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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의 발견’

넉넉한 마음으로 만나는 신(神)

  • 김한승 성공회 신부, 사회선교국장 khs411@yahoo.co.kr

‘신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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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과 아미타일불

이들의 대화 속에서는 기독교의 유일신(唯一神) 사상이나 정토진종의 아미타일불(阿彌陀一佛) 사상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츠키는 가네코 다이에이라는 불교 학자의 말을 인용해 아미타 신앙은 수많은 부처 중 한 분을 믿는 ‘선택적 일신교’임을, 모리 주교는 야훼 신앙이 이스라엘을 둘러싼 고대 근동 지방의 다신교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음을 강조함으로써 절대 유일 신관을 우회적으로 거둬들인다. 실제로 석가나 예수, 마호메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유일신, 혹은 절대 신으로 치부한 적이 없다. 모두 후대의 추종자들이 구미에 맞게 각색하거나 교리화한 것들이다.

본원적 가르침에 대한 현실종교의 왜곡과 과장은 비단 신관(神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죄, 축복, 구원의 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가령 성서는 그 어디에도 ‘원죄’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 않다. 천당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거나 물질적 풍요를 축복이라 말하는 것도 근거 없는 가르침이다. 하물며 신의 이름으로 거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하고 전쟁까지 불사하는 현실종교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참으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죄와 화해의 사도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모리 주교의 평가는 공감 가는 일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일을 행해온 교권과 교회사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1990년대 중반 성공회(聖公會)는 전통 교회의 ‘천당과 지옥 교리’가 신을 ‘상벌을 주는 가학적 존재’로 묘사해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신은 가학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모리는 ‘천국의 문 앞에서 일일이 머리를 숙이며 사죄하는 하느님’을 말한다. ‘심판하는 신’ ‘용서하는 신’으로 묘사한 엔도 슈샤쿠보다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실제로 역사 속에 오신 예수는 ‘함께 하신 하느님(임마누엘)’으로서 ‘희생하고 용서하며’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건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악할 수 있는 존재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하느님을 닮은, 부처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그 모습을 회복하고 누릴 수 있을 때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정토(淨土)의 세계인 것이다.

‘인간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성서의 말씀에 모리는 역설적이게도 ‘빵 없이 살 수 없음’을 말한다. 문명은 지금껏 그 숙명의 길을 선택해온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인간이 그 숙명 앞에서 ‘빵 없는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 또한 성서의 믿음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신을 보라

이츠키는 석가가 사후의 세계나 영혼의 문제에 대해 지극히 말을 아꼈음을 상기시킨다. 모리 역시 성서가 말하는 종말사상이나 천당과 지옥의 가르침이 지닌 다양한 함의를 여러 각도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천국(하느님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단선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모리는 ‘회개’의 원어적 의미를 환기시키며 ‘삶의 방식을 바꾸고(메타노이아)’ ‘신을 바라볼 것(슈브)’을 권하고 있는데 독자, 특히 습관적 신앙과 물신주의에 경도된 오늘날의 신앙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말이다.

고난과 종말을 이기는 힘도, 천국을 차지하는 비결도 끝까지 ‘사랑을 잃지 않는’ 이의 몫임을 강조한 대목도 눈여겨봄 직하다.

이 책은 성서와 예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신과의 만남, 심판, 사랑과 자비, 구원, 일신교, 기도, 여신자, 일본과 기독교 등의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다양한 주제 속에 녹아들어 있는 행간의 메시지는 넉넉한 관용 속에서 신을 만나라는 것이다. 조바심과 강박관념, 아집과 독선, 심지어 신을 찾겠다는 욕심까지 접고, 차 한잔하는 마음으로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한다면 대화 너머로 어렴풋이나마 신의 넉넉한 미소를 만날는지도 모른다.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대담이었음에도 간혹 보이는 종교적 보수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앙을 신과의 일대일 관계로 강조한 점이나 종교적 신비나 기적을 옹호하는 대목, 그리고 기독교를 타력(他力)의 종교로 강조한 점 등에는 개인적으로 다소간의 이견이 있다. 아마도 선불교와 폐쇄수도회를 거친 두 사람의 신앙적 이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동아 200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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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승 성공회 신부, 사회선교국장 khs41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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