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4회 기부, 나라와 민족 사랑의 발로
부자 아냐, 월급 모아 평생 나눔 릴레이
힘들 때 더 선한 마음 가지면 축복 받아
남북, 서로 왕래하며 좋은 감정 이어가길
권송성 아태산업개발 회장은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은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일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1월 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권송성(82) 아태산업개발 회장은 최근 전해진 기부 소식에 대해 묻자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권 회장은 25년간 차고 다니던 금시계와 반지를 팔아 통일부 남북협력기금에 1180만 원을 기부한 미담의 주인공이다.
권 회장의 이름 앞엔 ‘천사’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따라다닌다. 소년소녀 가장 돕기, 불우이웃돕기 등 그가 한 숨은 선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통일부 남북협력기금에 기부한 것도 이번이 네 번째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며, 2002년 경의선 철도 연결을 성원하며 각각 1000만 원을 기탁했다. 2018년에는 경의선 보수공사에 써달라며 또 1000만 원을 내놨다.
권 회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벌어진 참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2001년 9·11테러 당시 자신의 회갑연에 들어온 축의금을 몽땅 미국 정부에 기부했는가 하면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사비를 털어 적십자에 성금을 보냈다. 미국 정부는 이런 권 회장에게 골드 어워드(2015), 마틴루터킹재단은 마틴루터킹상(2016), LA카운티는 명예시민상을 수여했다. 스무 평이 조금 넘는 그의 사무실에는 수십 년에 걸친 나눔의 흔적이 책상 위 수북한 액자에 담겨 있다.
양어머니 고종 황녀, “민족 사랑하라” 당부
이토록 나눔에 열심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10대 시절에 많이 아팠어요. 폐가 나빠져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하나님께 ‘살려주시면 약하고 불쌍한 사람을 많이 도와주겠다’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받아주셨어요. 제가 한 약속을 실천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나만 위해 살기보다 남을 돕고 함께 행복하게 잘사는 삶을 지향하다 보니 기부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남북협력기금에 기부한 건 조금 다른 차원 아닌가요.
“고종황제의 딸인 고(故) 이문용 여사가 제 양어머니예요. 어머니가 생전에 ‘민족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누차 하셨어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다기에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민족끼리 끊어진 철도를 연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모래 한 줌, 돌 하나라도 보태고 싶어 기부했고요. 부자여서가 아니라 월급을 모아 기부한 거예요. 난 부자가 아니에요. 이번에 시계, 반지를 팔아 기부한 건 북한에서 침범하고 공격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국민으로서 당연한 도리를 한 거죠. 원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자’는 주의인데 언론매체와 통일부에서 자꾸 연락이 와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나라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알리게 됐어요.”
양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여기는 것 같아요.
“친어머니는 제가 열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30대 후반부터 모신 양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여기며 살아왔어요. 저는 친구들 부모에게도 명절 때 용돈을 보내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아요. 부모에게조차 잘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건 위선이죠.”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에 건강해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국민이라면 누구나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애국이 아니에요. 목욕탕에서 선풍기가 헛바람을 돌리면 전기를 끄는 자세, 지하철에 버려진 휴지 쪼가리를 주워 휴지통에 넣는 자세, 그런 게 다 나라 사랑입니다. 공직자나 국회의원은 자신을 권력자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라사랑의 시작입니다. 스스로 국민의 일꾼이자 나라의 일꾼이 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대통령은 잘하고 있나요.
“얼마 전 고향인 전북 정읍에 갔더니 윤석열 대통령이 잘한다는 얘기를 합디다. 화물연대 노조의 농성 장기화를 막았다고 평이 좋아요. 열심히 하려고 개혁을 외치고 정의를 수호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남다르니 앞으로 더 잘할 거예요.”
기부를 계속하는 것에 가족들이 불만을 갖진 않나요.
“아내는 기부를 싫어하지 않아요. 3남매도 아버지가 한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고요. 아이들에게 집 사주고 결혼식 치러주고 대학교까지 뒷바라지했으면 아버지로서 할 도리를 다 한 거 아닌가요.”
기부가 삶에 미친 영향은 어떤 건가요.
“어머니가 생전에 축복을 받으면 많이 배려하며 살라고 말씀했는데 나눌수록 제가 얻는 기쁨이 더 커요. 기부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지고 운동하는 것도 재미나요. 이 나이까지 봉급 받으며 일하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여러 건설회사 고문으로 일했고, 국보디자인 회장을 지냈어요. 지금 회장직을 맡고 있는 아태산업개발은 CJ 계열 대한통운의 협력업체예요.”
‘나’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많아지도록 처신해야
살면서 방황하거나 길을 잃은 적이 있나요.“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몸이 아파서, 사업에 실패해서, 남에게 배신당해서 등등의 이유로 힘든 적이 있었어요. 그렇게 넘어졌을 때, 힘이 없을 때 더 선한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한번은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어떤 노인 양반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분을 들쳐 업고 병원에 갔어요. 내가 참 힘들 때였는데 치료비를 내드렸어요. 돈을 내지 않으면 치료를 안 해줄 때였거든요. 주머니에 할아버지 신원을 알 수 있는 것이 있기에 가족에게 연락해 상태를 알렸더니 자녀들이 왔어요. 저한테 치료비를 주려는 걸 사양하고 잘 보살펴 드리라 당부하고 왔어요. 그러고 며칠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식들이 수소문해 우리 집을 찾아왔어요. 내가 부자인 줄 알았다가 세 들어 사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세상에 이런 분이 또 있냐면서요. 이렇게 힘들 때 더 선한 마음을 가지면 신이 축복을 주세요.”
힘들 때 마음을 다잡아 주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요.
“좌우명까지는 아니고 ‘예쁨을 받는 것도, 미움을 받는 것도 자기 할 탓’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처신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인격이 중요하면 남의 인격도 중요하죠.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계속 현직에서 뛰고 있어요.”
새해 소망이 뭔가요.
“무엇보다 나라가 잘돼야 합니다. 나라 없이 내가 있을 수 없어요.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110년 동안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로, 남북 갈등으로 마음 아프게 살아왔어요. 당장 통일이 되진 않더라도 남북이 왕래하고 갈등이 풀리길 소망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권 회장에게 여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최후까지 꽃향기처럼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크리스천이기에 하나님의 귀한 아들이고 싶어요.”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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