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공대를 나온 공학도가 체질침에 빠져 무면허 돌팔이 침쟁이로 비원 앞을 전전했다. 정신상태를 의심하던 가족의 등쌀에 브라질 유학을 떠난 그는 그곳에서도 ‘코리아에서 온 침술도사’로 활약하면서, 인종은 달라도 사상체질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만난다는 ‘엄청난 진리’를 발견한다. 이후 의대에서 본격적으로 의학공부를 한 후 천시(天時)와 지리(地理), 인사(人事)를 아우르는 한의학의 길로 들어선다.
30년 가까이 기 수련을 해온 이의원 선생은 양한방을 아우르는 기의학이 진정한 의학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맹자’에 ‘天時가 不如地理요, 地理가 不如人事라’는 말이 나온다. 천시보다는 지리가 더 중요하고, 지리보다는 인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즉 사주나 풍수보다는 인사의 대가를 만나야 강호동양학의 고급정보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의 정신사에서 유불선 삼교가 서로 회통하듯이 사주, 풍수, 한의학의 강호삼학도 서로 회통한다. 따라서 한의학에는 천시도 들어 있고, 원리도 들어 있다.
영성 발달한 ‘스리丑’ 사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만나기를 염원하면 만나게 되어 있다. 이번에 인터뷰한 도암(道岩) 이의원(李義遠·56) 선생이 바로 인사의 대가라 할 한의학자다. 그런데 관상을 보니 도회지 인상이 아니라 시골사람 얼굴이다. 우선 눈이 작다. 눈이 작으면 북방계로 분류되는데, 북방계라면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추억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어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힘이 있다. 바깥으로 뛰쳐나가야 강호의 학문을 섭렵할 수 있다.
‘강호’라 하면 비제도권의 떠돌이 야인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 선생은 ‘가방끈’이 상당히 길다. 그의 이력을 보자.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를 나왔다. 1976년 브라질로 유학을 떠나 1983년 상파울루에 있는 산토스(Santos)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내과전문의를 취득했다. 1988년에는 브라질침술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체질침에 관한 서적을 포르투갈어로 저술하고 보급했다. 1993년 귀국하여 서울 강남에 선릉통증의원과 사대사상(四大四象) 체질연구소를 열었고, 정부산하 ‘산업기술연구회’ 평가위원으로 한국한의학연구소의 연구 평가에 참여하고 있다. 또 서초동에 있는 도암CL원장, 양·한방 클리닉 원장, 도암 CL암센터 원장을 겸하고 있다.
드러난 이력으로 볼 때 그는 머리가 좋고 공학을 연구했으며, 남미에서 16년 동안 생활한 경험이 있고, 양방의사이며 침술에 대한 조예가 깊다. 달리 표현한다면 공학·양의학·침술·한의학·방랑(放浪)이 조합된 독특한 인물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양방의학을 공부했다는 이력은 상당한 장점으로 여겨진다. 공학이라는 물리학적 이론배경과 양의학이라는 검증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한의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주를 물어보니 기축(己丑)년, 경오(庚午)월, 기축(己丑)일, 을축(乙丑)시다. 지지에 축(丑)이 3개나 있는 사주다. 이름하여 ‘스리축(丑) 사주’인데, 축은 영성(靈性)을 상징한다. 축이 3개나 있다는 것은 영성이 발달했다는 뜻이다. 천지인 삼재를 회통시키려면 영성이 발달해야 한다. 영성 없이 논리만 발달한 사람은 ‘팥소 없는 찐빵’이 되기 싶다. 말은 많지만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다. ‘스리축’이라면 이 분야에 설득력이 있는 운명이다. 자기 팔자대로 살아온 사람임을 금세 감지했다.
공대 출신 ‘돌팔이’ 침쟁이
-이력이 흥미롭다. 공대를 나온 사람이 의과대학을 간 것도 그렇고, 한국인이 남미까지 가서 대학을 다시 다닌 것도 그렇다. 또 16년 동안 브라질에서 살면서 체질침을 놓았다고 하는데, 체질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인가.
“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9년 3선 개헌 반대데모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당시 서울대 공대 화공과에 재학중이던 나는 데모를 주동한 혐의로 수사기관에 끌려갔다. 취조를 하던 수사관이 내게 ‘야! 너는 애초에 생겨 먹은 게 데모 체질이야. 도저히 말로 타일러서 들을 놈이 아니다’며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그 뒤 몸에 이상이 왔다. 허리가 고장난 것이다. 앉으나 서나 불편하고 누워서 잠잘 때도 통증이 계속됐다. 10분만 책상에 앉아 있어도 허리, 어깨, 목까지 당겼다. 대학병원도 여러 군데 다녔고, 용하다는 한약은 죄다 먹어보고 침 맞고 뜸 뜨고 척추교정도 해봤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당시 서울대 의대 해부학 교수로 있던 이명복 박사의 연구실이었다. 교수님은 내 외모를 관찰하고는 맥을 짚더니 태양인 체질이라면서 손과 발 몇 군데에 침을 놓았다. 침을 맞으면서 ‘나를 두들겨 팬 수사관은 데모 체질이라면서 병을 주더니, 이 의사는 나를 태양 체질이라면서 약을 주는구나. 그놈의 체질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수님의 체질침 치료를 한 달 넘게 받으면서 내 허리는 정상이 되었다. 또 기존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에서 고치지 못한 난치병들을 치료해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환자가 ‘사상체질’로 나뉘고 음양오행에 맞춰 손발에 몇 개의 침을 맞는 것만으로 치유된다는 것이 너무도 신비로웠다. 이는 대학에서 배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나 열역학의 엔트로피 법칙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고 실감나는 진리였다.
그 후 나는 이 교수의 특별한 배려로 체질침을 배울 수 있었는데, 마치 내가 전생에서 하고자 했던 일처럼 수월하게 익힐 수 있었다. 결국 데모하다가 다친 허리를 고치려고 명의를 찾던 중 이명복 교수님을 만나서 침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코리안 침술도사’, 의대 들어가다
-공대를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해서 월급쟁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남미의 브라질까지 가게 되었는가. 그곳에서 의과대학에 들어간 까닭도 궁금하다.
“졸업 후 대학 동창들이 취직을 하거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유학을 떠날 무렵, 나는 무면허의 돌팔이 침쟁이가 되어버렸다. 돈화문 비원 앞에 6평짜리 사무실을 얻어서 침술원을 차린 것이다. 무면허였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치료를 곧잘 하면서 체질침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현대의학이 못 고치는 병을 내가 고칠 수 있다는 데 희열을 맛보았고 인체의 오묘한 신비에 전율을 느꼈다. 내겐 아주 즐거운 일이었지만 가족이나 친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명문대학을 나와서 돌팔이 침쟁이가 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결혼적령기였지만 무면허 침쟁이에게 딸을 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급기야 식구들이 내 정신 상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한의학과가 최고 인기학과이고 사회적인 인식도 좋지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한의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그리 높지 못했다. 그 무렵 경희대에 한의학과가 생겨 학사편입을 시도했지만 온 가족이 반대하는 데다 학사편입이 쉽지 않았다.
때마침 브라질 상파울루 공대에 계시던 선배 교수로부터 화공과 졸업생 한 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문득 인생길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1976년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막상 브라질에 도착하니 지도교수가 부인의 건강 문제로 한국에 돌아가고 없었다. 그 바람에 대책 없이 홀로 브라질에 남게 됐다. 지도교수도, 장학금도 없었기에 대학원에 휴학계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는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상파울루 시내 한복판에 셋집을 얻어 침술원을 차렸다. 비원 앞 상황으로 돌아간 셈이다. 셋집을 얻고 남은 돈으로 상파울루 일간지에 지하철 승차권 크기만한 광고를 냈다. ‘코리아에서 침술도사가 오셨으니 요통, 관절염, 신경통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신비한 동양의 침술로 구제를 받을지어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조상님 덕분인지 하느님 은총인지 몰라도 하나 둘씩 브라질 사람들이 찾아왔고, 효과를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다른 손님을 데려왔다.
상파울루는 세계 3대 도시로 인종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여러 인종이 섞여 산다. 환자들 중에는 이탈리아계, 독일계, 포르투갈계, 유대인, 아랍인, 흑인 그리고 동양인이 두루 섞여 있었지만, 그들을 사상체질에 따라 분류 치료하면 반드시 일정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언어와 종족은 다르지만 ‘사상체질’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만난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개업하고 6개월이 지날 무렵 월수입이 수천 달러를 웃돌았다. 1977년 당시 한국의 기술자 월급이 200달러가 못되던 시절이었다. 월수 수천달러면 브라질에서도 고소득층에 속했다. 남자가 몸 건강하고 돈 많으면 뭘 하겠는가. 뻔하지 않은가. 밤거리의 나이트클럽을 유람하는, 말하자면 상파울루의 오렌지족 생활을 했던 것이다.”
-산토스 의과대학에는 쉽게 입학할 수 있었나?”
“1년 넘게 오렌지족처럼 지냈지만, 밤 생활의 즐거움보다는 체질의 신비가 진정 더 매력적이란 것을 알게 됐다. 그래, 체질을 연구해 보자. 그러러면 인체를, 아니 의학을 알아야 한다. 서양의학이 체질 연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한번 공부나 해보자. 의과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그 달부터 입시 참고서와 1년 동안 씨름했다. 마침 산토스 의과대학에서 시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습 삼아서 응시했다. 경쟁률이 60대1이나 되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집으로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의원 선생이 직접 개발한 생명장치료기는 천시와 지리, 인사가 모두 함축된 치료기구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고소득과 술집, 미녀들을 다 버리고 산토스로 이사하던 날, 궁궐을 떠나 수도승이 된 싯다르타를 생각했다.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침술원 겸 공부방을 마련했다. 점심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고, 밤에는 시험공부로 날밤을 세우는 10년 ‘구도생활’이 시작됐다.”
사상인과 통하는 서양 점성학
-남미의 의과대학은 한국 의과대학과 어떤 차이가 있나. 인상깊은 과목은 무엇이었나.
“정신과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정신분석과 점성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게 됐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서양 의학사에서 천문학과 점성학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와 히포크라테스의 어록 중 ‘점성학을 모르는 자는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영백과사전’ 한 권 크기의 점성학 전문사전도 보았다.
또 히포크라테스 이전부터 그리스 의학뿐 아니라 신화, 점성학이 모두 사대(四大, 공기·불·흙·물) 에너지 이론에 바탕을 두고 발전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또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공기의 신, 불의 신, 흙의 신, 물의 신으로 나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불을 하늘에서 훔쳐다가 땅에 전해줬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사나운 모습이 흡사 성난 소양인처럼 느껴졌다. ‘포도주와 향연의 신’디오니소스가 질탕하게 먹고 마시고 남근을 드러낸 채 퍼지게 잠자는 모습에서 식색(食色)을 즐기는 태음인이 연상되었다. 물 위로 솟아오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수줍은 듯 아름다운 자태에 용모 단정한 소음인이 겹쳐졌다.
점성학에서는 하늘의 별자리 12좌를 각각 공기기운, 불기운, 흙기운, 물기운에 따라 세 자리로 나눈다. 강의에 나온 한 점성학자는 ‘사대 기운에 따른 별자리의 성질, 그러한 기운과의 교감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기질적 특성과 세상을 보는 눈’ 등 점성학적 기질론과 인식론을 설명했다. 강의 내용은 내가 한국에서 들은 사상인(四象人) 설명과 아주 흡사했다.
결론적으로 점성학의 심오한 우주관과 인간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의사 노릇은 고사하고,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왜 하는지도 모른 채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매달려 깜빡깜빡 한 세상 관광하듯 살다 끝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우주를 지·수·화·풍(地水火風) 4가지 측면에서 나눠보고 4가지 형상을 그려낸 것은 허준과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뿐이 아니었다. 서양의학도 그렇게 출발했고, 2000년이 지나도록 그 맥락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침을 놓으면서 늘 생각하던 ‘허준의 사대와 이제마의 사상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지구 반대편 나라의 의과대생이 된 후 포르투갈어로 들은 것이다. 이후 나는 혼자서 이상한 흥분과 희열을 느끼며 산토스 해변을 자주 걸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 이론을 정립하게 됐다.”
사대와 사상은 서로 통한다
-어떤 이론을 정립했나.
“사대사상체질론(四大四象體質論)이다. 동서양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우주의 4원소인 사대와 조선후기 이제마가 이야기한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사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융합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상기로 형성되어 있다. 이 사상기는 지·수·화·풍의 사대와 상통한다. 이 네 가지 기운 중 어느 것이 지배적인가에 따라 체질이 결정되는데, 거기에는 이중적인 지배를 받는 복합체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사대사상체질론의 기본적인 구조다.”
-사상체질은 대충 알겠는데 복합체질은 모르겠다. 사실 사상체질만 해도 한의사마다 다르게 진단한다. 이 한의사는 태음인이라고 하는데 다른 한의사에게 가보면 소양인이라고 한다. 체질감별이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복합체질이란 또 무엇인가.
“복합체질 중 대표적인 사례가 ‘태양-소음 복합체질’과 ‘태음-소양 복합체질’이다. 만성 요통을 가진 어느 환자가 처음 왔을 때 소양인으로 치료받아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그 후 요통이 재발해 왔을 때는 그전의 소양인 치료가 별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태음인 치료를 함으로써 큰 효과가 나타났다. 그런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난번에 이 환자를 소양인으로 본 것이 틀렸나. 그렇다면 그때 어떻게 효과가 있었을까. 지금은 분명 태음인 치료 처방이 소양인 치료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 환자는 분명 태음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환자의 체질이 지난 몇 달 전에는 소양인이었다가 그 사이에 태음인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체질이 몇 달 사이에 바뀐다면 타고난 체질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체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은 끝에 두 가지 체질을 모두 지닌 복합체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한 가지 체질만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지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음중양(陰中陽), 양중음(陽中陰)의 이치가 나타난 체질이 복합체질이다. 즉 태양이라는 양 가운데 소음이라는 음이 있고, 태음이라는 음 가운데에 소양이라는 양이 잠복해 있는 것이다.”
이의원 선생은 자신의 저서 ‘인간, 세상 그리고 체질의학’에서 4가지 사상체질의 특징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4가지 체질에 따라 남북의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태양인은 천시(天時)의 눈으로 남북을 본다. 남북은 한 핏줄 한 겨레이므로 이념이나 체제의 벽을 초월해 당연히 하나가 되어야 할 동포요 형제로 인식한다. 소음인은 지방(地方)의 눈으로 본다. 특히 북쪽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은 생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고 조상님 무덤에 성묘를 하고 헤어져 만날 수 없던 친지들을 만나 쌓인 한을 풀고 못 다한 정을 나누는 것이 이념이나 체제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백로 체질과 까마귀 체질
소양인은 세회(世會)의 눈으로 남북문제를 본다. 남과 북은 엄연히 국가 이념과 체제가 다르며 적대관계인 다른 나라이다. 비록 생긴 모습과 쓰는 말이 같다고 해도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군사 대치를 하고 있는 남만도 못한 사이다. 태음인은 인륜(人倫)과 거처(居處)의 관점에서 본다. 통일이 되면 어떠한 혼란과 손실이 따르는지를 먼저 염려한다. 피를 흘리는 통일보다는 이대로 자리잡고 사는 게 훨씬 낫고 가난한 북한을 흡수 통일한다고 해도 뒷감당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거처가 불안해지는 것은 모두 결사반대하는 것이 태음인이다. 이렇게 보면 태양과 소음은 감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소양과 태음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이 선생은 태양-소음 복합체질을 백로에, 태음-소양 복합체질을 까마귀에 비유한다. 그는 까마귀의 특징이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해독하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 간(肝) 기운이 크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에서 흔히 잘 나가는 사람이 주지육림이나 주색잡기에 빠진다고 말하지만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주지육림과 주색에 빠지려면 우선 술의 알코올 성분과 고기의 지방을 분해 흡수하는 간 기능이 좋아야 하고 그 용량도 커야 한다.
반대로 간 기운이 약한 백로는 술과 고기를 즐기다보면 간에 이상이 빨리 오기 마련이다. 젊어서나 좀 즐길까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주지육림 속에 있는 것이 고통스럽기만하다. 술을 마시면 뒷감당을 못하고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트림과 방귀가 잦으며 대변이 나빠진다. 간 기운이 나빠지면 성 기능에도 장애가 와 성욕이 감퇴한다. 간 기운이 큰 태음성의 까마귀는 주지육림과 룸살롱이 체질에 맞다. 그러므로 정치와 사업은 까마귀에 맞다. 술을 마셔야 기분이 나고 고기를 들어야 속이 든든해지고 색(色)을 즐길 수 있다.
까마귀 틈에 백로가 끼어 함께 다니며 술과 색을 밝히다보면 제일 먼저 간 기운이 약해져서 탈이 나게 된다. 현재 한국사회는 까마귀에 맞는 문화다. 조직사회의 생리상 폭탄주가 돌아오면 꼼짝없이 마셔야만 하는 까마귀식 음주문화가 퍼지면서 이 땅의 백로형들이 알게 모르게 간 기능 장애로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일찍이 도중하차하는 일이 많다고 그는 지적한다.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한국 경제를 끌어올린 김학렬 재무장관이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부인이 한 말이 인상적이다. “낮에는 일로 사람을 들볶고 밤에는 함께 술 마시자고 놔주지 않더니 결국 제명을 다 살지 못하게 했다”는 한탄이었다. 이는 백로가 까마귀의 술자리까지 동참해야 했던 결과로서 건강이 무너진 케이스다.
이 선생의 서초동 병원에 필자의 관심을 끄는 독특한 기구가 하나 있었다. 동서남북이 표시된 둥그런 판에 십자가 형태의 나무막대가 설치되어 있고, 동서남북 네 군데 나무막대 끝에는 네모진 액자 속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환자가 그 중심에 서있으면 불균형한 에너지의 흐름이 균형 잡힌 흐름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장치라고 한다. 이의원 선생이 발명한 기구로 ‘생명장치료기(生命場治療器)’라 불린다. 생명에너지를 치료하는 기구라는 뜻. 천시와 지리, 인사가 모두 함축된 기계라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가 비원 앞에서 체질침을 놓은 이래 브라질을 거쳐서 다시 한국에 들어와 쌓은 30년 내공이 집약된 기구다. 생명장치료기에 내포된 천지인 삼재 사상을 분석해본다.
먼저 천시 부분이다. 질병 치료에 있어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 선생은 사람마다 상태에 맞는 특정한 시간대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에는 해와 달에서 오는 두 가지 기흐름이 있다. 해에서 오는 우선(右旋, 시계방향) 파동 에너지와 달에서 오는 좌선(左旋, 시계 반대방향) 파동 에너지다. 태양의 영향력, 즉 우선의 흐름이 인체를 지배하는 시간대와 달의 좌선 에너지가 인체를 지배하는 시간대가 각기 따로 있다. 이를 ‘해시간대’와 ‘달시간대’라고 명명했다. 음기가 부족해서 병이 난 사람은 달시간대에, 양기가 부족해 병이 난 사람은 해시간대에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태에 따라 각기 치료시간대가 다른 것. 보통 질병은 양기가 부족해서 생기기가 쉽기 때문에 해시간대에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체에는 태양의 영향력에 맞춰 움직이는 우선성 기흐름 주기(主氣)와 달의 영향력에 맞춰 움직이는 좌선성 기흐름 객기(客氣)가 있다. 해시간대에는 인체 내 주기의 흐름이 우측경락에 나타나고 객기의 흐름은 좌측경락에 잠복해 흐른다. 그러나 달시간대가 되면 반대로 객기가 우측경락으로 나타나고 주기는 좌측경락에 잠복해 흐른다. 따라서 달시간대에는 인체 자기장의 남북 방향성, 좌우경락의 반응성, 체질진단 결과(복합체질의 경우) 등이 뒤바뀐다. 따라서 해시간대와 달시간대에 한약재나 체질침 자극을 통해 오링테스트를 해보면 같은 사람인 데도 체질 진단과 치료결과가 달라진다.
해시간대는 하루 중 75%를 차지하고 달시간대는 25%를 차지한다. 달시간대는 한 시간에 1∼2회 꼴로 나타나며 1회에 10분 정도씩 하루에 36회 반복된다. 학교 수업이 50분 수업, 10분의 휴식시간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평균 30분의 해시간대가 지나면 10분 정도의 달시간대가 나타나며 교차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가 바로 천문개합(天文開闔)의 원리다. 하늘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별의 영향을 받는 인간
필자는 이 선생의 음양 시간대 이론을 들으면서 12지가 생각났다. 12지는 하루를 12시간으로 구분하는데 양과 음이 교대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자시는 양시이고, 축시는 음시이고, 인시는 양시, 묘시는 음시로 돌아가는 식이다. 옛 사람들이 이처럼 하루를 양시간대와 음시간대로 구분해놓은 것도 우주의 기운 흐름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걸 인정한다면 인간은 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천문이 그래서 중요하다. 동양에서 말하는 천문은 인간과 별이 상응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점성학과 사주의 원리도 여기에 있다.
별의 에너지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의원 선생은 좀더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가 밝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걸쳐있는 달시간대는 다음과 같다. 오전 9:50∼10:00, 10:20∼10:30, 11:00∼11:10, 11:35∼11:45, 오후 12:10∼12:20, 12:50∼01:00, 1:35∼1:45, 2:20∼2:30, 2:58∼3:08, 3:47∼3:57, 4:25∼4:35, 4:55∼5:05, 5:30∼5:40. 나머지는 해시간대이다. 하루를 음양 시간대로 나누어 보는 그의 독특한 학설은 ‘대한의사협회신문’에도 소개된 바 있다.
천문에서 이 선생이 중시하는 별자리는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은 고대부터 북반구 유목민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별자리로 매우 존중받았다. 그리고 칠성은 북두칠성뿐만 아니라 해와 달 그리고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7개 별과도 상응관계에 있다. 칠성은 다시 인체 내에 있는 7개의 차크라(바퀴 혹은 원형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인체의 기가 흐르는 7개의 중심통로를 말한다)와 각각 연결되어 있다. 7번째 차크라가 해의 영향이라면 6번째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생명장치료기에는 이 칠성의 기운을 받을 수 있도록 별자리가 그려진 천문도(天文圖)를 붙여놓았다. 환자가 이 천문도를 보면서 치료를 받으면 효과가 증대된다고 여긴다. 천문도 외에도 진인도(眞人圖)가 있다. 백회혈에서 에너지가 나와 천지자연과 교류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이 그림 역시 그가 창안한 것이다. 환자가 진인도를 보면서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한다. 또 하나의 그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입었던 옷, 즉 토리노 성의(聖衣) 사진이다. 여기에도 강력한 에너지가 뭉쳐 있다고 한다. 기독교인인 경우 토리노 성의의 사진을 보면서 치료를 받으면 효과가 좋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공황장애, 화병과 같은 정신병 치료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한다.
생명장치료기에 붙은 진인도. 백회혈에서 에너지가 나와 천지자연과 교류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환자가 이를 보면서 치료를 받으면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의원 선생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그는 남쪽을 향한 채로 수련을 하면 호흡이 잘 막히지만 북쪽을 향하면 호흡이 잘 통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또 오전과 오후에 그 방향이 바뀐다는 사실도 감지하게 됐다. 이런 체험이 몇 번 반복되면서부터는 눈을 감고도 동서남북을 알 수 있게 됐다.
이는 철새가 방향을 잡는 본능과도 같다. 철새는 뇌 안에 미세한 자철광이 있어서 방향을 잡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먼 길을 여행한다. 인간도 머리에 자장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고 또 그것이 지구 자기장과 교감한다는 사실을 그는 수련체험을 통해서 알게 됐다고 한다.
요는 인체 내에 지구의 남북과 자기장을 감지하는 센서가 내장되어 있는데,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으면 그 자기장이 흐르는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앉느냐, 또는 잠을 자느냐의 문제는 인체 에너지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이 원리를 질병 치료에 응용한 것이 생명장치료기다.
그는 몸에 이상이 발생한 환자 대다수의 에너지 흐름이 서북쪽을 향한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몸이 건강한 사람은 동남 방향을 향한다. 생명장치료기에 환자를 세워놓고 치료해보면 에너지 흐름이 처음에는 서북방에 있다가 상태가 호전될수록 점점 동남방으로 이동한다. 풍수에서도 서북방을 살기방(殺氣方)으로 본다. 그 이유는 서북풍이 몰아치면 인체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골에 가보면, 어느 동네든지 서북쪽에 나무가 심겨 있다. 서북풍을 막기 위해서다.
그가 말하는 에너지 흐름의 서북향과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서북풍이 서로 일치한다. 건강이 좋아질수록 에너지 흐름이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이동하는 눈금을 눈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생명장치료기 바닥에 동서남북이 표시된 방향판을 깔아놓았다. 여기서 관건은 방향을 체크하는 방법이다. 그 사람의 에너지가 동남쪽인지 서북쪽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선생은 그 사람의 배꼽에 자그마한 동판 삼각자를 대보면 안다고 말한다. 배꼽은 인체의 중심이기 때문에 십자로와 같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사 부분이다. 앞에서 설명한 체질감별이 인사에 해당된다. 단순 사상체질인지 아니면 복합체질인지를 감별해서 음양의 시간대와 방향을 정한다. 이처럼 천문, 지리, 인사를 종합한 입체 기구가 바로 이의원 선생이 발명한 생명장치료기다.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아는 것을 현실에서 구체적인 기구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발명가의 자질이자 공학적인 재능이다. 그가 공대를 졸업한 것도 이러한 기구를 만드는 데 일조했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기의학이다”
서울 강남이라는 사바세계의 한복판, 즉 방내(方內)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그는 방외(方外)의 품격을 지녔다. 음중양(陰中陽)이요 양중음(陽中陰)이듯이, 방내 속에 방외 있고, 방외 속에 방내 있다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가 이처럼 천문, 지리, 인사를 일관되게 연결하여 환자 치료에 응용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기(氣)다. 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가 없으면 영성도 없고, 영성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람을 깊이 모른다.
이의원 선생은 30년 가까이 기 수련을 해온 사람이다. 6년 전에는 쿤달리니(kundalini, 요가에서 말하는 인간 내면의 원초적 생명 에너지)가 폭발하는 경험을 했다. 쿤달리니 폭발로 인해 근 1년 동안 생과 사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나드는 고행을 체험했다. 하지만 이 에너지가 폭발한 사람은 기를 운용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그가 설명하는 체질론과 생명장치료기의 밑바탕에는 기가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이론을 정리해 ‘이제는 기의학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양한방의학을 넘어 기의학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어찌 보면 ‘스리축’ 팔자가 타고난 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