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풍부한 오일 달러로 재건 삽 삼엄한 경비…외국인 테러 全無

미군 철수 이후 국내 언론 최초 바그다드 입성

  • 바그다드=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12-28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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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부한 오일 달러로 재건 삽 삼엄한 경비…외국인 테러 全無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라크 어린이들(오른쪽 위).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저소득층 주거지. 작은 주택 하나에 10여 명이 모여 산다.

    풍부한 오일 달러로 재건 삽 삼엄한 경비…외국인 테러 全無

    테러 방지용 티월(T-wall).

    2012년 12월 9일 에미리트항공 EK941 항공기가 굉음을 내면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공항 활주로를 이륙한다. 창문 너머로 자본주의의 풍요와 현시욕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성물산이 건설한 865m 높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가 송곳 형태로 치솟아 있다. 야자나무 모양을 한 세 개의 인공 섬이 바다에 떠 있는 게 보인다. 두바이는 ‘팜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이 구조물을 띄우는 데 140억 달러를 썼다.

    비행기가 페르시아 만을 따라 북쪽으로 비행한다. 카타르, 바레인 같은 ‘부자 나라’가 서쪽 아래로 스쳐지나간다. 두 나라는 원유를 팔아 부를 일군 중동의 강소국(强小國). 비행기는 쿠웨이트 상공을 지나면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두바이를 떠난 지 1시간 45분 만에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석유 매장량 세계 2위 국가의 국제공항 시설은 1980년대에 멈춰 서 있었다. 오랜 불안 상황 탓이다.

    아랍에미리트, 카타르가 부를 늘려갈 때 이라크는 싸웠다. 최근 30년 동안 잇달아 전쟁을 치르면서 티그리스의 유려한 강물이 빚어낸 대지는 폐허로 변했다. 2011년 12월 공공의 적으로 여기던 미군이 완전 철수했으나 이라크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 1980~1988년 이란과의 전쟁, 1990년 쿠웨이트 침공, 1991년 걸프만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2006~ 2007년 내전이 남긴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종파 및 정파 간 대립과 갈등의 앙금이 여전하다. 정국이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이라크는 재건의 삽을 뜨기 시작했다. 누리 카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재건사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둬 국민의 신망을 얻으려고 한다. 이라크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재건사업에만 25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신동아가 국내 언론 최초로 ‘미군 철수 이후의 바그다드’를 다녀왔다.

    테러 사망자 하루 12명 수준



    도요타 랜드쿠르즈가 알 자드리아가(街)를 달린다. 장갑차가 방탄시설을 갖춘 랜드쿠르즈를 컨보이 한다. 도로 일부 구간에 로켓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방호벽인 티월(T-wall·T자 모양의 강화 콘크리트)이 설치돼 있다. 바그다드의 명물이던 바빌론호텔이 옛 영화를 잃은 모습으로 서 있다. 2010년 이 호텔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36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다쳤다. 그린존(Green Zone·특별경계구역) 밖에 위치한 호텔은 사실상 휴업 상태다.

    다수 전문가는 이라크의 현재 상황을 ‘비대칭 전쟁’이 마무리되는 단계라고 분석한다. 비대칭 전쟁은 국가 간 전쟁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살상 수법이 잔혹하다. 테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선전포고는커녕 항복도 없으며 휴전·정전 협상을 할 주체를 찾기도 어렵다. 2006~2007년 내전 때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사라졌지만 종파 및 정파 간 대립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2012년 초만 해도 바그다드공항과 도심의 그린존을 잇는 도로에는 티월이 끊기지 않고 서 있었다. 공항에서 도심에 들어가는 동안 도시 풍경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것. 현재는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도로의 극히 일부에만 티월이 설치돼 있다. 치안 상황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는 방증이다.

    2006년 2만8000여 명에 달하던 한 해 테러 사망자는 2011년 4000여 명으로 줄었다. 하루 평균 12명 수준으로 테러가 급감한 것. 2012년 사망자는 3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시아파에 대한 수니파의 공격

    도심 밖에서 그린존으로 들어가려면 최소 4개의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수년간 그린존 안에서는 폭탄테러가 벌어지지 않았으나 그린존 입구에서 테러가 발생한 적이 딱 한 차례 있다. 2012년 9월 17일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가 그린존 입구에 차를 몰고 와 폭탄을 터뜨려 7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당한 것.

    풍부한 오일 달러로 재건 삽 삼엄한 경비…외국인 테러 全無
    2007년 이후 테러 발생 횟수와 희생자 수가 빠르게 줄고는 있으나 바그다드는 여전히 위험한 도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각국 기업 임직원들이 막 재건의 삽을 뜨기 시작한 이라크 시장을 탐색하고자 바그다드를 찾는 터라 경호업이 활황이다. 바그다드에서 고용 창출이 가장 활성화한 분야가 경호 비즈니스다.

    알리 무히 씨(42)는 한 경호업체에서 팀장으로 일한다. 1개 팀은 방탄차량 6대와 경호원 12명으로 이뤄져 있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10개 팀을 운영한다.

    “바그다드 시내에서 2주일 전 작은 폭탄이 터졌는데, 우리가 잘 안내해 고객이 다치지 않았다. 순수 이라크 경호회사와 외국 합작 형태의 경호회사가 있다. 우리 같은 이라크 회사가 실력이 더 뛰어나다.”

    무히 씨는 고객을 경호할 때 방탄차량 2대를 투입한다. 차량이 고장나거나 피격되는 경우에 대비한 것. 차량마다 2명의 무장경호원이 탑승한다. 방탄장비를 갖춘 SUV 측면 유리창에 총알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총알은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머리를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피격을 당했다. 방탄유리 덕에 고객은 다치지 않았다.”

    무히 씨의 팀원 한 명이 2008년 바그다드의 한 검문소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찍은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준다. 테러리스트가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총으로 쏘는 화면이다.

    “과거의 바그다드는 이렇듯 무서운 곳이었다. 지금은 생각보다 안전하다.”

    주요 도로에는 1~2㎞ 간격으로 군과 경찰의 장갑차가 서 있다. 또한 경계탑을 세워놓고 도로를 감시한다. 부유층 거주지엔 어김없이 티월이 설치돼 있다. 경찰이 부촌(富村) 입구에서 검문을 한다. 장갑차가 호송하는 차량에는 VIP가 타고 있다.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는 “가택연금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사관 밖으로 나갈 때는 이라크 정부가 경호차량을 붙여주는데, 공적 업무가 아닌 일로 외출하면서 경호원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대사관은 그린존 밖에 위치해 있다.

    민간 경호업체는 호송차량으로 장갑차 대신 무장트럭을 사용한다. 이 트럭 짐칸에는 2m 높이의 엄폐물이 설치돼 있다. 경호원이 엄폐물 안에 숨어 기관총을 들고 전방·측방을 경계하면서 고객이 탄 뒤따라오는 차량을 경호한다.

    치안 상황이 과거보다 크게 나아진 데다 경호업체가 맹활약하면서 2011년 12월 미군 철수 이후 테러로 인해 사망하거나 납치된 외국인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이라크는 소수파인 수니파가 장기 집권하다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시아파가 권력을 잡았다. 시아파인 알 말리키 총리와 수니계 주도의 이라키야당을 양축으로 정치권이 다투고 있다. 이라크 인구는 시아파 65%, 수니파 35%로 구성돼 있다.

    테러집단은 수니파보다 시아파에 더 많다. 시아파 테러리스트는 미군 철수 이전 미군과 서방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 시아파 내부가 친미와 반미로 갈려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미군 철수 이후 시아파가 벌인 테러는 극소수다.

    수니계 알 카에다의 테러활동은 외국인이 아닌 시아파를 향한 공격에 집중해 있다. 수니파 과격집단은 시아파와의 대립을 통해 수니파의 결속을 다지고자 한다.

    시아파 축제 때마다 수니파에 의한 테러가 벌어진다. 2012년 11월 29일 시아파 성일(聖日)인 아슈라를 맞아 성지 순례자를 겨냥한 폭탄 공격이 잇달아 발생해 31명이 사망하고 98명이 다쳤다. 아슈라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손자 이맘 후세인이 서기 680년 수니파에 의해 살해된 날로 시아파 최대의 애도일이다.

    요컨대 미군 철수 이후의 테러 양상은 수니계 알 카에다가 시아파 행사 때마다 테러 공격을 저지르고, 외국 공관과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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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점이 거의 없다보니 거리에서 생필품을 판다. 길거리의 양고기 가게.

    원유 수출 年1000억 달러

    폐허라는 단어가 바그다드보다 더 잘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포탄을 맞아 벽에 구멍이 난 작은 주택에서 10여 명이 모여 산다. 저소득층 거주지는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재건축 현장을 연상케 한다. 1980년대 건설한 도로는 정비를 하지 못해 울퉁불퉁한데다 신호등, 표지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교통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한국에서 1990년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중고차가 자주 눈에 띈다. 자동차 측면에 한글로 ‘수능 완전 정복’이라고 적은 학원버스, ‘주 예수를 믿으라’는 문구가 적힌 옛 교회차량이 바그다드 거리를 오간다. 독일제 고급 승용차를 타는 부자도 없지 않다.

    현대자동차 SUV 산타페도 잘 팔린다. 두바이에서 중계무역으로 들어온 것. 도심에서 가장 럭셔리한 상점이 현대·기아자동차 대리점이다.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도로에서 눈에 띄는 신형 소형 트럭의 대부분이 기아자동차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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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정부는 가난하지 않다. 연간 3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2500만 배럴을 수출한다. 원유 수출로 월 80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수출의 95%, 재정수입의 90%가 원유 수출에서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라크의 원유 생산능력이 2020년 6100만 배럴, 2035년 8300만 배럴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재건사업에 쓸 돈은 부족하지 않은 것.

    경제성장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1년 9.6%, 2012년 12.6%(추정치) 성장했다. 2012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500달러로 추정된다.

    보수하거나 새로 지을 것이 널렸고, 자금도 상당히 확보하고 있는데, 정치 불안정 탓에 재건사업에 나서지 못한 게 바그다드의 ‘어제’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오늘’은 재건이라는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라크 정부 경제정책 핵심은 두 가지다. 전기 주택 보건 교육 등 국민서비스를 확대하는 것과, 재건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원유 생산 증대다.

    이라크 정부는 2013년부터 5년간 2500억 달러를 재건사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에 50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2025년까지 주택 200만 호를 짓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1단계로 500억 달러를 투입해 100만 호를 짓는다. 한화건설이 그중 첫 번째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유전 개발 외엔 이라크 진출을 꺼리던 서구 기업이 이라크 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한화건설이 주택재건 사업의 첫 삽을 뜬 것은 이라크발(發) 중동특수와 관련해 한국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라고 김현명 대사는 말했다.

    최근 2년간 바그다드에 지사를 세운 한국기업은 한화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중공업 STX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16개다. STX중공업은 2012년 6월 이라크 전력청이 발주한 900MW 디젤발전 프로젝트를 완공했다. 7월에는 이탈리아 ENI가 발주한 이라크 오일·가스 처리플랜트 계약도 따냈다. 현대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은 플랜트 수주에 주력하고 있다.

    김현명 대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12월 10일 16개 한국기업 지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여러분은 국가대표라고 말씀드렸다. 지금이 진출의 적기다. 정보를 탐색할 때가 아니라 진출을 결정할 시기다. 이라크는 선점 효과가 큰 시장이다. 현재 가격으로 20년 동안 원유만 팔아서 20조 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 보수적으로 판단할 때 그 정도다. 이라크는 주택건설은 물론이고 정유공장 발전소 송배전시설을 새로 짓고 국영기업 현대화에도 나서야 한다. 한국기업의 먹을거리가 널려 있다. 미군 철수 이후의 정국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이라크는 그들 나름대로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있다. 경제력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서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도 갖고 있다. 인내를 갖고 10년 앞을 내다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대사관을 나와 전쟁 탓에 폐허가 된 마을 앞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슬픈 눈빛으로 손을 내민다. 폐허가 된 나라에서 고된 삶을 사는 저 어린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바그다드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뒤 바그다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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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다드 도심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 신분증을 살펴보고 폭발물 검사를 한다.

    바그다드 시내의 무역전시장에서 만난 하마드 알 하산 씨(34)는 이라크의 미래와 관련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같은 부자 나라가 될 필요는 없다. 전쟁, 테러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기업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아바스 알 카비 씨(49)의 바람도 간결했다. 그는 중동의 명문이던 바그다드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우리는 저주받은 세대예요. 27세 때 걸프전이 일어났습니다. 1991년부터 서방의 경제 제재가 시작됐고 한창 일할 나이일 때 경제가 엉망이 됐습니다.”

    이라크는 현재 실업률이 40%에 달한다. 대학을 나와도 일할 곳을 찾기 어렵다.

    “사담 후세인 시절이 그리우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친다.

    “후세인을 좋아하는 이라크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는 폭정을 했습니다.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사람이에요.”

    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리비아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이라크에 돌아왔다.

    “후세인의 이라크가 싫어 리비아로 떠났습니다. 후세인이 권좌에서 쫓겨난 후 희망을 품고 이라크에 돌아왔습니다만…. 미국이요? 후세인만큼 미워요.”

    알 카비 씨는 소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영국식 악센트가 있는 영어로 대답했다.

    “stability(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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