높은 수준까지는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소주 도수를 낮추면 원재료인 주정(알코올)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제조 원가가 낮아진다는 지적도 있다. 업체들이 도수를 더 낮출 이유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한 소주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도수를 낮추면 맛이 소주답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제는 국내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으로 16도 이하 제품도 충분히 ‘소주답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도수를 낮추면 원가가 절감된다는 지적에는 “도수를 낮추면서도 소주 맛을 유지해야 하기에 또 다른 재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결국 생산 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새로의 병이 진로이즈백과 유사하게 ‘투명 병’이라는 점에서도 소주 업계에 나타나는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사실 기존 초록 병 소주에서 벗어난 제품을 내놔 ‘히트’를 친 건 진로이즈백이 먼저였다. 그런데 당시 이 제품은 업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이트진로가 소주 업체들이 맺고 있던 ‘공병 공용화 협약’을 깼다는 지적이었다.

    국내 소주 제품들은 ‘초록 병’ 일색이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다. 1994년 당시 두산주류(현 롯데주류)가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초록 병에 담긴 ‘그린 소주’를 내놨고, 이 제품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투명 병 일색이던 소주 시장에서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초록 병이 반향을 일으킨 것. 그러자 경쟁사들이 앞다퉈 초록색 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주 시장 1위였던 진로 역시 1998년 내놓은 참이슬에 초록 병을 적용했다.

    너도나도 소주를 초록 병으로 출시하자 환경부는 2009년 주요 소주 업체들과 함께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병 색깔뿐만 아니라 모양과 크기까지 통일한 뒤 타사의 병이라도 세척한 뒤 라벨만 새롭게 붙이자는 게 골자다. 이렇게 하면 재활용이 더욱 원활해지고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하이트진로가 2019년 이른바 뉴트로 열풍에 맞춰 내놓은 진로이즈백이 예상 밖의 히트를 치자 경쟁사들이 발끈하기 시작했다. 특히 업계 2위인 롯데칠성이 앞장서서 ‘태클’을 걸었다.

    통상 진로이즈백처럼 다른 형태의 병은 일정 비용을 받고 해당 제조사에 돌려주곤 했다. 그런데 이 ‘비용’을 어떤 식으로 책정하느냐를 두고 두 업체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롯데는 수거한 진로이즈백 빈 병 400만 개가량을 공장 앞마당에 쌓아두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가 진로이즈백으로 소주 시장 점유율을 50%대 초반에서 60% 이상으로 끌어올리자 위협을 느낀 롯데가 이를 경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이트진로 측 역시 다른 지방 소주 업체들도 종종 비표준 병에 담긴 제품을 선보인 적이 있는데 롯데가 진로이즈백에만 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3년 만에 롯데 역시 투명 병의 새로를 내놓은 것이다.

    잠잠하던 소주 판에 균열, 전략 재편 필요

    진로이즈백에 이어 새로도 시장에 안착하면서 그간 초록 병 일색이던 국내 소주 시장에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일각에서는 소주 제품의 차별화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라도 다양한 종류의 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오랜 기간 국내 소주 시장은 브랜드별 점유율의 변화가 크지 않아 비교적 잠잠한 편이었다. 도수를 단계적으로 낮췄던 점을 제외하면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지만 최근 과당을 빼거나 열량을 줄이고, 병에도 변화를 꾀하는 등 소주 시장의 경쟁이 점차 복잡다단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소주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 처지에서는 갈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지지만 소비자의 경우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나쁠 게 없는 흐름”이라며 “이제 소주 업체들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마케팅 전략을 다각화하는 등의 계획을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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