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IMF 때보다 달러 9배 많지만…” 다시금 허리띠 졸라 맬 때

세계경제 둔화에서 침체로 진입할 듯

  •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gsk@hanyang.ac.kr

    입력2022-10-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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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연준 6월부터 세 차례 자이언트 스텝

    • 美 코로나19 침체에서 벗어나, 물가 잡기 총공세

    • 경기 못 살린 신흥국, 美 행보에 ‘테킬라 위기’

    • 외국인 자금 유출·외환보유액 감소·대외채무 증가

    • 산업구조 개선 및 비용 감축 노력 필요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7월 27일(현지 시간) 워싱턴 연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이언트 스텝(0.75% 금리인상) 결정과 관련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연준은 이후 9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강행했다. [AP/뉴시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7월 27일(현지 시간) 워싱턴 연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이언트 스텝(0.75% 금리인상) 결정과 관련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연준은 이후 9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강행했다. [AP/뉴시스]

    긍정적인 경제 신호를 찾기가 어렵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무역수지 적자, 소비침체, 가계부채 누증, 주가 하락…. 어느 것 하나 좋아 보이지 않는 험난한 경제 상황이다. 연일 발표되는 경제 기사는 ‘사상 처음’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경고한다. 코로나19는 끝날 생각이 없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얼마나 장기화할지 가늠할 수도 없다.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기후위기까지 녹록지 않은 여건이다. 심지어 ‘1997년 한국 경제를 강타한 IMF 외환위기가 또다시 오는가?’ 하는 질문도 끊이지 않는다.

    끝 알 수 없는 美 긴축 행보

    2022년 하반기 이례적인 물가상승은 강한 금리인상 행보를 유인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이 6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씩 인상했다. 이는 1994년 이후 28년 만으로 보기 드문 거인의 행보 즉 ‘자이언트 스텝’이었다. 미국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통화정책 기조의 전환을 천천히 함으로써 시장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약속 ‘베이비 스텝 룰(Baby Step rule)’도 잊은 듯하다. 빅 스텝에 이어 자이언트 스텝을 연거푸 단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치솟는 물가만큼이나 미국의 물가 잡기 행보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2022년 8월 25~27일 개최된 잭슨홀 미팅에서 세계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연설에 주목했다. 그는 “연준은 물가상승률을 2% 목표치 아래로 끌어내리는 데 집중할 것이고, 그것은 연준의 책무다(focus right now is to bring inflation back down to our 2 percent goal. Price stability is the responsibility of the Federal Reserve…)”라고 발언했다.

    연준은 물가 등의 지표를 확인하면서 의사결정을 한다. 물가상승률이 2023년에도 2% 이하로 떨어지기 어려운 국면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긴축적 통화정책의 행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2022년 하반기 빅 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지속해 2023년 들어 물가상승세가 어느 정도 진정된다면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 정도로 금리인상 속도가 완만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MF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World Economic Outlook Update)에서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22년 7.7%, 2023년 2.9%로 전망했는데, 이는 곧 미국의 긴축 기조가 유지될 것을 암시하는 근거가 된다.

    문제는 불균형한 긴축 행보에 있다. 2022년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다만, 미국 경제는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탄탄하게 회복된 터여서 물가 잡기에 주력할 만한 여건이다. 경기라는 토끼는 이미 잡았고, 물가라는 토끼만 잡으면 되니 보폭을 늘리며 긴축 행보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흥국들은 국가 내부적으로 아직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만약 이들이 미국의 속도에 발맞춰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면, 정상화 문턱에 들어선 ‘경기’라는 토끼마저 놓칠 판이다. 강한 달러의 시대인 데다 긴축의 시계가 국가마다 따로 돌기 때문이다. 미국의 긴축 행보는 매우 빠르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균형 글로벌 긴축, 신흥국에 몰려온 먹구름

    사실 미국으로서는 달러 강세가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강달러가 미국 경제에 주는 좋은 영향도 있고 나쁜 영향도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 닥친 과제는 오로지 ‘물가’이기 때문에 강달러를 동원해 수입 물가부터 잡는 것이 미국 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상쇄하는 방편이 된다.

    반면 신흥국들은 이미 심각한 위기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이집트는 3월 IMF에 추가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헝가리는 5월 2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집트, 아르헨티나, 튀르키예는 IMF가 제시한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에 미달한 데다가, 단기외채 비율도 높아 대외 지급 능력도 매우 열악한 상태다. 또한 주요 신흥국의 3분의 2가 에너지 순수입국임을 고려하면, 달러화 강세는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물가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결국 신흥국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정부 재정은 바닥났고, 생산원가 부담 등에 따라 기업들의 재무구조도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는 경기둔화에서 경기침체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껏 금리인상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시간적으로 격차를 두고 작용했다. 즉 미국의 경기침체는 2023년에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요 신흥국들은 2022년 하반기에 이미 위기가 코앞에 닥쳤고, 이는 글로벌 경기침체를 부추길 최대 악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 다른 문제는 신흥국들에 유입된 해외 자본이 유출되면서 외환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달러 강세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회피를 부추겨 신흥국 투자자금을 회수하게끔 유도한다. 이에 따라 신흥국 자산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고, 금융 불안도 야기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외채다. 선진국들이 시중금리를 올리면 신흥국들의 차입 비용이 상승하고, 추가 자금조달도 어렵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달러 표시 부채가 증가하고, 달러 강세로 인한 외채 상환 부담도 가중되는 이중고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테킬라 위기(tequila effect)의 재현도 우려된다. 테킬라 위기는 한 국가의 경제위기가 주변국으로 번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테킬라는 멕시코 특산물인 다육식물 용설란의 수액을 채취한 즙을 증류시켜 만든 전통술인데 과거 테킬라에 이웃 나라들이 모두 취한 것처럼 경제위기가 인근 국가에까지 확산된 데서 나온 말이다. 1994년 12월 외환 사정 악화로 멕시코는 금융위기에 처했고,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자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로 위기가 확산한 바 있다.

    현재 신흥국 가운데 이집트, 터키, 아르헨티나, 헝가리 등이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주요 신흥국들의 대내외 건전성을 점검해 보았을 때 취약 신흥국들은 경상수지 적자 폭이 크거나, GDP 대비 외환보유액이 적으며, 장기외채 대비 단기외채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내적으로도 물가상승세가 높고, 정부 재정도 취약하다. 그 밖에도 튀니지,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등과 같은 저소득 개발도상국들이 부채 상환이 어려운 고위험국으로 진단된다. 각 신흥국의 위기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경우 상당한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제2의 IMF 외환위기’ 올 가능성 낮아

    문제는 한국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같은 국가 부도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진단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도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한미 기준금리 역전’으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을 때 자금 유출이 강할 것이라는 추측은 상식선에서도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기준금리 역전만으로 자금 유출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실제 외국인 자금 유출입은 기준금리 차 외에도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기간에 공통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 건 아니다. 2005~2007년에는 약 21조9000억 원의 외국인 자금 순유출이 일어났지만, 2018~2020년이나 2022년에는 각각 약 16억6000억 원, 5조9000억 원의 순유입이 일어났다.

    오히려 기준금리 역전이 시작되기 6개월 전부터 자금 유출이 집중된 것을 생각해야 한다. 돈의 이동은 심리에 영향을 받고, 선행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들은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을 미리 가늠하고, 돈을 이동시켜 왔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2022~2023년 기간에는 추가적인 자금 유출이 있을 것이라 예단할 수 없고, 이로 인한 외환위기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둘째, 외환보유액(foreign exchange holdings)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자. 외환보유액은 한 나라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축하고 있는 외화 자금을 의미한다. 국가의 비상자금으로서 안전판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긴급사태 발생으로 금융회사 등 경제주체가 해외에서 외화를 빌리지 못해 대외결제가 어려워질 경우에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last resort)로 기능한다.

    현재 한국은 강달러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외환 당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화 매도에 나섰고,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 외환보유액은 2021년 말 약 4631억 달러에서 2022년 9월 말 약 4168억 달러로 줄었다. 향후에도 강달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외환 당국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급등락하는 불안정한 외환시장 환경에서는 외환 당국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달러를 사거나 팔아 안정화하기 때문이다.

    2008년에도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었고, 한국 경제가 급격히 둔화했지만,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진 않았다. 외환보유액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세계 8위 수준(2022년 8월 기준)인 데다가 IMF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9배가량으로 현저히 높다. 향후 외환보유액이 추가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로 인해 외환위기가 올 것으로 판단할 만한 근거를 찾기는 부족하다.

    셋째, 대외채무(Foreign Liabilities)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자. 대외채무는 한 나라의 거주자가 비거주자에게 미래 특정 시점에 금융 원금 또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확정 채무 잔액을 뜻한다. 반대로 대외채권은 한 나라의 거주자가 비거주자에게 원금 또는 이자를 회수하게 될 확정 채권 잔액을 뜻한다. 순대외채권은 대외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값이다. 순채권국은 외국에서 빌려온 돈(외채)보다 외국에 빌려준 돈(대외채권)이 더 많은 나라를 뜻하고, 반대의 경우 순채무국이라고 한다. 이는 각국의 대외건전성 등 대외 지급 능력을 판단하는 기초자료가 된다.

    외환위기는 외국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일 때 발생한다. 한국은 1990년대 순채무국이었고, 2000년대 순채권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순대외채권의 규모 면에서 견조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최근 대외채권이 줄고 대외채무는 늘어 순대외채권이 급격히 감소했는데, 면면을 살펴보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외채(대외채무)가 늘고 있을지라도, 만기가 1년 이상인 장기 외채를 중심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 외채 비중은 38.4%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만약 단기 외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급격한 자금 유출로 대외 지급 자금이 부족하게 될 수 있다. 또한 국가 지급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1990년대 기업들이 과도한 외채에 의존해 무분별한 투자를 집중했던 기간이 그러했다. 반면 2020년대 기업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한 시점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신흥국에서 위험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현재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또다시 올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위기관리는 필요하다. 외환위기까지는 아니지만, 외환건전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고, 원자재 가격도 언제든 급등할 채비를 하는 듯하다. 무역수지 적자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가 적자가 고착화할 위협에 있다. 그 나름 견고했던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무너질 수 있다.

    더구나 주변 신흥국들의 불안은 한국에 추가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이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기준금리 차가 더 확대될 경우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출될 수도 있다. 신흥국 위기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하고, 주요 기업들의 공급사슬과 금융거래 등을 파악해 위험이 전이되는 일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대응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또한 산업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1996년 당시에도 IMF 외환위기의 조짐은 나타났다. 수출액은 감소하고, 대외채무는 폭증하며 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데도 구조 개선을 단행하지 않고 과다한 외채를 끌어와 과잉투자를 벌였다. 스스로 구조 개선을 하지 않았고, IMF에 의해 구조 개선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허리띠를 다시금 졸라 매야 한다. 사업 확장보다는 축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매출을 늘리기보다 비용을 감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유실되는 비용이 있는지 점검하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대외채무를 줄이고, 취약 신흥국들로부터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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