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보름달이 청춘의 성호르몬에 미치는 영향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2-12-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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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보름달은 성호르몬 분비량에 영향을 미친다. [Gettyimage]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보름달은 성호르몬 분비량에 영향을 미친다. [Gettyimage]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서울 이태원 압사 사고에 우리는 ‘거기 왜 갔을까?’라고 물어선 안 된다. ‘왜 그들은 그곳으로 가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

    고대 켈트족에서 비롯된 핼러윈(Halloween) 축제를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열광하며 즐겼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핼러윈 축제가 청춘들의 해방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언제부턴가 핼러윈데이는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이브와 함께 젊은이의 3대 축제가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통제가 다소 풀리자 젊은이들은 핼러윈 축제를 통해 새로운 연인을 만나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을 것이다. 또한 외국인들과 섞여 노는 에그조티시즘(exocitism)과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일부 감출 수 있는 가면, 이색적인 코스튬 문화도 이태원 핼러윈 축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을 것이다. 역동적이면서 이국적인 그곳이 젊은이들의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된 셈이다.

    젊음은 축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축제 날 보름달이 뜨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젊은이를 한자리에 모으는 데 보름달이 크게 일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달의 공전·주기에 따라 수면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실제로 보름날(음력 15일) 밤의 수면시간이 상당히 지연되고 감소한다. 달빛에 멜라토닌 억제 효과가 있어서다. 달의 주기는 수면뿐 아니라 생체리듬에도 적잖게 영향을 끼친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보름달이 뜨는 날은 누구나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진다.

    청춘의 해방구 핼러윈데이

    성호르몬 분비가 최고조에 달한 젊은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사건 사고의 불씨를 던지는 것이다. 중년 이후에는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호르몬의 분비량이 줄어들어 좀처럼 흥분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에게 축제는 그 자체만으로 광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더욱이 종일 책상에 앉아 생활하는 젊은이들은 그간 억압된 욕구가 분출돼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핼러윈데이가 현실에서 도피할 한 줄기 해방구가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올해 핼러윈데이에는 보름달이 뜨지 않았지만 서양에서는 매년 핼러윈데이에 보름달이 뜨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필자도 아들에게 “해가 지면 나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곧잘 하는 편이다. 자식들이란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다. 10대뿐 아니라 20대도 마찬가지. 청춘 세대는 왜 부모 말을 좀처럼 듣지 않을까. 질풍노도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10대 중반, 딱 그 나이가 되면 뇌가 성장통을 겪는다. 신경세포들을 연결해 주는 시냅스가 15세 무렵에 이른바 가지치기하듯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면서 일시적으로 감정조절 능력이 부족한 상태가 된다. 쉽게 설명해 분노, 공포, 흥분 등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전두엽(이성적 판단)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데, 전두엽이 공사 중인 관계로 지휘를 못 받아 분노와 흥분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문제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20대 초반이나 중반까지 계속되는 데 있다. 어른의 보호와 감시 속에서 키워진 젊은이일수록 더 그렇다. 요즘은 영양 과잉 섭취로 10대 신체 조건이 성인과 별반 차이가 없어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하다. 반면 뇌는 천천히 발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어른의 몸이 돼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하지만 뇌는 덜 성숙한 20대가 대다수다. 각종 스트레스에 호르몬이 체내에 계속 증가하면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해 전두엽(이성적인 판단과 명령)을 따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현대를 살아가는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이에게 ‘절제’와 ‘인내’를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절제’와 ‘인내’를 조금이나마 흉내 내려면 몸을 최대한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귀띔하고 싶다. 하루 걷는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정이 순화되고 흥분이 억제된다. 청소년에게 매일 꾸준히 운동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 발달에 도움이 돼서다.

    정신적 충격과 무월경

    그나저나 걱정이다.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의 사망자와 부상자 중에 유독 여성이 많다. 아무래도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작고 몸이 가벼우며 폐활량이 적은 탓에 많은 인파에 밀려 강한 압력을 받는 끼임 사고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상 위험이 큰 대규모 압사 사고에서 여성의 흉부와 복부에 걸리는 부하를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다.

    사람 100명의 무게가 5t이라고 하는데, 흉부 압박이 체중의 60%를 넘어서면 1시간 이내 호흡부전이 올 수 있다. 특히 여성은 어깨에 메는 작은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몸의 중심부인 가슴 위에 놓는 습관이 있다. 넘어졌을 때 이 가방이 가슴과 폐를 더욱 압박해 호흡 부전을 가속화했을 것을 생각하면 숨이 탁 막히고 가슴이 미어진다.

    설령 압사의 지옥을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해도 스트레스로 인해 생리가 끊기거나 하혈을 할 수 있다. 팔과 다리만 밟혔어도 몸이 놀라 생리 기능에 이상이 올 수 있다. 여성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충격에 취약하다. 뇌 시상하부는 우리 몸의 특정 대사 과정과 자율신경계의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자 우리 몸의 주요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기능을 도맡는 부위다. 매달 생리를 하게끔 생식 관련 호르몬을 분비해 배란이 되고 생리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시상하부가 충격을 받으면 정상적인 조절 능력이 저하되고 생리 기능에 치명적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엄청난 사고를 겪은 후 수년간 무월경을 경험하는 이를 종종 만난다. 충격적인 사고로 심적 고통을 겪게 되면 시상하부 뇌신경 중추의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스트레스 호르몬 분비 관여) 분비와 세로토닌 시스템 간에 교란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성선자극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생리가 끊기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도심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비극이 몇 차례 있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1994),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1995), 세월호 참사(2014) 등에서 살아남은 여성 가운데 장기간 하혈 혹은 무월경으로 고생하거나 치료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만약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충격을 받은 여성이 있다면 인체의 생리적 기전을 감안해 마음의 안정을 찾기 바란다. 대체로 놀람과 충격에 의한 무월경 증상은 6~8주 정도가 지나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월경 기간이 3개월 이상 길어진다면 산부인과 의사에게 가보는 것이 좋다. 정신적 충격이 남아 있다면 친구, 가족, 조언가,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떠안은 문제야 의술과 사랑으로 그럭저럭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난 젊은이들은 도울 방법이 없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시 한 번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이들의 명복을 빈다.

    *‘신동아’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상처 입은 분들의 쾌유를 빌며,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께도 위로를 드립니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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