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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18)

18세기 미국 헌법의 힘

국가보다 ‘개인’을, 해방 너머 ‘자유’를

  • 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18세기 미국 헌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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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인 토크빌(1805~59)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1835~40년에 간행된 것임에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서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결합시킨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청교도 식민으로 시작된 미국사회는 처음부터 평등하고 공화주의적이었으며, 신분제나 귀족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조건, 둘째, 자유로운 법제도, 특히 영국의 정치문화를 계승한 지방자치와 단체 활동의 보장, 셋째, 관습화된 사회규범, 특히 정교분리에 의해 기독교가 내면화하여 자유의 남용을 억제하는 점 등이다. 법제도의 측면에서는 특히 사법의 역할, 연방제에 의한 분권시스템의 역할, 다원적 사회시스템-단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토크빌은 이러한 조건의 미국에서는 사회적 평등 위에 민주주의가 기능을 발휘하며, 활발한 상업활동과 정치적 자유가 낳는 끝없는 동요도 질서 속에 수렴돼 혁명이나 무정부 상태와는 멀어진다고 보았다.

반면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무질서하고 폭력적인 이유는, 귀족세력이나 가톨릭의 집요한 저항에 부닥친 시민들이 어쩔 수 없이 혁명을 통해 권력을 얻고자 한 때문이라 했다. 토크빌은 이는 민주주의의 정통성이 아직 사회 전체에 침투하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평등을 정착시켜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미국에 비추어보면 민주주의와 혁명은 별개이고, 도리어 평등이 확립되면 될수록 혁명의 위험은 멀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토크빌은 미국에서도 혁명, 무질서와는 다른 문제로서 ‘다수의 폭정’이나 ‘여론이 전제(專制)로 변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즉 평등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획일화하고 다수의 권위가 절대화하면, 정신의 자유는 질식하고 의견의 다양성은 상실된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미국에 대한 분석을 떠나 민주사회와 귀족사회를 유형별로 논한 ‘미국의 민주주의’ 제2권에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그는 민주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와 물질적 행복에의 과도한 집착은 공공 의무와 사회적 연대를 잊게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경향이 영미 정치문화와 대조적인 대륙의 집권제와 결합할 경우, 물리적 강제가 없어도 만인은 관료통제에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토크빌의 경종은 대중사회와 복지국가, 나아가 전체주의까지, 20세기의 정치를 예언한 것이었다.

토크빌의 유저(遺著) ‘구제도와 혁명’은 프랑스 혁명이 전제로 끝난 과정을 탐구한 것이다. 이 책은 혁명에 의한 역사의 단절을 강조하는 통설에 반해 프랑스 행정의 집권적 구조가 구제도에서 비롯됐으며, 혁명은 구왕정의 계속에 불과하다고 보아 그 연속성을 강조했다. ‘봉건잔재의 일소’라는 혁명의 과제 또한 실은 혁명 이전에 귀족이나 단체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 지적한 토크빌은, 관료지배하의 정치적 자유 상실이라는 구체제의 병폐가 혁명 후에도 치명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크빌은 몽테스키외의 사회적 인식과 관습에 대한 관심, 귀족 정신과 더불어 영미 제도 및 문화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19세기의 몽테스키외라고도 불린다. 또한 동시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과도 교류했다. 밀은 ‘자유론’에서 ‘다수의 폭정’이라는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 비판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토크빌은 생존 당시에는 범유럽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으나 사후 곧 잊혀졌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대중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의해 민주주의가 도전받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특히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서 마르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사도로까지 여겨졌다. 특히 자치와 분권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는 그의 사상은 민주주의의 본질로 환영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의 조국인 프랑스에서는 최근까지 무시되었다. 프랑스의 반미 감정과 마르크스주의가 그 최대 요인이었으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앞에서 본 전통적 국가상과의 충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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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cc.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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