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사진을 공부할 때는 여러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꼭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 꼭 분쟁 지역을 취재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세계적인 사진가, 특히 인간성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분쟁 지역을 뛰어야 한다. 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날아다녀야 한다.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다. 열심히 발품을 들여야 가끔 좋은 사진이 한두 장 나온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사진계에서는 상을 타야 인정을 받는다. 상도 하나 못 탄 나 같은 사진작가는(이 일기를 쓸 때는 아직 페르피냥에서 상을 받기 전이다) 도태되게 마련이다. 도태되면 일감도 안 들어오고 지명도도 떨어진다. 먹고살 궁리 이외에도 이런 걱정까지 해야 산다. 다큐멘터리 및 에이전시 사진계에 들어오면 일단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은 접고 일을 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베테랑 픽서(fixer·해외파견 나온 기자들을 위해 현지에서 통역과 인터뷰 섭외 등을 하는 현지 가이드 또는 코디네이터)로 통하는 카이스가 애송이 사진기자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은 더욱 가관이다. 카이스는 스티브 매커리처럼 세계적인 사진기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오면 꼭 찾는 픽서로 웬만한 서방 사진기자의 취재과정에 동행했다. 나중에 ‘알자지라 잉글리시’의 피디가 됐다.
편한 삶을 원한다면 명예를 버려라
“성공하는 사진가와 그렇지 않은 사진가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성공한 사진가는 아주 일을 질리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스티브는 이미 나이가 많지만 아직까지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일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는 줄 알아? 메모리 카드 20기가 정도의 사진을 찍어. 여기 올 때 250기가 사이즈 외장 하드를 갖고 왔는데, 열이틀 만에 다 채우고 돌아갔어.”
편안한 삶을 원한다면 명예를 버리고, 명예를 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을 취재하면서 힘들게 살라고 충고한 것도 카이스다. 정은진은 카이스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이 얼마나 게으른 사진가인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펜이든 카메라든 미래의 기자들이 ‘카불의 사진사’를 꼭 보았으면 한다. 명예와 정의와 편안한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한 인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유용하다. 남들은 서서히 꿈을 접어갈 30대에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주 솔직한 여자의 일기장을 훔쳐볼 기회이니까 말이다. 이 원고를 다듬으면서 장마 끝에 눅눅해진 과자처럼 탄력 잃은 내 삶에 불끈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편집자는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인가 보다.
최근 그런 책을 또 한 권 발견했다.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스쿨 교수인 새뮤얼 프리드먼이 쓴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미래인)이다. 저널리스트 지망생을 위한 교재지만 20년 가까이 언론사 밥을 먹은 나를 오랜만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게 해준 책이었다. 어느새 기자는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기자는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비열한 모습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게다가 신문 잡지는 방송과 인터넷에 밀려 한물간 산업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새뮤얼 프리드먼 교수는 우리에게 저널리스트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저널리스트 상이란 무엇보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매듭에 서 있는 성실한 자세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정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철저하게 취재되고 정확성을 검증받아 생산된다. 개인적·사회적 편견 혹은 당파성을 극력 배제한 것만이 좋은 기사다.”
저널리즘은 죽지 않았다
저널리즘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말이지만, 오늘의 언론 현실은 어떠한가. 공평무사, 불편부당, 정확성, 객관성 따위는 낡은 유산처럼 취급된다. 대신 격정적이고 개인적인 견해가 듬뿍 들어간 화끈한 주장이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즘의 정도(正道)일까? 프리드먼 교수는 동료 교수의 말을 빌려, 혼자서 중얼거리는 독백보다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가 더 훌륭한 법이라고 말한다.
“그게 바로 취재라는 거야! 거울 대신 창을 들여다보고, 독백 대신 대화하는 것 말이야! 그걸 너희는 익혀야 돼.”
이 책은 미래의 저널리스트뿐 아니라, 오늘도 묵묵히 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성 언론인들이 보았으면 싶다.
“지적 호기심이 살아 있는 훌륭한 안목, 용기가 뒷받침된 취재와 탐사기획, 정확한 분석을 담보한 날렵하고 멋진 스타일의 글쓰기는 결코 낡아빠지거나 유행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미덕을 두루 갖춘 취재와 보도는 앞으로 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저널리즘은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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