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들판엔 나락 익어가고 산에는 빨간 오미자와 보랏빛 머루가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3-08-25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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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도 잠 잘 때 어두워야 깊은 잠을 잘 수 있듯 곡식도 밤에는 어두워야 잘 자라리라. 논주인 할머니가 왜 가로등을 끄고 싶어했는지 이제는 알 만하다.
    들판엔 나락 익어가고 산에는 빨간 오미자와 보랏빛 머루가

    곳간 앞에서 곡식을 말리는 필자

    올 여름에도 손님이 여러분 오셨다. 그 가운데 인상 깊은 손님이 있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남자 세 분이 왔다. 한 분은 전에 뵌 적이 있는 귀농인이다. 우리 동네에 귀농한 처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동네 총각을 데리고 오셨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면소재지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서 왔단다. 서두르지 않고 살려는 모습이 엿보이는 분들이다. 늦은 점심을 해서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쪽 총각 소개, 우리 동네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그러고 있는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우리 동네 처녀 한 분이 찾아왔다. 얼마나 반가운가.

    먹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고 함께 밥을 먹는데, 우리 동네 처녀가 논에 풀을 뽑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 소리에 손님들이 돕겠다고 나서고. 논주인 처녀는 논 꼴이 창피하다며 사양하고. 손님들은 귀농한 사람끼리 그걸 이해 못하겠냐고 하고. 결국 바짓가랑이 걷어붙이고 함께 논에 들어갔다. 그 논이 바로 우리 집 아래라 김 매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나 듣기 좋은지. 서로 인연이 닿든 아니든,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부럽다. 우리 부부가 도시에서 사귈 때와 달리,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일 마치고 밥 한 끼 따뜻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행복을 찾아서

    귀농하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 처녀 총각이 꽤 있다. 한창 나이이기도 하고 ‘노’자가 붙은 처녀총각이기도 하다. 마을 빈집을 빌려 혼자 살면서 힘닿는 만큼 농사를 짓고. 홀가분해서 그런지, 이웃집 일을 돕는 여유가 있다. 집에 돈 안 들고 먹을거리 자급하니, 생활비 얼마 안 든단다. 일년에 한두 달 일하여 벌어 쓰니, 일년 대부분을 농사하면서 자유롭게 산다. 그 자유가 신선하다.

    며칠 전 젊은 새댁이 아이랑 왔다. 언뜻 보면 처녀같이 고운 나이다. 도시에 살다 올 여름 시골로 내려왔단다. 남편과 아이 둘 모두 네 식구가, 마을 빈집을 빌려 이사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이야기를 한다. 아이도 지렁이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아직 농사계획은 세우지 못했다는데, 그러면 어떡하나 마음이 불편할 듯한데, 그런 기색은 없고 편안해 보인다.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하루하루에 만족하는지. 구멍가게 하나 없는 시골집.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에 둘러싸여 사는 생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집을 거저 빌려준 집주인에 감사하고. 마을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예뻐하시는 이야기를 한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 어린아이를 둔 젊은이들도 귀농을 한다. 그것도 교통도 불편한 산골에 있는 시골집으로. 수도꼭지에서 더운 물이 나오는 아파트를 떠나, 겨울이면 행주가 얼어붙는 시골집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아간다.

    나이 든 어른들은 귀농하면 어찌 먹고 사느냐, 돈 걱정부터 하곤 한다. 우리가 귀농하던 몇 해 전에는 더욱 그랬다. 이 사회에서 떨어져 어디 무인도라도 가는 것 마냥 받아들이는 분도 많았다. 그 사이 사회가 다양하게 바뀌고, 또 귀농하는 이들이 늘어나 전국 곳곳에 귀농학교가 열린 지 몇 년. 이제 젊은이들은 귀농을 ‘어려운 결단’이 아닌 ‘행복을 위한 선택’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막상 부닥쳐 살아보면 어려움이 많겠지. 하지만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들어오며 ‘과연 살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내 모습과 견준다. 그런 나도 이렇게 사는데 기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땅에 탄탄히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마을 빈집에 살 때였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두 분이 싸우신다. 가만 보니 한 분은 가로등을 켜자고, 다른 한 분은 그걸 끄자고. 마을 옆에 논이 있다. 논주인 할머니는 불을 끄자고. 집주인 할머니는 불을 켜야 한다고.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랐다.

    새로 집 지은 이곳은 가로등이 없다. 이웃집 불빛도 제법 멀다. 그러니 우리 집 불을 끄면 어둠뿐. 하루는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절대 고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믐이었다. 그믐의 어둠과 고요. 어둠과 고요가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

    거꾸로 밤에 자려고 모든 불을 다 꺼도 대낮처럼 환할 때가 있다. 사물이 하나하나 다 보여, 마당의 흙 알갱이까지 보이는 날. 그런 날은 보름이지.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한밤중에 논으로 내려가 논둑을 거닐기도 한다. 달빛을 받고 서 있는 벼들. 달빛이 벼 잎으로 스며드는 느낌. 보름달이 신비하다.

    전깃불에 익숙해져 보름이 뭔지 그믐이 뭔지 모르고 살아왔다. 서울 아파트에 살 때, 딸애 유치원에서 달을 관찰해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밤에 나가 거닐며 밤하늘을 보았지만 달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 달보다 더 환하고 큰 가로등.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마다 불빛을 쏟아내고, 그러고도 모자라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그 속에서 달을 보기는 힘들었다.

    이제야 알지만 달이 밤하늘에 늘 떠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보름달은 긴 밤 내내 보이지만, 초승달과 그믐달은 때를 알고 보아야 한다. 초저녁에 잠깐 떴다가 지거나 새벽에 나타나기도 하니.

    자연에 살아가니 달이 보인다. 달이 차오르고 기우는 데 따라, 보름에 환한 달빛을, 그믐에 어둠을 그대로 맞이할 기회가 있다. 달이 보이니, 어두울 때 어둡고 환할 때 환해야 자연에서 자라는 곡식도 사람도 제대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위해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천지 운행을 기록하여 달력을 만들고, 육갑을 정하여 하루하루를 이해하였고, 경험을 정리하여 풍년과 흉년을 점치고, 때와 땅에 맞춰 농사하는 법을 연구·정리하였다. 옛 농사 책 ‘산림경제(山林經濟)’를 보면 곡식마다 심고 거두기에 좋은 날을 자세히 정리해놓았다. 하나를 들어보면, “벼 파종은 무(戊)일이나 기(己)일, 계(季)일(음력 18일)에 하는 것이 좋다. 벼 파종을 꺼리는 날은 인(寅)일, 묘(卯)일, 진(辰)일이다.”

    인디언 이야기인 ‘The education of Little Tree’를 보면 인디언 할아버지가 씨 뿌리는 날을 잡는 이야기가 나온다. 밤하늘을 살펴보고, 바람 부는 것도 살펴보고, 새 소리도 듣고 씨를 뿌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안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루돌프 슈타이너. 그는 옛 독일 농부의 지혜가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하며 농업강좌에서 ‘식물의 생장에는 우주 전체가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슈타이너의 제자인 마리아 둔은 40년 넘게 실험하고 연구하여 한 해 농사력을 만들고 있다. 정농회는 그 농사력을 가져와, 해마다 우리나라에 ‘생명역동농법 농사력’으로 소개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세계다.

    곡식도 밤에 어두워야 잘 자라

    비가 오기에 앞서, 서리가 오기에 앞서, 그 조짐을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아직 자연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달력에 빼곡이 적어놓고, 거기에 따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자연의 흐름이 조금 보인다. 그래서 정농회에서 내는 생명역동농법 농사력에 따라 농사를 해왔다.

    해, 달, 별의 움직임에 따라 작물의 열매, 꽃, 잎, 뿌리에 좋은 시간이 있단다. 거기에 맞춰 열매, 꽃, 뿌리, 잎 그리고 쉬는 시간을 달력으로 표시하고 있다. 오늘이 열매의 날이라면 곡식을 심거나 돌보고. 잎의 날이라면 잎을 먹는 남새 농사를 한다. 뿌리의 날이라면 무, 감자와 같이 뿌리식품을 심고 가꾸고. 농사일을 쉬는 게 좋은 시간인 휴경일도 있다.

    우리가 농사력에 따라 살아가니, 한가하게 이웃집에 마을을 가면 이웃이 “오늘이 휴경일”이냐고 묻기도 한다. 해마다 봄이면 한 해 농사력을 받아보는데, 일년 365일 날마다 적당한 때를 미리 내다보는 농사력의 신비. 몇 년을 따라하다 보니 몇 가지 나름대로 몸에 익기 시작한다.

    하늘이 열리고 날이 맑을 때 곡식을 심고, 거두고. 비가 오고 흐릴 때 잎채소를 돌보지. 왠지 음산한 기운이 도는 날은 대부분 휴경일이기 쉽고. 날이 맑은 날은 꽃의 날이나 열매의 날이다. 봄에 장 담글 때 보면 신기하다. 우리 전통의 장 담그는 날인 말(午)날. 이 날은 어김없이 맑고, 또 열매의 날이나 꽃의 날이곤 하다. 열매를 먹는 나무나 곡식은 달이 차오를 때 심는다. 달이 차오르는 기운. 그 기운을 받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뿌리를 먹는 무, 고구마, 감자는 달이 기울 때 심는다. 달이 기우는 기운을 받고 땅 깊이 들어가라고.

    사람도 잠잘 때 어두워야 깊은 잠을 잘 수 있듯, 곡식도 밤에는 어두워야 잘 자라리라. 앞에 이야기한 논주인 할머니가 왜 가로등을 끄고 싶어했는지. 이제는 알 만하다.

    들판엔 나락 익어가고 산에는 빨간 오미자와 보랏빛 머루가

    밭에서 거둔 콩, 팥이 마당에 그득하다.

    하루아침에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백로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니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하여 ‘백로-흰 이슬’이라 한다. 그래도 한낮엔 햇살이 뜨거워 파리와 모기 돌아다니지만, 밤에는 군불 때고 잔다. 계절이 바뀌는 때다.

    들판의 나락도 어느새 빛깔이 바뀌어 올벼 논은 누렇고, 늦벼 논도 누릿누릿하다. 풀 기세가 하루가 다르게 수그러들고 가을꽃이 하나 둘 피어난다. 물도랑에 고마리가, 비탈길에 여뀌가 잔잔히 깔리고, 물가에 갈대가, 산기슭에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산에 오미자가 빨갛게, 머루는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들에 곡식이 익어간다.

    추수철이 다가오니 온 들에 먹을거리 넉넉하다. 그래서 이맘때 추석이 들어있지. 수수 이삭 영글면 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 꺾어다 밥 위에 쪄 먹고. 고구마 밭을 지나며 한두 포기 후비고, 땅콩 밭을 지날 때면 한두 포기 뽑아, 살짝 쪄서 먹으면 구수하고 싱싱하다. 알이 영글기 시작하는 콩과 팥을 한두 포기 꺾어다 풋콩, 풋팥을 밥에 놔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김장거리 솎아다 비벼 먹어도 좋다. 가을 농부만이 맛볼 수 있는 밥상이다.

    농사 첫해 가을을 생각해본다. 집 마루에 곡식 자루가 쌓이고, 처마 아래 옥수수가 줄줄이 걸리고. 마당에는 나물 말리는 채반, 여기저기 늙은호박이 굴러다니는데. 부자가 따로 없이 우리가 부자구나. 도시서는 목돈을 만져도 느끼지 못했던 배부름을 느꼈다. 가을걷이 맛. 그 맛에 가을걷이 힘든 줄 모르곤 했는데….

    올 가을걷이는 어떨까? 여름 내내 쉬지 않고 내린 비. 곡식들은 고스란히 그 비를 맞았다. 뿌리는 늘 물차서 지내야 했고. 해 난 날이 손꼽을 정도니 햇살도 온기도 모자라겠지. 올 가을 곡식이 제대로 여물까? 사람이 자연한테 저지른 대가겠지. 농사를 하다 보면 가뭄이든, 큰비든, 바람이든, 겪으면서 곡식이 여물곤 했다. 올 여름 긴 장마를 이기고, 곡식이 여물어주기를 빈다.

    쥐한테 바치고 말아서야

    농사 첫 해 가을. 동네 어른들의 숱한 걱정과 충고에도 농약은 물론 비료 한번 안 주고 기른 나락. 여물어, 거둘 때가 되었다. 첫 농사이니 새 포대도 마련했다. 나락을 거두어 몇날 며칠을 말리고 손질하여 포대에 담아 마루에 가지런히 쌓아놓았다. 마을 빈집을 빌려 살 때니 곳간이 따로 없어 마루 위에 쌓아놓았다. 집 안팎을 드나들며 보고 또 봐도 뿌듯하고 든든했다.

    며칠 뒤, 방아를 찧기로 했다. 맨 위 포대부터 들어내 싣기 시작했다. 그 밑 포대를 들어내니 어, 이게 뭐야. 껍질이 수북하다. 나락 껍질이. 쥐가 어느새 나락을 까먹고 남겼나보다. 쥐똥도 보인다. 아뿔싸. 모두 드러내고 살펴보니, 쥐가 포대마다 구멍을 뚫고 나락을 뽑아먹었고, 한 포대는 아예 진을 치고 살았는지 헐빈하다. 우리도 아직 맛보지 못한 나락을 쥐가 먼저 드신 셈이다. 포대마다 구멍을 뚫어 못 쓰게 만들고.

    그때부터 쥐와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뒤부터 마을 어른들 도움말을 듣고, 새로 쌓아놓았다. 그래도 쥐는 들어오고. 사람이 무어든 쌓아놓는 곳에는 여지없이 쥐가 탄다. 쥐를 없애려면 사람도 산짐승처럼 그때그때 먹이를 찾고, 따로 쌓아놓지 않고 살면 되겠지. 뭔가를 쌓아놓는 한 쥐가 나타난다.

    하루는 이웃집 아지매가 우리한테 “그 집 쥐가 우리 집까지 와. 어떻게든 해!” 그 소리를 들으니 황당했다. ‘아니, 쥐에, 이 집 쥐, 저 집 쥐가 있나?’ 억울한 소리 들은 마음이었지. 조금 지나 쥐와 전쟁을 치르며 살아보니, 우리가 쥐를 키운 셈. 이웃 눈에는 우리가 쥐를 키우는 꼴이 보이니 그런 소리를 했겠지. 농사하려면 심고 거두는 일뿐 아니라 그걸 잘 갈무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지 않으면 애써 농사해 놓고 쥐한테 바치고 만다.

    우리 집 지으며 곳간도 지었다. 나름대로 온갖 지혜를 다해 짓는다고 지었는데, 그래도 쥐를 당해낼 수 없었다. 어디론가 쥐가 들어오는데…. 곳간에 든 걸 모두 드러내고 쥐가 들어온 구멍을 찾는데. 쥐는 천장 합판을 뚫고 들어왔다. 바닥과 모서리도 위험했다. 곳간은 살림집을 짓고 남은 자재를 활용하여 지었기에 흙벽돌로 벽을 쌓았다. 지붕에도 흙을 얹고. 마을 어른들 도움말을 다시 듣고, 결국 곳간 천장을 양철로 뒤집어씌웠다. 또 벽 모서리마다 시멘트로 발랐다. 그리고 곳간 바깥벽에는 무얼 쌓아놓지 않도록 조심한다.

    올해도 가을걷이에 앞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곳간 점검이다. 곳간을 비우고. 어디 쥐 탈 곳이 없나 점검을 해두고. 손볼 곳이 있으면 봐야겠다.

    아침저녁 찬바람, 한낮에 가을햇살이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이 돌아오니 하루해가 나날이 짧아진다. 반바지 반팔 옷장에 넣고, 긴 바지 긴 팔 꺼내는 철이다. 길가에는 보랏빛 쑥부쟁이 곱게 하늘거리는 사이 쑥꽃이 눈에 띄지 않게 피고 진다. 산에는 으름, 밤이 벌어지고 도토리가 떨어진다. 아침 해 뜨기 전에는 찬이슬이 옷을 적시고 저녁 해는 순식간에 떨어지니 가을걷이하는 일손 부지런히 움직인다.

    가을걷이는 때를 맞춰 해야 한다. 그만큼 때가 중요하다. 잘 여물어 밭에서 아무리 좋아도, 거두어 자루에 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참깨는 잘 되었다가도 하루 바람이 몰아치면 그대로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그 작은 참깨를 흙 사이에서 추려낼 수도 없고. 때를 놓치면 콩도 팥도 꼬투리에서 터져나오고. 나락도 논에 세워놓았다가 때를 놓치고, 비가 오면 논에 서 있는 나락에서 싹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논밭을 돌면서 곡식이 여무는지 살펴보고, 때맞춰 거두어야 일년 농사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다. 봄에 씨 뿌리는 건 며칠 미룰 수 있지만 가을걷이는 미룰 수 없으니 바쁘게 돌아간다.

    일 중의 일 나락 털기

    일 중의 일은 나락 터는 일이다. 들판에 나락이 누렇게 익으니 차례대로 올벼부터 베고 턴다. 벼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근본이 되는 양식이다. 그렇기에 양이 많든 적든 가을걷이 중심이 된다. 추석 전에 베고 터는 올벼도 있지만, 벼 타작은 9월 말이 되어 본격 시작된다. 그래서 벼 타작 이야기는 다음달에 풀어보려 한다.

    콩과 팥잎이 하나둘 낙엽 지며 여무니 익는 대로 베고. 기장 수수 여물면 이것도 베어 털어야 하는데 손이 닿지 못한다. 그러면 이삭만 베어 말렸다가 나중에 털 요량으로 포대에 넣어두기도 한다.

    곡식만이 아니라 반찬거리도 저장한다. 검붉은 고추를 따서 말리고. 가지, 애호박, 늙은 호박, 애박, 토란대, 고구마 줄기 말리고, 깻잎 따서 겨울 반찬 준비도 한다. 산에서 얻은 오미자, 밤, 도토리도 말려 겨울 양식으로 저장한다. 아침이면 내다 널고 저녁이면 거두어들이고. 마치 장꾼처럼 햇살 좋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널어 말린다.

    가을걷이하는 사이 김장 무, 배추 농사도 열심히 해야지. 배추는 알이 차게 보살피고, 무는 북을 주어야 한다. 갓, 쪽파, 알타리는 싹이 제대로 올라오나. 가물면 물을 주고 웃거름을 주어 알뜰히 보살핀다.

    아무리 바빠도, 가을걷이를 들에서만 하나, 산으로도 하러 간다. 한낮 햇살 따가울 때 잠깐 앞뒷산에 가을걷이하러 가는 거다. 밤송이 벌어지니 알밤을 줍고, 바람 불고 나면 도토리를 줍고, 오가는 산길에서 으름 다래 딴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 주먹밥을 싸서 소풍 삼아 길을 나서기도 한다. 길목에서 으름 따서 먹어가며. 발길 닿는 대로.

    한번은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저 위로 가면 다래 덩굴이 좋은 곳. 거기 다래가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올라가는데, 작은애가 그 윗길이 아닌 옆으로 가자고 했다. 멈칫 서서. 어찌할까? 아이가 가자는 쪽은 풀이 대단해 망설였다.

    남편이 낫으로 길을 내니 덤불에 덮여 길이 숨어 있었다. 아이가 가자고 하는 쪽으로 접어들었는데, 거기가 다래 밭일 줄이야. 다래 덩굴이 물길 따라 나지막하게 뻗어서 따 먹기도 좋고. 다래를 반찬 삼아 주먹밥을 먹고 샘물 마시고. 전에 산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곳이었는데. 이제, 어머니 품에서 아이가 뛰어놀 듯, 산 품에서 열매 따먹으며 자연을 느낀다.

    처음부터 산에서 가을걷이를 할 수 있나. 서울 살면서 오미자, 다래, 으름은 보지도 못했으니 어떤 게 다래인지, 으름인지 알아야지. 으름은 집 둘레에도 흔하고, 어릴 때 한번이지만 먹어본 적이 있어, 쉽게 배웠다. 으름을 알아보고 나서, 으름은 다 익어 벌어진 걸 먹어야지 덜 익은 걸 먹으면 얼마나 떫은지도 먹어보며 배웠고. 잘 자란 으름은 바나나처럼 굵고 길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다래와 오미자는 그리 쉽지 않았다. 산에 살면서 한 발 한 발 산으로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오미자를 본 것은 작은애가 어린이 요리책에 나온 오미자 물을 해달라고 해서다. 우리 면 소재지가 오미자로 유명한 동네. 하지만 가까운 이웃에 오미자를 키우는 집은 없다. 그래서 장에 나가 그걸 사다가 먹기부터 시작했다. 빨갛고 새콤달콤한 오미자. 보기도 좋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단다. 아이는 몸에서 당기는지 아주 달게 먹는다. 산에 있다니, 내 손으로 오미자를 거두어보고 싶었다.

    소풍 삼아 남덕유산으로 가보았다. 으름은 여기저기 보여 따먹으며 돌아다녀도 오미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웃 집들이에 갔는데, 그 집 주인 말이 바로 뒷산에 오미자가 많은지 마을 사람들이 한 짐씩 해온단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빠져나와 무작정 산으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아, 거기 빨간 열매가 있었다. 하나 따서 먹어보니 새콤달콤한 오미자. 아하, 이게 오미자구나. 벌써 누군가가 훑고 간 뒤니 몇 개 없지만 그래도 오미자 덩굴이 이거구나 알 수 있었다. 자꾸 산에 가고 싶어지고. 그러면 이 길 저 길 돌아다니며 오미자가 있나, 살펴본다.

    산을 돌아다니며 어쩌다 노다지 찾듯 오미자와 다래를 찾지만 그렇게 모아봐야 얼마 되나. 오미자는 덩굴을 찾으면 한번 우려먹을 정도는 딴다. 다래는 그 자리에서 먹을 정도고. 으름은 흔하지. 밤은 아이들과 함께 주우면 재미있다. 한 알 한 알 밤송이에 찔려가며, 일일이 허리 숙여가며 주워 담아도, 넉넉히 줍는 때가 있다. 많이 주우면 뭐하나, 저장하기 어렵다. 산밤은 얼마나 벌레가 잘 스는지. 벌레 먹어 그 아까운 것을 많이 버렸다. 그러면서 밤 저장하는 지혜가 늘어 지난해부터는 알뜰히 말려 겨우내 먹었다.

    이맘 때 해질 무렵 차를 타고 길을 지나노라면 할매들마다 등에 한 짐씩 지고 걸어가신다. 그 속에 도토리가 들어있겠지. 도토리 상수리도 주우면 겨우내 양식 되지. 묵도 쑤고, 과자나 빵 만들 때 넣어서 먹어도 좋고. 그 연세에 도토리 주우러 산을 다니니 건강에도 좋겠다. 한데 우리는 넉넉히 주워본 적이 없다. 아직 알 굵은 참나무를 찾지 못했다. 우리 동네는 어디에 좋은 참나무가 있을까? 때가 되면 나도 저렇게 도토리를 한 짐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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