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골식당보다 더 자주 드나든 국회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지 한 달 후, 그는 정진엽 신임 장관에게 바통을 넘기고 물러났다. 9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한 카페에서 ‘자연인’ 문 전 장관을 만났다. 반포 자택에서 지하철을 타고 온 그에게 명함을 건네자 “저는 명함이 없습니다”라며 허허 웃었다.
마침 이날은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첫날이었다. 여당과 야당은 문 전 장관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 야당은 “문 전 장관은 메르스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 핵심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여당은 “이미 국회 메르스 특위 때 들을 얘기를 다 들었다”고 반박했다. 문 전 장관은 “오라는 연락은 못 받았고, 신문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기사를 읽었다”며 “피하는 건 아니고, 이미 드릴 말씀은 다 드리고 떠났다”라고 했다.
우리는 메르스를 몰랐다
▼ 퇴임사에서 ‘우리는 메르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병원 내 감염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 그리고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역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신속한 대응에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첫 번째 확진자가 나왔을 때 제가 외국에 있었고,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귀국해서 사태를 파악하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역학(疫學) 활동을 충분히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굴 야단칠 수도 없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에 따랐으니 직무유기라고 보기도 어렵고요. 게다가 과거에 유사한 일을 경험한 바가 없었습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공항 입구에서 막아버렸고, 신종플루는 호흡기 감염이라 역학을 할 수가 없었지요. 역학요원이 34명인데 그중 정규요원은 2명뿐이고, 32명은 공공보건의입니다. 미국에서는 2년간 교육받고 역학요원이 된다는데, 우리나라는 3개월만 교육해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스위스 WHO 총회에 참석 중이셨죠. 당시 주무 장관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해 초기 대응이 엉켜버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고 관련 조치를 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글쎄요. 좀 더 자세하게 보고받았었다면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지…. ‘만약’에 해당하는 얘기라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5월 말~6월 초 메르스 정국의 최대 이슈는 ‘정보 공개’였다. 메르스 발생 병원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거셌지만, 정부는 6월 7일이 돼서야 명단을 공개했다. 그사이 박원순 서울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4번 환자’와 밀접 접촉한 ‘35번 환자’의 동선(動線)을 공개했다. 35번 환자가 15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재건축 조합원 행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메르스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 당시 서울시 기자회견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재건축 조합원 행사에 참석한 분들은 확대된 매뉴얼을 적용하더라도 격리대상이 아닙니다. 이걸 기자회견 전에 서울시에 여러 번 얘기했어요.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이 제게 ‘당신은 두 가지와 싸워야 한다. 메르스 바이러스, 그리고 공포’라고 했습니다. 공포와 싸우는 것…곧 커뮤니케이션이죠. 그런데 불필요한 공포는 심어줘선 안 돼요. 결과적으로 (기자회견이) 국민에게 과도한 공포심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