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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 인내심, 언제든 버릴 준비된 것이 롱런 비결”

[Interview] ‘우영우’ 신드롬의 주역 박은빈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성실함, 인내심, 언제든 버릴 준비된 것이 롱런 비결”

  • ●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 연기 아닌 심리학 전공
    ● “전혀 예상치 못한 폭발적 인기, 살짝 무서웠다”
    ● “준비기간 2주, 실제 자폐인 레퍼런스 최우선 배제”
    ● 외뿔고래 등장하는 장면이 최애 신
‘우영우’ 촬영을 마친 박은빈이 활짝 웃고 있다.[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우영우’ 촬영을 마친 박은빈이 활짝 웃고 있다.[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지금까지 이런 드라마는 없었다. 0%대 시청률로 출발해 방송 6회 만에 10%대로 진입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17.5%. 순간 최고 시청률은 21%를 넘었다. 장안의 화제였던 ENA 채널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를 두고 하는 얘기다.

‘우영우’는 한번 본 것을 사진 찍듯 외워버리는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지닌 우영우 변호사를 중심으로 매회 새로운 에피소드를 다루는 16부작 미니시리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소화한 박은빈은 “박은빈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했다면 ‘우영우’ 신드롬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열연을 펼쳐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박은빈은 1996년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 등을 통해 아역이 아닌 성인 연기자로서 실력과 스타성을 증명했다.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연기 변신을 꾀한 ‘우영우’는 박은빈을 ‘국민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1996년 데뷔 이후 꾸준히 연기해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아역 배우가 성인 연기자로 안착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박은빈처럼 아역 때의 이미지를 훌훌 벗고 오롯이 성인배우로 스타덤에 오른 경우는 흔치 않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박은빈을 종영 직후인 8월 2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비결을 묻자 박은빈은 쑥스러운 듯 웃더니 고민 끝에 답을 내놨다. 단어나 어휘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니 우영우가 아닌 박은빈을 마주한 것이 실감난다.

“대학에 다니며 2015년 복수전공을 결심했죠. 그해를 제외하고는 1996년 데뷔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한 것이 나름의 자부심이랄까요. 꾸준히 작품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학습했어요. 성공 요인은 그런 성실함과 인내심에 있지 않나 싶어요. 언젠가 연기로 상처 입을 날이 오면 언제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도록 미련을 안 갖고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런 날을 만났죠.”



박은빈은 서강대에서 심리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했다. 2011년 입학했지만 작품에 지장을 줄 수 없어 휴학을 하다 보니 2017년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연기한 그가 연극영화가 아닌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의외다.

“어릴 때부터 연기생활을 하다 보니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커서 심리학과에 들어갔죠. 타인뿐 아니라 저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게 많았고, 학문으로서도 심리학이 제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또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냥 단일 전공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웠어요. 학교의 좋은 시스템을 이용해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했죠. 실제로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제 배우인생을 그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개인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요.”

나를 직면한 시간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어떤 도움이 됐나요.
“우선 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어요. 항상 캐릭터를 통해 저를 마주했었다면 대학 시절에는 저를 직면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저라는 사람과 캐릭터를 구별 지을 수 있게 됐고,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우영우’ 인기가 신드롬 급이에요. 이 드라마 출연 전과 후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전과 다름없이 살고 있지만 사인 요청이 많아졌어요.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시청해주신 것 같아요. 전 연령층을 아울러서 가족이 함께 봤다는 시청자가 많고요. 가족이 같이 보기에 자극적인 부분이 적어 다행인 마음이에요.”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올 거라 예상했나요.
“사실 작품성 측면에서는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지만 대중성 측면에서는 호응을 해주실지 미지수였어요. 시청률은 작품이 나가고 대중이 판단할 몫이기에 어떠한 기대도 품지 않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초반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살짝 무섭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신생 채널이라 제작사 측에서도 3%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했었는데 그걸 훌쩍 뛰어넘어 많은 분들이 성원을 보내주신 덕에 더 마음이 무거웠었어요.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요.”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저도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배우로서 생각하기엔 우영우라는 인물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응원하고 싶은 존재가 됨으로써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마주하고 나아가는지를 지켜보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마음이 모여서 시청률로 나타났다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나요.
“에피소드 형식이라 매주 내용이 바뀌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이걸 계속 보게 하려면 우영우를 맡은 제가 정말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우영우가 얘기했듯이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 (보는 분들이) 우영우를 애착해주시길 바랐어요. 이를 위해 제가 풀어야하는 큰 숙제가 시청자들을 우영우 편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우영우라는 인물을 통해 자폐스펙트럼을 이해해 보고자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발달장애인 3인이 남긴 것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사진=ENA 채널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사진=ENA 채널 제공]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 같은 발달 장애인을 주위에서 경험한 적이 있나요.
“사실 이 얘기는 어디서도 한 적이 없는데, 어린 시절 발달장애인 3인에 관한 단편적인 기억이 있어요. 짧게 말씀드리자면 2012년 대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와 연계해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했어요. 그때 자폐 학생 한 명을 마주했는데 그림을 되게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처음엔 제가 소통하려 노력해도 전혀 응해주지 않았어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제가 따로 교육받은 게 없어서 소통방식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양 선택과목으로 ‘특수교육과 장애인’이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거기서 제가 더 어린 시절을 반추해보니 초등학교 시절 같은 학급에 발달장애 친구가 있었어요. 그 어머니가 더 기억에 남아요. 제가 학급 회장이었기 때문에 체육시간, 미술시간에 변동사항이 있으면 그 어머니께 알려드렸어요. 어머니가 자기보다 덩치 큰 아들을 데리고 항상 애틋하게 다니시는 모습이 제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이제는 연락할 수도 없고 찰나의 인연에 불과하지만 그 이후의 삶이 어떠했을까 간혹 떠오르긴 했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 친구들이 우영우를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특수교육과 장애인’을 수강했던 것도 제가 모르는 소통방식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교수님도 청각장애인이셨어요. 그 교수님 말씀이 ‘장애를 장해로 보지 말고 장애인을 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봐주면 좋겠다. 왜냐면 어떤 부족한, 취약한 점이 있는 만큼 더 열려 있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가능성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치며 학습했던 태도와 마음자세가 우영우를 연기할 때 도움이 됐어요.”

-담당 피디가 1년을 기다려 섭외했다 들었어요. 우영우 캐릭터를 받아들이기까지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아요. 이유가 뭔가요.
“비난과 비판의 일선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 배우예요. 대본을 보면서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고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배우로서 그 자리와 연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떠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함부로 접근해선 안 되는 캐릭터여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저를 왜 그렇게 믿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왜 주저하는지 작가님과 감독님에게 솔직하게 말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는 위선적으로 이 역할을 대하고 싶지 않다’고요. 그랬더니 두 분이 모두 제가 그렇게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제가 나서서 기대에 부응하고자 작품을 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물론 그렇게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왜냐면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은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우영우’라는 작품이,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자폐아를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건 아니기에 우영우를 제외한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인지, 또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캐릭터인지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쉽게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더 많은 걸 체험하고 촬영에 임했을 테지만, ‘연모’ 촬영을 끝내고 ‘우영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2주 정도 밖에 안 됐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우영우란 캐릭터를 독자적으로 고유성이 있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제 자폐인이나 레퍼런스를 모방하는 길은 최우선으로 배제했어요. 특히 실제 자폐인을 절대 수단으로 삼아 연기해선 안 된다는 도의적 책임을 갖고 그 부분을 가장 조심했어요. 우영우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 자체에 초점을 맞춰 봐주시길 바랐어요. 사람에 초점을 맞춰 보면 우영우의 특성뿐만 아니라 극에 나오는 수많은 이상한 사람들의 특성들을 비교도 하면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극 중 러브라인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어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불가능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어봤어요. 현실 세계에 있는 것으로만 창작물을 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영우는 준호와의 사랑을 통해 이런 사랑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이런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이상향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서로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포용력을 키우면 우영우가 하는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고 존재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최애 장면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외뿔고래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메시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흰고래 무리들 속에서 스스로 외뿔고래라는 것을 인정하고, 외뿔고래로서의 삶이 전혀 외롭다거나 고독하다 여기지 않고, 이게 내 삶이니 괜찮다고 얘기하는 우영우의 모습이 말 그대로 이상하고 별나 보이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정면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외뿔고래가 나오는 장면이 가장 좋아요.

선한 영향력 끼치는 작품에 끌려

-영우가 준호랑 말할 때 눈의 초점을 맞추지 않아요. 그 때문에 연기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연기 조언을 해주시는 교수님이 처음에 영우의 스위치는 거꾸로 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영우의 모든 행동 양식을 일반적인 양식과 정반대로 하면 될 것 같다면서요. 영우가 리액션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때 영우는 공감능력이 없다거나 세상에 대해 무심한 건 아니에요. 반응하는 매커니즘이 다를 뿐이에요. 자신만의 세계에서는 굉장히 역동하는 인간이라고 느꼈어요. 다만 눈 마주침은 힘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도 대사와 함께 바디랭귀지를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상대방도 눈 마주침 없이 대사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고요. 여러 선배 연기자들께서 앞에서 눈을 안 마주치니까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런 부분을 집중해서 연기하다 보니 나중에는 수월해지더라고요. 극 중에서 친구 동그라미가 상대의 미간을 보며 말하라고 해서 미간까진 아니더라도 어깨 언저리를 보면서 촬영했는데 방송에서는 제가 눈을 쳐다보는 것처럼 비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반성하기도 했어요.”

-‘우영우’는 자극적인 소재가 없고 선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이죠. 작품을 고를 때도 이런 면을 기준으로 삼나요.
“자극의 정도를 기준 삼진 않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지는 고려해요. 제가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순 없으나 적어도 제가 연기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작품, 보는 분의 삶에 좋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에 끌리는 것 같아요. 미디어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제게도 윤리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박은빈은 ‘우영우’를 끝낸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휴식’이라고 말했다. 휴식을 하며 재충전을 하고 싶다는 그의 두 눈이 우영우가 고래를 떠올렸을 때처럼 반짝였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연기를 대하는 배우이고 싶다고 소망했다. 박은빈을 만나보니 우영우 캐릭터를 입을 배우가 왜 그여야만 했는지, 담당 PD가 왜 1년을 기다렸는지 알 것 같았다. 보다 자세한 인터뷰는 9월 중순 발행되는 ‘신동아’ 10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신동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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