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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일본 사상계 고수들의 만남

  • 배병삼 영산대 교수·한국정치사상 baebs@ysu.ac.kr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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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석자 마루야마의 지적 성실성도 눈에 띈다. 후쿠자와 글쓰기의 기원을 낱낱이 추적하고 또 이를 꼼꼼하게 지적함으로써 그 사상의 기원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다. 이 점이 전통식 경전주석학 스타일이라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읽는다’가 보여주는 지적 성실성이다. 전체적으로 ‘문명론의 개략’이 딛고 있는 서양 원전은 프랑스 근대역사가 기조의 ‘유럽문명사’와 영국역사가 버클의 ‘영국문명사’다. 주석자는 원문을 읽어가면서 어느 부분이 기조에게서 나왔는지, 또 어느 부분의 출처가 버클인지를 세세하게 확인해낸다. 이로써 창조적 사상가로 경탄의 대상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필자는 처음 ‘문명론의 개략’을 접했을 때 그 사유의 창의성에 매우 놀랐다) 마루야마의 천착으로 말미암아 ‘번역적 사상가’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된다. 동시에 번역가로서의 후쿠자와 역시 서양 언어와 개념을 한자어로 번역하는 실력이 대단하다는 점, 그리고 서구문명에 대한 조예가 만만치 않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서구사상에 대한 이해는 매우 세밀한 반면 동양사상, 특히 유교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혹은 무시한다)는 점이다. 원저자 후쿠야마야 19세기 후반 메이지 정부의 반동적 정책, 예컨대 유교식 ‘교육칙어’의 반포와 같은 역(逆) 추세에 반대하기 위해 짐짓 철저한 반유교로 일관했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주석자인 마루야마다. 그는 원전 속에서 민주주의(데모크라시)와 자유주의(리버럴리즘)를 구별해내고, 후쿠자와가 끝내 민주주의자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하기도지 한다. 그만큼 서양적 개념들에 대해서는 세밀하다. 그뿐 아니라 불교에 대해서도 원시불교와 중국불교, 그리고 일본불교의 차이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일본불교의 어용성에 대해서 불교사상적 맥락에서 비판한다.

식민지 지식인의 지적 천박

그런데 유교에 대해서는 동양전제주의, 군주독재 등 제반 악의 근원으로 전제한다. 동양사상학자라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은 유가와 법가(法家) 간의 차이, 한(漢)나라의 제국 건설과정에서 ‘겉은 유교이되 속은 법가(外儒內法)’로 습합(習合)되는 사상사적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은 한 번도 제대로 유교국가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기한다. 그러면서 유교를 ‘동양=전근대=억압=폐쇄=야만’이라는 항등식으로 난타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유교를 ‘악의 꽃’으로 보는 인식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입수됐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논설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반유교적 논조는(‘논리’가 아니라) 그 기원이 일본사상가들의 유교 인식, 특히 후쿠자와라는 사상가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은, 한국 독자로서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얻는 가외의 소득이다. 한 번도 유교국가인 적이 없던 일본 지식인의 유교 비판에 내재된 정치성을 몰각한 채, 그것을 유교국가였던 조선사회로 무비판적으로 입수한 식민지 지식인들의 지적 천박성은 따로 분석해야 할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식민지 연구자들과 현대 한국사상 연구자들이 꼭 읽어야 할 텍스트다. 함께 ‘후쿠자와 자서전’(이산), ‘학문의 권장’(소화), ‘주자학과 근세일본사회’(예문서원)를 참고하면 더욱 차분한 ‘비판적 글 읽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넉넉한 ‘번역자 주’와 더불어 정확하고 적절한 번역은 8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쉽게 읽히도록 만드는 힘이다.

신동아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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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한국정치사상 baeb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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