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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고 유연하게 먹자, 플렉시테리언으로 가는 길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느슨하고 유연하게 먹자, 플렉시테리언으로 가는 길

종이에 ‘플렉시테리언이 되기’라고 써보았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새로운 무엇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선생님도 되고, 화가도 되고, 엄마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되고 싶은 사람은 점점 멀어지고 될 수 있는 사람에 가까워지며 지금의 내가 됐다.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 ‘나’라는 모습을 아끼며 살다 언제부터인가 ‘플렉시테리언’이 되고 싶었다. 흐트러진 퍼즐을 맞추듯 플렉시테리언이라는 조각을 하나씩 스스로에 붙여 볼 셈이다. 어디에서 의외의 조각이 날아와 내게 또 붙을지 모르지만.

알록달록 과채를 먹으면 항산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붉은 색을 띄는 것은 혈관에 좋고 녹황색을 띄는 것은 면역력에 좋다. 보라색이나 검정색 과채는 세포 손상 방지 효과가 있다.

알록달록 과채를 먹으면 항산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붉은 색을 띄는 것은 혈관에 좋고 녹황색을 띄는 것은 면역력에 좋다. 보라색이나 검정색 과채는 세포 손상 방지 효과가 있다.

다채로움과 풍성함으로 완성되는 플렉시테리언

플렉시테리언은 느슨한 채식가다. 주로 채식하지만 때때로 고기와 육류, 달걀과 유제품도 먹는다. 한 번에 섞어 먹기도 하고 구분해 먹기도 한다. 섞어먹을 경우 늘 먹던 식단(비채식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을 빼고 대체 재료를 찾아 넣는 방법이 가장 수월하다.

육류와 해산물, 달걀과 유제품을 제외하더라도 식단을 풍성하게 구성할 수 있다. 재료를 골고루 선택하고 다양한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면 색과 향, 맛과 식감에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다. 다만 영양성분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곡물로부턴 탄수화물을 얻을 수 있다. 식물성 재료에서 얻은 기름과 씨앗, 견과류엔 좋은 지방이 가득하다. 콩과 콩 가공식품엔 단백질이 풍부하다. 비타민과 미네랄, 수분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충분히 머금고 있다. 행여 부족할 수 있는 칼슘은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재료 중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할까.

섭취해야 할 영양성분을 필요량 기준으로 나열하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과 미네랄 순서다. 이중 단백질은 채식만으로 필요량만큼 얻기 어려울 때가 많다. 콩이나 콩 가공식품만 먹기엔 금방 물려버린다. 이럴 때 플렉시테리언은 생선 한 토막, 오징어 반 마리, 닭 가슴살 한 쪽 등을 먹어 허전함을 메울 수 있다.



한 가지 더. 채소와 과일은 하나같이 흙에 뿌리를 두고 수분, 햇빛, 공기를 먹으며 자라지만 저마다의 고유한 색이 있다. 이러한 색을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은 피토케미컬이다. 이 물질을 먹으면 체내에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붉은 색은 혈관에 좋은 라이코펜, 녹황색은 면역력에 좋은 베타카로틴, 초록색은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클로로필, 보라색와 검정색은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안토시아닌, 흰색은 항균에 뛰어난 알리신 성분이 들어 있다. 음식을 만들 때 알록달록 색의 조화를 꾀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

푸짐한 한 끼로 즐기는 채식

사과, 비트, 당근으로 만든 ABC 주스. 체내 노폐물을 배출한다. 포만감을 느끼게 해 다이어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사과, 비트, 당근으로 만든 ABC 주스. 체내 노폐물을 배출한다. 포만감을 느끼게 해 다이어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채식의 옷을 입힐 수 있는 끼니는 아침식사다. 아침에 육류나 생선을 먹는 일은 흔하지 않다. 우유, 빵, 떡, 시리얼, 수프나 단출한 밥과 반찬 정도며 이마저도 거르기 일쑤일 때가 많다. ABC주스(사과, 비트, 당근으로 만든 주스. 나는 비트를 살짝 쪄서 사용한다)도 좋고 과일과 우유를 함께 갈아 마시는 습관이 있다면 우유 대신 비건 음료(두유, 귀리‧아몬드 밀크 등)를 넣어도 좋다. 한 발 더 나아가 푸릇푸릇하고 쌉싸래한 잎채소에 레몬즙(오렌지즙), 식물성 시럽(아가베, 메이플)을 섞어 주스를 만들 수 있다. 풋풋한 맛과 향이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만능 도우미 바나나를 곁들여보자. 내 지인 중 하나는 검은 후추를 갈아 진한 토마토주스에 조금 뿌려 마시기도 한다.

고소한 수프는 양파와 주재료를 버터에 볶아 곱게 간 것에 생크림 또는 우유를 넣고 뭉근히 끓여 만든다. 대개 양파와 주재료가 풍미를 낸다. 버터는 올리브 오일로 바꾸고 생크림이나 우유는 물로 대체한다. 맹물을 쓰기 싫다면 채수(끓는 물에 채소를 넣고 바로 불을 끈 뒤 하루 동안 푹 재운 것)를 만들어 써도 좋다. 수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채소는 감자, 단호박, 고구마, 당근, 콩(완두콩이 맛있다), 버섯, 토마토, 파프리카, 대파, 우엉, 무 등 다채롭다. 여기에 셀러리, 파슬리, 타임, 오레가노처럼 향긋한 재료를 더해보자. 나는 고수를 뜯어 넣겠지만 그건 취향의 문제니까.

푸짐하게, 한입 가득 씹는 맛으로 한 끼를 채우고 싶다면 굽고, 돌돌 말고, 겹쳐 쌓아보자. 채소와 과일을 구우면 몸속에 있는 진한 맛이 더 나온다. 쓴 맛, 떫은 맛, 아린 맛 같은 거센 부분은 오그라들고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오일과 소금, 후추를 곁들여 너무 타지 않게 잘 구우면 된다. 튀김도 맛있다. 튀길 때는 강황(또는 카레)가루나 말린 허브를 곱게 부숴 튀김옷에 섞는 것을 잊지 말자.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음식 템페. 콩을 발효시켜 만들었다. 굽거나 튀기면 쫄깃,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졸여 샌드위치 재료로 활용해도 좋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음식 템페. 콩을 발효시켜 만들었다. 굽거나 튀기면 쫄깃,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졸여 샌드위치 재료로 활용해도 좋다.

돌돌 말기엔 라이스페이퍼, 토르티야, 타코, 포두부, 김, 다시마, 잎채소, 쌈무, 절인 배추 등을 활용한다. 가늘게 손질한 여러 가지 채소를 앞서 말한 재료들에 푸짐하게 올려 잘 감싼 다음 우적우적 씹으며 다채로운 아삭함을 즐기면 된다. 채소를 버터나 우유를 넣지 않고 구운 빵에 겹쳐 넣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바로 ‘템페’다. 콩으로 만든 발효 식품인 템페는 도톰하게 썰어 굽거나 튀기면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간장과 시럽을 넣고 달콤 짭조름하게 졸여 샌드위치 재료로 활용해도 그만이다. 자극적인 맛을 더하고 싶다면 졸일 때 칠리파우더를 곁들이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즐겨 먹는 국수와 밥 종류는 언제나 채소의 든든한 지원군임을 잊지 말자. 국수와 밥 요리에 고기나 해산물, 달걀을 들어낸다고 해서 맛이 없어지거나 식감이 심심해지는 일은 잘 없다. 혹시 아쉽다면 견과류와 씨앗, 마른 과일이나 채소, 묵은 나물, 다양한 허브와 식물성 기름(매운 고추기름을 포함)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신동아 2022년 1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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