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임맥과 독맥이 뚫리니 한민족 기운이 북방으로 뻗친다”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입력2005-06-28 1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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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알아맞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이 8강 이상에 들어간다고 주장해 화제가 된 예언가 한바다 선생. 일류대를 나왔지만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다.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며 명상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랫동안 한반도의 기운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이젠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될 때가 왔다고.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영적인 파워 중 예언 능력을 지닌 한바다 선생은 “남북한과 동서 지역의 에너지가 합해져 한민족의 대운이 상승할 때가 왔다”고 예언했다.

    비전(vision)이 있어야 한다. 비전은 곧 희망이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비전을 갖고 있을 때 활기가 넘친다. 희망이 있어야 한번 살아볼 만한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비전이 없다. 도대체 살맛이 나지 않는다. 불경기가 계속되고 실업자는 늘어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자리가 없다. 북핵 문제는 좀체 풀리지 않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위기감을 조성한다. 그런데다 ‘저출산’ 현상이 심각하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불경기, 청년실업, 북핵, 저출산은 한국이 앓고 있는 우울증의 4대 요인이다.

    상식에 의존하는 범부는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갖기 어렵다. 이럴 때는 상식을 뛰어넘는, 비상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평화로울 때에는 상식이 필요하지만, 비상시에는 초상식(超常識)에도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한바다(46) 선생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지만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20여 년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전국의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면서 명상에 몰두한 것뿐이다.

    그에게 연락했더니 “지리산에서 만나자”는 대답이 왔다. 지리산 피아골의 어느 산장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지내다가 잠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계룡산에서 지리산으로, 지리산에서 계룡산으로, 노마드(nomad)란 바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주머니가 가벼워야 하고, 마음이 가벼워야 하고, 인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가능한 삶이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무거운 사람은 결코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동할 수 없다.

    명상은 근원의 마음 찾기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들어섰더니 주변이 온통 푸르렀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바위를 돌아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붙잡는다.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연곡사를 지나 길 양 옆으로 녹음이 우거져 터널을 연상케 한다. 나무와 풀 향기가 막힌 코를 뚫어준다.

    1km쯤 더 가니 우측에 조그만 산장이 하나 나온다. 이름은 ‘산골산장’이다. 2층 벽돌집으로 외양은 평범하다. 한바다 선생은 이곳의 방 하나를 빌려 며칠 머무르고 있었다. 노마드에게는 암자도, 등기부 등본도 필요없다. 임시로 빌려 쓰는 산장이면 충분하다. 2층 방으로 올라가보니 책 몇 권과 덮고 자는 이불밖에 없다. 하지만 실내에는 평화롭고 안정된 기운이 꽉 차 있었다. 필자의 마음도 저절로 편안해졌다. 방에 들어갈 때 불안한 마음이 들면 주인은 하수에 해당하고, 편안한 느낌이 오면 고수라 진단해도 거의 틀리지 않다. 방에 머무는 사람의 염파(念波)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선생의 키는 170cm도 되지 않는다. 조그맣고 단단해 보이지 않는 체격에 동안이다. 상대방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이런 얼굴이라면 ‘안시(顔施)’라고 해야 맞다. 얼굴 표정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니, 얼굴 하나로 상대방에게 보시하는 셈이다. 항상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를 보고 ‘미소의 근원은 어디일까’를 생각하며 운을 떼었다.

    -명상을 한다고 들었다. 명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몇 년 전에 어떤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선(禪)을 오래 한 스님으로 나이도 어느 정도 드셨다. 불교신자 몇 명과 이 스님을 찾아뵙게 됐는데,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큰절로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큰절로 인사하는 것이 불가의 예법이다. 하지만 나는 절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나의 불손한 태도가 스님에게는 거슬렸던 모양인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뭘 하는 사람입니까?’
    ‘명상을 합니다.’
    ‘명상 가지고는 안 되지.’‘스님은 뭘 하십니까?’
    ‘나는 선(禪)을 하지.’‘명상이나 선이나 같은 것 아닙니까?’
    ‘명상과 선은 다르지!’‘둘이 어떻게 다릅니까?’
    ‘삼삼은 팔십일의 소식이 뭐지?’
    ‘삼삼은 구. 구구는 팔십일이라는 뜻 아닙니까.’
    ‘틀렸네!’
    ‘그렇다면 스님이 생각하시는 정답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렇게 되묻자 스님은 죽비를 내게 사정없이 내리쳤다. 죽비로 대답을 한 것이었다. 보통 스님이 죽비를 내리치면 예의상 순순히 맞는 게 관례이지만 나는 얼른 한 손으로 죽비를 잡았다. 일단 법 거량(擧揚)에 들어가면 예의나 체면은 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스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화가 나서 죽비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스님! 지금 화(anger)가 보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고는 숙소에 돌아왔다. 하지만 왠지 찝찝했다. 개운하지 않고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앙금 같은 게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었다. 이 감정의 근원이 무엇일까를 명상했다. 나중에 보니 죽비를 때린 사람도 없고, 죽비를 손으로 잡은 사람도 없음을 깨달았다. 모두 공(空)한 것이다. 계곡에 바람이 한번 휙 하고 지나간 것이었다. 대낮에 닭이 지붕에 올라가 한번 꼬끼오 하고 운 것이었다. 본래는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상태였다. 죽비를 휘두른 사람도 없고, 맞은 사람도 없는 이 상태를 근원의 상태라 생각한다. 이름을 붙여 본다면 ‘관음(觀音)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명상은 바로 근원의 마음을 찾는 일이다. 물론 명상이나 선은 같은 것이다.”

    마음의 때를 벗기는 물소리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한바다 선생이 머물고 있는 지리산 피아골의 산골산장.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잘 들려 근원의 마음을 찾는 데 유용하다.

    -그렇다면 근원의 마음을 찾는 방법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해야 돈에 시달리고, 조직에 시달리고, 경쟁에 시달리고, 성공에 시달리는 범부들이 근원의 마음을 찾을 수 있는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방법도 각기 다르다. 내가 효험을 본 방법은 소리다.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소리에 마음을 집중한다.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에 마음이 항상 왔다갔다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근원의 마음으로 소급해갈 수 없다. 따라서 일상적인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물소리다. 귀로 들리는 물소리에 집중하다보면 다른 상념들을 잠시 잊게 된다. 어느 순간 나와 물소리가 하나가 된다. 마음의 움직임이 멎으면서 내면(靈性) 세계가 열린다. 본래 마음을 회복한다고 할 수 있다. 내단학(內丹學)에서 말하는 수승화강(水昇火降)도 이 상태를 가리킨다.

    계곡에서 철철 흐르는 물소리를 계속 듣다보면 번뇌가 말끔히 씻긴다. 그러면 우리의 깊은 마음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물소리는 마음을 때를 벗기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목욕이 중요하다. 고대 사회에서는 지금처럼 매일 목욕할 수 없었지만 목욕이 갖는 의미는 매우 깊었다. 목욕은 성스러운 행사에 가까웠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거듭난다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세례(洗禮)의 진정한 의미기도 하다.

    지리산 피아골처럼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 근원의 마음을 찾는 데 유용하다. 이 ‘산골산장’도 물소리를 듣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다. 산장 주위를 감아돌면서 물이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근원의 마음을 찾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 계곡에서 며칠씩 머물러야 한다. 밤낮으로 물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쉬다 보면 근원의 마음이 느껴진다. 잠을 자면서도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그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로 인해 우리나라가 강대국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렇다면 왜 근원의 마음을 찾아야 하는가.

    “근원의 마음을 찾으면 인간은 행복해진다. 사람이 왜 사는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나는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물질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돈이 없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근원의 마음을 찾아야 궁극적인 행복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 ‘해피타오(Happytao)’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행복한 도’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자기의 본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이 끼친 영향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국가적 또는 민족적인 차원에서 근원의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이 있는가.

    “2002년 월드컵이 그 계기였다고 본다. 우리 민족이 단군 이래로 그때처럼 집단적 행복감을 맛본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영적인 사건이다. 즉 완전한 행복을 집단적으로 체험한 사건이자 우리 민족의 자존감, 자신감을 감지한 사건이다. 민족이 전체적으로 행복감을 맛보면 이것은 나중에 커다란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 행복감이 일종의 종자돈 같은 구실을 한다. 종자돈이 있어야 씨를 퍼뜨리고 이자를 치는 것처럼 집단적 행복감은 민족의 무의식에 커다란 에너지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집단 카타르시스는 재도약할 수 있는 자본금이다. 또 긍정하는 힘이 된다. 긍정할 수 있어야 풍류(風流)로 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동안 이 긍정하는 에너지가 막혀 있었다. 월드컵이 긍정하는 힘을 줬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에서 얻은 집단 카타르시스가 우리 민족의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지금 대다수 한국인에겐 희망이 별로 없다.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비전을 이야기해달라.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라는 극심한 좌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됐고 6·15 선언을 이끈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탔다. 이는 좌절감이 어느 정도 치유되면서 서서히 흐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는 조짐이다. 그 다음에 월드컵이 있었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한류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한류는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가. 한국의 정신과 에너지가 아시아에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 경제는 다시 불경기에 진입했다. 그로 인해 전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불경기가 극심하던 2004년 10월, 나는 계룡산에서 하늘이 알려주는 영적인 비전을 보았다. 휘황찬란한 무지개가 비추는 비전을 목격한 것이다. 이후 나는 조만간 한국에 낙관적인 소식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 무렵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뉴스가 나왔다. 황 교수의 연구는 우리 민족에게 대단한 복음이다. 나는 이로써 한국이 강대국의 대열로 들어간다고 전망한다. 생명공학으로 세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2003년 ‘3000년의 약속’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우리 민족의 미래와 그 정신적 에너지에 대해 쓴 책이다. 거기서 인류는 150살을 산다고 예언한 바 있는데,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이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한국은 생명공학 산업의 메카로 부상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부자들이 돈을 싸들고 한국으로 찾아오지 않겠는가.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머무르고 치료를 받는다. 이와 관련된 산업도 대단하다. 불경기로 가라앉은 흐름이 황 교수 연구를 기점으로 반등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그야말로 혁명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쌀의 재배가 혁명이었다면 그 다음 혁명은 한글 창제이고, 다음으로는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라고 본다. 그만큼 의미가 깊다. 곡식 중에서 가장 기가 강한 것이 쌀과 콩이다. 한자의 ‘기(氣)’자를 보면 쌀 미(米)자가 들어 있다. 쌀을 먹어야 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풀과 독초를 먹고 육식을 하다가 쌀이 재배되면서부터 식생활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기가 생기고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견이 줄기세포 연구라 생각한다. 황 교수의 연구는 국운상승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바다 선생은 영적인 파워가 있는 사람이다. 영적인 파워를 다른 말로 바꿔보면 상상력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곧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 영적인 파워가 있는 도인이 많이 배출되는 나라였지만, 근래에 들어 이런 전통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사회가 빠르게 물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상상력이 축소되고 영적인 힘이 약해진다. 그런 와중에도 한바다 선생과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영적 파워, 상상력, 비전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한바다 선생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상통해야 한반도에 신명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유의 예언력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2002 한일월드컵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우리의 목표는 16강이었다. 16강만 들어가도 대성공이라고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월드컵에서 1승만 올려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이 상황에서 그는 한국이 8강에 들어간다고 예언했다. 16강도 어려운데 8강이라니.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8강을 넘어 4강까지 들어갔다.

    영적인 파워는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타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달란트’이기도 하다.

    첫째는 예언이다. 숙명통(宿命通)이나 천안통(天眼通)을 하면 미래를 볼 수 있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 상공에 올라가면 인천과 서울이 동시에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차원에 진입하면 인천이라고 하는 미래와 서울이라고 하는 과거가 동시에 조망되는 경계가 있다. 예언이란 이 경계에 진입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치유다. 병을 고치는 능력을 일컫는다. 의통(醫通)이라고 한다. 초기 교회사를 보면 예수도 의통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가 베드로의 방에서 수많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있을 때, 순서를 기다릴 수 없었던 어떤 환자는 지붕을 뚫고 곧바로 예수에게 인도됐다는 기록이 있다. 베드로의 집 지붕을 뚫어야만 했을 만큼 아픈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공(氣功) 고수들은 불치병을 치료하는 일에 그 힘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기가 앓던 병이 나았을 때 그 신비적 파워를 가장 확실하게 감지한다. 또한 도인이 가장 직접적으로 대중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의통이다.

    셋째는 말씀의 달란트다. 불교에서는 설통(舌通)이라고 한다. 설교와 법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이다. 집착의 근원을 시원하게 뚫어버리는 지혜를 가져야만 설통이 가능하다. 기독교의 유명한 부흥목사들이 설통한 경우가 많다. 이 세 가지 통(通) 가운데 어느 쪽이 열리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경우는 세 가지를 모두 갖추기도 한다.

    한바다 선생은 이 중에서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례를 소개하면 이렇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의 일이다. 한 선생이 주역의 괘를 뽑아보니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나왔다. 감(坎)괘가 위에 있고, 리(離)괘가 밑에 있는 형국이 수화기제 괘다. 감은 수(水)이고 리는 화(火)에 해당한다. 수화기제의 첫머리에 ‘초길(初吉)하고 종란(終亂)하리라’는 말이 나온다. 이걸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면 처음에 좋다가도 뒤가 나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임기 끝 무렵에 외환위기가 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괘를 뽑아보니 택천쾌(澤天快)가 나왔다. 위에 연못이 있고, 아래에는 하늘이 있다. 이 괘는 ‘양우왕정(揚于王庭)이니 부호유려(孚號有?)하리라’는 문구가 나온다. ‘왕이 뜰에서 드날림이니 위엄 있게 하니라’는 의미다. ‘왕이 뜰에서 드날린다’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다는 메시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바로 괘를 뽑는 일이다. 주역의 괘는 평범한 사람이 뽑으면 아무 효력이 없다. 괘는 아무나 뽑는 게 아니다. 정신이 맑은 사람이 뽑아야 맞다. 인간 내면의 무의식, 즉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의식인 팔식(八識)은 안팎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전제가 있어야 괘가 이해된다. 그리고 이 무의식이 선택하는 것이 괘다. 무의식이 그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표면의식의 방해전파가 없어야 한다. 말하자면 마음이 안정되고 정신이 맑아야 방해전파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괘를 뽑아야 정확성이 높다. 따라서 주역의 괘는 정신수양을 한 사람이 뽑아야 제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한바다 선생은 주역의 괘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 논산을 거쳐 광주에 갔을 때 그가 왕좌에 앉는 장면을 비전으로 보았다. 논산에 들어서면서부터 행복한 느낌이 감지됐고 광주에 들어서니 전라도 말씨가 왠지 달콤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말씨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상서로운 조짐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콤한 에너지가 뭉글뭉글 올라오고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미묘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파동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이런 감지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주변을 관찰해보니 이 파동은 타고난 사람에게만 감지된다. ‘먹물’이 많이 들어간 사람은 감지 능력이 퇴화하거나 후퇴해버린다. 영감과 먹물은 반비례하는 수가 많다. 특이한 사람들에게만 비례하는데, 한바다 선생은 그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인 것 같다.

    아무튼 한바다 선생은 이 에너지를 감지하고 나서부터 전라도에 살기 시작했다. 방외지사인 그에겐 걸리는 게 없다. 살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 머무른다. 보따리 풀면 그 자리가 바로 살림집이다. 이후 그는 전라도 광주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경상도 사람인 그가 전라도의 마음과 교류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 달만 있으려 했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니 7개월로 길어졌다. 급기야 서울 개포동에 있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녹차가 많이 나는 전남 보성으로 옮겨가 4년 가량 산다. 모두 합쳐서 5년을 광주 일대에서 살았다.

    그는 광주에 사는 동안 광주 사람들의 상처를 영적으로 어루만지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국수가락 뽑듯이 원혼들을 뽑아냈다”고 한다. 처음 광주에 가니 사람들의 가슴속마다 상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그 상처는 원혼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광주의 원혼을 뽑아내다

    한 선생은 광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가슴에 뿌리박힌 원혼을 달래줬고, 그러면 거기에서 국수가락처럼 상처받은 에너지가 뽑히곤 했다. 매일 국수가락을 뽑았다. 그게 한바다의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도사는 겉으로 볼 때 아무 하는 일 없이 노는 것 같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날마다 에너지 청소를 하고 있다. 알고 보면 공밥 먹는 게 아니다. 그 원혼을 뽑아내면서 경상도 사람인 한바다는 전라도의 영혼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교감했다.

    그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기질을 다르게 이해한다. 인체의 기가 흐르는 경락을 보면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라는 것이 있다. 임맥은 배꼽을 통해서 얼굴로 올라가는 앞면의 에너지 통로이고, 독맥은 등 뒤로 흐르는 통로를 가리킨다. 한반도의 지형을 보면 경상도는 태백산맥의 줄기가 내려온 지역이다. 따라서 인체에 비유하면 등 뒤를 흐르는 독맥에 해당한다. 충청도나 전라도는 단전과 가슴 쪽의 임맥에 해당한다. 그래서 에너지의 컬러가 약간 다르다.

    임맥인 전라도, 독맥인 경상도

    독맥은 척추이므로 세워서 받치는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뻣뻣한 기질이 있다. 임맥은 가슴과 포용, 그리고 덕을 상징한다. 임맥에 해당하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기질에도 약간 차이가 있다고 본다. 논밭이 많아 풍요로웠던 충청이나 전북 지역은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덕이 있는 편이다. 전남 지역은 가슴이 뜨겁고 감성이 섬세하다. 그래서 전남 사람들에게 예술적인 성향이 잘 발달해 있다. 하지만 전라도가 지난 30년 동안 정치적으로 소외 받다보니 뒷심이 받쳐주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대중 정부의 집권은 전라도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즉 호남 사람들의 막힌 임맥을 뚫어주는 동시에 독맥을 보강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동쪽과 서쪽, 경상도와 전라도, 독맥과 임맥은 각기 그 기능이 다르다. 독맥은 임맥이 보강돼야 창조와 생산을 할 수 있고, 임맥은 독맥이 보강되어야 뒷심과 기준을 잡을 수 있다. 상보적인 관계다. 임맥과 독맥이 뚫려야만 신명이 생긴다. 단전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게 신바람이다. 이 신바람을 타고 한국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해야 한다. 한바다 선생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풍류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한다. 하단전에서 뿜어나오는 힘이다.

    지리산과 계룡산을 놓고 봐도 그 에너지의 흐름이 다르다. 지리산은 세상사와 관심이 끊어지는 곳이다. 반대로 계룡산은 세상사에 가깝다. 지리산은 골짜기가 깊은 심산유곡인 반면 계룡산은 대전이나 논산의 평야지대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래서 계룡산에선 예언자가 많이 배출됐다. 계룡산은 에너지가 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상대적으로 지리산은 에너지가 정묘(精妙)하다. 정묘한 에너지는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선도(仙道) 수련자에게 맞다.

    또한 계룡산은 오행으로 보면 토기(土氣)가 강한 곳이다. 토(土)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회통시키는 기운이다. 따라서 행복감을 주는 기운이다. 한쪽이 막혀 있거나 편중된 기운은 토 기운을 만나야 균형이 잡힌다. 그 균형에서 행복이 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목 뒤에 긴장이 온다. 긴장은 부정하는 에너지로 연결된다. 상대를 부정하면 행복은 없다. 부정하는 에너지는 토의 기운과 접촉되어 긴장을 풀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장육부 중에서 토에 해당하는 위장이 편해야 한다. 즉 과식을 조심해야 한다. 또 목 뒤가 편해야 한다. 목 뒤 긴장이 풀려야 호흡이 잘 되고 그러면서 상대방에 대한 거부감이 풀린다. 즉 위장과 목 뒤를 편하게 해줘야 하는데, 계룡산의 에너지는 이런 긴장을 푸는 데 아주 적합하다고 한다.

    한바다 선생은 임맥과 독맥의 관계는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광복 이후 한국이 일본과 주로 경제교류를 할 때 영남에서 대통령이 나왔지만, 중국과 교류가 본격화하면 충청이나 호남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리적으로나 에너지의 작용으로 보나 일리가 있다.

    남북한 에너지가 합쳐진다

    남북의 관계도 그렇다.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거의 파산 상태지만 정신의 에너지는 아직 남아 있다. 북한 사람들의 무의식에 박혀 있는 정신적 에너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 에너지란 혁명 1세대의 ‘우리가 혁명을 이룩해냈다’는 자부심과 그들 나름의 ‘주체의식’이다. 이 부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반면 대한민국에는 기술과 자본, 그리고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 둘이 합치면 한민족의 기운이 북방으로 뻗쳐올라갈 수밖에 없다. 북방, 몽골과 유라시아에까지 뻗친다. 이런 맥락에서 한민족의 대운은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사이클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

    -어떻게 명상을 하게 됐는가. 어린 시절부터 명상에 소질이 있었는가.

    “명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대 초반, 대학교 2학년 때다. 그때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다. 큰 충격이었다. 경북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광주를 목격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한동안 놀다가 다시 입시 공부를 했고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했다. 그 즈음 누님에게 갑상선 장애가 왔다. 갑상선 장애가 있으면 히스테리가 발생한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치면서 좌절감과 허무가 몰아닥쳤다. 술만 먹으면 이 허무의 정체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리를 꼬고 앉아 명상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친구들과 놀다가도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전생의 습관이 발동한 것이었다.

    또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작은가’ ‘왜 만주 땅을 빼앗기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는가’ 같은 의문도 계속 떠올랐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2학년 때 ‘명상요가’ 동아리에 들어갔다. 자꾸 내면으로 파고들다보니 결국 ‘도사’란 직업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하니 태어난 곳의 영향도 받았다. 나는 경북 울산의 방어진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방어진은 바람이 매우 세게 부는 곳이다. 특히 바닷가의 대왕암도 특별한 기운이 뭉쳐 있는 아주 영험한 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 부근을 왔다갔다하면서 바람을 맞고 컸다. 바람을 맞아야 사람이 풍화(風化)된다. 풍화된다는 것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풍(風)의 의미를 터득함을 뜻한다.

    바람이란 무엇인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 바람이다. 그 걸림 없음과 자유로움. 바람을 맞아봐야 한국 사람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방어진은 바람도 바람이지만 바닷가의 해조음(海潮音)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해조음 소리를 들으며 컸다. 귓가에 늘 해조음이 웅웅거렸다. 당시는 해조음 소리를 다른 사람도 모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만 들었던 것이다.

    또 울산 언양(彦陽)에서 자랐는데, 이곳도 지기가 특이하다. 밑바탕에는 자수정이 있고 그 위가 황토로 뒤덮인 곳이다. 자수정의 기운은 인체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다른 돌보다 기운이 강하게 뻗쳐나온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벨로크(Bell Rock)’라는 산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갔다 오면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벨로크 밑에 자수정이 깔려 있다고 한다. 치유의 에너지는 자수정에서 나온 것이다. 벨로크처럼 언양도 자수정 기운이 강하다. 명상 중에 보니까 언양의 지기는 멀리 북만주의 흥안령까지 연결되어 있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흥안령의 땅기운이 한반도까지 쭉 내려와서 태백산맥의 꼬리뼈에 해당하는 경북 언양에 이르렀다.

    이는 한반도의 기운이 북방에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칭기즈 칸의 기운이 한국으로 내려왔으니 이젠 거꾸로 올라갈 시기다. 요즘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보면 한국식 횟집이 영업을 하고 있다. 횟집에서는 살아 있는 생선을 취급한다. 횟집의 수족관에는 살아 있는 광어나 도다리가 헤엄치고 있다. 어떻게 내륙인 몽골까지 활어가 공급될 수 있나. 한국인들이 서해안에서 활어를 수급해 트럭에 싣고 1주일 동안 운전하고 울란바토르까지 간다. 한국 사람들이 이처럼 끈질기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한반도의 기운이 현재 북방에까지 뻗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다.”

    이제 우리가 세계에 봉사할 때



    한바다 선생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 봐도 한국처럼 물이 깨끗하고 맛이 좋은 나라가 드물다고 했다. 물이 좋다는 것은 도 닦기에 좋다는 의미다. 물이 좋은 토양에서는 영감과 상상력, 그리고 좋은 약재가 많이 나온다. 그는 이런 내공을 가진 한국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로 인해 드디어 세계에 봉사하게 됐다고 진단한다.

    가진 것도 없이 이 산 저 산의 산장과 민박집을 돌아다니지만 그는 한국인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축포처럼 터뜨리고 있다. 그와 이틀간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대담을 나누고 나니 왠지 모를 희망이 솟구친다.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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