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간을 해서 말린 조기를 구우면 짭조름하고 고소한 감칠맛이 난다. [GettyImage]
작은 조기 너비는 굵지도 않은 내 손가락 두 개를 합친 정도밖에 안 된다. 대가리도 꼬리도 너무 작아 먹기가 미안할 정도다. “어차피 상에 오른 거, 끊어진 생명 값하게끔 먹자” 싶어도 먹을 게 너무 없다. 문득 인사동 식당에서 즐겨 먹던 보리굴비가 떠오른다.
고릿한 향, 짭짤한 감칠맛, 쫄깃한 생선살의 매력
조기에 천일염을 뿌려 절인 다음 열 마리씩 줄로 엮어 바닷바람에 한참 말리면 굴비가 된다. [GettyImage]
보리굴비는 바싹 마른 굴비를 겉보리에 ‘박아’ 숙성한 것을 일컫는다. 조기가 잘 잡히는 때는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다. 이때 잡은 조기를 크기에 따라 나누고, 간수를 충분히 뺀 천일염을 뿌려 절인 다음 열 마리씩 줄로 엮는다. 이후 맑은 물에 두어 번 헹궈 바닷바람에 한참 말리면 굴비가 된다.
아무리 잘 만든 굴비라도 여름이 가까워지면 상하기 쉽다. 그걸 막고자 보리에 박아두고 꺼내 먹느라 만들어진 게 보리굴비다. 보리는 습한 날씨에 생길 수 있는 수분을 흡수하고, 숙성을 도와 굴비에 독특한 풍미를 선사했다.
요즘은 조기 어획량이 줄어 조기로 만든 보리굴비를 보기 어렵다. 부세를 보리에 묻어 만든 보리굴비가 더 흔하다. 조기랑 비교하면 몸집이 ‘헤비급’인 부세도 양이 결코 많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툼한 살집에 속살이 나뭇가지처럼 연갈색을 띠며 윤기가 감도는 그 짭짤한 것을 내가 게 눈 감추듯 해치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 쫀득하게 찐 보리굴비를 식탁에 가져와 손수 해체해준다. 먼저 등과 배를 동시에 눌러 몸통을 반으로 가르듯 쪼갠다. 가운데 굵직한 뼈를 발라내고 살집을 큼직하게 뜯어 몸통이 있던 자리에 수북이 쌓아준다. 우리는 가장자리에 남은 잔가시를 조심하며 한 점씩 먹기만 하면 된다.
보리굴비 전문점에 가면 몸통 가운데 굵직한 뼈를 발라내고 살집을 큼직하게 뜯어 몸통이 있던 자리에 수북이 쌓아준다. [동아DB]
갓 지은 밥에 껍질까지 붙은 살점 한 덩어리
보리굴비는 먹을 때마다 짠맛, 감칠맛, 살집의 씹는 맛, 기름진 맛과 향이 매번 다르다. 사람이 손으로 간을 잡고, 숙성하니 당연하다. 그러니 “이번 보리굴비는 얼마나 짠가, 얼마나 깊은 내가 나는가” 작은 한 점 맨입에 넣고 꼭꼭 씹어 맛을 보자. 씹을수록 고소한 짠맛이 입맛을 깨운다.갓 지은 밥에 껍질까지 붙은 살점 한 덩어리씩 올려 본격적으로 먹다 보면 그릇이 금세 빈다. 밥 한 그릇 더 시켜 찻물에 말아 쫀득한 생선 살을 얹어 또 먹는다. 나는 맨밥보다 이편이 더 맛있다. 쫄깃한 살집이 쌉싸래한 물밥에 흐트러지며 퍼지는 맛이 정말 좋다. 보리굴비 파는 식당은 대체로 전라남도식이라 반찬도 입에 착 감기는 게 많다. 그렇지만 반찬에 손이 갈 틈이 없다. 생선 접시가 비고, 배는 차는 시점에 이르러야 다른 반찬도 눈에 들어온다.
보리굴비는 온라인 마켓에서도 많이 보이지만 보리에 묻어 숙성한 것이 아니라 해풍에 오래도록 잘 말린 것을 보리굴비라고 판매하기도 한다. 숙성의 감칠맛이 그만큼 좋다는 의미인가 싶지만 어쨌든 ‘보리’ 없는 보리굴비인 건 사실이다. 조기, 부세, 백조기 등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도 알고 값을 치러야 한다. 어느 생선이 더 맛있는가를 따지는 게 아니다. 생선에 따라 원가가 다르니 제값만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굴비라는 이름의 유래 중 줄에 엮인 생선이 마르며 구부러진 모양새 ‘굽이’라고해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생선 종류가 참조기 아닌 다른 것이라 해도 ‘굴비’는 굴비인 셈이다.
다시, 우리 동네 백반집으로 잠깐 돌아가면, 그 작은 조기가 알배기인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떻게 이토록 조그마한 몸에 알을 품나 싶은데, ‘멸종을 예감한 조기 나름의 방어책’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맛좋은 이야기를 실컷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가려먹어야 할지 고민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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