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관통한 ‘이끼 끼지 않는 돌’
대중에 좋은 영향 주고 올 곧게 살려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 즐겨
송중기는 “지루한 것을 못 견디고 새로운 것을 좋아해 해외 오디션에 계속 참가한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로기완’은 3월 1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첫 주 비영어권 영화 부문 글로벌 3위로 출발해 이내 1위로 올라섰다. 3월 13일 넷플릭스 TOP10 웹사이트에 따르면 3월 4~10일 누적 시청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510만 뷰를 기록하며 비영어권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포르투갈, 말레이시아, 터키 등 총 31개국에서 ‘톱 10’에 들었다. 이는 해외 관객에게도 영화의 정서가 통했음을 방증한다.
영화는 탈북자 로기완(송중기 분)이 중국에서 숨어 지내다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김성령 분)를 잃고 벨기에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칙칙하지만 건빵 속 별사탕처럼 간간이 튀어나오는 멜로와 살벌한 액션 신이 눈과 귀가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로기완’으로 연기 폭이 한층 넓어졌다는 평을 듣는 송중기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났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는 그는 해외 반응을 확인해선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아내, 아이가 삶에 가져온 변화
-좋은 성적이 나왔다. 기분이 어떤가.“무엇보다 다른 문화권에서 이걸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호평이 됐든 악평이 됐든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유튜브에서 영어로 로기완을 쳐보니 이걸 리뷰하는 유튜버들이 있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 다행으로 여겼는데 다른 문화권에서 좋은 성적이 나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7년 전 출연을 거절했던 작품으로 안다. 마음을 바꾼 특별한 동기가 있나.
“원래 드라마와 영화를 번갈아 가며 출연하는 라이프 사이클을 선호한다. 그렇게 일하는 게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가 좋더라. 근데 코로나 사태로 스케줄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영화 ‘화랑’ 촬영을 끝내고 이 작품을 찍게 됐다. 7년 전에도 이 작품이 좋아 출연하고 싶었는데 만 내용 중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 고사했다. 이후 이 작품이 왜 안 나오나 궁금했는데 그 시나리오가 다시 내 품에 들어왔다. ‘이런 인연도 있구나, 운명이구나,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이 안 되던 문제가 해소됐나.
“엄마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인물이 엄마의 희생을 밑천 삼아 벨기에까지 가서 사랑타령 하는 상황을 공감할 수 없었다. 공감이 가지 않는 인물을 어떻게 연기하겠나. 그런데 ‘재벌집 막내 아들’이란 드라마를 찍으며 이 작품의 대본을 다시 받았을 때는 신기하게 그 부분이 공감이 되더라.”
-내용이 바뀌었나.
“큰 차이가 없었다. 큰 줄기는 그대로고, 여주인공 마리 캐릭터 설정이 구체적으로 바뀐 것 빼고는 거의 다 비슷했다. 대본은 같으니 내 마인드가 바뀐 거다. 죄책감이 됐든 뭐가 됐든 힘들지만 꾸역꾸역 살아남아 난민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로기완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살아남다 보면 잘 살고 싶을 거고, 사람이 잘 살려면 가족과의 사랑이 됐든 친구랑 사랑이 됐든 연인과의 사랑이 됐든 사람이랑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다른 이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데는 그의 일상 변화가 한몫했을 듯하다. 송중기는 지난해 초 전직 배우인 영구인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결혼하고 그해 6월 “아내가 고향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고 출산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영화 ‘화랑’ 개봉을 앞두고 만났을 때 그가 세상 다 가진 사람의 표정으로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가 생겼다. 그런 변화가 로기완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끼친 건가.
“스며든 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 했던 생각과 그때 가졌던 관심사가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듯이 로기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그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공감의 폭도 그렇게 이 시간에 따라 다르고 저도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그게 이유가 될 수도 있겠죠.”
‘로기완’의 한 장면. 난민 신청을 한 로기완이 법정에서 판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넷플릭스]
알고 보니 ‘로기완’과 닮은점 많아
-김희진 감독이 “송중기 배우가 예상치 못한 생존 연기를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감독님이 나를 띄워주려 한 말인 것 같다.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원래 살짝 언 얼음물에 들어가는 신인데 현장 여건상 그런 상황이 조성되지 않았다. 더 지체하면 촬영에 지장이 생길까 봐 그냥 내가 들어갔을 뿐이다. 해 뜰 시간이 얼마 않아 내가 물속에 빨리 들어가야 촬영이 빨리 끝나니까.”
-시청 평을 보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느낌이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예상하지는 못했는데 ‘불호(不好)’의 이유 중 하나가 멜로 부분에 공감하지 못해서인 걸로 안다. 7년 나도 그 때문에 거절했기에 그런 반응을 이해한다. 다만 바람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봐주신다면 좋겠다. 대본을 다시 보면서 내가 공감한 경험을 같이 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사회적 약자를 연기하며 느낀 점이 있나.
“이 작품을 찍을 때 아내가 임신을 하고 있었고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인간 송중기로서 많은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한국에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혜택도 많이 받은 배우인데 주변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는지’를 곱씹은 적이 많은 것 같다.”
-로기완 캐릭터와 닮은 점은 뭔가. 가정적인 면?
“닮았다기보다 가정적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제작사인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 판권을 살 때 만났던 로기안이라는 캐릭터가 송중기를 만나서 온도가 되게 뜨거워졌다. 덜 수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 됐다’고 말이다. 그 말에 답이 있지 않나 싶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도 닮아 보인다.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없으면 주인공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할 때는 평소에도 작품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제작자들이 주인공한테 출연료를 많이 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도리를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로기완은 순수하고 사려 깊은 인물이다. 마리에게 밥을 차려주고 “여자를 때리는 남자랑은 만나면 안 된다”는 충고도 한다. 그런 면도 닮았나.
“그 대사에 깊이 공감한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못된 남자다. 이런 남자를 만나면 절대 안 된다. 기완처럼 순수한지는 모르겠고 올곧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지점이 닮았다면 닮은 것 같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인가.
“그런 편인 것 같기도 한데 이제 아이가 생겼으니 참아야 하지 않을까(웃음). 대중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신인 시절 그러지 않는 선배들을 보면서 실망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학생의 마음으로” 해외 오디션 두드려
인생을 관통하며 삶의 고비마다 마음을 다잡아준 좌우명이 있는지 묻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온다.“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그렇게 썼다. 지금도 그 말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송중기는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자신이 잘하고 인정받은 장르나 캐릭터를 선택해 쉬운 길을 가기보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영역과 환경에 기꺼이 몸을 던져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스타일이다. 이 시대 가장 몸값 비싼 배우 중 한 명인 그가 ‘화란’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것도,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하는 와중에도 해외 작품 오디션에 “학생의 마음으로” 계속 참가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다른 문화권에 있는 현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 재미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겸손하고 성실하게 일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있다고 할까. ‘로기완’보다 먼저 찍은 영화 ‘보고타’도 그런 이유로 출연한 작품이다. 해외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개봉이 미뤄졌다. 개봉하기 좋은 시기를 타진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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