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방문으로 신념 드러내
“북한 지도자 믿나?” 직설화법
始終如一 대쪽 같은 기개
美 자유민주주의 수호 첨병
신념 하이킥 날리는 정치인 그립다
8월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왼쪽)이 대만 타이베이 입법원(의회)에서 차이치창 입법원 부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과 대만 의회 간 교류가 늘어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동북아 긴장케 한 하이킥 외교
SPAR 19는 미국 공군기다. 8월 2일 오후 10시 44분(현지 시각) 대만 쑹산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전 세계에서 292만 명이 스파19기라고 이름 붙은 미국 공군기를 지켜봤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은 펠로시.SPAR 19가 쑹산 공항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미국, 중국, 대만의 대응 태세는 전쟁영화와 같이 살벌했다. 호사가들은 “동북아가 새 전쟁으로 가는 도화선이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대만 총통 직속기관인 국립중앙연구원에서 대만 전략가들은 펠로시 방문을 앞두고 중국의 세 가지 도발을 상정했다. 첫째는 SPAR 19 격추, 둘째는 착륙 방해, 셋째는 무조건적 군사행동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투준비’ 명령을 하달했다는 소식이 SNS에 돌아다녔다. 미국은 공중급유기 9대를 일본기지에 추가 배치하는 등 중국의 군사 도발에 대비했다. 다행히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고 떠날 때까지 군사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펠로시가 다음 방문국인 한국으로 떠난 직후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는 군사훈련으로 결연한 국가 의지를 드러냈다.
살벌한 정치군사적 대치 상황을 뚫고 쑹산 공항에 내린 펠로시는 “대만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국의 결의는 철통과 같다”며 “대만 민주주의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권장하지 않았다”며 시진핑의 체면을 고려했다. 군사적 충돌 도화선이 되지 않기 바라는 속내를 보인 것이다. 베이징은 바이든의 태도를 ‘말리는 시늉’ 정도로 인식했다. 시진핑은 올해 초 바이든과 전화 통화에서 “대만해협에서 도발하지 말라”는 바이든의 요구에 대해 “미국이 불장난하면 타 죽는다”는 말로 결기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였다.
1940년생, 2년 임기 4기에 걸친 하원 의장, 미국 의전 서열 3위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해 외교적 신념을 보인 것을 필자는 ‘펠로시식(式) 하이킥 외교’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펠로시가 1987년 하원에 진출해 19선 38년간 의원 생활을 하면서 펼친 하이킥 정치는 처음이 아니다. 펠로시는 정치적 신념을 위해서 시진핑 정부, 김정은 체제는 물론 아베 내각, 트럼프 정부,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도 언제나 거침없는 하이킥 외교를 해왔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펠로시의 하이킥 외교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대응한 적이 있다.
文 평화 프로세스 때린 하이킥
2019년 2월 12일 백승주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미국을 방문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과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때 펠로시 의장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김정은은 핵 폐기에는 관심이 없고 한미연합전력 약화에 골몰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승주]
펠로시가 방문단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방문단을 만나자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이후에 김정은은 비핵화 약속은 이행하지 않고, 한미연합전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하이킥 발언’을 날렸다. 자리엔 긴장감이 일순 돌았다.
질문에 따른 답변 순서는 관례에 따라 문희상 의장, 이해찬·정동영·이정미 등 정당 대표, 그리고 나경원 원내대표 순이었다. 문희상 의장은 “북한이 영변, 동창리 및 풍계리 시설에 대한 조치를 시작했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는 경제발전이 어렵고, 경제발전 없이는 정권 유지도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답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18년 세 차례 방북했다. 이때 북한의 요구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발전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간절한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의 원조는 미국 민주당의 페리 프로세스”라며 “지난 400여 일간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이 없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펠로시가 20여 년 전 방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점에 대해 “나도 2018년 9월 13년 만에 평양을 다시 방문했는데, 북한은 핵무기가 아닌 경제발전을 원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대표단의 발언 내용은 역사적 증언이나 다름없다. 국회의 공식 출장 보고서를 통해 참조 및 확인했음을 밝힌다.
의장과 정당 대표 발언이 진행될 때 필자는 펠로시의 질문 내용에 대한 한국 사회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방문단에 동참한 야당의원으로서 ‘해야 할 책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뒷줄에 앉아 있던 필자는 손을 들어 관례적 발언 순서를 무시하고 발언을 신청했다.
“펠로시 의장의 질문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김정은은 핵 폐기엔 관심 없고, 한미연합전력 약화에만 신경 쓴다는 내용의 질문이었죠?”
펠로시는 “그렇다”고 확인해 줬다. 필자는 “그렇다면 그 견해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의한다”고 대답하며 김정은이 싱가포르 합의 이후 핵 폐기 대신 한미 전력 약화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실을 힘줘 설명했다. 펠로시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실질적 비핵화가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며 이와 관련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회담에서 나눴던 펠로시의 ‘하이킥 발언’이 다음 날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펠로시는 한국 정부 및 집권 여당의 입장을 수용하는 모호한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인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외교, 즉 ‘하이킥 외교’를 거침없이 보였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합의 직후 펠로시는 이를 “비열한 성명서”라고 직격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합의에 서둘러 도달하기 위해 북한 정권의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했다. 싱가포르 합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린 것이나 진배없다.
아베·김정은·트럼프? 거침없이 하이킥!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의결한 ‘일본군 위안부 사죄(HR121) 결의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위안부를 운영해 국가 주도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을 국제사회가 공식 인정했다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일본 정부가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기간까지 아시아와 태평양 제도를 점령하는 동안 피지배국 젊은 여성을 ‘성노예(위안부)’로 삼은 것에 대해 명백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역사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사과·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이다. 일본계 마이크 혼다 의원이 발의했지만 결의안 통과 과정에서 펠로시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펠로시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말로 당시 아베 내각을 거침없이 직격했다.일본 정부는 미일관계를 손상하는 행위라며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하고, 공식 경고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후일 펠로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환담 때 “아베 총리에게 수차례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압박했다. 결의안 통과 과정에서 행한 내 역할에 깊은 자부심을 가진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젠 고인이 된 아베 전 총리가 생전 그토록 듣기 싫어했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던, 위안부 관련 문제에 대한 펠로시의 정의로운 하이킥을 한국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김정은에 대한 ‘분노의 하이킥’도 백미다. 펠로시는 북한을 여행한 적이 있다. 1997년 7월 포터 고스 당시 하원 정보위원장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 후일 한국을 찾아 당시 방문 결과를 설명한 적이 있다. 펠로시는 “식량배급소 방문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유엔(UN),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식량을 더 지원할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100만t의 식량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는 북한의 실상을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것이다. 그러곤 북한의 현실을 ‘참상’으로 받아들였다.
펠로시는 북한 정권의 핵 확산 위험과 주민 억압 등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했다. 북한 주민이 겪는 참상을 위정자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김정은 일가에 대해 분노가 녹아든 불신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 국회의장단과 면담하면서도 북한 방문 경험을 밝히며 “끔찍했다”고 표현했다. 평양을 다녀와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설명하던 한국 의회 지도자들에게 “북한 지도자를 믿나?”라는 ‘비외교적 직접화법’으로 하이킥을 날린 것이다.
“민주주의 지키려는 결의는 철통 같다”
2019년 2월 5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아래)이 연설에서 “복수의 정치를 끝내자”고 말하자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오른쪽)이 조롱하듯 ‘물개 박수’를 치고 있다. [AP 뉴시스]
중국에 대한 펠로시의 하이킥 외교는 동북아 안보 정세를 요동치게 했다.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뿌리째 흔들려는 미국의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만을 매개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면 다 타 죽는다”는 시진핑의 말 속엔 펠로시의 하이킥에 대응하는 인식과 전략이 녹아 있다.
중국의 인식이 행동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하원 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뉴트 깅리치 의장이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반응했다. 펠로시의 방문을 두고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엔 두 가지 차원의 상황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자신감이다. 1997년의 중국과 2022년의 중국은 다르니 이를 받아들이라는, 즉 ‘G2 시대’를 인정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둘째는 우크라이나 상황 등 달라진 국제 환경이다. 미국의 국가경쟁력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입은 내상이 크다.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유린하는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여전히 의존하지만 ‘미국의 우산’이 충분하지는 않다고 여기고 있다.
미국·유럽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정치·군사적 실리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에 군사 조치를 취하고, 지배력을 행사하면 미국에 대한 동북아 국가의 신뢰도 급속히 와해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대만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드러내 동북아에서 군사적 결속을 기대하는 것이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이와 같은 메시지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대만과 세계 다른 지역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국의 결의는 철통(Iron clad) 같다”는 펠로시의 말은 한국,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고함, 역사적 경고로 들어야 한다.
You know, I know, Everybody knows
8월 4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회는 펠로시의 8월 3~4일 방한 때 위상에 합당한 의전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가 서운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신념과 확신에 찬 펠로시의 하이킥 정치와 외교를 보면서 한국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느낄까.
펠로시는 1997년 단 한 차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참상을 잊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김정은은 핵 폐기 노력은 하지 않고 한미연합 태세를 해체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범야권 진보정당 지도자들은 그간 수차례 평양을 방문했다. 그들은 인권이 부재한 평양을 외면하면서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저 “김정은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믿으며, 경제발전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펠로시의 하이킥에 일격을 당했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태도는 마찬가지다. 최근 필자가 만난 민주당 의원들은 “북핵 폐기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인권 문제에는 꿀 먹은 벙어리다.
필자가 8월 방한한 펠로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강제북송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펠로시는 “You know, I know, Everybody knows(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안다)”고 답했을 듯하다. 강제북송을 변호하는 건 ‘나쁜 정치’라고 일갈했을 것이다. 펠로시처럼 바른 신념의 하이킥을 날리는 한국 정치인이 그립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