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기업 발목 잡는 불합리 규제 개선 박차
혁신제품 구매 비중 늘려 기업 발전가능성 제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전문성, 일신우일신 강조
이종욱 조달청장. [김도균 객원기자]
이 같은 ‘전략적 조달’ 기능이 부각되면서 공공조달 전문기관인 조달청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조달청은 전략적 조달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규제혁신’과 ‘혁신조달’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규제혁신 정책은 연구개발과 상품화에 성공한 혁신기업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혁신조달은 혁신제품에 공공구매력을 집중해 전도유망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안정과 경제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정책이다.
공공조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조달정책의 중심엔 5월 13일 취임한 이종욱 조달청장이 있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발을 들인 이 조달청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장기전략국장, 국고국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경제정책 전반에 폭넓은 안목을 가진 ‘경제통’으로 평가받는다. 10월 6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만난 이 조달청장은 “공공조달 시장은 실력 있고,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초기기업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경제성장을 위한 스프링보드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혁신으로 혁신기업 도전 문턱 낮춰
취임하고 5개월이 지났다. 정부가 조달청장 자리를 맡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기획재정부에서 국고국장으로 일하던 2019년 말, 조달사업법을 30여 년 만에 전면 개정했다. 조달청의 주무국이다. 혁신조달 계획을 짤 때도 내가 담당 국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조달청장 후보자 가운데 조달청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가장 빨리 적응할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한다.”
경제 전문가로서 조달청의 소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최근 고물가,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우리 경제가 어렵다. 이러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조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공공조달을 적극 활용해 기업의 혁신적 성장과 경제 활력 제고에 이바지하는 것이 조달청의 현재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조달청은 혁신성장 지원, 중소기업 판로 확대라는 기치 아래 연간 184조 원에 달하는 공공구매력의 전략적 활용을 한층 강화할 것이다. 아울러 기업의 창의·자율을 저해하는 조달 현장의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조달시장이 우리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역동적인 공공조달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통해 구매 효율성이라는 조달청의 기본 임무는 더욱 충실히 수행하면서, 경제 상황과 시대적 환경이 요구하는 경제성장·경제안정 등 공공조달의 전략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공공조달 정책을 통해 민간의 역동적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들었다.
“혁신기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사주는 나라가 많다. 영국, 스웨덴 등 유럽연합(EU) 국가와 캐나다 등 많은 선진국에서 공공혁신조달 제도를 토대로 정부가 시장에 없는 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선도적 구매자가 돼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받아들여 혁신제품을 정부가 먼저 구매해 최초 사용자가 돼주는 혁신제품 시범 구매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6월 초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717개 공공기관에서 743억 원을 들여 260개 혁신제품을 구매했다.”
취임사에서 ‘공공조달의 성찰과 혁신’을 강조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 등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다. 공공조달의 역할이 기존의 ‘소극적 구매자’에 머문다면 혁신성장 지원, 경제 활력 제고 등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조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시대가 요구하는 공공조달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시행한 공공조달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원점에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에서 ‘공공조달의 성찰과 혁신’을 강조했다. 우선 수요자들이 지적한 불편 사항을 바탕으로 조달 현장 곳곳에 관행·계약조건 등의 형태로 숨어 있는 그림자 규제를 찾아내 개선하고자 한다,”
대대적 규제 혁신을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기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
“조달청장으로 조달 현장 규제 혁신에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조달시장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조달시장은 기업에게 제품개발 투자와 상용화 노력이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 지점이고, 공공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경영 성패까지 좌우하는 곳이다. 또한 구매자인 공공기관과 판매자인 조달기업의 거래를 잇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기에 조달청의 규제 혁신 노력은 전체 공공조달시장에 합리적인 표준과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연간 184조 원에 달하는 공공조달시장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중소기업 지원, 혁신산업 촉진 같은 정책적 효과도 높일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장, 체감, 대안의 3대 대(大)원칙을 세우고 불합리한 업무 처리나 부당한 비용전가 같은 관행적 규제를 속도감 있게 발굴해 혁신하고 있다. 7월 7일에는 민간전문가들을 모시고 조달현장 규제혁신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조달현장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이를 통해 국민공모와 간담회에서 모은 138개의 규제혁신과제를 선정하고 이 중 기업들의 비용·시간·서류 부담을 덜어 줄 22건을 우선 추진 대상으로 추렸다.”
혁신제품 발굴과 지원 강화
혁신조달도 주요 정책 중 하나다. 앞으로 달라지거나 추진하려는 혁신조달정책은 뭔가.“혁신조달은 정부가 먼저 나서 혁신제품을 구매하고 이를 행정 현장에서 사용함으로써 공공서비스를 개선하고 동시에 민간의 혁신성장을 촉진시키는 적극적 조달정책이다. 그간 혁신조달을 추진하며 양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 9월 현재 총 1309개의 혁신제품을 발굴했다. 이 중 378개 제품이 1029개 기관에 공급돼 전국의 다양한 행정 현장에 적용됐다. 그 규모만도 1068억 원에 이른다. 앞으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맞는 새로운 혁신조달 제도를 보완·발전시켜 혁신제품 구매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우선, 더 다양하고 참신한 혁신제품 발굴에 역점을 두겠다. 이를 위해 인큐베이팅(정책 현장에서 제시한 추상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제품 발굴)·스카우터(기존 조달시장 밖에 있는 혁신기업이나 혁신제품을 직접 발굴) 등 혁신제품 수요와 신제품을 발굴하는 과정에 민간전문가와 국민 참여의 폭을 더욱 넓혀 나갈 계획이다. 혁신제품의 판로 확대에도 힘쓸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다양한 혁신제품을 조달청 종합쇼핑몰에서 손쉽게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혁신제품의 쇼핑몰 등록을 위한 단가계약을 내년 초 시범 추진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 그리고 코트라(KOTRA), 코이카(KOICA) 등 대외협력 전문기관과 공동으로 해외실증사업, 개발사업협력 등을 추진해 대한민국의 우수한 혁신제품이 해외 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아울러 정부 역점사업 지원을 위한 혁신조달의 정책적 기능을 강화하고, 혁신조달 기여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높이겠다. 또한 혁신제품을 많이 구매하거나 혁신조달 제도 발전에 기여한 우수 기관·공무원에 대해서는 기관평가 우대, 포상 등 인센티브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혁신조달은 아직 제도가 성숙해가는 단계다. 혁신조달 운영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전담기관의 법적근거를 마련해 혁신조달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혁신조달 종합포털 혁신장터’(https://ppi.g2b.go.kr)에 들어가면 혁신제품 지정 및 심사 절차 등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혁신장터 홈페이지 캡처]
“상용화 직전 제품 중 공공성, 혁신성 등이 인정돼 혁신성 평가와 조달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된 혁신(시)제품은 지정 기간 동안 수의계약 대상이다. 조달청 시범구매 사업 참여도 가능하다. ‘혁신조달 종합포털 혁신장터’(https://ppi.g2b.go.kr)에 들어가면 혁신제품 지정 및 심사 절차 등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요소수에 이어 니켈 등의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원자재 비축의 중요성이 커졌다. 비축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나.
“조달청은 현재 수급조절, 가격안정, 위기대응을 목표로 알루미늄, 구리, 니켈 등 비철금속 6종을 비축하고 있다. 총 비축규모는 약 23만t으로 국내 수입 수요 기준으로 약 51일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비축하고 있는 비철금속은 국내 기업에 상시 방출해 원자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급에 차질을 빚었던 마스크도 공공 비축을 시작해 현재 약 3500만 장을 비축했다. 공급망 패러다임이 효율성에서 안정성 중심으로 변하고 있어 앞으로 비축 규모와 품목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6대 비철금속 비축 물량을 국내 수입 수요 기준 60일분까지 늘리고 산업 수요가 높은 니켈, 알루미늄을 우선적으로 확충하려고 한다. 지난해 수급 문제가 발생한 차량용 요소수와 정수용 활성탄도 올해 안에 비축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비축자금, 시설 등 인프라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산 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비축 자금을 확충하고, 비축 창고를 신축하는 등 인프라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
전문성과 균형 잡힌 시각 장착해야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공조달시장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객과 접점에서 현장을 지키는 직원들에게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흔히들 수요기관과 조달기업을 조달청의 변함없는 고객이라고 하는데, 내겐 우리 조달청 직원들이 최고의 고객이자 든든한 우군이다. 기회만 되면 직원들에게 최고의 조달전문가가 되라고 강조하고 있다. 연간 184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나라살림을 다루는 것이 조달 기능의 핵심인 만큼, 조달공무원의 전문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편향이나 쏠림 없이 두루두루 살피는 균형 잡힌 시각도 당부한다. 조달청은 나라장터나 공공쇼핑몰 등을 통해 공급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최적의 조달거래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잘 살피면서도 동시에 구매자인 공공기관의 편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혁신과 변화하려는 자세도 자주 주문한다. 낡은 관행이나 불합리한 제도는 항시 문제의식을 갖고 고치고 손봐야 한다. 조달 현장의 규제혁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연구개발과 상품화해 성공하며 죽음의 계곡을 넘은 기업이 불합리한 규제로 발목이 잡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닭과 병아리가 함께 도와야 한다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자세로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현장의 상황과 목소리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기관장으로서 업무량과 조직 문화에 문제는 없는지 직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소통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조달청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뭔가.
“조달청을 중심으로 180조 원이 넘는 전체 국가기관의 공공구매력을 어떻게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고심하고 공공조달 예산 규모와 사용 계획을 사전에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각 기관마다 시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구현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기업 발전과 경제 성장,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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