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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클라인펠터증후군이어도 임신 가능”[난임 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터너·클라인펠터증후군이어도 임신 가능”[난임 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엄마들의 관찰력은 치밀하고 면밀하다. 이들의 걱정 중엔 합리적 의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잖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의 키가 작다며 성장판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다가 ‘성염색체 이상’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검사 결과를 듣는 경우가 꽤 있다. 단순히 딸의 왜소증을 걱정했는데 성염색체 이상인 터너증후군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키가 작고, 목이 짧은 정도가 아니냐며 처음엔 오진을 의심하지만 여러 병원을 돌다 결국 좌절하게 된다.

난자 만들지 못하는 터너증후군

사람은 각 세포의 핵에 23쌍(46개)의 염색체가 있다. 이 중 한 쌍이 성염색체다. 여자의 성염색체는 두 개의 X염색체를, 남자는 X염색체와 Y염색체를 하나씩을 갖는다. 즉 여성은 성염색체가 XX, 남성은 XY여야 하며 염색체 수도 46개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터너증후군인 여성은 체내 모든 성염색체의 X염색체가 하나뿐(45XO)이거나, 45XO를 가진 세포와 46XX로 된 정상세포가 섞여 있다. 성염색체의 두 번째 X염색체 크기가 작은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모든 성염색체가 45XO인 경우가 42%로 가장 흔하다.

미국 생리학자 헨리 터너는 1938년 15~23세의 여성 7명의 용모와 성장에서 공통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터너 여성은 키가 작고, 목 옆 피부가 물갈퀴 같은 익상경(림프관 폐쇄로 인해 목이 두꺼워지는 증상)이 있고, 팔꿈치가 펴지지 않으며, 월경(생리)이 없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터너증후군(Turner syndrome)에 대한 첫 기록이다. 성염색체 이상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1964년에 밝혀진다. 터너증후군이 생기면 여성은 저신장증(140cm 이하), 난소 형성 부전, 심장질환, 골격계 이상 등이 나타난다.

터너증후군인 태아는 유산되거나 사산될 확률이 90%에 달해 출생 빈도가 높지 않다. 가까스로 태어나더라도 저신장뿐 아니라 여러 내과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어릴 때는 큰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성장 발육이 느려진다. 치모가 거의 없으며 유방이 작고, 자궁과 난관이 작거나 잘 자라지 않는다. 무월경·무배란뿐 아니라 조기 폐경도 피할 수 없다. 초경이 일어나는 시기부터 호르몬 치료를 받아 자궁을 정상적으로 발달시킬 수는 있지만, 난자를 만들어내지는 못해 타인에게 난자를 공여받지 못하면 임신할 수 없다.

필자가 만난 터너증후군 여성들은 키가 작았지만 예쁘고 귀여운 용모에 자식을 낳고 싶은 간절함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이들 중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호르몬 치료로 자궁을 키운 후 자매나 친구가 공여한 난자로 ‘시험관아기 시술(IVF)’에 성공한 경우가 꽤 있다.



한 터너증후군 여성은 중3 때부터 피임약을 복용했다며 필자에게 왔다. 초음파를 통해 본 자궁은 여고생 자궁만 한 크기였다. 3개월간 고용량의 호르몬을 투여해 자궁을 키운 후 절친한 친구의 난자를 공여받아 IVF를 통해 엄마가 될 수 있었다. 한 재일교포 여성은 일본인 남편과 함께 와서 1년간 휴직하고 서울에 머무르며 IVF에 도전했다. 그는 여동생의 난자 공여로 생각보다 빨리 임신에 성공했다.

‘꽃미남’ 클라인펠터증후군

성염색체 이상 질환은 남성에게서도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것이 클라인펠터증후군(Klinefelters syndrome)으로 당사자가 이를 뒤늦게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인펠터증후군인 남성은 대부분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하며, 얼굴이 약간 긴 편이어서 요즘으로 치자면 뽀얗고 매끈한 ‘꽃미남’형이 많다. 2차 성징으로 여드름이 잔뜩 난 남학생에 비해 이들은 귀티 나게 잘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을 터. 그렇다 보니 결혼 후 난임을 겪고서야 자신이 클라인펠터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2차 성징 이후 고환과 음경의 크기가 또래 남자들보다 작더라도 다른 신체 발달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성염색체 이상’까지 의심하긴 힘들 수 있다.

반면 필자는 난임 부부를 30년 넘게 만나다 보니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클라인펠터증후군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성인이 돼도 치모와 수염이 적고, 간혹 유방이 여성처럼 발달한 경우도 있다. 클라인펠터증후군이 불임이 되는 이유는 정자를 생산하는 공장인 고환이 비어 있거나 문제가 많아서다. 전립선이 생기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실제로 무정자증(비폐쇄성)인 남성 중에는 클라인펠터증후군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클라인펠터(클라인펠터증후군인 남성)’는 정상 남성의 염색체(46XY) 핵형과 달리 X염색체가 더 추가된 핵형(47XXY)을 갖고 있다. X의 수가 많을수록(변이형) 심각한 장애를 동반하고 불임 가능성도 더 높다.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필자가 국내 처음으로 클라인펠터의 고환에서 정자의 전 단계 세포인 정세포(Spermatid)를 찾아내 성숙난자에 넣고 수정란을 완성한 후 자궁 내 이식으로 임신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정자가 아닌 정세포로 임신에 성공했다는 게 언론에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클라인펠터가 필자를 찾아왔다. 그들과 만나며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클라인펠터는 정상인 남성보다 지능이 다소 떨어지고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미남형으로 전문직, 고위 공직자 등 지식인층에 속했다. 심지어 팔다리가 가늘고 길다는 인식과 달리 근육질 남성도 있었다. 하지만 남성미가 넘쳐도 고환이 메말라 정자는 물론 정세포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유산 상당수는 천만다행한 실패

고환에 문제가 많은 클라인펠터는 정자은행에서 다른 남성의 정자를 공여받을 수 있다. [GettyImage]

고환에 문제가 많은 클라인펠터는 정자은행에서 다른 남성의 정자를 공여받을 수 있다. [GettyImage]

그렇다면 클라인펠터는 종족 번식을 포기해야 할까. 47XXY로 비정상적 성염색체를 갖고 있지만, 몸안에 46XY의 정상 세포줄기를 가진 모자이시즘(mosaicism) 클라인펠터라면 고환에서 정자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클라인펠터 대부분은 무정자증(비폐쇄성)이기에 정자 공여를 통해서만 자식을 낳을 수 있다. 고환에서 정자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인 경우 정자은행에서 보관하는 냉동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자궁내정자주입술)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 임신에 도전할 수밖에 없듯이, 고환에서 정자를 찾지 못한 클라인펠터도 정자 공여밖에 선택지가 없다. 남성호르몬제로 아무리 치료에 공을 들여도 고환에서 정자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배우자의 정자를 얻을 수 있는 정자은행을 극도로 꺼리는 남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식을 얻은 클레인펠터 중에는 둘째를 보기 위해 상담을 신청하는 이가 꽤 있다. 아이를 낳는 것보다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우는 것이야말로 부모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보람임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상 터너증후군은 신생 여아 2500~5000명 중 한 명, 클라인펠터증후군은 신생 남아 500~1000명 중 한 명꼴로 태어난다. 다행히 터너, 클라인펠터 등 성염색체 이상 질환을 갖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불임이어서 유전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타인의 정자 혹은 난자를 공여받기 때문에 대물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부부가 건강한데도 왜 태아에게서 성염색체 이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건강하지 않은 정보(염색체, DNA)를 담은 수정란(배아)이 자궁에 착상해서다. 1차 책임은 정자 혹은 난자에 있다. 난소와 고환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들어질 때부터 문제(염색체 이상)를 담았을 수 있다. 또 생식세포(정자, 난자)가 감수분열을 하면서 제대로 분리되지 못하고, 한쪽으로 몰리는 비분리현상(nondisjunction)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서 염색체 수와 구조가 비정상적인 생식세포(정자, 난자)가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클라인펠터증후군은 고령 산모일 경우 발생할 위험도가 상승한다는 보고가 있다. 그렇다고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 인체에 착상한 수정란(배아)이 세포분열에 실패했거나, 심각한 기형이거나, 염색체에 이상이 있으면 몸 안에서 자연도태(유산) 시스템(natural selection·자연적 방어벽)이 작동한다. 그래서 ‘유산의 상당수는 천만다행한 실패’라고 하는 것이다. 염색체가 심각한 이상이거나 기형인 태아가 자연 도태되지 않고 태어날 확률은 1% 정도다.

#터너증후군 #클라인펠터증후군 #불임 #신동아


조 정 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신동아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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