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의 결의에 찬 연설
국민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
‘같은 슬라브인’이란 개념의 혼돈
불필요한 항전으로 피해 키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월 23일(현지시간) 크림반도 반환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체 ‘크림 플랫폼’ 참석을 위해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뉴시스]
내 입술을 보라. 가스 없이 사느냐, 너희 없이 사느냐? 우린 너희 없이 사는 것을 선택한다. 전기 없이 사느냐, 너희 없이 사느냐? 우린 너희 없이 사는 것을 선택한다. 물 없이 사느냐, 너희 없이 사느냐? 우린 너희 없이 사는 것을 선택한다. 음식 없이 사느냐, 너희 없이 사느냐? 우린 너희 없이 사는 것을 선택한다.
너희와의 친분, 너희와의 형제애가 우리를 두렵게 하며, 추위, 굶주림, 어둠과 갈증은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우리는 전기도 가스도 음식도 있는 곳에서 살게 될 것이며, 다만 우리는 너희가 없는 곳에 살게 될 것이다.”
9월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및 전쟁 책임자들을 향해 내놓은 연설의 일부다. 어중간한 평화 협상으로 물러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싸워서 이기겠노라는 결의가 느껴지는 이 연설에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 연설이 감동을 준 1차적인 이유는 비장하고 결연한 자세 때문이다. 마치 영화 ‘300’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100만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로 쳐들어왔다. 죽음을 각오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용사 300명은 테르모필레 협곡을 막고 싸우려 한다. 크세르크세스의 부하 장수 중 하나가 ‘우리가 화살을 쏘면 하늘을 뒤덮고 태양을 가릴 것이다’라고 협박하자, 스파르타의 젊은 용사가 하는 말. “너희가 화살로 태양을 가린다고? 그럼 우리는 그늘에서 싸울 것이다.”
하지만 젤렌스키의 ‘너희 없이’ 연설은 그렇게만 소비하고 말 내용이 아니다. 위 세 문단은 ‘국민국가(national state)’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2022년의 우리가 역사책에나 등장하던 사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이 믿는 구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인종적 주류는 슬라브족이다. 슬라브족은 동유럽에 퍼져 있던 민족으로, 키에프 공국과 모스크바 공국이라는 두 개의 정치적 구심점을 지니고 있었다. 독자 여러분이 직감할 수 있다시피 키에프 공국은 우크라이나의 전신이며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로 이어졌다.본래는 키에프 공국의 힘이 더 강했고 주도권을 지니고 있었으나, 역사의 흐름은 점점 모스크바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정 러시아 이후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공산주의 종주국’과 ‘위성국’의 형식으로 고착화했다. 일종의 상하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인종적 거리감이 없고 문화와 종교마저 공유하고 있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어를 완벽히 구사한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에서 흔한 일이다. 러시아, 러시아인들과 늘 교류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벌어지는 당연한 현상이다.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들은 서로를 은유적인 의미에서 사촌으로 여기거나, 실제 혈연을 맺고 있는 경우 또한 흔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푸틴이 믿는 구석 역시 그것이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와 심정적 거리가 가깝다. 따라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먼저 나서서 평화를 주장할 것이다. 어차피 정치란 높으신 분들이 하는 일이며 ‘백성’들에게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기왕이면 더 큰 나라인 러시아의 영향력에 푹 빠지는 건 평범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 내의 친러파가 들고 일어나면서 젤렌스키 정권은 위기에 몰릴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력에 따라 움직이는 괴뢰국가가 될 것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러시아의 ‘특별 군사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우크라이나의 기세가 높아진 가운데, 올해 4월 공개된 부차 학살의 참혹한 모습들이 우크라이나 국민 정서에 쐐기를 박았다.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철수한 도시 부차에 우크라이나군이 진입해 보니 최소 300명 최대 1000명 넘는 시민이 무차별 학살당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 끔찍한 모습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순식간에 우크라이나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에게는 부차 학살이 ‘전쟁의 끔찍함’ 같은 말로 압축될 수 있는, 냉정히 말해 남의 일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껏 형제, 사촌, 친척이라고 생각해왔던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민간인을 학살한 모습을 생생하게 각자의 스마트폰과 방송을 통해 목격했다. ‘같은 슬라브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충격과 혼돈에 빠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민족적 동질감이 깨진 그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으며 전쟁을 이어나갔다. 평야 지대를 통해 진격하는 러시아의 탱크들이 미국산 재블린 대전차미사일에 속수무책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우리의 승리!’를 외쳤을 것이다. 중요 거점이자 항구 도시인 마리우풀의 아조프 제철소에서 벌어진 끈질긴 농성전, 그럼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했던 패배의 아픔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더욱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인’으로 각성하게 했을 것이다.
8월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이 거리에 전시된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 등을 구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8월 24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국민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전쟁 기간 파괴하거나 탈취한 러시아군 무기와 장비들을 길에 전시했다. [AP 뉴시스]
‘너희 없이 살아간다’ 연설 곱씹어보라
러시아에 온정적인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젤렌스키가 연설은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불필요한 항전을 계속함으로써 평화를 원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전쟁은 젤렌스키가 빨리 백기를 들었다면 벌어지지 않았거나, 적어도 지금처럼 긴 소모전이 되지는 않았다. 전쟁을 시작한 건 러시아지만 피해를 키우고 있는 건 젤렌스키라는 소리다.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전쟁의 책임을 푸틴이 아닌 젤렌스키에게 (일정 부분이나마) 돌린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젤렌스키의 ‘너희 없이 살아간다’ 연설을 곱씹어 보자. 저 강경하고 뜨거운 언어는 젤렌스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9월 초순부터 반격을 시작한 이래 순식간에 넓은 영토와 도시를 회복하면서 달아오른 우크라이나인들 스스로의 열기가 반영돼 있다.
젤렌스키가 아니라 평범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야말로 전쟁 의지에 불타고 있다. 그 어떤 독재자라 해도 국민의 열망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물며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라면 여론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다. 부차 학살로 눈을 뜨고 최근 전쟁의 흐름이 바뀌면서 불타오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여론은, 단지 전쟁을 더 지속하자는 차원을 넘어선다. ‘러시아인이 아닌 우크라이나인’이라는 별도의 민족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젤렌스키의 연설문은 바로 그 점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당신은 아직도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전쟁 전까지는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인들도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생각해왔다는 소리다. 침략자 푸틴은 그런 인식 하에, 우크라이나인들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피하고자 젤렌스키를 버리고 러시아의 품에 안기리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동일하거나 거의 유사한 민족이 두 개의 국가를 이루고 전쟁에 돌입하자, 민족 때문에 국가가 사라지기는커녕 국가 간의 전쟁이 두 개의 민족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수행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가인 찰스 틸리(Charles Tilly)가 했던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국민국가의 진실이다. 국민국가는 전쟁하는 기계이며, 동시에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제아무리 평화와 민족을 외쳐도 넘을 수 없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근본 규칙이다.
왜 여전히 ‘민족 담론’ 힘이 센가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북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쪽에는 여전히 평화통일을 지상명제로 삼는 이들이 있다. 그 반대편 끄트머리에는 당장 통일부를 폐지하고 북한을 동등한 외국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영구분단론자들이 존재한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명확한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가장 크고 중요하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으려 드는 ‘방 안의 코끼리’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북한이다.필자는 북한 문제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껏 쌓여온 역사적 경로와 제도, 탈북자의 인권 및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북한발 대량 난민 문제 등을 염두에 둘 때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우리의 국민’으로 취급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과 북한이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교류와 평화적 통일을 막는 일본, 미국 같은 외세를 철저히 배격하자는 진보진영의 사고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한국과 북한은 72년 전 처절한 전쟁을 벌였고, 서로 수십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으며, 참혹한 학살극을 주고받았다. 그 후로 민간 레벨의 교류는 사실상 끊어진 상태로 수십 년을 보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실체로 존재한다면, 이미 ‘다른 민족’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 있었고 시간이 흘렀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민족 담론의 힘이 세다. 어째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6‧25전쟁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영향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신생 국가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국가의 구성원들 역시 그 나름의 방식과 경로를 따라 개별적인 국민으로 형성됐다는 인식은 상대적으로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엄연한 진실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6‧25전쟁을 ‘외세에 의한 비극’으로 바라보는 것 외의 관점을 모두 야만적 반공주의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겪어온 지난 70여년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전쟁을 올바로 기념함으로써 더 나은 국민국가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