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입안에서 불꽃놀이를 일으키는 홍어, 알면 알수록 정복하고 싶은 맛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12-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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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를 즐기는 사람들은 잘 삭힌 홍어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곁들여 삼합으로 먹는다. [GettyImage]

    홍어를 즐기는 사람들은 잘 삭힌 홍어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곁들여 삼합으로 먹는다. [GettyImage]

    ‘입맛의 문턱’이 낮은 나는 처음 접한 음식일지라도 웬만하면 맛깔나게 먹는 편이다. 그런 내 젓가락질 속도가 유난히 느려지는 때는 ‘삭힌 홍어’와 만날 때다.

    나는 서울 종로5가에 있던, 전남 목포 출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홍어 전문점에서 생애 첫 홍어를 맛봤다. 나를 데려간 분이 하필 그 집 단골이라, 사장님이 특별히 ‘고수용’ 홍어를 썰어 내오셨다. 묵은 김치에 살점을 감싸 호기롭게 입에 넣고 우적우적 대여섯 번 씹었을까. 홍어 ‘하수’인 나는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끅끅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한참 울고 웃었다. 분명 입으로 먹었는데 코와 귀, 눈부터 관자놀이까지 시원했다. 입안에서 불꽃놀이가 일어난 것 같았다.

    크림처럼 부드럽고 말랑 고소한 홍어 간

    홍어를 매콤하게 무친 요리는 홍어 ‘초심자’도 즐길 만하다. [GettyImage]

    홍어를 매콤하게 무친 요리는 홍어 ‘초심자’도 즐길 만하다. [GettyImage]

    새콤하고 상큼한 홍어무침, 냉면에 올라간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간재미무침, 콤콤한 가오리찜도 먹어 봤기에 내가 잘 해낼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홍어는 한 조각 먹을 때마다 풍선처럼 향이 터졌다. 친해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꾸덕한 날개(지느러미) 부분을 씹는 맛에는 묘하게 빠져들었다. 김치와 돼지고기의 도움을 받자 독특한 실감을 즐겨볼 많나 여유가 생겼다. 향이 터지면 눈을 질끈 감으며 계속 홍어를 먹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그러다가 홍어의 애(간)를 맛봤다. 간은 홍어가 가장 싱싱할 때 맨 먼저 먹는 부위다. 한 입 크기로 썰어 나온 연한 살구색 미끄덩해 보이는 것을 입에 넣으니 크림처럼 부드럽고 말랑하며 고소하다. 바다향도 없이 오로지 고소함 뿐이다. 소금을 살짝 더하니 낯선 홍어에 지쳤던 마음이 사르르 풀어진다. 애 만큼 부드러운 지라, 홍어 껍질을 끓여 편육처럼 만든 묵도 ‘하수’가 먹기에 괜찮았다.

    이윽고 자리가 끝날 무렵, 여느 생선을 먹었을 때처럼 탕이 등장했다. 노릇하게 부친 홍어전과 함께였다. 전은 ‘약한 걸’로 만드셨다. 달걀물을 묻혀 기름에 지진 홍어살은 말랑했다. 씹을 때 퐁퐁 터지는 향의 여운이 짧아 먹기에 더 수월했다. 반면 홍어탕은 만만치 않았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향 알갱이를 국물에 숨겨놓은 것처럼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향이 새로 피어난다. “이 맛이 먹는 거지” 하며 연신 국물을 뜨는 ‘고수’들 사이에서 나는 숟가락질을 포기하고 말았다.



    언제 먹어도 색다른 홍어의 야릇한 매력

    어쩌면 나의 첫 홍어가 유난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만난 홍어는 ‘서울내기’도 즐길 만했다. 지금도 홍어가 식탁에 놓이면 ‘흠칫’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천천히 애지중지 씹으며 즐길 수 있게 됐다. 김치를 얹어 먹고, 초장에 찍어 먹고, 돼지고기와 겹쳐 먹고, 쌈배추에 올려도 먹는다. 홍어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매번 다르고 새롭다. 그 야릇한 매력 덕에 오늘의 홍어는 또 어떤 맛일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삭은 홍어 풍미의 진가를 아는 날까지 내 입맛을 담금질 하고 싶다.

    가오리도 삭히면 홍어 같이 암모니아 냄새가 나지만 홍어보다 부드러운 편이다. 살집이나 연골 맛도 홍어만 못해 삭힌 가오리는 홍어의 몇 수 아래로 취급된다. 둘은 생김새도 다르다. 가오리는 둥글넙적한 마름모, 홍어는 코 부분이 톡 튀어나온 마름모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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